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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상 일당은 권력을 독점하고 전횡을 일삼아 기존 위나라의 원로 대신들(장제, 고유 등)에게 큰 반발을 사고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마의와 사마부의 거사는 '사마씨의 왕조 찬탈'이 아니라 '위나라 황실을 농단하는 조상 일당의 축출'이라는 명백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곽태후의 조서까지 받았기에, 사마부로서는 위나라를 바로잡는 충신의 행보로서 쿠데타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권력 찬탈 야욕은 훗날 사마사, 사마소 대에 이르러 본격화된 것에 가깝습니다.
2. 목숨 건 애도: 단순한 퍼포먼스 이상의 의미
사마소의 수하가 황제 조모를 시해했을 때, 사마부가 달려가 시신을 안고 통곡한 것을 마냥 '안전한 쇼'로만 보기는 억울합니다.
아무리 집안의 큰어른이라지만, 최고 실권자인 사마소의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였습니다. 실제로 당시 사마소의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위나라의 숱한 대신들이 침묵하거나 사마소의 눈치만 보았습니다.
사마부가 조모의 시신을 안고 "폐하를 돌아가시게 한 것은 신의 죄입니다"라고 통곡한 것이나, 훗날 조환이 쫓겨날 때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 것은 평생을 위나라의 신하로 살아온 노대신의 뼈저린 진심이 발현된 것입니다.
3. 인간적 나약함과 가문의 무게
확실히 서진 건국 후 안평왕에 오르고 온갖 특권을 누린 건, 순욱이나, 정말로 위나라의 충신으로 처세한 그의 조카 사마순에 비해 비겁했다고 평가하는 건 일단은 FACT는 맞습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생사와 안위가 걸린 문제에 어느 정도 방어적이 될 수 있고, 사마순이나 순욱 같은 처세를 아무나 할 수 없음은 돌이켜봐야 할 진실입니다.
이는 '가문 중심주의'가 지배하던 고대 동아시아 사회의 한계이자 개인의 딜레마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마씨 가문의 수장이라는 위치상, 조카와 종손(사마염)이 이룩한 가문의 영광을 개인의 신념만으로 걷어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순욱이나 사마순처럼 목숨을 끊거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지 못한 '인간적 나약함'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그가 위나라에 가졌던 부채감과 슬픔마저 전부 거짓으로 만든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론: 사마부를 연의에 나오는 '무결점의 완벽한 충신'으로 볼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활한 위선자'로 매도하는 것 또한 지나친 결과론적 해석으로서 틀려 있음 또한 명확합니다.
그는 평생 위나라의 신하로 살았다는 정체성과 사마씨 가문의 큰어른이라는 위치 , 그리고 본인과 본인 후손의 번영 사이에서 고뇌하며 타협했던, 매우 인간적이고 복잡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균형 잡힌 시각일 것입니다.
첫댓글 흥미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