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3장 16-28절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하나님의지혜
살아가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다가옵니다. 문제를 해결해야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당신만 바라보고 있고, 그 문제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문제라면 난감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지혜의 열쇠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재판 이야기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를 시험하는 장이었습니다. 그가 백성의 송사에 귀기울이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사회에서 멸시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어졌습니다. 이런 지혜야말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참 지혜입니다.
재판을 요청 받는 솔로몬(16-22)
어려운 일이 갑자기 다가오면 대부분 당황합니다.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 앞에서는 순간적으로 막히기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태도는 당황스런 상황이 다가오면, 당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고 일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 응답하신 내용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6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17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 18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19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20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23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24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25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26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28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16-28)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열왕기에만 기록된 ‘한 아이에 대한 친모 판별 소송’(16-28)은 위의 질문에 대답해줍니다. 이 사건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첫째, 온 이스라엘에게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왕임을 증명합니다(28). 둘째, 백성의 재판을 분별력 있게 판결하도록 ‘듣는 마음’을 구한 솔로몬에게(9)
하나님께서 응답한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12)이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이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함과 응답의 진정성이 증명되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지혜의 근원임을 깨닫게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의 민생 치리에 적용됨으로써 왕국의 견고함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됨을 입증합니다.
(1) 두 창녀의 한 아들(16-22)
오늘 솔로몬이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은 한 아들을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송사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일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왕임이 증명되었으므로(28), 이 일은 기브온에서 돌아온 후(15)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두 여인은 ‘창기’로 소개되는데(16), 이는 왕 앞에 송사를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이 사회의 소외계층까지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나그네,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베풀 것을 명한 하나님의 의중(신 27:19)에 부합합니다. 두 여인이 왕 앞에 섰다는 것(16)은 이 송사가 마을의 장로나 재판관 사이에서 판결이 나지 않아 왕에게까지 올라온 어려운 소송임을 함축합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먼저 산 아이의 친모로 밝혀지게 될 여인이 사건 전모를 증언합니다(17-21). 두 여인은 한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친모가 먼저 아들을 낳았고, 삼 일 후에 가짜 친모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가짜 친모가 실수로 자신의 아들 위에 눕는 바람에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 여인은 밤중에 일어나 친모가 자는 틈에 친모의 산 아들을 데려와 자기 품에 뉘고, 자기의 죽은 아들은 친모의 품에 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에게 젖을 먹이려고 일어난 친모는 아들이 죽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때 친모의 증언을 듣고 있던 가짜 친모가 나서서 산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친모도 이에 질세라 가짜 친모를 반박합니다. 사건이 나던 밤에 집에는 두 여인과 아기들만 있었으므로(18) 다른 증인은 없습니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뒷받침할 만한 물증도 없습니다. 솔로몬은 재판에 필수적인 증인이나 증거 없이 오직 두 여인의 말만을 듣고 판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역사에서 재판이 공식화되고 체계화된 것은 출애굽 이후입니다. 애굽을 떠나 광야로 들어선 백성들 사이에 여러 분쟁이 일어났고, 모세는 종일 이들의 송사를 해결해주었습니다(출 18:13).
재판은 분쟁 당사자들의 양쪽 주장을 듣고, 그들에게 마땅한 하나님의 율법을 전달하는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출 18:16). 모세 혼자 송사를 떠안고 있는 것을 본 장인 이드로는 일의 과중함과 비효율성을 파악했습니다. 이에 그는 재판관의 정의, 재판의 올바른 방법, 분담의 필요성을 모세에게 조언했습니다(출 18:19-20). 이드로는 무엇보다 재판관이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자임을 강조했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백성의 송사를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이는 재판관이 백성의 대리인으로서 송사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시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결해야 함을 뜻합니다.
실제 판곁에 있어 재판장의 역할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경고하고 그들이 행해야 할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출 19장)을 통해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십계명을 기본으로 한 여러 율법을 제공하셨습니다. 이는 현대의 헌법 및 부차적인 법률에 상응합니다. 이드로는 재판의 효율적 체계를 위해 자격 있는 자들을 뽑도록 모세에게 권유했습니다. 재판관은 영적, 도덕적 면에서 고결함이 요구되며,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능한 자, 부정한 이득을 얻는 것을 혐오하는 자, 정직한 자여야 합니다(출 18:21-22).
조언에 따라 모세는 백성 중 천 명, 백 명, 오십 명, 열 명을 거느릴 자들을 각각 세웠습니다. 이 재판관들은 작고 쉬운 사건들을 처리했고, 어려운 사건들은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은 재판 제도를 기초로 가나안 정착 후 왕정시대에 이르러서 재판권은 왕에게 속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왕이 성읍에 재판관들을 임명하여 백성의 송사를 판결하게 했고, 어려운 판결은 왕 앞에 나와 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삼하 14장; 15:2-4; 왕하 15:5; 대하 19:5-7). 그 외에도 규례에 따라 장로들이 성읍 백성의 송사를 다루는 재판관 역할을 했습니다(신 21:18-21).
(2)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23-28)
솔로몬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판결을 내려 아기의 친모를 가려내고, 이로써 그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왕임이 증명됩니다. 먼저 솔로몬은 소송의 진상을 ‘두 여인이 살아있는 한 아이를 서로 친자라 하고, 죽은 아이는 상대편 아들이라 주장한다’(23)고 요약합니다. 이 말은 다른 증인이나 증거 없이 여인들의 증언만을 토대로 판결해야 함을 함축합니다. 이때 솔로몬은 갑자기 신하들에게 칼을 가져오라 명합니다. 칼을 대령하자, 솔로몬은 칼로 아이를 둘로 나눠 반반씩 여인들에게 주라는 파격적인 판결을 내립니다(25).
두 사람이 하나를 놓고 소유권을 주장하므로 반반으로 나눠주는 것은 언뜻 공정한 판결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상이 생명체가 아닙니까! 아이를 죽이면 두 여인 모두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므로 공평한 처사라 생각될 수 있으나, 분쟁을 없애기 위해 소유물을 없애는 것이 공정합니까? 아이의 억울한 죽음은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이 판결은 들은 친모는 경악했고, 가짜 친모는 흡족했습니다. 친모는 아들에 대한 긍휼이 불타올라, 아들을 제발 죽이지 말고 가짜 친모에게 주라고 간청합니다.
모성애를 표현한 ‘긍휼이 불붙다’(26)에서 ‘불붙다’(카마르)는 ‘뜨거워지다’, ‘열망하다’, ‘불타다’의 뜻입니다. 이는 요셉이 친동생 베냐민을 애굽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를 향해 사랑의 마음이 복받쳐 오른 상태와 같습니다(창 43:30; 참조. 호 11:8). 하지만 가짜 친모는 산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일말의 동정심이나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친자가 아니니 자기가 차지할 수 없다면 친모 또한 아기를 갖지 못하게 할 심사였습니다. 그녀는 신하들에게 어명을 받들어 아이를 죽이도록 재촉합니다. 친모는 친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 들지만, 가짜 친모는 비열하고 비정하게 남의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자기 아들은 ‘실수로’ 죽였으나, 남의 아들은 ‘고의로’ 죽이려 듭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긍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생명의 원천과 생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며, 그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시는 분이란 사실을 망각한데서 옵니다. 죄는 이 여인처럼 마음에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자기 생각을 그 자리에 두는 데서 출발합니다. 솔로몬은 여인들의 심리적 반응을 보고 친모를 구별해내어, 아이를 친모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 것을 명합니다(27).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 소식은 온 이스라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이 판결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이뤄졌음을 자각했습니다. 이로써 백성들은 솔로몬을 경외하며 그가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왕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통치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견고해져 갑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지혜로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위해 구해야 합니다. 주신 지혜는 연약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 솔로몬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높이 들림을 받은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높이 들어 사용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