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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하 20장 1-2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승리를 맛보라1-한꺼번에 몰려드는 어려움들
오늘부터 몇 주간 역대하 20장에 나오는 여호사밧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생애에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승리를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승리라면 대부분 운동경기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기도 있고, 단체경기도 있지만 그 경기들은 승리와 패배가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승리하는 팀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패배하는 팀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승부에 상관없는 삶을 사고자 한다면 경기하는 단체에 속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속한 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승리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이겨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거기서 승부와 상관없어하는 것을 보면 같이 경기에 임하던 사람들이 의욕을 잃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그 싸움이 팽팽한 힘을 유지하고 있는 싸움이라면 더욱더 그런 사람이 있는 팀은 반드시 지고 말것입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탄과 세상과 자신의 욕시이라는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고 태만하며 게으른 사람이 있는 그런 교인들이 있다면 그 교회는 얼마 안가서 지치기 시작한 것이고 결국에는 모두가 싸우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나가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승리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갖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하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보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승리를 주시는 이유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주십니다. 믿으십니까? 영적인 싸움의 승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승리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영적인 승리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9장 25절을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썩을 것을 얻고자 하는 자들도 이기기를 다투며 모든 일에 절제하는데 영적인 승리자가 되어 영원히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얼마나 승리에 대한 갈망이 커야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이 절제해야 할까요?
하지만 오늘날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기고자 하는 갈망도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갈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이 피할 수 없는 싸움이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이길 수 있게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싸움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마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승리를 갈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승리에 대한 갈망이 없는 교인들은 실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돌아갈 승리의 면류관은 없습니다. 그것이 훗날에 얼마나 큰 부끄러움이 될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들이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도록 전신갑주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다 보면 마귀는 계속해서 영적인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그런 전쟁이 어떤 때는 눈에 보이는 전쟁도 있고, 어떤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도 있습니다. 마귀는 눈에 보이는 자기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게도 만들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 미혹하고 시험할 때도 있습니다. 이 어려움들이 한 꺼번에 무더기로 몰려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역시 영적 싸움이고, 영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역시 영적 싸움입니다. 그 싸움은 매우 힘든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승리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을 역대하 20장에 나오는 여호사밧이 겪은 전쟁을 통하여 확인하면서 과연 하나님께서는 성경 전체에 고난을 통과한 승리의 영광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듣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여호사밧은 다윗왕의 후손으로써 남유다의 네 번째 왕입니다. 그 당시 북쪽 이스라엘은 악한 왕인 아합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극심한 우상숭배자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자기가 섬기던 우상들은 물론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는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을 같이 이끌고 이스라엘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리고는 온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가득채웠고 갖은 악을 다 행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역대하 17장 3-4절을 보면 여호사밧의 영적인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의 아버지 아사는 초반에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러나 후반에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사가 하나님을 경외했던 때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아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길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매우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여호사밧이 어릴 때였기에 아버지로부터 경건한 신앙교육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이 다윗의 처음 길로 행했으며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이 읽으신 본문 말씀의 뒷 부분인 3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 아사는 돌이켜 떠났지만 여호사밧은 돌이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사밧과 함께 행하셨고 영으로나 육신으로나 잘되게 하셨습니다. 역대하 17장 5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어김없이 인생의 큰 어려움이 들이닥쳤습니다. 여호사밧의 나라가 견고해지고 여호사밧이 부강해지자 이에 위협을 느낀 암몬과 모압과 에돔 사람들의 하나인 마온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 것입니다. 세 개의 나라가 한 나라를 합심해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짜고 덤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압사람과 암몬사람과 마온 사람들은 모두 요단 동편에 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조상 때로 올라가면 한 혈통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입니다. 에돔은 이삭의 아들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남남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 개의 나라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여호사밧과 유다를 무더기로 치러 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호사밧에게 와서 말합니다.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여기서 바다는 사해 바다를 말합니다. 엔게디 자체가 이스라엘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큰 무리”라고 이야기 한 이유는 유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무리라는 뜻입니다. 적의 수가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자기들이 감당할 수 없거나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큰 어려움을 만납니다. 다만 그것을 만난 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3살에 하와이주 서핑대회에서 1위로 예선을 통과하며 서핑에 천부적인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바다 한가운데서 서핑을 하다가 상어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로인해 한쪽 팔을 잃었고 혈액의 60%가 빠져나가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녀를 치료한 의사는 그녀를 “살아있는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았고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것은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더시 서핑을 시작했지만 한 팔로는 도저히 파도를 이길 수 없어서 포기하고 맙니다.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태국 쓰나미 현장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그녀는 자신의 고난에 절망하지 않고 다시 경기에 나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람도 가만히 서 있기 힘든 파도 위에서 한 팔로 파도를 타려고 하니 실패하고 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베서니 해밀턴은 남태평양 피지 타바루아에서 열린 세계 서핑 대회에서 세계 챔피언 '스테파니 길모어'와 세계 1위 여성 서퍼 '타일러 라이트'를 제치고 4강에 올랐으며 당당히 여자 부문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2011년에 ‘소울 서퍼’라는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인생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손을 놓아버리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런 어려움과 고통을 주신 이유를 알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한다면 거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이 도우심을 구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헤밀턴은 말합니다.
“사랑은 파도보다 위대하고 두려움보다 강하다.
나는 팔이 두 개일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인생도 서핑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파도 밑에 처박혀도 곧바로 일어나야 한다.
파도 너머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 베서니 해밀턴 –
여호사밧은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적들이 힘을 합해 쳐들어오는 공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군대를 이끌고 세 나라 왕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행한 행동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위기 때에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 때에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자기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는 없어도 자기를 도와줄 준비가 된 그 사람에게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도와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인간의 능력으로 그 불행을 막을 수 없다면 망망대해에서 홀로 큰 상어와 맞닥트린 것과 같은 인생의 큰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누구를 의지하지 말아야 하고,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까? 시편 146편 3절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하고 말씀하십니다. 귀한 사람이 여러분들을 긍휼히 여겨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도움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누구를 도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기대했다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도와주고 안도와주고는 그 귀인의 문제지만 도움을 기대했던 사람은 실망과 분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내주시면서 여러분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할 만큼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다음으로 이웃이나 친구를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미가서 7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심지어 여러분의 품에 누운 아내에게도 말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아내에게 말했다가 그 아내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소문을 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화를 끌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여러분들을 도우려는 이웃에 대하여도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도 여러분들을 도우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도움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돕지 않았다고 하면서 크게 분노하고 원수처럼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받은 도움이 훗날에 올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의 도움을 거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잠언 3장 5절을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인생의 지혜와 명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알면 그것을 의지하거나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잘 사용했을 때는 빛났지만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 지혜를 태양같이 밝던 곳에서 떨어져 반딧불처럼 되었음을 알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마치 풍부했던 저수지가 고갈되는 것처럼 바짝 말라갈 것입니다. 그 메마른 저수지에서 어떻게 물고기들이 살 수가 있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 저수지를 떠나 각자 살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를 가졌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잃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로 말미암은 명철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 빛과 영광이 더욱 아름답게 비추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극한 고난 때를 여러차례 맞이 했습니다. 그때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렇다면 인생에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 첫 번째는 왜 그런 고난이 왔는지를 상고해보아야 합니다. 고난이 찾아오는 이유는 자기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주위의 대적들로 인해서 올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이유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난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담배를 많이 피면 폐암에 걸리고 술을 많이 먹으면 간암이나 장과 연관된 암에 갈리기가 쉬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율법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 고난을 겪고 있으면 그것이 저주 때문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하여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가계의 저주니 뭐니 하면서 고난에 대하여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자기나 자기 집안은 의로운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조상이나 집안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야 한다면 과연 저주 받지 말아야할 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인간이 살아가면서 선한 일이나 의로운 일보다 잘못된 일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 않습니까? 그것이 다 저주로 돌아간다면 그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함부로 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신의 입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또 저주를 끌어당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렸다면 말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대로 사용하시도록 내드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한꺼번에 많은 어려움들이 몰려들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원인을 알았다면 두 번째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두 번째로 할 일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심지어 마귀가 하는 악한 일들조차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완전히 뒤바꾸셔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승리는 하나님을 믿고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적들이 아무리 많고 한꺼번에 몰려드는 고난의 종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적들이나 고난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보장을 받은 여러분들은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행해야할 세 번째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은 순종을 동반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머리로만 믿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만 믿는 믿음은 역사하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면서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시면서 승리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성전 삼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안에는 승리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진리의 영이시며, 능력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그 어떤 강한 고난과 대적들 앞에서도 결코 당황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며, 또한 주의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여러분들은 승리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지금처럼 불신사상이 팽배한 이 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안정감과 행복을 줄 수 있다는기대감으로 많은 모임들을 만들어 놓고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여기오면 행복해진다고 손짓을 합니다. 세상살이에 지친 교인들 가운데 머리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모임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면 세상의 불신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그 교인들을 칭찬을 합니다. 그 맛을 본 교인들은 여기저기 모임을 찾게 되고 그러면서 교회일을 점점 등한시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방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행복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서 온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인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어떤 때는 돈을 찾다가 또 어떤 때는 자기를 붙잡아주고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과 모든 곳을 찾아갑니다. 자기 필요에 따라 하나님도 택했다가 사람들도 택했다가 친구들도 택했다가 가족들도 택했다가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의 삶은 환난 풍파가 올 때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아서 쉽게 무너집니다.
여러분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이 세상 속에서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갑자기 몰아치는 많은 어려움을 만나면서 누구를 찾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기도 자리에 여러분들이 항상 앉아 있습니까? 아니면 항상 비어 있어 먼지만 앉고 있습니까? 아무리 강하고 많은 고난이 닥쳐와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주님은 승리와 더불어 평안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갑주를 입고 평안을 누리면서 또한 승리를 누리는 승리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