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나의 전부 되시는 하느님을 기억합시다.
2019/09/08/일
루카 복음 14장 25-33절
25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
신학생 때 이야기입니다. 신학교에서 소임을 마치고 떠나시는 신부님의 짐 정리를 도울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제관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짐들을 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짐도 짐이지만 버리지 못하고 아까워 움켜쥐는 신부님의 ‘소유욕’이었습니다.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저도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임지를 떠날 때마다 늘어난 물건들에서 그때 받은 ‘충격’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고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오늘 복음 말씀은 그 시절의 충격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정신으로 주님만을 따르고자 했던 신학생 시절의 결심을 떠오르게 합니다. 새파랗게 젊은 신학생이 나이 지긋한 신부님의 이삿짐에 혀를 끌끌 찰 수 있었던 건, 어린 치기였는지 모르지만, 당시 저는 실제로 가진 것이 없어 떳떳했었기 때문일 겁니다. 문제는 지금의 나는 소유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는 것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의 기도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라는 구절을 되뇌어봅니다. 특히 소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진 것을 최소화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만약 소유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김정일 신부(의정부교구 고양동성당) |
생활성서 2019년 09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