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로운 미국을 만든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은 1856년 버지니아에서 장로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1902년 이 대학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1910년 진보세력의 지지를 받아 뉴저지 주지사가 되었으며, 1912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신자유주의(New Freedom)”라는 혁신정책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대통령이 된 후 윌슨을 관세를 인하시키고, 연방 준비 제도를 만들었으며, 연방무역위원회를 창설하고 노동조합을 강화했다. 대외적으로는 필리핀에 자치정부를 세우고, 멕시코 내전의 견제를 도모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중립주의를 표방했으며, 화해를 중재하고 평화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했다.
1926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에 대한 약속을 선거운동의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1916년 재선되었지만, 곧 1917년 4월에 참전을 선포하게 되었다. 평화를 향한 그의 바람은 1918년에 ‘14개조 평화원칙’으로 나타났으며, 이 원칙을 주장하기 위해 파리평화의회에 참석하였다. 미국 상원은 국제연맹규약을 포함한 베르사이유조약의 비준을 거부하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윌슨은 이 조약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였고, 때문에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죽음의 위험을 무릅써야했다. 이후 1924년 사망하기까지 아내 이디스 볼링 갈트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의 재임가간 중 한번은 국제적인 협상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기도뿐임을 확신하고 각료회의에서 이렇게 비장한 음성으로 말했다.
“각료 여러분, 여러분들이 혹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함께 기도함으로 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대통령과 각료들은 간절히 기도했고, 난관에 봉착했던 국제문제는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