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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을 보라
출 14: 10-31
서 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도중 많은 원망과 불평을 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난가 홍해 앞에서의 불평인데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애굽에서 죽어 거기서 장사되게 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광야에서 죽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라는 말로 그들을 달래놓았습니다.
1. 싸우시는 일을 보라
본문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입니까. 애굽의 군사와 아니 바로와 싸울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애굽인들은 군사와 무기가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고 훈련된 병사도 없어서 전투 불능 상태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싸워주시겠다는 희소식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와 같이 싸우시는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사 118:6-7).
2. 홍해 가르시는 일을 보라
본문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능히 해내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홍해에 빠져 죽느냐 아니면 애굽 군사들에게 잡혀죽느냐 진퇴양난인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을 행하셔서 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본 것입니다. 그 어찌 놀랍지 아니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겠습니까?
3. 애굽인들이 죽는 것을 보라
본문 26-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세 등등하여 천하를 호형할 것 같이 안하무인격으로 기고만장하던 바로의 군사들은 보기 좋게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광경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결 론
본문 30-31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의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
출 14: 10-31
우리는 시험이라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시험이라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을 성장시키는 시련과 믿음을 빼앗는 유혹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생각지 않았던 시련들로 인하여 고난을 당할 때가 있으며, 신앙을 갉아먹는 유혹들로 인하여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신앙생활에서 간과 할 수 없는 시험을 살펴보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유혹과 시련을 모두 함께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1.시험은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말세이기 때문에 시험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24:10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라고 말씀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믿음에서 떨어뜨리는 유혹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루시는 방법이기 때문에 시험은 당연한 것입니다. 믿음을 성장시키고, 큰 일을 맡기고, 축복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도의 믿음을 테스트해야 합니다.
마귀가 성도를 쓰러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시험은 당연한 것입니다.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마귀는 성도들의 신앙을 도적질하고 영혼을 죽이고 삶을 멸망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도 당연합니다.
우리의 육체의 체질이 세속적이고 욕망적이고 마귀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시험은 당연한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보기에 좋은 세상의 것을 선택해야 할 경우 당연히 유혹 받게 되어 있습니다.
2.시험이 누구에게서 오는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것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정금이 되기 위해서 도가니에 들어가서 불로서 연단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통해서 믿음은 성장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사단으로부터 옵니다. 이것은 유혹이고 해야 합니다. 사단은 신자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신자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람들로부터 옵니다. 불신자나 핍박자들로 인하여 유혹과 시련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믿음의 사람들 때문에 시험에 들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목사도 사람이며 연약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신자의 신앙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 때문에 시험을 당합니다. 이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 역시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갈4:14에 보면 바울의 이상한 외모가 갈라디아서를 받아보는 사람들에게 시험 거리였습니다. 바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바울의 약점이 다른 사람의 시험 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넷째, 자신으로부터 시험이 옵니다. 딤전6:9을 보면 사람이 시험에 드는 이유 중에 욕망이 큰 이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사람은 시험과 올무에 걸리게 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 사랑하는 것 하나 때문에 일 만가지 악을 행하게 됩니다. 약1:14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좁은 마음이 그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의 넓이를 초과하는 일과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그 일과 그 사람이 시험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큼 넓다면 절대 시험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3.시험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다루심과 마귀의 유혹이 있기 때문에 시험 없이 살려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첫째,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벧전4:12).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 살다보면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눈보라도 만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으며 아브라함, 다윗, 베드로, 요한 등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시험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로 시험이 옵니다. 믿음만 붙잡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의아스러운 일들도 있을 수 있지만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당연한 일입니다.
둘째,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약1:2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인내를 통하여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젊어 고생이 인생에 상당한 유익을 주듯이 믿음의 시련 역시 신앙생활에 상당한 진보를 가져다줍니다.
셋째, 시험을 참으십시오. 약1:12에서는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책상에 앉아있는 고통과 일어나 놀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시험을 참아내면 하나님 앞에 복된 사람이 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도록 참고 기다리듯이 참아야 합니다.
넷째, 옳다 인정함을 받으십시오. 약1:12에서는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상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 받을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을 당했을 때 그 시험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믿음으로 반응합시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 믿음이 인정되게 합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신앙의 무게를 달아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울에 합격하면 상급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독자이삭을 낳고 이삭으로 만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후손의 복을 받았습니다.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려면 시험을 치뤄서 합격해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시험에 통과해야 합니다. 히브리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광야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광야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영적인 가나안인 현세천국과 내세천국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유혹하는 마귀는 대적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기도하면서 "마귀야 오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말은 절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의 영, 혼, 몸을 파괴하는 마귀를 초청해서는 안됩니다. 약4:7의 말씀을 보십시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거듭난 신자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머물고 있으며 하늘과 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마귀를 당할 수 없지만 성령과 보혈과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반드시 물러가게 됩니다.
귀신이 영화에서처럼 하얀 옷에 늘어뜨린 머리를 하고 피를 흘리며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달콤하게 하는 유혹으로 찾아옵니다. 그럴 때 이렇게 외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떠나가라" 주님께서 대적하면 피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주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절대 시험을 내 능력으로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 시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능력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만약 그 시험이 사단에게서부터 온 것이라면 사단의 엄청난 능력을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히2:18을 보면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도움을 구하면 슈퍼맨처럼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지는 않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지혜를 주시거나, 이길 능력을 주시거나 아니면 사람이나 환경 등을 통해서 이기게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의 도움을 구하지만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선한 뜻이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주님의 선한 손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곱째, 죽도록 충성하십시오. 마귀가 신자를 시험하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유혹과 핍박입니다. 하나님의 일에서 떠나도록 유혹하고 하나님의 일을 포기하도록 핍박합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마귀의 시험은 더 거세 집니다. 하지만 신자는 마귀의 시험의 크기와 강도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계2:10에 보면 말세에 마귀가 신자들을 옥에 가두기도 하며 극한 환난을 일으켜서 믿음과 사명에서 떠나게 만든다고 말씀합니다. 이 때 신자가 보여야 할 태도는 충성입니다. 충성도 보통 충성이 아닙니다. 적당한 충성이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2:10의 말씀은 작은 여자아이 앞에서 믿음을 버린 베드로나 작은 시험만 있어도 자신의 믿음과 사명을 버리고 마는 현대 교회의 일반적인 신자들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4.평상시 시험에 대비하는 지혜는 무엇입니가?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일반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평소에 성실하게 공부합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평소에는 놀다가 시험 때만 열심히 합니다.
신앙생활도 평소의 경건생활이 시험을 잘 통과하는 비결입니다. 평소에 경건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시험이 올 때도 경건함을 지키며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시험을 이기는 경건생활은무엇입니까? 해답은 딤전4:5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마4장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마귀를 물리치신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하여 눈을 사용하십시오. 성경을 읽으십시오. 날마다 정한 분량을 읽으십시오. 하루에 3-4장씩만 읽어도 1년이면 1독이 가능합니다. 30년을 믿었는데도 1독도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심각하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하여 귀를 사용하십시오. 설교 듣는 일에 힘을 쓰십시오. 마귀가 뿌려놓은 가라지인 잡생각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며 설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육신의 귀로 설교말씀을 듣는 것처럼 영혼의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인 레마를 들으십시오. 레마를 듣게 되면 내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하여 마음을 사용하십시오. 마치 새김질하는 짐승처럼 들을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시고 생활에 적용해 보십시오. 묵상을 통해서 영혼을 살찌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하여 손과 발을 사용하십시오. 들은 말씀 배운 말씀을 생활에 실천하여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둘째,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기도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잠을 자느라고 예수님의 처절한 기도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충고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 제자들은 예수님의 충고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졸고 자다가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기도를 습관으로 하십시오. 어떤 습관보다 귀한 습관입니다. 기도를 일로 하십시오. 씨를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설교제목 :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이스라엘
설교본문 : 출애굽기 14:10~31(참고, 12~13장)
아담과 하와 이래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믿었고,
심지어 그 믿음 때문에 순교 당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게 되을까요 ?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한 이 믿음은 가질 수 있게 된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의 출애굽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이 가장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서 론 : 이스라엘을 위해 움직이시는 하나님
1) 바로 왕의 폭력을 힘없이 당해야만 했던 이스라엘
성경에는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고 있는데,
출애굽기 11장은 하나님의 원수 갚음이 얼마나 완벽하고 철저한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15~22에서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갓난 사내아이들을 모두 하수에 빠뜨려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출애굽을 일으킨 지도자 모세도
그때 부모님들의 지혜와 기지로 겨우 살았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은 노예 상태였기에 그 억울함을 호소할 곳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2) 바로 왕의 잔인한 폭력에 보복하시는 하나님(11:4~6)
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5.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왕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이 죽으리니,
6.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는 마지막 열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집의 첫 번째 낳은 아이를 죽이는 일을 하십니다.
전에는 이스라엘의 집에 소리 없이 흐느끼는 곡성이 있었으나,
이제는 애굽 사람들이 슬픈 곡성을 울려야 할 차례입니다.
그들은 사내아이들만 죽였으나,
이제는 짐승에 이르기까지 애굽의 첫 번째 나은 사람은 모두 죽게 됩니다.
정말로 철저하고도 완벽하신 하나님의 보복에 두려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 연약한 자의 억울함을 대신 갚으시고, 대신 보복하시는 하나님
그러므로 나보다 힘없고 연약한 자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징계는 철저하고도 무섭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우리가 저쪽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인 것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그 죄의 여부를 따지실 것입니다.
3) 이스라엘에는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7절)
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라’하셨나니
애굽 전국에 장자를 잃고 큰 슬픔의 곡성이 울릴 때에
이스라엘에는 개들이 그 혀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천한 짐승인 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짖는 일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에 임하셔서 그들에게 죽음의 재앙을 내리시는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4) 열 번째 재앙 : 애굽의 초태생의 죽음(12:29~30)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날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집 문밖을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집의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치시니,
위로 바로 왕에서부터 아래로 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그 집의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이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 중에 사망한 사람이 없는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에 애굽 전역에서 큰 호곡 소리가 났습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면 가장 강한 나라인 애굽도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 재앙을 모두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가장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개도 덤비지 못하는 평화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참 생명과 참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제 1 부 : 드디어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1. 애굽에 내려진 10개의 재앙의 요약
애굽에 내려진 10개의 재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재앙 : 피 재앙(7:14~25)
나일강과 호수와 운하와 그릇 위에 있는 물에 이르기까지
땅 위에 있는 모든 물이 다 피가 되는 재앙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마술사들도 모세의 기적을 흉내 내자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2) 둘째 재앙 : 개구리 재앙(8:1~15)
나일강과 운하와 호수의 습지 등에서 계속해서 개구리들이 만들어지며
떼로 나와 집의 침상에까지 들어와 애굽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 재앙입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내기로 약속했으나 재앙이 끝나자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습니다.
3) 셋째 재앙 : 이 재앙(8:16~19)
여기에서 ‘이’에 해당하는 ‘킨님’은 모기보다 작은 날벌레를 뜻합니다.
애굽의 땅에 있는 모든 티끌(먼지)이 온갖 작은 날벌레가 되어
애굽의 사람과 짐승에 달라붙었습니다.
요술사들은 이 재앙부터 흉내 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난 재앙이라고 말하였으나 바로가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말을 듣지 않음.
4) 넷째 재앙 : 파리 재앙(8:20~32)
엄청난 파리 떼가 몰려와 애굽의 사람과 짐승에 달라붙어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파리는 우리나라의 말벌보다 큰 것으로 사람을 쏘는 보기에도 무서운 파리입니다.
또 ‘파리 떼’에 해당하는 ‘아보르’는 파리 외에도
바퀴벌레와 같이 날아다니는 온갖 종류의 곤충들을 다 합한 것입니다.
파리 재앙부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도록 허락은 하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말했으나
파리 떼가 사라지자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습니다.
5) 다섯째 재앙 : 악질(가축의 죽음)의 재앙(9:1~ 7)
애굽의 가축들은 악질에 걸려 죽었으나 이스라엘의 가축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습니다.
바로 왕이 여전히 그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6) 여섯째 재앙 : 독종(악성 종기)의 재앙(9:8~12)
이번엔 애굽의 사람들에게 독종(악성 종기)이 생겨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여전히 그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7) 일곱째 재앙 : 우박의 재앙(9:13~35)
애굽 전역에 우박이 불덩어리와 함께 맹렬하게 쏟아졌습니다.
바로는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하고
죄를 고백했지만, 우박이 그치자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습니다.
8) 여덟째 재앙 : 메뚜기 재앙(10:1~20)
여호와께서 동풍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들이 애굽 전체를 덮을 정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재앙으로 우박 재앙에서 남은 초목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장정만 가기를 허락하였으나
역시 메뚜기가 사라지자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였습니다.
9) 아홉째 재앙 : 흑암의 재앙(10:21~29)
애굽 온 땅에 빛이 전혀 없는 흑암의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양과 소는 두고 사람들만 가도록 허락했으나 모세가 양과 소도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자
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보내지 않았습니다.
10) 열째 재앙 : 초태생의 죽음의 재앙(12:29~36)
애굽 전역에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이 다 죽었습니다.
바로 왕은 드디어 항복하고 애굽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도록 허락하며
동시에 양과 소도 함께 몰고 가도록 허락합니다.
➠ 이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바로 왕은 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을까
• 인간의 욕심과 탐욕 때문에
•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이었으므로 끝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
하나님을 섬기려면 그들이 가진 모든 정치적 장치들을 모두 다 내려놓아야 했으므로
하나님의 권능이 어떠함을 알았으면서도 끝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입니다.
백성들 역시 애굽의 우상들의 예배 행위에 있는
육체적인 쾌락의 잔치의 맛을 본 자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을 섬길 때 그 모든 것을 다 놓아야 하는 선택을 할 수 없었습니다.
2. 드디어 애굽을 출발하는 이스라엘 :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1) 드디어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납니다(12:37, 40)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이르니,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보행하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가량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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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
드디어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납니다.
이날은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온 지 꼭 430년 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출발한 장소는 라암셋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제 노역을 하던 곳입니다.
그동안 힘들어도 힘들다 말도 못하던 곳, 슬퍼도 마음껏 울지도 못하던
그 한이 서린 곳에서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시작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돌보시는 그의 백성들
이스라엘 자손이 그동안 강제 노역을 했던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에 이르니
여자와 어린아이들 외에 장정만 60만 명에 이르고,
여기에 수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급히 쫓겨났기에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습니다.
이 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지키셨으므로,
후일 그날을 ‘여호와의 밤’이라 불렀습니다.
3)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41~42절)
41. 430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혹은 :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려고
밤을 세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날 밤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켜야 할 ‘여호와의 밤’이 되었더라.)
라암셋에서 약 40km 떨어진 숙곳에 이르자
여기저기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그 수가 여자들과 유아를 제외하고 장정만 무려 6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다른 수다한 이방인 잡족들이 함께 했고,
심히 많은 양과 소와 생축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오합지졸의 백성들과 잡족들과
심히 많은 양과 소와 생축들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니 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린아이라도 군대를 능히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2 부 : 이스라엘을 한계상황으로 몰고가시는 하나님
1. 이스라엘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길 : 크게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
1)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13:17) :
(17절 성경구절 아래)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은 다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➀ 해안길(왕의 도로) :
해안을 따라 수르 광야를 거쳐 블레셋 족속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로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길 중에서 최단거리입니다.
일명 ‘왕의 도로’라고 불립니다.
이 길은 인구가 조밀하고 요새와 같은 방어시설들이 잘 갖추어진 곳을 지나야 합니다.
➁ 수르길 :
유목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길로 수르 광야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입니다.
신광야를 거쳐 브엘세바에 이릅니다.
➂ 대상(隊商, 카라반)들의 무역로 :
에시온 게벨과 홍해 부근을 거의 직선으로 연결하는 길로
주로 향료나 인도 생산품들이 수송되는 경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중 어느 길로도 인도하지 않고
광야로 들어가 시내 반도를 한 바퀴 돌아 가데스 바네아로 인도하셨습니다.
2) 사람이 다니지 않는 광야(사막)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17~18절)
17.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지나가는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마음이 바뀌어)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라”하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라.
18. 그러므로 홍해로 가는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위의 세 갈래 길 중에 해안으로 가서 블레셋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왕의 도로’라고 해서 가장 좋은 길이었고,
그 외에 다른 두 길로 갔더라도 아무리 오래 걸려도 두 달을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 길을 모두 택하지 않으시고
시내 광야를 크게 돌아서 우회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3) 전쟁이 나면 마음을 바꾸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여(17절)
(17절 성경구절 위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 왜 사람이 알고 있는 길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고생스러운 길을 택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길을 갈 때
그곳에 있는 백성들과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서서
애굽으로 가겠다고 할까 염려하신 것입니다.
2. 도망할 곳이 전혀 없는 함정(비하히롯)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1)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14:1~2)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돌쳐서(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을 안고 가나안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쪽으로 되돌아오게 하다가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홍해 곁에 있는 비하히롯으로 인도하라고 명하십니다.
이곳은 앞은 바다요 양옆은 광야로 마치 안양의 ‘병목안’처럼
그 안에 들어가면 도망할 곳이 전혀 없는 그런 곳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보다 좋은 길이 셋이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런 어처구니없는 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그 지역의 지형을 아는 사람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이었습니다.
2)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더 어려워지기만 하기도 하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은 더욱 꼬이기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하면서
우리를 돕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고는 답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보다 더 선하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 속에서도
우리는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한계점에서 믿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 :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 한계상황이란 : 사람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앞에는 너비만 200km가 넘는 바다가 있고,
좌우에는 광야(사막)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피할 곳이 전혀 없는 이곳 비하히롯 해변가에서 도착했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다시 잡기 위해 달려오는 바로 왕의 군대가 일으키는 흙먼지였습니다.
저 군대가 이곳에 들이닥치면 끔찍한 살육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갑자기 견딜 수 없는 극심한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14:2의 ‘돌쳐서(돌이켜서)’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 한계상황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 한계상황이란 사람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말합니다.
한계상황이란 의사가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상황과 같은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동원하였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죽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한계상황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왜 한계상황으로 몰고 가시나?
그러나 이스라엘을 이런 한계상황으로 몰고 가신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야
그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일인 줄 사람들이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난 후에는
오직 하나님께만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이스라엘은 이러한 한계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고
왜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왔느냐고 모세와 하나님께 비난 섞인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비난 섞인 불평도 부르짖음으로 여기고
그들의 기도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아직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알게 하기 위해
홍해가 갈라지는 엄청난 기적을 보이십니다.
3)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문제는 기도한 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음을 믿는다면
아무리 지금의 상황이 곧 죽을 것만 같은 한계상황일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으니
이제는 조용히 앉아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도우실지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울며 떼쓰는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오니 더 이상 울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으니 그 한계상황에서도
마치 경치 좋은 호숫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 묵상 : 힘들고 어려울수록 믿음이 있음을 보일 좋은 기회가 왔다고 여기십시오.
악한 영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오히려 더욱 감사하며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려 애를 쓰십시오.
힘든 그 순간이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제 3 부 :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는 이스라엘
1. 한계점에서 앞으로 전진하라 명하시는 하나님 :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이스라엘이 지금 머물고 있는 비하히롯이란 곳이 어디인지를 바로 알아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 홍해는 어디를 말하나?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앞을 막고 있는 홍해란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의 ‘홍해’는 히브리어 ‘얌 쑤프’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처음 출발한 고센 땅에서 홍해까지의 거리는 190km나 됩니다.
또 홍해의 전체의 길이는 2,000km이고, 그 너비가 200~300km이며,
평균 깊이는 530m, 제일 얕은 곳도 200m입니다.
가장 깊은 곳은 무려 2,300m나 됩니다.
➀ 홍해를 ‘갈대 바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고센 땅에서 홍해까지 190km나 되는 길을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흘 동안 걸을 수 있을까’,
또 ‘홍해의 너비가 적어도 200km나 되는데
이 홍해를 하룻밤 사이에 건넌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에 대하여 회의를 품습니다.
그래서 홍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얌 쑤프’중에 ‘쑤프’는 ‘끝’을 의미하는데,
애굽의 ‘갈대’라는 말이 이스라엘의 ‘쑤프’와 발음이 비슷하므로,
이것은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의 ‘갈대’라는 단어와 히브리어로 바다를 뜻하는 ‘얌’을 붙여
‘갈대 바다’를 ‘홍해’로 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홍해가 아니라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에 있는
성인 무릎 정도의 깊이인 갈대 습지를 건넜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➁ 그러나 그곳에서 애굽의 최정예의 군사들이 모두 빠져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이 건넜다는 것만 생각했지,
그곳에서 애굽의 최정예의 군사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빠져 죽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려고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단지 무릎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을 인도하시면서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다’하고 말씀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집의 장자를 죽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200km가 넘는 홍해도 하룻밤 사이에 건너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홍해를 ‘갈대 바다’가 아니라,
본래 히브리어가 가진 뜻 그대로 ‘끝에 있는 바다’로 보아야 합니다.
2) 한계점에서 전진을 명하시는 하나님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다시 봅시다.
그들 앞에 너비가 200km가 넘고, 깊이가 적어도 200m가 넘는 바다가 놓여 있습니다.
그 한계상황에서 잠잠히 있으라 명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엔 그 바다를 향하여 나아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내밀라고 명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하나님께서 동풍을 불게 하셔서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바다를 건넜고
애굽의 군사들은 바가 가운데 난 그 마른 땅으로 들어왔다가 모두 죽었습니다.
3) 불평과 원망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10~12절)
10. 바로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보니,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의 뒤에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뇨?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그때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그들을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잊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애굽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셨던 것을 잊었습니다.
애굽에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을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오직 지금 당한 한계상황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고 해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을 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위해 그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으십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일이 자꾸 꼬이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이루십니다.
2.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
•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애굽 군사들을 막으신 하나님(19~20절)
19. 이스라엘 진영 앞에서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니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 애굽 진영과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하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다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구름 기둥을 이스라엘 진영 뒤로 옮기십니다.
그리고는 애굽 진영을 마치 한밤중처럼 깜깜하게 하셔서
그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홍해를 아무런 걱정 없이 건너게 하신 것입니다.
● 묵상 :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우리의 모든 것을 지키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당장 죽을 것 같은 한계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셨음을 믿고
➀ 기도하며,
➁ 조용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고,
➂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
1) 하나님께서 만드신 엄청난 광경(12:21~22절)
(21~22절 성경구절 아래)
•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홍해는 그 너비가 제일 짧은 곳이 200km나 되고
제일 얕은 곳이 깊이가 200m나 됩니다.
그러므로 바다 가운데로 난 길은 적어도 그 길이가 200km가 되고,
좌우에는 적어도 200m가 넘는 물 벽이 있었습니다.
200만 명이 짧은 시간에 그 바다를 건너려면
적어도 좌우의 물 벽 사이의 간격은 1km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2) 하룻밤 사이에 바다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21, 27절)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한 가운데 마른 땅으로 건너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녘(동틀 무렵)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더 놀라운 것은 바다 가운데로 난 길이 적어도 200km가 넘는데,
그 먼 거리를 하룻밤 사이에 모두 건넜다는 점입니다.
새벽녘 동틀 무렵에 바다가 다시 그 세력을 회복하여
애굽의 군사들이 모두 빠져 죽었다고 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사이에 그 바다를 모두 건넌 것입니다.
바다를 마르게 한 동풍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단숨에 건너게 했을까요?
아니면 구름 기둥을 수레 삼아 그들을 인도하신 것일까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뒷동산에 산책하듯 그렇게 아주 쉽게 단숨에 건넜습니다.
● 묵상 :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이보다 더 한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닥친 환경만 보고 미리 기죽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4. 바다가 그 세력을 회복하여 애굽 군대를 덮음
1) 백성들이 그렇게도 쉽게 건넜던 길에서 애굽의 군사들은 큰 난관에 빠집니다(27절)
(27절 성경구절 위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도 쉽게 건넜던 길입니다.
오죽하면 일부 학자들이 이스라엘이 건넌 곳이 홍해가 아니라
물이 발목 정도밖에 차지 않는 갈대 바다라고 할까요?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쉽게 건넌 바로 그 자리에서
애굽의 군대는 아주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당시로서는 제일 좋은 말에, 가장 좋은 병거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병거의 바퀴가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2) 바다가 다시 그 세력을 회복된지라(27절)
(27절 성경구절 위에)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좌우에 있는 물 벽이 보입니다.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던 높이 200m가 넘는 물 벽이
좌우에 무려 그 길이가 200km가 넘게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한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고장 난 병거를 버려두고
달음박질해서라도 도망하려 하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손을 바다로 내밀라고 하셔서 말씀대로 하니
바다가 다시 이전의 모습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 바다가 회복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마치 높이 200m가 넘는 쓰나미가 덮쳐오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 물의 속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홍해바다 한가운데에서 바다에 모두 빠져 죽고 맙니다.
● 묵상 :
세상의 악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하나님께서는 그들보다 더 큰 능력으로 그들을 막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기까지 조금 시간을 늦추셨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악이 이긴 것처럼 보일지라도
악의 힘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더 믿으십시오.
악은 결국 하나님의 권세 앞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 론 : 홍해를 건넌 후 최초의 공적 예배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1) 홍해의 기적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31절)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 홍해 곁 비하히롯까지 데려왔다며
모세에게 죽일 듯이 비난하며 달려들었던 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그 종 모세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15장에서 하나님께 노래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찬송가입니다.
그리고 이때 이스라엘은 인류 최초로 공적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과 경배와 예배를 드립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2) 그러나 이들의 이 믿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들의 불평은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믿는 믿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속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믿을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광야에서 믿음의 삶을 배우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말씀과 기도와 예배가 삶의 중심에 들어오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배우게 됩니다.
● 묵상 : 믿음은 말씀으로 세워진 것이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래서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게 하십시오.
그래야 마지막 때의 혼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
악의 힘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더 큰 힘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한계상황이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믿고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한계상황의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오늘 내가 해야 할 사명을 포기하지 말게 하옵소서.
오늘 악이 승리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더 크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여 믿음이 자라게 하옵소서.
그래서 마지막 때의 혼란을 이길 힘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가애교회 글쓴이: 송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