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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6:3-15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본문의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에서 사역하실 때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양식이 필요함을 아시고 기적을 일으켜주셨습니다. 사도 안드레가 한 아이의 도시락을 주님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 도시락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10절에 보면 무리의 수가 5천 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그들의 원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이 12바구니에 찼습니다.
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은 모세가 말했던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여 산으로 가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오늘은 2017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양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주님은 2가지 양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1) 육신의 양식
주님은 어린 아이가 드린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육신의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시 136:25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 주님은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아침에 식사들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하늘이 비를 주게 하셨기 때문에 땅이 열매를 맺은 것이고, 그래서 오늘 우리의 식탁에 음식이 올라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 5:18입니다.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3년 6개월 동안 하늘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그랬더니 땅이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늘을 열어주셨더니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육신의 양식을 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닫으시면 인간이 아무리 수고를 해도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같은 한반도 안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을 비교해보십시오. 대한민국은 해마다 풍년이고 북한은 해마다 흉년입니다. 같은 한반도 안에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차이가 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을 신 28:23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이 말씀은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하늘이 놋이고 땅을 파면 철이 나오면 좋겠네. 다 돈이 되겠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신 28:23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에게 내리는 저주입니다. 그 당시는 농경사회였습니다. 하늘이 놋이라는 말은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땅이 철이라는 말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된다는 말입니다. 저주입니다. 북한이 해마다 가뭄에 홍수가 겹치는 것은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김시 일가를 하나님처럼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를 폐쇄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잡아 죽인 것에 대한 심판이요 저주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사는 사람은 다 부자가 됩니까? 어떤 사람은 열심히 사는데 늘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삽니다. 열심히만 산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 3:1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한과 때를 정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의 양식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셔야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하자원도 부족하고, 반도 국가인데 북쪽에는 휴전선이 막고 있어서 섬나라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에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휘발유를 수출하고 경유를 수출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가 잘 사는 것이 대통령이 국가통치를 잘 해서일까요? 정치인들이 훌륭해서일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동산정책을 보세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부동산을 잡겠다고 수많은 정책들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잡혔습니까? 못 잡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이 단독주택이었는데 30만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집은 10억은 될 것입니다. 약 50년 사이에 3,300배가 올랐습니다. 이 나라가 경제 정책을 잘 써서 부자가 되고, 지도자들이 훌륭해서 부자가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살았습니다. 그런데 40년간 그들이 먹었던 양식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땅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었습니까? 이웃 나라에서 양식을 수입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장정만 603,550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300만 명은 되는 인구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육신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의 양식을 먹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다.
2) 영혼의 양식
우리 주님은 육신의 양식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영혼의 양식도 주시는 분입니다. 요 6:27입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떡을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 6:35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주님에게로 오는 자는 생명의 떡을 먹습니다. 주님에게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2. 약한 자를 쓰시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께서 5천 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게 하시는 기적을 행하시면서 자기 도시락을 주님께 드린 어린 아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거기에 모인 장정만 5천 명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장정에 속하지도 못했고 숫자에 들어가지도 못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작은 아이를 사용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그 아이가 내놓은 오병이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찹쌀로 만든 고급 떡이 아닙니다. 보리떡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는 고등어나 갈치처럼 큰 생선이 아닙니다. 어른 손가락만한 작은 생선입니다. 주님은 하찮은 보리떡 다섯 개와 아주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저의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부족한 사람일까. 어쩌면 이렇게 재주도 없을까. 어쩌면 이렇게 의지할 사람도 없을까. 어쩌면 이렇게 비빌 언덕도 없을까’ 저는 제가 마치 누가복음 18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서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간 가난한 과부와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있습니다. 저는 벳세다 광야에서 주님이 사용하셨던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또 하찮은 오병이어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고전 1:26 말씀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마치 저를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롭지 못하고, 능하지 못하고, 문벌도 좋지 못한 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 말씀이 여기서 끝났다면 저는 좀 실망했을 것입니다. 저에게 용기를 주고 감사할 수 있게 하는 말씀이 그 다음 절입니다. 고전 1:27-28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아멘입니다. 하나님은 미련하고 약하고 없는 저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고 강하고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기에 감격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느냐,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느냐입니다.
믿는 우리는 약해도 괜찮습니다. 미련해도 괜찮습니다.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계시면 됩니다. 주님이 붙잡아주시면 됩니다. 주님이 써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쓰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3. 감사로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
11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사람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또 물고기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5천 명이 먹고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축사란 감사기도를 말합니다. 주님은 모인 무리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랬더니 5천명이 먹고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전 5:18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라는 말은 모든 상황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가정에 감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저와 아내가 보호식을 하기 위하여 홈쇼핑에서 필요한 물건을 좀 샀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80만원 상당의 인덕션 전자레인지가 당첨이 되었습니다. 감사할까요 감사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감사하죠. 이런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고, 고난을 당하고, 문제가 꼬이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감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문제를 만나도 감사할 수 있고, 고난을 당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➀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➁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우리가 만난 문제가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것이 걸림돌 같았는데 하나님은 디딤돌이 되게 하십니다. 고난을 만났습니다. 그것이 부끄러움 같았는데 하나님은 간증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다니엘이 문제를 만났습니다. 다니엘 정적들이 다니엘을 없애기 위하여 함정을 팠습니다. 그들은 다리오 왕을 부추겨서 30일간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단 6:10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그 일이 자기를 죽이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도한 것도 놀라운 데 더 놀라운 것은 다니엘은 감사의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감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천사들이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을 보호했습니다. 사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의 심경의 변화로 인하여 다니엘의 적들이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그 일로 다리오 왕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감사기도를 통해서 기적을 일으켜주셨습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15절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떠나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에 공생애 당시에도 이 세상에서 왕이 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왕이 되셔서 높임을 받으시기 위하여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섬김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높아지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셔야하며 그 후에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높아지셔야 한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임금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면 무리들이 주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고 할 때 못이기는 척하면서 받아드리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십자가였기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시기 위하여 무리를 피하여 산으로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에게서 반드시 본 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은 무엇을 하든지 스스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셨습니다. 요 8:42입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주님이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스스로 결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요 8:28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은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주님에 대하여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 하나도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하셨습니다.
주님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셨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을까요?
➀늘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막 14:38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능 기도생활을 해야 하응 이유는 기도하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고 깨어서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15절에 보면 사람들이 주님을 붙잡아 임금 삼으려고 하니 주님께서 무리를 떠나서 산으로 가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주님께서 산에 가신 때가 초저녁쯤입니다. 그런데 마 14:25에 보면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신 시간이 로마시간으로 밤 4경이었습니다. 밤 4경은 새벽 3에서 6시 사이입니다. 주님은 밤새 산에 계셨던 것입니다.
무리를 피해서 산에 가신 주님이 무엇을 하셨을까요? 어디 주무실 곳이 있어서 주무시다가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밤을 새워서 기도하셨습니다. 마 14:23을 보겠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주님은 밤새 산에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쉽게 시험에 들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명과 건강과 행복과 축복을 도둑질하는 도둑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잠든 사람들은 마귀에게 생명과 건강과 행복과 축복을 도둑질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생활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생활입니다. 이어령 선생이 쓰신 [80초 생각나누기]라는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동물들은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는 탁월합니다. 들 토끼들은 겨울에 먹을 양식을 준비합니다. 자기 몸무게보다 100배가 넘는 건초를 저장하여 두는 습성이 있습니다. 두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더지는 지렁이를 잡으면 반만 먹고 나머지는 자기 굴속을 끌고 갑니다. 내일 키워서 먹으려고 지금 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굴속에서 지렁이를 길러서 잡아먹습니다. 해오라기는 벌레를 잡아 그대로 먹지 않습니다. 냇물로 가서 떨어뜨립니다. 그것을 먹으려고 모여드는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동물들은 내일을 준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생활입니다. 지금 기도하는 사람이 그때 승리합니다. 기도로 마지막 때를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 4:7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게 가까이 하시며 우리에게 비밀까지 가르쳐주십니다. 렘 33:3을 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려면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➁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읍시다. 왜냐하면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 길에 등이요 빛이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밤에 불이 있으면 길이 보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캄캄한 인생길에서 등이 되고 빛이 되는 것입니다.
➂성령님께 물어봅시다. 성경에 있는 것은 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성경만으로 모르겠는 것은 성령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묻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성령님께 묻는 행위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겸손함이기 때문입니다.
대상 10:14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과 다윗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죽이시고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넘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이신 이유가 뭡니까?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하나님께 잘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물어보면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잘 못 알아들어도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➃범사를 양심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결정할 때 기도하면서 성경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답을 찾을 수 없으면 성령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범사를 양심을 따라 행하면 됩니다. 행 23:1입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바울이 한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양심이 살아납니다. 물론 완벽한 기능을 하지는 못해도 살아난 양심을 따라 살면 부끄럽지 않게 살게 될 것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신호등입니다. 양심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멈춰야 합니다. 양심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 행하면 됩니다. 우리 영 안에 오신 성령님은 영의 기능 중에 하나인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읍시다. 강문호 목사님이 성막 세미나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세미나가 육군 사관학교 기독인 성막 세미나였다고 합니다. 그때 들은 말인데 지휘관이 사관생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귀관들은 부자집에서 기르고 있는 돼지 같은 신분이다. 부자가 돼지를 기르는 목적은 잔칫날 잡아 잔치 상에 올리려는 것이다. 귀관들을 4년 동안 기르는 데 한 사람에게 2억이 들어간다. 국가가 귀관들에게 이렇게 투자하는 목적은 꼭 하나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귀관들의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국가가 사관생도들에게 투자를 합니다. 사관생도들은 장교가 된 후에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는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이런 투자를 하셨을까요? 첫째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인생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행 13:36에서 다윗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너무나 멋진 인생입니다. 너무나 복된 인생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생활을 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를 나눴습니다.
1. 두 가지 양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2. 약한 자를 쓰시는 예수 그리스도
3. 감사로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
4.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