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사리와 도라지의 '퇴장' ◈
해방 2년 차였던 1947년,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물가를 조사했어요
수십 품목을 들여다보던 조사원들은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전체 가계 지출의 절반가량을 세 품목이 차지했기 때문이었어요
쌀·장작·고춧가루가 46.3%였지요
당장 한 끼를 먹고 추위를 피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어요
전국 단위의 소비자물가지수 출범은 1965년.
직접 가정을 방문해 쌀 한 바가지, 석유 한 통, 목욕탕 입장료 등
111개 품목의 가격을 손글씨로 장부에 적었지요
지금은 455개를 온라인 등으로 조사하고 있어요
국가데이터처가 5년마다 들어오고 빠질 품목을 정하지요
이번 개편에선 챗GPT와 쿠팡 구독료 등 10개 품목이 새로 들어갔어요
인공지능 시대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빠진 품목에서 눈이 멈췄지요
반세기 동안 자리를 지킨 고사리와 도라지가 제외됐어요
나물 직접 사서 다듬고 무쳐 먹는 가정은 요즘 손에 꼽히지요
그러나 고사리와 도라지는 차례상과 제사상에 반드시 올려지는
품목이었어요
그렇지만 성균관까지 나물 3종을 고집할 필요 없다고
권고하는 세상이지요
여전히 제사 차리는 집 찾기도 쉽지 않아요
들고 나는 품목을 보면 세태가 보이지요
5년 전에는 넥타이가 빠졌어요
자율 복장제 확대와 노타이 문화 속에
넥타이 공장들은 문을 닫았지요
같은 해 프린터와 사진기도 제외됐어요
디지털 문서가 확대됐고,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지요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종이 사전은
2011년 개편 때 빠졌어요
전자 사전 등장 이후 책상을 지키던
국어·영어 사전의 시대도 끝이 났지요
올해 새로 들어간 음식 품목에는 마라탕과 밀키트가 있어요
마라(麻辣)는 '저려서 마비되다'라는 뜻의 마(麻)와
'맵다'는 뜻의 라(ラ)가 합쳐진 말로,
혀가 얼얼해지는 독특한 향신료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지요
중국 쓰촨성 뱃사공들의 길거리 음식에서 유래했으나,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사골 육수를
베이스로 활용해 고소하고 진한 맛으로 대중화되었어요
또한 밀키트(Meal Kit)는 요리에 필요한 손질된 식재료와 양념,
그리고 레시피가 세트로 구성된 제품이지요
재료를 따로 구매하고 다듬을 필요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직접 근사한 요리를 완성할 수 있어,
일상 식사나 캠핑 등 야외 활동에서 인기가 매우 높아요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 대략 300원 이상이 포함 기준이지요
2005년에 피자와 치킨이 들어가며 패스트푸드 시대를,
2010년엔 원두커피가 입성하며 카페 문화의 본격 개막을 선언했어요
10년 전에는 초밥, 5년 전에는 쌀국수가 포함됐지요
이들만 봐도 대한민국 식탁의 다채로운 변화를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원년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멤버가 있지요
쌀·쇠고기·돼지고기와 소금·간장·된장이지요
한국인의 삶을 지켜온 ‘영혼의 식재료’라 말할수 있어요
도라지·고사리의 퇴장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지요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삐삐와 사진기가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었듯,
매달 결제하는 AI 구독료 역시
언젠가 다른 신문물에 자리를 내줄 것이지요
물가지수는 우리가 통과 중인 시대를 담아내는
정직한 거울인 셈이지요
다음에는 무엇이 빠질까 궁굼 하네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一松) *-
▲ 고사리 나물
▲ 도라지 나물
▲ 마라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