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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21일 부터 11월2까지 아내와 터키 그리스 여행을 했다. 긴 비행시간, 긴 시간 버스타기, 배타기 등 조금은 고된 여행이었지만 많은 볼거리, 기독교 유적과 유서 깊은 동서양의 유적을 접하게 되어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19명으로 된 전국연합팀(서울 3명, 부산 2명, 인천 2명, 춘천 2명, 과천 2명, 영주 2명, 제천 6명)으로 재미있는 구성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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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를 함께 가자’고 권하면 이미 다녀왔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다녀온 소감을 물어보면 “힘들었다.” “볼 것이 별로 없었다.” “고생스러웠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왜 그럴까?
몇 해 전만해도 성지순례라고 하면 고생체험, 극기 훈련 정도로 출애굽시절에 이스라엘백성이 경험한 광야의 고난을 몸소 체험해 보려고 작정하고 출발 하였었나 보다.
그러나 요즈음의 성지순례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다. 일단 식사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잠자리는 편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여행은 여행답게 설래 임이 있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 성지순례가 아니더라도 열흘이 넘는 여행을 지치지 않게 다니려면 호텔과 식사의 예산을 너무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그래서 요즘의 성지순례는 특급호텔에 풍성한 음식으로 약간 호사스러워졌다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성지순례는 두 단계로 나눠서 순례하는데 한 단계는 구약시대와 예수님의 생애, 즉 출애굽여정과 예수님의 사역현장을 하나로 묶은 여행이라고 한다. 다른 한 단계는 신약시대의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지를 하나로 묶어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두 개를 하나로 묶으면 일정이 너무 길어져서 최소 한 3-4주 이상 소요 되는데 지치거나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다 소화하기 어려움으로 2주씩 두 차례에 걸쳐 나눠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행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일반 시중여행사들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을 위하여 일정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여 1주일짜리 상품을 내놓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경향이 많아졌는데 경비는 싸게 보이나 실속이 너무 적다고 다녀온 분들은 전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지명만도 대충 찾아다닌다면 기동력이 좋은 승용차로 바삐 다닌다 해도 한 달로도 부족 하겠지만 가장 중요 줄거리만 잡아서 출애굽 여정의 출발지인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시작하여 마라, 르비딤, 홍해, 파란(오아시스),모세의 샘, 시내산, 요르단의 왕의 대로, 페트라, 느보산, 요단강, 사해, 갈릴리호수, 가버나움, 가나, 나사렛, 가이사랴, 무깃도, 겟세마네, 감람산, 골고다언덕, 베들레헴, 등지를 순례하는 10일 내지 13일 코스라고 한다.
신약시대의 사도들의 활동 지역을 순례하는 터키와 그리스의 13일 정도가 좋다고 생각 한다.
터키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 하는 유적이 있는 나라로 여겨지나 실제로 가보면 전반적으로 이슬람 문화가 대부분이다.
그리스는 모든 학교가 등교를 하면 운동장에 모여 함께 주기도문을 하고 들어가는 기독교 국가라고 가이드가 안내를 했다. 그러나 문화유적은 고대 그리스 신전 등이 대부분으로 기독교 유적은 가려져 찾아보기 어려웠다.
터키와 그리스 여행을 가기 전에 두 나라의 고대 역사를 대충 알고 갔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먼저 두 나라의 고대사와 오늘을 약간 짚어 보기로 한다.
★ 터 키 편 ★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으면서 두 지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나라 터키는 고대에서 부터 중세,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넘쳐 나나는 나라이다.
북으로는 흑해. 서쪽으론 에게해, 남쪽에는 지중해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내륙에는 해발 1000m 가 넘는 고산들을 비롯한 풍부한 자연유산을 갖춘 천혜의 땅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아홉 군데나 보유한 문화대국이며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 보기 전에는 그 감동을 한껏 안아볼 수 없는 땅으로 꼽힌다,
축복받은 이 땅에서,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함께 걸어보기도 하고. 무슬림의 문화를 엿보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나 두 팔을 벌려 형제의 나라 한국에서 온 우리를 ‘코리아... 대한민국 짝짝짝’하며 환영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1. 터키의 기원
기원전 2000년 중앙아시아 남부에서 기원한 터키 민족의 조상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훈"족(혹은 돌궐족)이며, 기원전 220년에 수립된 터어키의 Teoman Yabgu 왕국을 중국인들은 "흉노"라고 불렀다.
터어키 민족은 중세기에 아랍지역을 횡단하여 서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아랍문자를 도입하여 사용했.
2.시대별 터키의 역사
1) 석기, 청동기시대 - B.C 7000년경 이전에 아나톨리아 지역에 구석기인들이 살았다는 흔적 B.C 3000년경의 층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었고 이 청동기 문화는 에게海 일대에 퍼져 후에 크레타문명, 미케네 문명을 꽃피게 했다
2) 히타이트 문명 - 터어키 국토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아나톨리아는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남북으로 연계하는 교통과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B.C 2000년경 아나톨리아 지역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히타이트인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히타이트는 기원전 1200년경에 발칸반도에서 들어온 이민족에 의해 무너졌다.(트로이 함락도 같은시기)
3) 우라르트 왕국 & 프리기아 왕국 - 히타이트 멸망 후 작은 나라와 부족이 난립하는 혼란기로 전해진다.
아나톨리아는 프리지아인과 리디아인에게 점령되었으나 동부지역은 토착왕조인 우라르투 왕국 통치 아래 남아 있었다.
4) 리디아 왕국 & 페르시아 제국 - 리디아 왕국 서 아나톨리아를 지배했으며 세계최초의 귀금속화폐를 주조하여 사용했으며 B.C 546년 페르시아 키로스 2세와의 전투에서 패망하여 멸망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왕조가 기원전 6세기에 이 지역을 차지했으며, 그 후 헬레니즘 제국 세력권 안에 들어갔다.
5) 헬레니즘 시대 - 헬레니즘 이란, 그리스 고유문화와 오리엔트(동양) 문화가 융합한 시대를 일컽는다.
B.C 334년 그리스 본토를 지배하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나서며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아나톨리아를 지배하던 페르시아를 격파하여 해방자로 환영을 받으며 헬레니즘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바빌론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요절하며 점령지는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로 분할되며 아나톨리아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영토 분쟁의 장이 된다
6) 로마제국 & 비잔티(지금의 이스탄불)제국 -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는 B.C 146년 카르타고, 그리스를 점령 후 지중해 연안을 통일 한다.
AD 30년경 예수 그리스도는 처형되었으나 사도 바올, 베드로의 포교에 힘입어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었고 그리스도교가 최초에 뿌리를 내린 곳이 바로 아나톨리아로 초기 그리스도교 유적이 많다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다시 로마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콘스탄티노플(비잔틴, 지금의 이스탄불)을 도읍으로 정하고 융성 한다.
그러나 395년 로마는 동, 서 로 분열되고 서로마는 476년 게르만 인의 침입으로 멸망하며 동로마는 로마의 정치, 그리스도교, 그리스문화를 중심으로 존속했다. 이 시대를 비탄틴 제국이라 한다.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시대에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성당이 완성되었고 이때가 비잔틴 제국의 최고 전성기였다.
7) 셀주크 투르크 - 터키족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6세기로 중국이 말하는 ‘돌궐’은 ‘투르크’의 한자음 표기이다.
6세기 중반 돌궐족은 동북아시아로부터 페르시아에 이르는 제국을 세웠으나, 당나라에 의해 밀려나 중앙아시아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다.
11세기에 투르크 유목민의 한 집단인 오구즈족이 동쪽(이란)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왔다. 이후 투르크족은 이슬람화 되었고, 최초의 무슬림 왕조인 셀주크 제국이 등장하게 된다.
셀주크 제국은 11세기경부터 14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슬림 왕조이며, 중앙아시아의 부족연합체에서 발흥하여 중동에서 투르크 세력의 시조를 이루었다.
12세기 이란의 셀주크는 멸망을 하였고 아나톨리아의 셀주크는 13세기 쿠바드 1세 때 최고의 전성기를 거쳐서 터키 민족국가를 발전시키는 기초가 되었다.
14세기 초에 이르러 셀주크는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세력을 상실하고 멸망하여, 몇몇 나라로 분할되었다. 그중에 하나인 오스만 투르크가 나중에 다시 대 제국을 세우게 된다.
8) 십자군 시대 - 그리스도교 국가인 비잔틴이 제1차 십자군으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의 성치 탈환을 기치로 아나톨리아에 들어온 것은 1096년의 일이다. 비잔틴은 셀주크 연합군을 대파하고 아나톨리아에 있던 구영토의 일부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셀주크는 지금의 콘야로 지역을 옮기고 힘을 기른 뒤 제2차, 3차 십자군 전쟁에서 비잔틴에 큰 타격을 준다.(십자군은 시리아 , 팔레스타인이 목적이었음)
셀주크는 제4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비잔틴의 수도인 콘스탄틴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여 라틴제국을 건설했다.
그로 인해 같은 그리스도교 국가인 비잔틴은 이즈닉, 트라브존으로 피신 한다. 라틴제국도 50년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하여 이즈닉, 트라브존으로 피신한 비잔틴 제국은 재부흥 했다.
9) 오스만제국 시대(1281-1922) - 이슬람 왕조 - 몽골의 세력이 쇠퇴한 13세기말 오스만(셀주크 투르크의 일부)을 족장으로 한 터키족의 일파가 아나톨리아의 비잔틴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1402년 몽골의 티무르군이 아나톨리아를 침입하였고 앙카라지역에서 오스만은 대패하여 왕조가 일시적으로 끊겼으나 이때부터 영토내 크리스트교도의 자제들을 징용하여 친위대를 기르는 "예니체리" 군단을 창설하였다.
몽골 티무르가 사라지자 오스만세력은 급속히 회복하였고 1453년 메흐멧 2세때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여 비잔틴 제국은 종말을 고했다.
이후 오스만투르크는 16세기에 에게해와 흑해가 오스만제국의 내해로, 이디오피아, 중앙아프리카, 예멘, 크리미아가 국경으로 되었고, 유럽의 비엔나까지 그 영토가 확장되며 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술레이만 대제때 3개대륙을 점령 최전성기를 구가)
오스만제국은 하렘중심의 구태의연한 체제가 근대화를 막아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 1912-1913년 발칸전쟁으로 영토가 그리스의 Maritsa강 지역까지로 축소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시에는 패전국인 독일 측에 가담, 1920년 8월 연합국측과 체결한 Sevre 강화조약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背後地와 아나톨리아 고원만을 보유하게 되어 있었으나, Mustafa Kemal Pasha의 영도로 실지회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1923.7 연합국측과 Lausanne 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현재의 영토를 보유하게 된.
10) 터키 공화국 시대 - 유럽열강은 약체가 된 터키에 다양한 요구를 하였고 1853년부터 러시아와 싸웠던 크리미아전쟁은 영국, 프랑스가 터키 편을 들었으나 일부 영토(카르스)는 러시아 수중으로 넘어갔다.
적십자 설립의 원인이었던 간호사 나이팅게일이 활동한 것이 이때이다. 병원으로 쓰였던 병영은 아시아측 이스탄불에 아직 남아있다.
1914년 오스만 투르크는 독일편에 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나 1918년 패배하였다.
파리교외에서 체결한 세브르조약에 의거 본토이외의 영토를 포기해야했다. (시리아,아라비아,아르메니아의 광활한 영토를 포기해야했다)
본토의 아나톨리아도 연합군에 분할 관리되었다. (영국은 삼손,프랑스는 키리키아,이탈리아는 콘야,안탈랴, 그리스는 이즈미르를 점령관할)
이러한 터키의 존망위기에서 구해준 인물은 후에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장군 이었다. (아나톨리아 북부지역 총사령관으로 임명됨)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1919년 삼순을 회복하고 1921년 그리스를 몰아내고 이즈미르 에서 스미나르까지 회복,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술탄제도를 폐지하고 (마지막 술탄 마흐멧 6세는 망명) 1923년 10월 29일 "터키 공화국"을 건국했다. 로잔조약에 의거 거의 현재의 영토가 회복되었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정치·경제·사회체제 전반에 대한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이슬람의 지배적 역할을 축소하고, 터키어를 아랍 문자 대신 라틴 문자로 쓰도록 함으로써 터키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을 축소시켰다. 또한 이후 오랫동안 영향력이 지속된 국가통제 방식의 경제발전 정책을 마련했다.
근대화를 위한 과감한 개혁은 1) 이슬람교의 국교폐지 , 2) 정치와 종교 분리, 3) 일부다처제 폐지, 4) 남여모두 교육의무화 5) 여성 참정권실현 , 6) 이슬람력을 대체한 태양력채택, 7) 미터법 도입, 8) 아라비아문자를 대신한 로마자 사용 , 9) 남성의 페스(모자), 여성의 페체 (검은 베일)착용금지 등이다.
그는 터키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 1935년 터키의회는 "터키의 아버지" 란 뜻의 "아타튀르크"라는 칭호를 선사 한다.
1938년 아타튀르크 사망 후 불안정한 기간과 짧은 군부 통치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정치 및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었다.
오늘날의 터키의 정식명칭은 터키공화국이다. 지리학상으로 동서양의 교차로에 있어 동양과 서양 문화가 혼재되어 있고 고대 유적이 즐비하다.
★- 터키 여행 -★
<이스탄불>
이스탄불(터키어: İstanbul)은 터키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행정적으로는 이스탄불 주에 속해 있다. 터키 서부에 위치해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있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으며 오스만 제국 때까지 수도로 존속하다가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23년 이후로는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었다. 2008년 기준 인구수는 13,872,613명이다. 1985년 유네스코는 이스탄불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히포드럼광장 - 술탄 아흐메드 사원(블루모스크) 바로 앞에 있는 광장으로 로마시대 대경기장 유적이다 이곳에서 마차 경주가 최초로 열렸다고 하며 당시에는 세계의 각 지역에서 가져온 기둥, 조각상, 오벨리스크(뱀 머리) 등을 이곳에서 전시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히포드럼의 한 구석에 놓인 채로 수십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390년 테오도시우스 1세 때 프로클루스에 의해 아주 힘겹게 들어 올려져 이곳에 세워질 때까지 신비한 기둥으로 여겨졌다.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490년에 메소포타미아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분홍빛이 도는 최고 품질의 화강석을 이용하여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룩소의 카르낙 신전에 세웠던 것이다. 이 기둥은 서기 4세기에 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로마의 강력한 권력을 보여주고 국민을 열광시키며 찬양 받을 목적으로 이스탄불로 옮겨져 왔다고 한다.
◇술탄 아흐메드 사원(SULTAN AHMET CAMII : 일명 블루스모크) -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며,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했다.
우뚝 서 있는 첨탑 6개는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며,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일 5회의 기도를 뜻하기도 한단다. 사원 앞의 정원에는 언제나 화사한 꽃이 피어 있어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그랜드 바자르 - 터키어로 '덮여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의 카파르 차르쉬(Kapar Carsi)시장은 아치형 돔 지붕으로 덮인 대형 실내 시장으로, 일반적으로 그랜드 바자르로 알려져 있다.
1455~1461년 술탄 메메드 2세(Mehmed II)의 명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16세기 술탄 술레이만 1세(Suleiman I) 통치 시기의 대대적인 확장을 비롯하여 여러 번의 증·개축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으로, 현재 60여 개의 미로 같은 통로에 5,000여 개의 상점이 있으며 2개의 주요 통로 끝에 있는 입구 4개를 포함하여 모두 20여 개의 입구가 있다. 시장에는 금, 은 세공품을 포함한 각종 보석류, 피혁류, 카펫, 향신료, 형형색색의 도자기와 기념품을 포함한 각종 공예품과 특산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성소피아성당 - 이스탄불 성소피아성당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호칭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고, 터키 지배 때에는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성스러운 예지(叡智)’(하기아 소피아)에 바친 구당(舊堂)(325) 대신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새로운 구상으로 재건되었다.
안길이 81m, 너비 70m의 광대한 3랑(廊) 바실리카 플랜과, 지름 약 33m의 거대한 원개(圓蓋)를 교묘히 조합시킨 절충적인 원개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토프카프궁전(보석관, 종교관 포함) - 토프카프궁전은 보스포루스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 언덕에는 과거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토프카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토프'는 '대포'라는 의미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새로 지워질 때까지 오스만 튀르크(오스만터키)제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궁전은 세 개의 문과 네 개의 중정(中庭)이 있다. 제1중정에는 비잔티움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지은 하기아 이레네 성당이 있다. 이곳은 오스만 튀르크제국이 비잔티움제국을 정복한 후에도 원래 형태로 남겨 두었다.
◇보스포러스 해협(유람선 승선관광) - 보스포러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해협이다. 길이는 약30km 이며, 가장 넓은 폭이 3500m, 가장 좁은 폭이 750 m이다. 깊이는 36m에서 120 m 사이라고 한다.
해협 양쪽으로 이스탄불 시가 자리하고 있어 고대유적지, 그림같이 아름다운 터키전통적인 마을, 터키에선 보기 힘든 울창한 숲들이 곳곳에 있고, 음식점 찻집 별장 등이 있는 매우 조용한 풍경 이었다. 해협을 횡단하는 두 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으며, 바다 아래로 기차 터널이 있다.
고대, 중세에는 지중해와 흑해간의 거의 모든 상거래는 이 해협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계속되어 매년 3만8000여척의 배들이 이곳을 통과한다고 한다.
<앙카라>
◇한국참전토이기기념탑 - 한국참전토이기기념탑은 1950년 6.25때 1만5000명이 참전하여 자유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721명의 영현을 기리는 기념공원으로 우리나라를 도와준 고마움에 우리일행을 숙연하게 했다. 한국정부가 건립하여 터키정부에 헌납한 탑이다.
△비문 내용
이 탑은 터키 군이 자유 수호를 위하여 한국전에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지다. 앙카라시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세워지게 된 이 탑은 터키공회국 제50주년 기념일을 기g하여 한국정부가 터키국민에 헌납하다
-1973년 10월 29일-
<콘야 - KONYA>
◇소금바다 - 광활한 고냐 평원을 가로질러 카파도키아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가이드가 일정에 없는 코스를 서비스한다고 하며 소금바다로 안내했다. 그곳은 마치 눈 덮인 바다처럼 하얀 소금밭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바닥이 하얀 대리석처럼 보였다.
<카파도키아>
◇데린쿠유 - 암굴 주거지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개미집처럼 지하로 뻗어있는 지하도시 이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도들이 숨어 지낸 곳이라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 때에 들르는 유적지이다.
동굴 같은 통로를 내려가면 끝없이 미로가 뻗어있어 빛도 들지 않는 지하에서는 방향 감각마저 잃게 된다. 지하도시는 기원전 400년경의 기록에도 도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그 발상과 역사에 대해서는 의혹이 많으며 한때는 아랍인에게서 도망쳐온 그리스도교가 살았던 적도 있다고 한다. 내부의 통기 구멍은 각층을 통과 하도록 되어있고 예배당, 교단이 있는 학교의 교실, 침실, 식료품 창고에 천장 등이 있어 대규모 공동생활을 영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곳곳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한 둥근 돌이 길을 막을 수 있도록 놓여있다. 조명전구가 달려있고 몸을 구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많았다. 데린쿠유에는 최대 4만 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각각 지하 8층 까지 갈 수 있다.
◇우치 히사르(비둘기 계곡) - 터키어로 '3개의 요새'라는 뜻을 지닌 곳으로,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이곳에 살던 수도사들이 비둘기를 길렀다고 하여 '비둘기 골짜기'라고도 부르며 지금도 비둘기들이 많이 살고 있다. 평범한 바위산에 들어선 집들이 예술품처럼 아름다우며 뛰어난 괴레메 골짜기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데브란트계곡 - 상상의 계곡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으로 몇 만 년의 세월의 흔적이 만들어 놓은 기이한 바위에 이름을 붙인 재미난 계곡이다.
◇괴레메골짜기 - 세계 7대 자연불가시의 중 가장 먼저 선택된 곳이 괴레메골짜기 라고 한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버섯 모양의 집들과 이를 이용한 교회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괴레메 야외박물관이라 불린다. 원래는 수도생활을 할 목적으로 동굴을 파고 들어가 기도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공간을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하며 지금은 비둘기 집으로 변해 있다. 외계 생명체라도 나올 듯 기묘한 바위들이 많았다. 스타워즈를 촬영했던 장소라고 한다.
◇파사바계곡 - 노아의 홍수 이후 수천 년을 거쳐 풍화된 돌들이 마치 거대한 버섯모양으로 늘어선 모습이 신비스러웠다.
◇열기구 관광 - 자연의 예술인 카파도키아 지형을 하늘을 나는 열기구를 타고 내려다본 모습은 관광객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연발하는 아름다움이 극치인 장관 이었다. 이른 새벽이지만 수십 대의 열기구가 관광객을 태우고 동시에 하늘을 떠도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1인 160유로의 옵션이라서 잠시 망설였지만 아들의 권유도 있어 타고 보니 정말 잘 탔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보다 앞서 19일 다녀온 팀은 1인 240유로를 지불했다고 했다.
<안딸랴>
◇안탈랴항 유람선 관광 - 안탈랴항은 신약성경에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밤빌리아항이 이름이 바뀐 곳으로 사도바울이 3차선교 여행 중에 밟은 항구이다. 아타튀루크 광장에서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좁고 정겨운 구 시가지를 지나는 곳에 교회였다가 회교사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이 유적으로 남아있었다. 항구 한쪽에 자리한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지중해 한가운데로 나가는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를 1시간30분 동안 감상했다.
◇이블리미나레- 셀축 건축물의 본보기인 이블리미나레는 안탈랴의 상징이라고 한다. 높이 45m 첨탑((미나레)는 셀축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트의해 사원으로 전환된 비잔틴 교회 외부에 건물의 일부로 세워졌다고 한다.
◇히드리아누스의 문 - 로마 5현제 중 네번째 황제인 히드리아누스가 안탈랴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문이라고 한다. 섬세하고 뛰어난 조각들로 장식되어 아름다웠다.
<파묵깔레>
파묵깔레는 터키어로 '솜의 성'이라는 뜻이 담긴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곳이다. 지면에서 뿜어져 나온 석회성분을 포함한 온천수가 널리 알려져 터키의 대표 적인 온천 휴양지로 각광 받고 있다.
터키의 남서부 지방의 데니즐리 에 위치한 파묵깔레 온천은 수 천 년 동안 흘러나온 온천수로 인해 크림색의 종유석이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 냈다.
◇히에라폴리스 - ‘성스러운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페르가몬이 로마의 영토가 되면서 히에라폴리스 또한 로마의 영토로 귀속되었고, 한 차례 큰 지진으로 도시가 크게 파손 되었으나 차츰 복구되어 로마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에 걸쳐 전성기를 누렸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가 골로새 라오디게아와 함께 키운 정책 도시 이다. 히에라폴리스의 주요 산업은 원예, 카페트, 양모 등이었으며, 특히 석공예가 발달하여 곳곳에서 섬세한 돌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해 역대 로마 황제와 귀족들이 온천을 즐기기 위해 찾았다는 대욕탕 유적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으로 복원공사가 진행 중 이었다.
이곳이 번성할 때, 에베소에 온 사도 바울의 영향으로 이곳에 기독교 교회가 세워졌다. 12사도 중의 한 사람인 사도 빌립은 여기서 전도하다가 AD 80 년에 십자가형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 저 멀리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건물로 사도 빌립 기념교회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사도 빌립은 말년에 히에라폴리스로 와서 전도하다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뒤 결국 그 감옥에서 숨지고 말았는데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그가 숨진 곳에 빌립 사도의 기념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이 교회는 폭 20미터, 길이 20미터의 정방형이며 AD 5세기 후반에 화재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야외원형극장-석회 언덕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야외 원형극장은 히에라폴리스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2세기 무렵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했으며 3세기에 개축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수용 인원 15,000명의 상당히 큰 규모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중앙의 아폴로 부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19◇석회붕과 노천온천 - 파묵깔레에 가면 마치 목화솜을 쌓아놓은 듯 거대하고 하얀 석회 언덕을 볼 수 있다. 좁게는 수십m에서 넓게는 수백m에 이르는 광활한 둘레와 10m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는 석회석 기둥은 보는 이를 압도하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파묵깔레의 석회 언덕은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산물로, 대지 상부에서 석회 성분을 포함한 물이 암석의 표면을 따라 흘러 내려오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침전, 응고되고 이것들이 점차적으로 쌓여져서 현재의 광활하고 희귀한 경관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수많은 석회계단의 패인 곳에 웅덩이가 생겨났는데, 이곳에는 상부 쪽에서 흘러 내려온 푸른 온천수가 담긴다.
물빛은 맑은 날 하늘색과 같이 투명하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오묘한 물 웅덩이에서 야외 온천을 즐기기도 한
다.
에페스(EFES-에베소)>
◇원형대극장 - 에페스(에페소)는 신약성서에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 중 한 때를 이곳에서 보냈다고 전해지는 '에베소서'의 '에베소'에 해당하는 도시다.
기원전 11세기에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건설된 고대 도시국가의 유적지이며,
에게 해 연안의 도시로 무역과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발전했으나 전염병이 돌고 항구가 묻히자, 지금의 자리로 이동했다고 전해진다.
많은 유적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인 대극장(원형극장) 터이다. 터키가 지진이 잦은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유적이 생각보다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헬레니즘시대에 건축된 원형극장으로 2만5천명을 수용하는 웅장함을 보였다. 음향장치가 없는 시대에도 관중석 끝까지 들리도록 한 자연과 지형을 이용한 지혜가 돋보였다.
◇셀수스 도서관 - 셀수스 도서관은 당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터키의 버가모 도서관과 함께 세계 3대도서관의 하나였다고 한다. 서기 135년 로마시대 아시아 통치자였던 율리우스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아퀼라가 세웠다고 한다. 높이 16m 넓이 21㎡인 이 건물은 1970년대에 오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장서가 12000여권으로 과학적인 구조에 의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견된 중요한 유물은 이 유적지를 발굴했던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모두 비엔나로 옮겨졌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도미티안 신전 이 후 두 번째로 로마의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A.D 138년에 지어진 이 신전은 에페소스 시민들에 의해 지어져 로마의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졌다.
최근에 복원된 이 신전은 신전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돌 담 위에 신과 여신들의 부조가 가득하며 4명의 로마 황제 Diocletianus, Maximianus, Galerius, Chlorus의 상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또한 신전 전면의 4개의 기둥 중 2개의 기둥을 잇는 아치는 에페수스 유적중 가장 아름답다. 전면 아치 가운데에 새겨진 조각상은 운명의 여신 티케이고, 뒷면에는 메두사의 조각상이 있다.
◇체스메항 - 터키 에페스 가까이 있는 항구로 그리스로 가려면 그리스령 히오스섬으로 가서 아테네 페라우스항으로 가는
여객선을 갈아타야 한다.
< 소아시아 일곱 교회 유적>
1. 에베소교회(셀죽 요한무덤교회) - 에페소스 라고 하며, 현재명은 셀주크이다. 물론 에베소 유적지는 따로 있다. 당시 에베소는 실질적인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라 할 만큼 교역과 교통, 정치와 종교의 중심도시였다. 마의 독립 행정관이 다스렸고 순회재판소도 있었다.
에베소 유적지에는 수천명이 들어가는 야외 음악당과 셀수스 도서관, 법원, 병원, 우나탕과 아고라 지역이 있었고, 티베리우스, 트라얀, 하드리안, 도미시안 등 로마 황제의 전과 함께, 아테나, 아데미 신전도 있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시 3년을 머물러 세운 교회로, 현재의 베소교회유적지는 셀죽에 있는 사도 요한 무덤교회를 말하고 있다.
셀죽성 아래에 자리잡은 사도요한 무덤교회는, 아래쪽에 아데미 신전터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비잔틴시대에 세운 교회이다.
2. 서머나교회(폴리캅기념교회) - 스미르나 라고 하며 현재명은 이즈밀이다. 터키 남부의 미항으로, 큰 도시이다. 현재의 교회는 소아시아 7교회 중 유일하게 건물이 있는 곳으로, 황제 숭배를 거부해 순교한 서머나 감독 폴리캅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당시 서머나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잔학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숭배 거부로, 서머나 교회는 많은 재정적 궁핍을 겪었다. 그럼에도 서머나교회는 모든 핍박과 유혹을 물리치고, 열렬한 신앙을 지켜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을 받았다.
3. 버가모교회(세라피스신전) - 세라피스 신전은 레드 홀(Red Hall)로, 이 신전 밑에는 세리누스(Selinus) 강이 흐르도록 설계하였다.
이 신전은 2세기에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위해 지은 것이어서 이집트 신전이라고도 하며, 붉은 벽돌로 지어져 ‘붉은 정원’이란 뜻의 '크즐 아블루'라고도 불린다.
신전의 규모는 가로 100m, 세로 260m에 이르고, 높이도 20여m에 달해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한 편이다. 지금은 건축물의 벽채만 남아 있다.
4. 두아디라교회 - 두아디라 교회는 티아티라고 하며 현재명은 아크히사르이다. 당시 이 도시에는 트림나스라는 무당이과 무녀(巫女)들이 많아 기독교인들을 유혹했고, 또한 시장 조합을 중심으로 우상 숭배와 음란한 제사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두아디라는 옷감 기술이 뛰어난 곳으로, 빌립보의 루디아도 두아디라 출신으로, 자주 옷감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다.
5. 사데 교회 - 사르디스라 하며, 현재명은 살리히리 이다. 사데 교회는 1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던 클레멘트가 사데 교회의 첫 감독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사데 교회는 이 도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크게 부흥 하였다가 나중에는 쇠퇴하는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사도 요한이 사데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의 교회지도자는 누구였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처음에는 아데미신전을 빼앗아 예배드리다가(4세기경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권세를 얻었을 때쯤), 후에 신도의 숫자가 작아져 아데미신전 담 밖에 돌담을 싸놓고 예배드린 것 같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당시 신도 수는 매우 많았으나, 영적으로는 미약하였다. 때문에 "너는 살아 있다고 말하나 실은 죽어가고 있다!"란 책망을 받았다. 사데 지역은 황금이 많은 지역으로 재물의 유혹이 있었고, 또한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의 사데교회 유적은 아데미 신전 뒤편에 비잔틴 시대에 벽돌로 지은 교회이다.
6. 빌라델비아교회 - 빌라델피아는 현재명으로 알라세히르이다. 주님께 칭찬만 받았던 교회로, 초대교회 당시 교회는 크지 않았으나, 디오니소스 신전과 황제 숭배의 핍박을 이겨낸 교회였다.
현재의 유적은 동 로마 제국 비잔틴 시대(AD600년경)에 세운 것으로, 성 요한의 교회로 세워졌다.
7. 라오디게아 교회 - 라오디케아는 현재명도 라오디케아 이다. 당시 라오디케아는 양모가 풍부하고 안약 등 의약품이 유명했으므로, 재물의 유혹과 생활의 편안함으로, 미지근한 교회로 책망을 받았다.
특히 라오디케아 지역은 물이 좋지않아, 멀리 히에라볼리 파묵칼레로부터 관을 통해 온천수를 공급받았고, 또한 골로새로부터는 냉수를 공급받았으나 ,오는 도중 물이 식어 미지근 하게 되었다.
★ 그 리 스 편 ★
그리스의 정식명칭은 헬레니 공화국(Hellenic Republic)이다. 국토는 반도와 그 주변에 산재하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토의 서안은 이오니아해(海), 동안과 북동안은 에게해에 둘러싸여 있다. 북쪽은 연장 800km에 이르는 긴 국경으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와 접하고, 동쪽은 마리치강(江)을 사이에 두고 터키와 접한다.
헬레니즘과 그리스정교를 꽃피웠던 그리스는 1822년 터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1829년 아드리아노플 화약(和約)과 이듬해 런던회의에서 독립이 보장되었다.
1897년과 1919년 영토 확장을 꾀하려는 투르크와 그리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때 국경선이 획정되었다. 197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1981년 유럽공동체(EC, 현재 EU)에 가입하였고, 2001년 12번째 유럽단일통화(EMU) 회원국이 되었다. 행정구역은 51개 현(nomos)과 1개 자치주(autonomous region)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131940㎢, 인구는 10,722,816 명이다.(2008년 기준)
1. 고대 그리스 -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크레타 문명과 그 뒤를 이은 미케네 문명에서 시작되었다. 도리아 인의 침입으로 인한 암흑시대를 거친 이후 아테네, 스파르타 등 일종의 '도시국가'인 폴리스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폴리스 중 하나인 아테네는 정치적으로는 민주 정치를 발전시켰으며 경제적으로는 상업과 해상무역에 주력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폴리스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 정치 체제를 취했으며 상업보다는 농업에 치중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페르시아 전쟁 때였다. 기원전 5세기 초 오리엔트를 통일한 페르시아의 세 차례 공격을 모두 막아낸 뒤 전쟁 승리의 주역인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써 번영을 누렸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겼던 스파르타는 역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은 뒤 아테네와 대립했다. 마침내 기원전 431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여 기원전 404년까지 약 30여년간 이어졌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고 스파르타는 그리스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지만 오랜 전쟁으로 인해 쇠약해진 후였다. 스파르타는 결국 테베에게 패권을 내주었고 이후 오랜 전쟁으로 쇠퇴하게 된 그리스는 북방의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당하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폴리스들을 완전히 진압한 뒤 페르시아 원정에 착수하여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더스 강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알렉산드로스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뒤 분열되고 말았다. 이후 휘하 장군들이 세운 왕조들은 모두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2. 중세 그리스 - 그 후 비잔티움 제국이 그리스를 통치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다. 오스만의 지배 직전에 그리스의 지식인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을 전해주면서 서유럽 르네상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교 개종은 원칙적으로 자유였으며, 개종을 거부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비잔티움 시대의 농민이나 봉건제하의 농노보다 조금 나은 생활을 감수해야 하였다.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의 밀레트 제도 덕분에 그리스 정교를 믿는 본토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타지 사람과 섞이지 않고 결속을 유지하며 이후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었다.
★- 그리스 관광-★
<히오스섬>
23◇히오스항 - 히오스 섬(그리스어: Χίος)은 그리스의 섬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 에게 해에 자리하고 있으며, 터키 소아시아 해안과는 7km 떨어져 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려면 이곳에서 그리스 입국수속을 거쳐 패리 호를 타고 아테네 페리우스 항으로 가서 아테네에 들어가게 된다.
히오스 섬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Golden Odyssey란 중국레스토랑에서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21시에 1만5000톤급 패리호(정원 3000명)를 탔다. 다음날 아침 06시30분 아테네 피레우스항에 도착하게 된다.
<아테네>
◇페레우스항 - 페레우스항은 아테네의 메인 항(主港)이고, 그리스에서 가장 크며 또한 지중해에서도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이다. 우리 일행은 터키 체메스항을 떠나 히오스섬에서 정원 3000명인 페리호로 갈아 타고 2명 1실 또는 4명 1실에서 선상에서 1박하고 9시간을 행해 끝에 아침 6시30분 이곳에 도착했다.
◇아레오빠고스 언덕 - 아레오빠고스는 신들의 제판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언덕에서 에피크루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학자들로부터 모함을 받은 사도 바울이 제판을 받았다고 한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 22~31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제판이 행해졌던 곳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 그리스 도시국가(都市國家)의 중심지에 있는 언덕을 아크로 폴리스라 칭한다. -아크로 폴리스는 아테네의 것이 대표적이며 시가지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아크로는 정치수립, 폴리스는 도시라는 뜻이다. 전체 넓이는 동서로 약 300m 남북으로 약 120m 이다. 이곳에 신전 등 아래에 열거한 여러 개의 건축물이 있다.
△파르테논신전 - 처녀의 집이라는 뜻을 가졌다. 기원전 5세기에 건설된 파르테논 신전(고대 그리스어: Παρθενών)은 고대 아테나이의 수호자로 여겨지던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신전이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도리스식 기둥 양식 발전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신전의 장식 조각도 그리스 예술의 정수로 여겨진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와 아테나이 민주정의 오랜 상징이자 세계적으로 위대한 기념물로 인정받는다. 현재는 그리스 문화부에서 복원 및 개축 시행하고 있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디오니소스극장 - 로마 신화에서는 바카스(Bacchus)~로 알려져 있는 비극적인 운명으로 태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디오니소스의 제례의식으로부터 연극이 발생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극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고 그리스정부는 주장하고 있으며 서양 연극, 비극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음악가 조수미, 정명훈이 이곳에서 공연을 가졌다.
△에릭티온신전 - 기원전 420~ 393년에 지어진 도리아식과 이오니아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양식으로 아테나 여신의 아들 에릭티우스 숭배신전이다. 이곳에서 아테나, 포세이돈, 에릭토니우스의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니케아신전 - 기원전 427~424년에 페르시아전쟁에서 아테네가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위하여 세워진 신전으로 ‘아티나 니케’는 ‘승리의 아테나’를 뜻한다. 니케신전은 1686년 당시 그리스를 점령한 터키에 의해 파괴 되었지만 두 번에 걸친 재건 작업으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수니온곶- 아테네 남동쪽 50km 지점 차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아티카의 땅 끝인 수니온곶이 있다. 예로부터 바다의 신(神)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해면 가까이 높이 60m로 치솟은 절벽 위에 서 있는 포세이돈 신전의 도리아식 원기둥은 BC 5세기 중엽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주요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이다.
△포세이돈신전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도리아식 건축물로 단순한 신전이 아닌 해상을 오가는 배를 감시하는 방어기지 역g 할도 했던 곳이다.
◇국회의회의사당 - 그리스의 의회 의결이 이뤄지는 곳이다. 의회는 원래 1843년~1854년까지 스타디움 옆의 구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1875~1932년까지도 지속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신고전주의의 3층 건물로서 프레드릭 본 가트너가 1843년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그리스의 군주가 사용하던 궁전이었다. 1909년 화재 피해가 있으면서 재보수 공사에 상당한 시일을 보내게 된다. 왕실은 1924년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왕정이 의회의 결정에 따라 폐지되자 다른 용도로 쓰이기도 하였다. 병원, 박물관 등으로도 쓰였다.
1929년 11월, 그리스 정부는 의회를 이곳에 세우기로 결정을 내렸고 , 1934년 8월 2일 의회를 이곳에서 소집하게 된다. 5대 의회 때의 일이었다. 같은 해 왕정이 복고되기 하였지만 의회 활동은 이곳에서 계속 이뤄지게 됐다.
△무명용사의 묘 - 의회의사당 앞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군인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Μνημείο του Αγνώστου Στρατιώτη"라고 표시하는 이곳은 대통령 경호대가 지키고 있으며 의사당의 앞쪽에 위치한다. 이곳의 기념물은 1929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한국전 참전 기념 문구도 이곳에 있었다.
◇올림픽스타디움 - 말발굽 모양의 스타디움으로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스타디움이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고 밖에서만 볼 수 이었다.
◇에기나섬 - 아테네의 메인 항인 페레우스항에서 30Km, 패리호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섬 관광지 이다. 고대엔 독립된 도시국가 이었으며 아테네와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인구는 1만5000명중 5000명이 상업에 종사하는 관광 섬이다. 아페아신전 넥타리우스성당 등 유적이 있다.
△아페아신전 - 기원전 6세기말~5세기 초에 걸쳐 세워졌으며 도리이식의 아름다운 신전37 이다.
△넥타리우스성당 - 에기나섬의 언덕에 위치한 성당은 1968년에 세워졌지만 아직도 계속 건축중에 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에게해 지역의 전형적인 그리스정교회와는 조금 다른 베이지색, 분홍색등이 조화된 곡선미가 돋보인다고 한다.
터키 그리스 여행일지
<21일>
14시10분 -콜택시로 시외버스터미널로 출발
17시00분 -인천공항 행 리무진버스로 출발
21시50분 -인천공항집합 / 일행 19명
(춘천 2명, 서울 3명, 부산 2명, 인천 2명, 과천 2명, 제천 6명, 영주 2명)
<21일> ---(이하 여행지 현지시간으로 기록 )
18시50분 -카타르 항공(탑승정원 300명)으로 인천공항 출발
(양치도구, 기내용 양말, 안대, 귀마개, 모포지급)
<22일>
04시55분 -카타르 도하공항 도착 (인천공항에서부터 10시간 소요)
07시20분 -카타르 도하공항에서 터키 행 출국 수속 AiRBUS A321기 탑승
08시35분 -카타르 도하공항 이륙 이스탄불 공항으로 출발
※도하를 이륙한 항공기에서 내려 다 보이는 카타르, 나무한그루 안 보이는 황폐한 사막 가운데 원유시추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기 둥이 황금의 원유 뽑아 올리는 부자나라임을 엿보게 했다.
12시30분 -터키 이스탄불공항 도착
13시30분 -중식(케밥) / 유람선 승선 이스탄불 내항 전경 관광
18시00분 - 서울정에서 한식으로 저녁식사 / 재래시장 관광
20시30분 - 이스탄불 그랜드호텔 투숙
<23일>
05시30분 -기상
07시00분 -조식(호텔식당)
08시05분 -이스탄불 그랜드호텔 출발
09시00분 -슐탄 아매 사원(SULTAN AHMET CAMII) 관광
09시35분 -이스탄불 소피아성당 관광
11시00분 -이스탄불 시내 관광기념품판매점 방문 (김필자 장미오일 구입)
11시30분 -레스토랑 BUHRA에서 중식(케밥)
12시20분 -유람선 선착장으로 출발
12시45분 -유람선 승선 지중해 해상관광
14시30분 -앙카라로 출발(버스이동)
20시35분 -앙카라 ALKIN호텔 도착 / 저녁식사후 호텔 310호실 투숙
<24일>
05시00분 -기상
06시30분 -아침식사(호텔식)
07시45분 -한국참전 토이기기념탑 관광 (한국전에서 전사한 720명 영현 추모)
07시55분 -카파도키아로 출발
08시25분 -소금호수(소금생산지 / 터키에서 두 번째 큰 호수 / 서울면적의 3배)
11시00분 -카파도키아 지하도시 관광(로마시대 그리스도인 피난지)
-동굴 내에 수백 개의 방과 십자가모형의 광장
12시35분 -지하도시 관광마치고 이동
13시10분 -동굴식당 ALTINOBAK에서 즁식(케밥)
14시00분 -카파도키아 괴뢰매 골짜기 관광
-골짜기 내에 수백 개의 기암 괴석 즐비 / 본거지는 우치히사르(요새)로 명명
14시50분 -터키석 관광상품점 방문
15시25분 -데브란트 계곡 관광
15시45분 -파샤바 계곡 관광
16시00분 -카페트 공장 관광
18시35분 -호텔 투숙
19시00분 -석식(호텔식)
<25일>
05시45분 -열기구 관광지로 이동
07시00분 -열기구 탑승 하늘관광
08시30분 -조식(호텔식)
09시30분 -호텔 출발 안달랴로 향함(콘야 대평원을 횡단하는 고속도로)
12시55분 -콘야 중간지점 휴게소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
13시35분 -휴게소 출발
15시45분 -휴게소에서 휴식(15분간)
18시00분 -안딸랴 NAZAR BEACH HOTEL 투숙
<26일>
05시00분 -기상
06시00분 -아침식사(호텔식)
07시00분 -호텔 출발
07시30분 -안딸랴 밤빌리아항(사도바울 전도여행지)에서 유람선 승선
09시30분 -밤빌리아 시가지 관광(HADRIAN KAPIS 황제중문, 기독교성전 유적 등)
10시55분 -밤빌리아항 출발 파묵깔레로 향함
13시30분 -파묵깔레로 가는 도중 점심식사
14시00분 -파묵깔레를 향해 계속 이동
10시00분 -파묵깔레(히에라 폴리스 중심지)에서 빌립집사 묘지 일대 / 원형극장 관광
-히에라 폴리스(HIERAPOLIS)는 골로새, 라오디게아와 함께 로마가 키운 정책도시
18시00분 -C&H HOTEL 투숙
19시00분 -저녁식사(호텔식)
<27일>
05시30분 -기상
06시30분 -아침식사
07시30분 -호텔 출발
10시30분 -가죽의류 공장 관광
11시30분 -에베소 도착 중식(한국식당 비빔밥 / 1인 9달러)
12시15분 -에베소 누가의 묘지, 원형극장, AGORA(시장), 아데미신전, 황궁, 도서관등 유적지 관광
15시05분 -에베소에서 체스메 항구로 향발
17시30분 -체스메 항구에서 터키 출국 수속 마치고 히오스섬(그리스령 4번째 큰 섬)으로 가는 패리호에 승선
18시00분 -체스메항 출항
19시10분 -히오스항 도착 한인이 운영하는 중국 레스토랑에서 한식으로 저녁식사
22시00분 -초대형 여객선(정원 2000명)에 올라 그리스 아테네 페라우스항으로 향발(9시간 소요 / 2인실 이용)
<28일>
07시35분 -아테네 페라우스 항(그리스에서 2번째로 큰 항구)에 도착 하선
07시50분 -호텔에서 아침식사
08시45분 -아르파고 언덕 - 바울사도의 전도설교장소(사도행전 17:22~31), 아레오빠고스(소크라테 스가 재판 받은 곳) 관광
09시15분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올라 아크로 폴리스 신전, 파르테논 신전 등 유적 관광
12시05분 -발자키(바닷가에 있는 지역이름)에서 중식
14시00분 -수니온곶 도착 포세이돈 신전 관광
16시00분 -FENIX HOTEL 도착 배정
17시00분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사장 태백출신)
19시00분 -호텔에서 자유시간
<29일>
05시30분 -기상
06시30분 -아침식사(호텔)
07시40분 -아테네 삐에라항에서 애기나섬으로 가는 여객선에 승선
08시40분 -애기나섬 도착
12시40분 -애기나섬 출항 삐에라항에 귀환
13시40분 -아테네 시내 식당에서 중식
14시45분 -그리스 국회의사당 등 시내관광
16시50분 -아테네공항 도착
19시45분 -아테네공항 이륙
23시30분 -도하공항 도착
<30일> ---- 이하 한국시간 ----
07시45분 -도하공항 이륙
16시15분 -인천공항 도착, 짐 찾은 후 작별인사 나누고 해산
첫댓글 아버님~ 살짝 보고 갑니다. 너무 멋지네요!!^^* 있다가 퇴근하고 다시 보러올께요. 글도 너무 잘 쓰셨어요. 어버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