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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태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박영훈 선생님께서 휴대폰으로 유무념 대조한 횟수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
선생님께서 만원짜리 유무념 대조기를 사서 사용해오셨는데
부숴졌단다.
그리고 그 유무념 대조기를 휴대폰과 같이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더니
폰에 눌려서 저절로 숫자가 올라가는 불편함이 있었다면서
모두들 폰을 꺼내 실습을 해보자신다.
폰을 열면 메모장이 있는데
젊은 아이들은 메모장을 참 응용을 잘하더라시며
그 메모장에 자기가 유념해야 할 항목들을 적어놓고
유념 무념 옆에 숫자로 기록하면 되겠더라시며
가르쳐주는 것은 만원짜리 기계의 역할이지만
잘 쓰면 몇천만원 몇억짜리가 될지 모른다 하시면서.....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도 해 보시길....
하기에 따라 몇 억을 벌어가는 것이 될 수도 있음에 ㅎㅎ
하긴 유무념 대조기만 그렇나요?
모든 말씀들이 사용하기 따라 그 이상의 가치도 낼 수 있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요.
잘~~만나지시길.... )
박영훈 선생님...정현태님께서 까페에 올린 선거 후기를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정치도 이렇게 아름답게 할 수 있다”하셨다더라.
정현태님은 남해가 고향으로 어릴적부터 천주교 신자인데
경상대에서 마음 공부하기 전부터 스승님들 모셔다가
성당에서 마음 공부 훈련을 1박2일 받기도 했다.
공부의 시작은 한겨레 신문에 난 마음 공부 기사를 보고
‘나의 삶에 도움이 되겠다’생각해
2000년 시작한 경상대 용심법 강좌 1기부터 함께 공부했다.
은희님 용심법 강좌 올리기전 원조로서
강의를 들을 때 가만히 앉아있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강의 내용을 까페에 옮겨다 놓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인터넷에 용심법을 결합하면 세계적 보물되겠다’ 생각하고 까페를 만든
까페 주인이기도 하다.
청와대에 근무하다가 남해 군수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38.7%의 득표율을 얻었는데 기존 했던 밀양,함양 두분 빼고
경남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서는 최고의 득표를 했다.
그것보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뛰었나? 그것이 궁금하다.
공부인들과 고마움 함께 하고 싶다고 오셨다.
(새로오신 분들을 위해 공부인들 소개중)
이화심님께서 마음 공부중 남해 여중에서 아이들에게 마음 공부 가르쳐달라
교감님 요청이 들어와 2년째 학교에 나가 마음 공부 가르치고 있다.
조만진님은 경상대 마음 공부 3개월 과정을 4번 들으셨다.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늘 달고 다니는데 경계가 없는 것이 아니고
그 경계로 공부하신다.
정현태님....전국에서 마음 공부 하는 공부인이 군수에 당선되기를 기원해주신 공부인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저번에 이화심님과 함께 이곳으로 공부왔던 분이 이번에 남해군 비례대표 군의원으로 당선되셨다.
군수 후보에 나가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이력서나 좌우명을 적어 넣어야 한다.
나는 좌우명으로 “지공무사 자리이타”라 적었다.
지극히 공적이어서 아무런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이다.
공익심과도 통한다.
마음 공부하면 지공무사 해진다.
박영훈 선생님...미경님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지공”이란 진리의 모습, 우리의 근본 모습이다. “무사”는 사사로움 없다는 뜻이다.
정현태님...3번의 선거에 나가서 3번 다 떨어졌다.
2번째 떨어졌을 때 한 몸, 쓰러진 마음 일으켜 세우는데 6개월이 걸렸다.
정치는 나와 인연이 없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 때 몸도 마음도 모두 올인을 했었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첫 번째 선거에서 아버지때부터 살던 집을 팔고
두 번째 선거에서 문중전답까지 팔았다.
두 번째 선거 끝나고 마음으로 일어서지 못해 스승님께
“평생 꿈이었지만 이젠 정치를 접어야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런 마음이면 다시 정치를 시작해도 되겠다”고 하셨다.
두 번의 선거를 어떤 마음으로 치루었나 마음 들여다 보니
삼국지에 유비가 조조에 쫓겨 형주 땅 신야성에 머물렀다.
그 때 제갈량도 얻었는데 조조의 30만 대군이 유비를 쳐부수러 왔다.
유비가 피난을 떠나는데 그동안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덕분에
모든 백성이 유비따라 피난길 올라 피난 줄이 길었다.
강을 건너야 했을 때 유비가
“이 모든 백성들이 강을 다 건널 때 까지 나는 강을 건너지 않겠다 ”했다.
조자룡 등이 그러면 주군이 다치게 되니 먼저 가라 했지만
끝까지 백성들이 다 건널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너서
실제로 적장의 칼이 뱃머리를 스치는 아슬아슬한 위험이 있기까지 했다.
두 번 선거에서 나는 '내가 가장 먼저 강을 건너려 했던 것 아닌가?
유심의 정치 하려했는데 그 유심은 개인의 사사로움으로 찼었다.
그걸 털어낼 때 백성들의 마음으로 채워지겠다.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선거 치러야겠다.
이렇게 생각했다.
“자리이타”즉 내가 뜻세워 정치 나가는 것처럼
상대도 자기 고뇌와 결단의 시간 있었을 것이다.
상대 존중해야겠더라.
상대 지지하는 사람도 소중하고
선거 때 이편 저편 갈라지나 선거 끝나면 모두가 남해의 소중한 군민들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사돈의 팔촌안에 엮어지는 인연들인데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거가 상극의 문화이지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상생의 문화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2번 선거동안 젊은 혈기로 상대를 공격했다.
내가 돋보이기 위해, ‘내가 옳다’라고 ...
상대를 깎아야 내가 올라간다는 마음으로 선거를 했었다.
선거가 한 사람은 이기고 나머지는 지는 것이나
자리이타법으로 해야 상대도 나도 이롭게 되겠다.
박영훈 선생님....자리이타란 상대를 이롭게 하므로 내가 이로워지는 것.
상대를 이롭게 먼저 힘쓰니 더불어 나에게도 이로움이 생겨나는 것.
정현태님...선거 운동 기간이 두 달 이었는데 나는 선거 안나가겠다 해서
선거 먼저 준비한 후배가 있었다.
안 나가려다 청와대에서도 나가라 하고 당에서도 나가라 해서 나가게 되었는데
남해로 내려 올려니가 그 후배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그 후배 부부와 남해 대교를 건너기 전에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 그렇게 했다.
박영훈 선생님...그 후배가 몇 번 정현태님 찾아와서 "선배 나올꺼요? 안나올꺼요?"
물어서 처음에는 안나간다 했는데 이제 다시 번복을 해서 나가면
당내에서 부터 적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현태님...내가 열린우리당 후보가 나가서 그 후배가 다른 당이나 무소속 후보로 나가면
그 후배나 나나 지지층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미 지는 선거가 예상되었다.
그 후배에게 나도 내 욕심 안차리고 당이나 지역을 위해 나오는 것이라 하니
그 후배가 “선배님 내 입장 같으면 어쩌겠나?”하더라.
내가 깨끗이 포기하거나 역할을 바꿔 (도의원으로) 출마하든지 혹은 후보 경선을 하든지
그 친구 입장에서는 3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할 수 있겠더라.
“후배가 가장 편한 방법으로 선택해주면 따르겠다”했더니
그 후배의 부인이 2시간 정도 이야기 듣고 있다가
나보고 “굉장히 과격한 줄 알았더니 인자하다” 고 하더라.
그런데 그 친구가 군민 상대로 1000명 여론조사를 해서 후보를 결정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나는 당연히 내가 이길 줄 알았으나 결과는 그 친구가 2%앞섰다.
물론 오차 범위는 있었고 샘플 뽑기전 “오차 범위 내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전체 회의에서 다시 결정하자” 했었다.
여론조사 결과에 그 친구도 나도 놀랐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그 친구를 찾아가 윽박질렀다.
(말은 좋은 말로 했겠지만 내용은 윽박이었다)
나는 11시에 그 친구 만나 “결과는 니가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다.
니가 되면 내가 니 사무장이 되어서 열심히 뛰어줄게"했다.
그런데 나의 이 한 마디가 그 친구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니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신뢰를 보내더라.
다른 사람들은 “니가 후보감이 안된다”라고만 이야기만 했는데
내가 유일하게 자신을 존중하는 말을 한 사람이었다 한다.
박영훈 선생님...진심이니 통했다.
그 정도 같으면 이미 둘 사이가 깨질 가능성이 80~90%는 되었다.
거기서부터 마음 상하고 사람 잃고 할텐데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심법이 멋있다.
상대 부부를 만나 현태님이 왜 안나온다 하다가 나왔는지를
2시간 동안 이야기 했다 한다.
그 부인의 마음이 돌아서니 받아들여진 것이다.
정현태님....보통 선거하면 상대 후보 사무실에 안간다.
적진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거기가면 사꾸라 소리 듣고 저편에서 우리 사무실로 오면 염탐하러 왔다 생각한다.
나도 전에 2번 선거 운동 하면서는 상대방 사무실에 안갔지만
이번 선거때는 목마르면 가서 물달라 하기도 하고 고생한다 악수도 청했다.
나에게 표를 주든 안주든 선거 분위기는 좋았다.
장날에는 서로 좋은 목차지하려고 다투기 마련인데
“순서대로 하자”해서 순서 정해 유세했다.
상대 유세 할 때 방해하려고 앰프를 더 크게 트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상대가 유세하면 “앰프꺼라” 했다.
선거 중반에 접어들면서 내가 내건 2가지 공약이 군민들 마음을 잡기 시작했다.
하나는 “월급 받아가면서 농사짓자”였다.
30년 이상 농사 지은 60세 이상 농민들께 농민연금을
한달에 50만원씩 드린다였다.
이는 한미 FTA를 정부가 준비하면서 마련한 대책이었다.
지금 농촌에는 60세 이하로 농사지을 사람이 거의 없다.
식량 농사는 안보 수단 이기도 하므로 연금을 주어서라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공약이 군민들에게 먹혀들어 간다 싶은 것이
그 공약으로 유세후 차를 타고 지나가면
논에서 농사짓던 분들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그랬다.
또 하나는 남해는 환경이 수려해 공장을 못 짓게 했다.
지금은 워낙 인구가 줄어서 “중형 조선소를 유치”하겠다 였다.
우리가 워낙 조선기술이 뛰어난지라 앞으로 10년 수주 물량은 확보되어 있다.
그런데 큰배를 만들 거제의 옥포 조선소 등은 있으나 중소형 배 만들 공장이 없다.
전에는 배 만드는 방법도 도크식이었으나 지금은 레일식이라 환경 파괴가 별로 없겠다.
상대 후보가 30분 유세중 15분 동안은 박근혜대표 피습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나머지 15분 동안은 농민 연금제와 중형조선소 유치가
“가능성이 없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다.
열을 받았으나 마음 대조해보니 이것도 자리이타로 풀어야겠다 싶더라.
마음 공부한 사람이 풀어줘야겠다 싶어서
“모 후보가 나의 농민연금제와 중형조선소에 대해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수고하고 있으니까 박수한 번 쳐 주라” 고 하면서 비난 않고 넘어갔다.
선거 고비마다 그리 공부했다.
막내를 아내가 임신하고 있는 중에 두번째 선거를 치르고
아내가 선거 운동하느라 얼굴이 반쪽이 된 상태에서 선거 끝나자 마자 막내를 낳았다.
큰 애들은 서울에 두고 선거 운동하기 위해 막내만 데리고 남해에 왔다.
처음에는 아이가 엄마 아빠 같이 못있어서 불안해 하곤 했는데
투표 하는 날 투표를 마치고 아이와 함께 등산을 했다.
선거 운동하는 내내 만나는 사람들마다 "안녕하십니까 기호 1번 정현태 입니다“라고
멘트를 정해 놓고 인사를 했는데
투표 하는 날은 그말 하면, 선거운동하면 불법이다.
산에 있는 절에 갔다가 투표하고 산에 올라오신 분들에게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했더니 막내가 좀 이상했는지
“왜그래? 기호1번 정현태입니다 해야지.”하더라.
선거 당일날 산에 오르면서
누가 꽃다발 주인공이 될지 모르지만 사무실에 이야기 해서 꽃다발을 12개 준비하라 했다.
군수포함 군의원까지 당선자가 모두 12명 이더라.
내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우리당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남해 위해 일할 사람들이니
준비했다.
투표 결과를 확인 한 뒤에 개표하는 날 저녁 12시 반에
상대 후보 사무실로 찾아가서 꽃다발을 전달했다.
뒷날 아침에는 나도 참 기분 안좋았지만
나를 위해 양보한 후배 부모님 마음도 안좋겠다 싶어
제일 먼저 그부모님께 찾아 가서 큰 절을 올렸다.
“후배가 살신 성인해주었는데 결실 못봐 죄송하다”말씀드렸다.
전에 그 후배 형이 “정현태 그 자식 떨어지기만 해봐라.
떨어질거면 몇 % 차이 안나는데 동생 힘들게 하느냐”했다는 이야기 들은 적 있는데
그 마음도 인정이 되었다.
후배 아버님께서 “자네 마음도 말이 아닐텐데 찾아와 주어 고맙다.
나도 자네를 내 아들과 똑같이 여긴다. ”하시더라.
그리고는 경찰 서장을 찾아가 상대를 선거법 위반 3건으로 고소를 해놓은 것을 취하했다.
이미 남해 군민이 선택하고 내가 그 결과를 존중하는 마당에
선거법 위반문제로 시비를 한다는 것은 우습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경찰서장님이 난화분을 하나를 집으로 보내왔다.
그래서 내가 “배달이 잘못된 것 같다. 당선한 것은 상대 후보다”했더니
“내가 정현태 후보 팬이 되었다”하더라.
당선자 인터뷰가 있고 낙선자 인터뷰가 있는데 인터뷰때 군민의 선택도 존중해야겠고
상대 축하도 해야겠고 나도 표 적게 나온 것 아니니 그 의미도 담아야겠더라.
그래서 “군민들이 새 옷이 참 좋아서 입고 싶은데,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한번밖에 안 입어 버리기 아까웠던 모양” 이라고 인터뷰했다.
선거 끝나고 함께 고생한 분들게 편지를 드리고
인사못드린 분께는 전화를 드려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시험 떨어진 수험생 집에는 그 집 분위기가 어떨지 싶어
전화 해보고 싶어도 못하는 것처럼 전화하기 어려우니 내가 전화드렸다.
어느 분이 “마음을 좀 추스렸느냐?”하시길래
“저는 2달 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서 추스릴 몸도 마음도 없다. 아주 건강하다“고 말씀드렸다.
이만소화님...열우당에서 그 정도 표 얻었으면 굉장한 것이다.
조용자님...다음 선거에도 나와야지?
정현태님...다음 선거에 내가 당선된다면
상대 후보도 나에게 꽃다발을 갖고 올 수 있는 그런 통로를 만들어야겠구나 싶었다.
‘그것이 나에게 불공 자기불공이구나.’
박영훈 선생님 지도 잘해주셔서 고맙다.
박영훈 선생님....선거 중에도 담담하다 하고 선거 후에도
최선 다해서 찌꺼기 안남는다 했다.
정현태님...진인사 대천명이라 생각.
마지막 유세후 스스로에게 ‘최선 다했는가?’물어보니
‘최선 다했다. 나머지는 진리의 몫’
‘당선되든 낙선되든 내가 시비할 몫 아니다. 주는대로 받아들이겠다’하더라
박영훈 선생님...경제적으로 그 뒤에 어떻게 어려움 겪을지 같이 겪어 주지 못하지만
진리가 사람을 키울 때 꺾으면서 키우고 주었다 뺏었다 주었다 뺐었다 하면서 키운다.
남해 군민들도 인정을 하고 우리도 그 전에 현태님 좋아했지만 이제 팬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우리가 정치판에 대한 불신이 커져서 우스개 소리로
농구선수 사올 수 있는 것처럼 가능하다면 국회의원도 용병을 사오자 하지만
앞으로 마음공부 지도자, 준비된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식이 많고 말 잘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더 뛰어남이 필요하다.
“실력있는 사람이 제자 없어 못가르치지는 않는다”했다.
현태님 저리 옹골지게 실력갖추어 가고 있는데 기회 없어서 못쓰지는 않을 것이다.
알 수없다.
어떤 것이 더 인류에게 도움이 될 지 지나고 봐야 알겠다.
하늘이 저리 키우고 있는 뜻 더 지나봐야 안다.
진리 프로그램 어찌 흘러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