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가 되었다고 회사에 등록하고 나면 단축 근무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임신 초기와 거의 만삭이 되었을 때에만 통상 8시간 근무에 1시간 휴게 시간을 갖던 근무 일과에서 6시간 근무로 변경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임신 루틴을 거의 한 바퀴 채워가고 있는 지금은 임신부라고 해서 임신 기간 내내 몸이 힘들다기 보다 특정하게 어려운 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5월 8일에 임신인 것을 확인했는데 대략 한 달 뒤인 임신 10주 차 정도 되자 입덧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입덧 증상을 겪으면서 몇 가지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신 것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뭘 잘못 먹거나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해서 귤이나 오렌지 주스처럼 신맛이 나는 걸 먹거나 마실 때에만 잠시 그 거슬리는 감각이 잊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김치볶음밥 같은 것을 만들 때에도 식초를 넣어 먹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주문 내역을 보면 거의 열흘에 한 번꼴로 오렌지 주스 2리터와 귤을 주문해서 먹었더군요.속이 계속 안 좋으니 한 군데 오래 집중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단축 근무라고는 해도 출퇴근할 때 타는 지하철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입덧이 한창 심할 때는 속이 너무 메슥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중간에 내려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지하철을 탄 적도 있었습니다. 임산부석이 있는 이유를 그때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특정 음식에 대한 욕구와 회피입니다. 먼저 욕구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입덧 기간에 돈가스와 감자튀김이 엄청 먹고 싶어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둘 다 임신 전까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의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바로 돈가스여서, 결혼하고 남편에게 몇 번 맞춰준다고 먹은 것이 전부였습니다.감자튀김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햄버거 같은 것을 먹을 때에도 어지간히 배가 고프거나 메뉴를 같이 먹는 사람과 통일해야 하지 않는 이상 단품과 음료만 주문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돈가스가 너무 맛있을 것 같고, 감자튀김을 좀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카레 할 때 이외에는 (껍질 벗기는 게 귀찮아서) 사지 않았던 생감자를 사서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겨 잘게 썰어서 직접 감자튀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주로 10대~20대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돈가스를 꼽는 것을 자주 봤는데 그때마다 마음속으로는 어린애 입맛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태어나기도 전부터 좋아하는 음식일 줄은 몰랐습니다. 돈가스를 좋아하는 어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금 마음이 넓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특정 음식에 대한 회피의 경우에는, 해산물 요리에서 나는 비린내가 너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번은 회사 식당에서 가자미 구이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가자미 한 마리가 넓적한 접시에 담겨 나왔습니다. 평소에 생선구이를 정말 좋아해서 기쁜 마음으로 밥을 타서 자리에 앉았는데, 젓가락을 생선에 대자마자 갑자기 생선 비린내가 훅 끼치는 것입니다. 평소라면 맛있게 느껴졌을 바다향이 너무 강렬해서 식욕이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억지로 한 입 입에 넣어봤는데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먹기 싫어지는 경험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세 번째는 음식을 먹는 양입니다. 과식은 몸에 좋지 않지만, 그래도 살다 보면 가끔 과식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8월에 소고기 무한 리필 집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그때가 그랬습니다. 계속해서 음식을 주문하니 얼마나 먹었는지에 대한 감이 희미해졌었는데, 회식이 끝나고 집에 오는 택시를 탔는데 포만감이 점점 커지더니 배가 정말 찢어지는 것 같고 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전용도로가 지나자마자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좀 걸었습니다. 몇 킬로미터를 걷고 나자 조금속이 진정되어서 집에 무사히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리 먹고 싶어도 과식은 꾹 참으려고 했습니다.
입덧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아기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몸 안의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모체가 익숙해질 때까지 거부 반응을 보이는 거라고도 하는데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입덧을 완화시키는 약이 있어서 입덧 기간에 대한 기억이 힘들지만 버틸만한 추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운이 좋게도 명랑하고 건강한 산모로 지내다 보니, 가끔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물론 임신은 힘듭니다. 생명을 품는 일이 쉬울 리 없습니다. 무엇보다 입덧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잠이 드는 것 밖에 없다는 점과 어느 한 군데 집중하기 어려울 만큼 속이 좋지 않은 점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놓고는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이 고통에는 이유도 있고 끝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마다 곧 만나게 될 아기를 생각하는 것은 긴 과정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분명 마음 편지를 읽고 있는 분들 모두 태어나기도 전부터, 잉태되고 나서부터 어머니에게 힘을 주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임신이 지금보다 더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비즈니스가 적어 고통을 경감시키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가족들, 친구들에게도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갖추고 있던 멋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당신은 지금도 힘을 주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