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반갑습니다 /Nice to meet you(2)
프랑스 소설가요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년~1980년)는
인생은 B(Birth) 와 D(Death) 사이에 C(Choice) 라고 했다.
또한 안병욱 교수 님은 인간은 3 가지 선택에 의해서 산다 하셨다.
첫째, 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 (배우자의 선택)
둘째, 나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직업의 선택)
셋째,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관, 가치관의 선택)
즉 인간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기의 선택(만남)에 의해서 살다가 간다.
그 삶을 사는 기간을 우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단 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요,
중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라 하지 않던가!
이처럼 중단 시킬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다가 간다.
그렇게 누구와 만나서 무엇을 하면서 살다가는 삶은 우리는 인연이라는 고리에 의해서 맺게 되는 것이다.
그간 나는 많은 인연을 만났고 지금도 그 인연에 감사하며 그 감사함에 대해 갚지 못함에 마음을 조이며 살고 있다.
언제인가 꼭 갚아야 한다 하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해서 갚지 못한 채 세월을 먹고 있다.
동종 선근 설(同種善根說)에 의하면 우리가 한나라에 태어나 만날 수 있는 인연은
1000 겁의 선근을 이뤄야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오늘 그리고 앞으로 만날 우리는 이미 1000 겁의 인연을
이뤘기에 이뤄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만날 것인가? 만남에는 직접 만나서 눈으로 보는 만남이 있고
귀를 통해서 만나는 만남도 있을 것이다. 여기 올리는 글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 곧 귀를 통해서 만나는 만남일 것이다.
즉 앞으로 내가 올리는 글이 이해도 안 되고 믿기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있을 줄 안다. 그것이 걱정되는 일이다.
가정(假定)해서 "나는 보릿고개를 겪으며 굶주림에 살아온 사람이다“라고 하면 “배가 고프면 라면 끓여먹으면 되지”
할 수도 있고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새벽 종이 울리면 달려 나와 “일하면서 싸우자”
하고 살았다 하면 무슨 소리 하는 거여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대도 있을 것인데 이해를 바라기가 쉽겠는가?
그래서 미리 말한다.
2021년 1월 우리나라 인구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인구가 5182만 명이라고 한다.
또한 내 나이로 사는 사람이 65000 명이라 하니 내 나이가 얼마인지 어느 정도 이해하리라 본다.
그렇다. 나는 요새 흔히 말하는 꼰대요(국어사전에는 없다?) 나이가 되기까지 굶주림은 말할 것도 없고
호롱 불 세대를 거쳤고 우물 세대를 지냈으며 주경야독 세대를 살아왔다. 또한 공돌이 공순이 세대를 지냈으며
서독 광부, 간호사, 중동 건설 노동자 세대를 겪으며 그저 먹고 사는데 목숨을 바치고 살아 온 세대이다.
6.25를 거쳤고 4.19를 경험했으며, 민주화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소리를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산 세대이며
(민주화 무엇 하자는 운동이었나? 결과는 무엇이고?) 그러다가 지금은 공짜에 눈이 벌게 져서 입만 벌리고 사는
꼴까지 보고 사는 세대가 되었다.
옛말에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 했거늘, 언제까지 우리 속담에서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살려 하는가? 일하는 사람에게 지원해야지 일확천금이 떨어지는
직장 만을 고르고 있는 자들에게 날이 새면 갖은 명목으로 지원하겠다는 소리에 억울해서 분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삶이 헛되이 살았구나 하고 가슴을 쥐어뜯는 세대이다. 그렇다고 ‘어디로 갈 거나?’ ‘어디로 가야 하나?’ 탄식
하자니 가슴이 메어진다.
일제 36년에 열사 의사가 몇 명이었던가? 그런데 지금 자고 나면 열사 의사가 쏟아지니 이 또한 무슨 조화인가?
민주화 유공자라 하면 분명 우리나라를 민주화(?) 시키는데 공이 있어 유공자로 선정했을 거고 그래서 보상 비도
주는 것 일진데 어찌 받는 사람도 보상 비도 깜깜하단 말인가?
그래 내가 지금 처음 만나 인사 드리는 모든 분에게 나의 울분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인연은 이렇다. 나는 어느 카페를 통해 이룻 이라는 분을 만났다.
그분은 내게 이 자리를 마련토록 도와주셨다. 해서 이 자리를 통해 앞으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고, 제 글을 읽는 분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려 한다.
내가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보통 사람이 겪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나의 닉네임이 ‘쇠뭉치’이다. 쇠뭉치, 얼핏 듣기에 어 이것? 하실 분도 많으실 거다.
그러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시면 가로 젓던 고개가 위 아래로 되지 않을까 싶다.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 7. 26~ 1950.11.2.)가 그의 묘비 명에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내가 너무 오래 삶의 길에서 머뭇거리면 이런 일이(죽음) 생길 거라는 걸 내 알고 있었지“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하지 안했던가!
그렇다. 우리 모두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저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살았을 뿐인데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온 삶에서는 마지막 날인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에서는 첫째 날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느끼는 3가지 후회가 있다.
첫째, 젊어서 자식들과 재미있게 살지 못한 삶
둘째, 부모님께 용돈 제대로 드리지 못한 삶
셋째, 부모님이 편찮으셔 누워 계실 때 바깥 구경 시켜드리지 못한 삶
그러나 이제 어쩌랴.
모두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삶인 걸.
그러니 이제라도 내 삶 찾아서 살아가 보자.
이룻 퐁당퐁당 가족 여러분!
긴 인사 올렸습니다. 그만큼 늙은 이가 되어 있기에 제가 드리는 말씀이 황당하게 여기실
가족도 계실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 올렸습니다.
헬렌 켈러가 그랬습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도 가득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드리는 말씀으로 받아 주시면 합니다.
筆名 쇠뭉치 배상
첫댓글 뭉치님의 글 기대 됩니다
뭉치님은 글 쓸수있으신 님이신것 같다는 느낌 을 받으며
사시는날까지 건강하시기 기원합니다
山愛家님! 반갑습니다.
저에게 직장 동료로서 가장 친한 친구 중에 닉 네임이 "산이 좋아(사니조아)" 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닉 네임이 '산애가' 이시니 같은 느낌을 주셔 애정이 갑니다.
저는 세가지 선택을 잘하고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조금은 힘들게 살았지만....
제가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 많은 시간 떠나지 않음은 선생님 말씀 대로 사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자전적 소설, 시를 통해 선생님을 알았고 그 삶이 자랑스러워 "멘토, 롤 모델"로 여기고
살고 있음을 기억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