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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는 어떤 국왕이 될까?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위 계승 1순위였던
찰스 왕세자가 이제 국왕이 됐다.
70년 가까이 이어진 훈련을 통해
찰스 3세는 가장 준비된 국왕이 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오랫동안 재위하는 동안,
73세의 왕은 15차례의 영국 총리 교체와
14차례 미국 대통령이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
경이롭고 획기적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가 끝난 지금, 우리는 어떤 왕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왕세자 시절 쟁점 사안에 대해
입장을 드러내곤 했던 그는 앞으로 군주의
중립성을 어떤 식으로 지킬까?
이제 찰스 3세 국왕은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을 소유하지 않는다.
의견을 공개적으로 강력히 제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군주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가인 버논 보그다노 교수는
군주가 되면 다른 역할과 규칙을 갖는다고 했다.
보그다노 교수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대중은 캠페인을 벌이는 군주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오랫동안 재위하는 동안, 73세의 왕은
15차례의 영국 총리 교체와 14차례 미국 대통령이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
© Getty Images
그 이유를 찰스 3세도 잘 알고 있다.
그는 2018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며
"군주가 되는 것과 의견 표명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왕이 되기 전후의 내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똑같을 것이라는 견해는 틀렸다."
영국에선 군주가 새로 즉위하면,
주화의 얼굴 방향이 달라진다.
이에 맞춰 찰스 3세의 리더십 역시
새 방향을 갖게 될 것이다.
찰스 3세가 이끌 국가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물려받았던 것보다 다양성이 더 큰 곳이다.
보그다노 교수는 새로운 왕이 문화와 믿음 측면에서
보다 다양한 영국을 지향하리라 전망했다.
그는 국왕이 소수 인종 및 사회적 약자 집단을
포용하고자 가시적인 노력을 하면서 자신을
통합의 동력으로 만들려 할 것 같다고 했다.
2021년 6월 글로스터셔 테트베리 하이그로브 하우스에서 개최된 후원 행사에
참여 해 '브리티시 아시안 트러스트' 회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 찰스 3세 국왕
© Getty Images
보그다노 교수는 또 예술과 음악, 문화에 대한
왕실의 후원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찰스 3세와 함께 수년간 왕실 자선 단체 활동을 해온
로이드 도프먼 경은 기후 변화 및 유기농 농업 등에 대한
참여가 중단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드 경은
"그는 매우 아는 게 많고 능력이 뛰어나다"며
"군주가 됐다고 갑자기 그런 것들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국왕이 "긴축" 왕실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찰스 3세 국왕과 카밀라 왕비, 윌리엄 왕자 부부를
중심에 둔 작고 핵심적인 왕실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왕실 평론가인 빅토리아 머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재위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연속성과 안정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거대하고 격렬한 차이를 기대하지 말라"며
"국왕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왕실 평론가이자 작가인 로버트 하드먼은
"우리는 여왕을 국가와 관련된 활동에서
상수로 생각해왔지만,
여왕과 별개로 국왕도 그 어떤 정치인보다
오랜 공적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버킹엄 궁의 발코니에서 인사하는 왕실 인사들
© Getty Images
역사가이자 작가인 앤서니 셀던 경은
찰스 3세 국왕이 기후 변화 대응 활동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자신감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앤서니 경은 한때는 조롱을 당했던 그가 이제는
"애튼버러의 아우라"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드만에 따르면, 2021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 변화 정상 회담에서 찰스 3세의 견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하드만은 찰스 3세가 전 세계에서 제대로
영국 국왕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회담은 그저 상투적으로 진행된 회담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자리했고 바이든 총리는
'이 모든 것들을 그가 해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국왕은 어떤 성격일까?
왕세자의 18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촬영된 공식 사진
© PA Media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다소 수줍음이 많고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예민한 영혼"이라는 평가도 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외롭다며
불평하던 학창 시절 기록도 있다.
그는 "그들은 밤새 슬리퍼를 던지거나
베개로 나를 때리거나 방을 뛰어다니거나
있는 힘껏 세게 나를 때린다"며
기숙사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왕실에 보내기도 했다.
그의 아내인 카밀라 왕비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꽤 참을성이 없다.
모든 게 미리미리 끝나 있기를 바란다.
이게 그가 일하는 방식이다."
카밀라 왕비는 찰스 3세의 70번째 생일 기념
TV 인터뷰에서 대중 앞에 공개되는 다소 진지한
성격 이면에는 장난기가 많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를 매우 진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들이 그에게서
무게감을 덜어낸 측면을 봤으면 합니다.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함께 놀고,
해리 포터를 읽어주며 목소리를 흉내내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70년 행사에 참석한 찰스 3세 국왕과 손자 루이 왕자,
2022년 6월 © Getty Images
2022년 9월 3일 브래마 하이랜드 집회에 참여한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웃고 있다 Getty Images
찰스 3세는 자신을 희화화하는 농담으로 청중을 끌어들이며
대중 앞에서 편안하고 친근한 인물이 되려고 해왔다.
왕이 된 후 바뀔 수도 있지만, 왕세자 시절 그는
친근한 할아버지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반면 70대가 되었어도 실행력은
조금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교사들의 역량 개발을 위한 자선단체
'왕세자 교육 연구소'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크리스 포프는 새 국왕을 쉴 새 없이 바쁘고
주도적인 인물이자 엄청난 업무를 소화하는
'에너지 덩어리'라고 묘사했다.
포프는 "그는 다음 세대의 행복에
정말 큰 열정을 갖고 있다"며
"그가 해 나갈 많은 일에서
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세자가 했던 자선 사업에는 역사적 유산 보호 및
전통 공예 기술을 보존하는 동시에
혁신과 변화를 장려하는 것들이 있었다.
포프는 "그는 항상 전통이 계승되지 않는 것을 우려했지만,
그게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왕실의 인증을 받은 전통 제분법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스터셔 쉽톤 밀에서,
2020년 7월 © Getty Images
2021년 11월 글래스고 COP26 기후 컨퍼런스 셋째 날
산림 및 토지 이용에 관한 연설중인 찰스 3세
© Getty Images
그는 때론 18세기 그림에 나오는
나이든 지주처럼 보이기도 했다.
좌절한 개혁가같은 말을 하기도 했고,
배제되고 방치된 공동체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찰스 3세는 어머니로부터 의무감과 함께
종교적 신앙과 큰 유머 감각도 함께 물려받았다.
2007년 '브리티시 아시안 트러스트' 설립 참여
당시부터 그와 함께 일해온 히탄 메타는
"그는 뼛속부터 인도주의자"라며
"그가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사람들은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손주들에게
남겨줄 세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죠."
걱정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금요일 밤 아홉시였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파키스탄 홍수에 대해 방금 들었는데,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죠?'
한가한 사람이 아니죠.
하지만 그는 그 문제를 듣자마자 고민을 하죠.
정말로 신경을 씁니다."
해리 왕자 또한 "아버지는 늦은 밤 저녁을 먹고
다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가
노트에 얼굴을 묻고 잠들 분"이라고 말했다.
찰스 3세는 1948년 버킹엄궁에서 태어났다
© PA Media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1948년 11월 14일 버킹엄궁에서 태어났다.
BBC가 그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BBC는 여왕이 아들을 낳았다가 아니라
"왕자를 안전하게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왕위 계승자가 됐다.
그는 2005년 인터뷰에서
"내가 특별한 지위를 갖고 태어난 것을 알고 있다"며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400개가 넘는 단체의 후원자 또는 회장을 맡아왔다.
그리고 1976년에는 자신의 왕립 해군 퇴직수당으로
'프린스 트러스트'를 창설했다.
이 단체는 국가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약 90만명의 불우한 청년들을 도왔고,
그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다.
하지만 스스로 "사회에서 가장 도달하기 어렵다"고
불렀던 계층과 연결하려는 프린스 트러스트의
비전은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다.
그는 2018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청은 그것을 전혀 좋은 생각이라고 보지 않았다"며
"그것을 실현하는 게 꽤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은 정치적 간섭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거미같은 필체를 따서 이름이 붙은
소위 "흑거미 메모"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는 2004년부터 정부 장관들에게
그가 보낸 사적인 편지를 말한다.
그 내용은 농업과 도시 계획, 건축, 교육, 심지어
파타고니아 이빨고기 보호 같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을 질문이었다.
건축에 대한 견해로 알려진 찰스 3세가 방문한 파운드베리 마을 개발 현장, 1999년
© Getty Images
한 전직 내각 각료는 찰스 3세의 편지에
큰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었지만,
그가 꽤 확고한 의견을 가진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국왕을 반대 의견을 함께 조율하기 보다는
그가 사전에 가졌던 견해로 의견이 모아지길
원하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개입했고, 편지를 보냈죠.
그러나 주장하지 않았고,
의견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무례하지 않았어요.
2006년 인터뷰에서
간섭에 대한 의견을 말하며 찰스 3세는
"그것이 간섭이라면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승리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당신이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들은 불평할 것"이라며
"당신이 시도하고 막히고 해결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해도 불평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는 정당 정치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상황" 같은 사안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크리스 멀린 전 노동부 장관은 일기장에
찰스 3세에게 브리핑을 하다가
그의 단단한 집중력과 "금기를 깨뜨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태도에 놀란 적이 있다고 적었다.
"그는 같은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젊은이들, 특히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 심지어 자신을 비방하는 이들까지
지평을 넓힐 방법을 고민하죠. 감동받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게으름과 방종으로
삶을 낭비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말이죠."
찰스 3세 국왕의 재위가 시작되면서,
얼마나 많은 대중이 그를 지지할까?
찰스 3세는 "군주제만큼 관심을 많이 받는 것들은
사람들의 태도를 살피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수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기반 시장조사 업체 '유고브'가
2021년 12월에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그의 인기는 오름세였으며 응답자의 3분의 2가
그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여론 조사에서 그는 일관되게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아들 윌리엄 왕자보다 인기가 낮았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러했다.
그래서 여전히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빅토리아 머피는 이것이 1997년 8월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 웨일스 공작부인과 그의 관계를 다룬
TV쇼 및 영화의 영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쇼나 영화에는 사실과 허구가
혼합되어 있지만, 그 영향력은 크다.
머피는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왕실을 둘러싼 이야기에 다이애나 웨일스 공작부인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런던 대학의 폴린 맥클라란 교수는
찰스 3세의 즉위가 가까워지면서 대중의 인식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맥클라란 교수는 과거엔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침을 뱉는 이미지 등을 보여줬지만
이제는 환경에 대해 진지한 발언을 하는 보다
위엄있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항상 그렇게 고결한 것만은 아니다.
왕실의 수장으로서
그는 해리 왕자와 서식스 공작 부인,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전 세계의 커다란 관심과 싸워야 한다.
2021년 아버지 필립공의 장례식에서 참석한 찰스 3세
© PA Media
가족과 관련된 어려운 결정도 내려야 한다.
버지니아 주프레를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나온
앤드루 왕자를 향후 어떻게 할지 등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영국 바깥에서는
연방고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과제다.
새로운 수장으로서, 그는 어떻게 식민주의의
난해한 유산과 노예제 같은 문제들을 헤쳐나갈 것인가?
이제 찰스 3세 국왕은 영국뿐 아니라
14개 국가의 원수가 됐다.
이들 중 일부는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은 상태로
공화국을 꿈꿀 수 있다.
찰스 3세 국왕은 이미 변화에 대해 성숙한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했다.
그의 재위를 순탄하게 도와줄 지원군도 있다.
그는 분명 어머니가 '향후 카밀라가
왕비로 불리길 바란다'고 밝혔을 때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할 나이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역할 중 하나를 시작한
찰스 3세에게 카밀라 왕비는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이 엄숙한 순간은 지금까지 찰스 3세 국왕의 생애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시간이 왔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