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번째 편지 - 일상, 그 위대한 힘
이번 주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5월 8일 어버이날이 함께 있는 특별한 한 주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과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일상입니다. 우리는 핏덩이로 태어나 한 줌의 재로 돌아가기까지 때로는 특별한 날들을 지나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날은 평범하고 반복적인 시간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평범한 삶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늘 대단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가 인생을 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갓난아이가 한 인간으로 성장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생활 능력을 하나씩 익혀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적입니다. 그렇게 성장하여 성인이 되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면 다시 그 생활 능력을 하나씩 잃어가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제 또래의 많은 이들은 대개 이 두 가지 경험을 동시에 마주합니다. 하나는 손주라는 새 생명의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이라는 생명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시간입니다.
1950년대 미국 의료계에서는 일상을 ‘일상생활활동(Activities of Daily Living, ADL)’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였습니다. 이는 건강을 단순히 “어떤 병을 앓고 있는가”라는 병명 중심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 수준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이 개념은 노화, 재활, 간병, 장기요양, 보험, 병원 퇴원 계획 등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활동’이란 결국 혼자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기돌봄 능력입니다. 식사, 목욕, 옷 입기, 화장실 사용, 이동, 배변·배뇨 조절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성인에게는 너무도 당연하여 별다른 의식 없이 매일 반복하는 일들이지만, 갓난아이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그 어느 하나 스스로 해낼 수 없습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식사, 위생, 이동, 배설, 수면까지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존합니다. 이후 신체와 감각, 정서와 언어, 인지와 사회성이 함께 발달하면서 점차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다루는 법을 배워갑니다. 이 과정은 “전적인 의존 → 부분 참여 → 모방과 연습 → 독립 수행 → 생활 운영의 기초 형성”이라는 순서로 나아가며, 마침내 생활을 스스로 운영하는 기반을 형성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울음으로만 세상에 요구를 전하던 존재가 손을 뻗고, 몸을 뒤집고, 기고, 걷고, 숟가락을 쥐고, 옷에 팔을 끼우며, 끝내 “내가 할래”라고 말하게 됩니다.
학자들은 일상생활활동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기본적 일상생활활동(Basic ADL, BADL)입니다. 이는 생존과 직결된 신체적 자기돌봄(Self-care) 활동으로 이 기능이 부족해지면 타인의 돌봄이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1. 식사하기: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음식을 스스로 먹고 씹고 삼키기
2. 목욕 및 개인위생: 세수, 양치질, 스스로 샤워하기, 머리 빗기
3. 옷 입고 벗기: 날씨와 상황에 맞는 옷을 고르고, 단추나 지퍼를 채우며 입고 벗기
4. 화장실 사용 및 배설: 화장실로 이동해 뒷처리를 하고 대소변을 스스로 조절하기
5. 이동하기: 침대에서 의자나 휠체어로 옮겨 앉고 실내를 이동하기
두 번째는 도구적 일상생활활동(Instrumental ADL, IADL)입니다. 이는 가정과 지역사회 안에서 보다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조금 더 복잡한 활동입니다. 신체적 능력과 함께 기억력, 판단력, 문제해결력과 같은 인지적 능력이 요구됩니다.
1. 투약 관리: 정해진 시간에 정확한 용량의 약을 스스로 챙겨 먹기
2. 금전 관리: 물건값 계산, 은행 업무, 공과금 납부하기
3. 식사 준비: 식재료를 구매하고 다듬어 불을 이용해 요리하기
4. 교통수단 이용: 버스나 지하철 타기, 자가용 운전하기
5. 통신기기 사용: 전화 걸고 받기, 스마트폰 조작하기
6. 가사 및 세탁: 집안 청소, 설거지, 빨래하기
7. 쇼핑 (장보기): 필요한 물품을 계획하고 상점에 가서 구매하기
이 모든 것은 너무도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하나씩 배워가는 능력이고, 노인에게는 하나씩 잃어가는 능력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을 떠올려 보면 이 활동 능력들이 매일 조금씩, 아주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아이는 매일 먹고, 걷고, 씻고, 입고, 놀며 자신의 몸과 세상을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반대로 노인은 먼저 삶의 반경이 점차 줄어들고, 생활을 운영하는 능력이 흔들리며,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돌보는 능력마저 잃어갑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는 이러한 활동들이 누군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스스로 씻고, 먹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존을 지키는 일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몇 년, 그리고 생의 마지막 몇 년을 타인에게 깊이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한 인간이 누군가로부터 전적인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이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어쩌면 사랑은 남녀 사이의 끌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던 시절, 누군가가 자신을 먹이고 씻기고 안아주고 재워주었던 그 돌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그 기억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살아가다가, 누군가에게서 그것을 다시 찾고, 부모님의 마지막 시간을 돌보면서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 <돌봄>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이것이 일상이 가진 위대한 힘입니다. 일상은 필연적으로 돌봄을 필요로 하고, 그 돌봄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6.5.6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