사이펀 신작시 금희숙
here and now 외
페달도 없이
북촌 한옥마을과 남대문시장을 돌아 경복궁과 인사동, 서울광장을 지나 청계천을 따라 달렸지
지나온 곳을 클로즈업해 보면
탄산이 빠져버린 사이다처럼
포옹할 것도 같은데
그림엽서가 있는 진열대와 각종 행사 포스터가 붙어 있는 전봇대와 울퉁불퉁한 포석들, 모퉁이를 돌면 플라스틱 의자가 널브러진 포장마차와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사내와 떠들썩하게 웃고 마시는 사람들
정수리와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맥주는 흘러넘쳤고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도 같았는데
적당해, 중간은 하겠어, 보통이야
모든 것이 진부해지고
솜사탕을 파는 노점상과 풍선을 매단 가판대를
흉내 내듯 계속 돌다 보면
구부정하게 지지직거리지
구석에 둘러앉아 장기를 두는 노인들처럼
두고 온 게 있어서 느릿느릿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려 했는데
주파수가 맞지 않은 라디오처럼
두리번거리다가 흩어지고
입 다물다가 헛발질하지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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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뚜껑입니다
뭐가 있나요? 뚜껑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생각에 불을 붙이면 기침이 나기도 하고. 뱀처럼 요리조리 피해 가기도 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얼굴 뒤에 올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하지. 꾸물거리다가 어긋나고. 비틀어지고. 시무룩하다가 자빠지기도 해. 그래서 뚜껑과 얼굴을 혼동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뚜껑을 돌리기도 해. 알고 있는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인지. 알쏭달쏭할 때는 뚜껑만 바라보세요. 뚜껑 안에서 복권을 긁을 수도 있잖아요. 꽝만 나오면 어때요. 사실은 뚜껑이 아니니까요. 그럼 깨물어봐요. 초인종처럼 눌러봐요. 손님이거나 가족이거나. 모르는 얼굴이라도. 불쑥 꺼낸 악수를 따라가 볼게요.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튀어나올 것도 같은데. 골대를 벗어난 공처럼 어차피 돌아갈 수 없다면. 뚜껑 없는 얼굴처럼. 등 뒤에서 누군가 하품을 할 때. 나일까 낙서일까. 폐품일까. 너무 많은 뚜껑 때문에. 아직 찾지는 못했습니다만. 엉덩이에 쥐가 나도. 아무튼 믿어볼까 해요. 두드리면서 비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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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숙|202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