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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찬양의 경배와 우리들의 자세
음악은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것은 사람들로 순결하고 고상하고 향상하도록, 저들의 사상을 높이고 영혼 속에, 하나님께 대한 헌신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도록 만들어졌다. 음악에 대한 고대의 관습이나 용도와, 오늘날 흔히 음악이 쓰여 지는 용도 사이에는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선물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대신에,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세속적인 음악에 대한 사랑이 방심하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가지 말라고 금하신 쾌락의 장소에 가서,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과 연합하게 한다.
그리하여 올바로 사용하면 큰 축복이 될 음악이,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을 저들의 의무와 영원한 사물을 명상하는 일에서 유혹해 내는, 가장 성공적인 매개물 중의 하나가 된다.(RC 255.5) 음악은 하늘의 궁정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부를 이루므로, 우리들의 찬양의 노래를 가능한 한 하늘 합창대의 화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음성을 올바로 개발하는 일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교육의 한 부분이다. 종교적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 노래하는 것은, 기도가 예배에서 중요한 것만큼 중요하다. 마음은 그 노래의 정신을 느껴야 하며, 정신은 올바로 표현되어야 한다.(CCh 172.2)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중재[중보]하고 계시는데, 성령께서는 태초로부터 흘리신, 그분의 피를 바치는 그리스도처럼, 우리들을 위하여 탄원하시지 않으시며, 우리들의 심령에 역사하셔서, 우리들의 기도와 참회를 자아내며, 찬송과 감사를 불러일으키신다. 우리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의 표현은, 성령께서 거룩하신 기억력으로 영혼의 심금을 울려, 마음의 음악을 상기시킨 결과이다.(1SM 344.1)
주님께서 그분의 택하신 그릇들을 통하여, 그분의 생각과 목적을 수행함으로 성취할 사업을, 아무리 충분히 평가하려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인디애나 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그대들이 묘사한 것과 같은 일들이,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직전에 있을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셨다. 온갖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치며 드럼과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리며, 춤추는 광경을 재연할 것이다. 이지적인 인간의 감각들은 혼란을 일으켜, 올바른 결정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저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성령의 역사라고 부른다.(2SM 36.2) 성령께서는 결코 잡음의 광태와 같은 그러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이것은 이 때를 위한 순결하고 성실하고 고상하고 고결하며, 성화시키는 진리를 무력하게 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은폐시키려는 사단의 발명품이다. 지난 정월에 나에게 보여 진바 우리 장막 집회에 있을, 사업을 하기 위하여 그와 같이 악기들을 사용함으로, 난잡한 음악으로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이 때를 위한 진리는 영혼들을 회개시키는 사업에 있어서, 이런 종류의 일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잡음의 광태는 감각들에 충격을 주고, 만약 올바로 행하였다면 축복이 되었을 것을 악용하게 된다. 사단을 대리하는 권세들은 북새통을 일으키기 위하여, 고막을 찢을 듯한 괴상한 소리와 온갖 잡음들로 혼합되며, 이것을 가리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2SM 36.3) 성령께서는 지난 1월에 나에게 보여 진 것과 같은 잡음의 혼란과, 온갖 괴상한 소리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시다. 사단은 그러한 음악의 괴음(怪音:기괴한 발광하는 음악)과 혼란 속에서 역사한다.
음악은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러한 음악의 효과를, 뱀의 독한 이빨처럼 사용한다.(2SM 37.5) 과거 역사에 나타났던 그러한 것들이, 미래에도 나타날 것이다. 사단은 음악이 처리되는 방법 여하에 따라서, 사람을 유혹하는 올무[덫]로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증언의 빛을 가진, 그분의 백성들이 진리의 말씀을 읽고, 깊이 생각하며 깊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분명하고 정확한 교훈을 주셨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구상해 내려는 근질근질한 욕망은, 이상한 교리들을 빚어내는 결과를 가져오며, 만약 저들이 주님께서 주신 진리에 대하여, 처음부터 굳은 신뢰심을 보였다면, 훌륭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자들의 감화력을 크게 파괴(破壞:조직질서 붕괴-구원의 은혜를 파손) 한다.(2SM 38.1) 천사들의 존경을 받고 하늘 합창대의 음악을 들은 자는, 이 지상에 살고 있을 때에, 어린이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언제나 연민의 정을 느꼈으며, 그들의 슬픈 이야기를 항상 들어주려고 하였다.
그는 때때로 어린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주님의 부드러운 동정의 말씀으로, 저들을 격려[위로]해 주었을 때, 어린이들의 슬픔은 가라앉는 듯하였고, 저들의 괴로움을 잊어버리게 해주는 듯하였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때에, 비둘기의 형상으로 그 위에 임한 것으로 표상된 성령은, 주님의 품성의 온화하심을 나타낸 것이었다.(2SM 238.1) 주님의 일꾼들이 세속적인 여흥(餘興:방탕한 놀이)에 참여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음악 분야에서 세상과 연합하는 것을 어떤 안식일 준수자들은 해롭지 않게 본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은 위험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단은 남녀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으며, 영혼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매우 매끄럽고 그럴 듯하게 원수가 일하므로, 그의 음모는 의심을 받지 않으며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쾌락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3SM 332.2) 종교적 집회에 있어서의 노래는, 설교나 다름없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이다. 세련된 형태의 이상하고 특별한 것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며, 거룩한 음악이 불러 일으켜야 할 진지하고, 엄숙한 감화를 파괴한다. 노래에 있어서 어떤 이상하고 괴벽스러운 것은, 종교적 예배의 진지성과 신성성(神聖性:거룩하고 성스러움)을 손상시킨다.(3SM 333.1)
위엄 있고 엄숙하며 감화 있는 음악—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 종교적 예배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나 위엄이 있고 엄숙하며, 감동적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공언하는 목사들이, 위엄스럽지 못한 거친 몸짓과, 세련되지 못한 거친 손짓을 하면서, 몸을 던져 연극하는 태도를 취할 때에, 하나님은 불쾌히 여기신다. 이 모든 것들은 이상하고 기괴하며, 흥분시키는 것들을 보고자 하는 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들을 즐겁게 할 것이나, 그것을 본 자들의 지성과 마음을 향상시키지는 않을 것이다.(3SM 333.2)
바로 그 동일한 것을 노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대는 위엄스럽지 못한 태도를 가진다. 그대는 있는 힘과 성량을 다해 소리를 지른다. 그대는 그대의 자신의 음성보다 더욱 음악적인 음성들의, 보다 훌륭한 선율과 음색을 들리지 않게 한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과 거칠고, 큰 음성은 지상에서 듣는 자들과, 하늘에서 듣는 자들에게, 아름다운 곡조가 되지 못한다. 이 노래에는 결함이 있으며, 하나님께 완전한, 부드러운, 달콤한 음악적 선율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아니다.
내가 간혹 우리의 집회에서 본 천사들 가운데는, 그러한 과시가 없다. 그렇게 거친 음색과 몸짓은 천사들의 합창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의 노래는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것은 부드럽고 선율적이며, 내가 본 그런 큰 노력이 없이도 울려 난다. 그것은 몸을 움직일 때 필요로 하는, 힘이나 긴장이 들어가 있지 않다.(3SM 333.3) 음악은 하늘의 궁정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부를 이루므로, 우리들의 찬양의 노래를 가능한 한, 하늘 합창대의 화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음성을 올바로 개발하는 일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교육의 한 부분이다. 종교적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 노래하는 것은, 기도가 예배에서 중요한 것만큼 중요하다. 마음은 그 노래의 정신을 느껴야 하며, 정신은 올바로 표현되어야 한다.(CCh 172.2) 음악의 힘—음악은 하늘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음악에는 큰 힘이 있다. ‘베들레헴’ 뜰의 목자들의 마음을 전율시키고 세상에 울려 퍼진 것은, 천사들의 무리가 낸 음악이었다. 순결과 조화의 화신이신 그분께 찬양이 올라가는 것은, 음악을 통해서이다. 구원받은 자들이 마침내 영원한 상급에 들어 갈 때에, 승리의 노래와 음악이 함께 할 것이다.(3SM 334.4)
교회에서 그대의 목소리는 별로 우아하지 못한, 그대의 몸짓을 동반하며 너무 크고 거칠게 들리기 때문에, 보다 부드럽고 보다 맑은 선율들, 천사의 음악과 흡사한, 선율들은 들리지 않았다. 그대는 하나님보다는 사람에게 노래하였다. 모든 회중[성도들] 위에 그대의 큰 목소리가 높여졌기 때문에, 그대는 그대를 흥분시키는 칭찬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노래에 대하여, 진정으로 높게 평가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선물을 행사함에 대하여, 보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3SM 335.3)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나며, 평화의 언약이 우리와 맺어지고, 새 예루살렘의 진주 문이 그 빛나는 경첩 위에서 열려 뒤로 활짝 젖혀지며, 우리에게 들어오기를 명하는 사랑스러운 예수님의 기쁘고 즐거운 음성이, 이제까지 인간에게 들려진 어떤 음악보다도, 더 아름답게 들려질 때까지는, 그 모든 영광과 중요성을 볼 수 없을 것이다.(3SM 388.2) 또 다른 하늘의 존재가 단호하고, 음악적인 음성으로 소리친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왔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불같은 시련 속을 걸었고, 그들에게 짐승과 그의 우상에 대한 경배를 강요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늘의 하나님께 불충성하도록 강제한, 사람들의 격정과 변덕에 의해 심히 미움을 받았다.”(3SM 429.5) 성경에 기록된 노래의 역사를 보면, 음악과 노래의 용도와 유익을 보여 주는 암시로 가득하다. 음악은 자주 나쁜 목적으로 악용되고, 그리하여 사람을 유혹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음악이 바르게 사용될 때는, 사람의 마음을 고귀한 주제로 돌리고, 영혼에 영감을 불어넣어 그것을 고양시키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 된다.(Ed 167.3)
특창과 악기 연주를 하라. 악기는 고대로부터 종교예식을 위해 사용되었다. 예배 자들은 하프와 심벌즈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음악은 우리의 예배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은 흥미를 증가시킬 것이다. (MTC 91.3) 그들은 지상의 존재들이 입었던 어떤 옷보다, 더 훌륭한 옷을 입었다. 그들에게는 일찍이 인간이 본 적이 없는, 영광의 왕관이 씌워졌다. 고난, 비난, 궁핍, 기아의 날들은 지나갔다. 울음은 지나갔다. 그 때 그들은 크고 맑고, 음악적인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승리의 종려가지를 흔들면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7:10)”라고 외쳤다.(3SM 430.3)
하늘의 음악—오,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가! 불협화음은 없다. 모든 목소리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고 선포한다. 그분은 그분의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신다. 그대는 거기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그가 당한 시련과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시간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65:17).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계21:4) 실 것이다.(3SM 431.4)
하나님께서 끊임없는 고통을 목격하고, 기뻐하시고 그분께서 지옥의 불속에 던진 자들의, 고통과 괴로움과 저주의 소리를 듣기를 즐거워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고 해도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될 것인가? 그 처참한 부르짖음이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의 귀에, 음악으로 들릴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악인들에게 과해지는 끝없는 고통이, 하나님께서 우주의 질서와 평화를 파괴한 악으로서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모독인가! 마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가, 그 고통을 영원히 지속시키시는 이유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 신학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 불쌍한 희생자들은 자비의 희망 없이, 끊임없는 고통으로 미친 것처럼 되어, 저주와 참람 된 말로 분노를 쏟아 놓으므로, 그들의 죄의 무게를 영원히 더하고 있다.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죄가 계속하여 증가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높여지는 것은 아니다.(GC 536.1) *** 죄 범한만큼 죄인은 영육이 완전히 불타 없어져서 영원히 우주에서 사라진다(창조주의 자비하신 심판)
많은 개신교도들은 ‘로마교’가 매력적이 아니며, 그 예배 역시 어리석고 무의미한 의식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오해하고 있다. 비록 ‘로마교’가 기만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을지라도, 그것은 조잡하고 졸렬한 모양으로 가장되어 있지 않다. 로마교의 예배 의식은 가장 인상 깊은 의식이다. 그 화려한 장식과 엄숙한 의식은 사람들의 감각을 매혹하고, 이성과 양심의 소리를 침묵시킨다. 그 눈은 황홀해진다.
웅장한 교회당, 당당한 행렬, 황금빛 제단, 보석으로 장식한 신단, 정선된 그림들, 정교한 조각들은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 호소한다. 귀도 또한 황홀해진다. 그 음악은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 은은하면서도 풍성한 오르간 소리, 웅장한 성전의 높은 천장과 둥근 기둥으로 구분된 복도를 통하여, 울려오는 무수한 음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경이감(驚異感:놀랍고 기이한 마음)과 숭경심(崇敬心:거룩한 경외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GC 566.2)
공의롭고 자비롭고 자애로운 모든 행동과 행위는, 하늘의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그의 보좌에서 굽어보시고, 그들을 그의 귀한 소유물로 간주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말3:17)라 하였다. 고통당하는 불쌍한 자들에게 베푼 모든 자비스런 행위는, 곧 예수께 행한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도우며, 어려움과 억눌림을 당하는 자를 동정하며, 고아를 도와주는 자는 예수님과 더욱 친근해지는 것이다.(ChS 268.1)
청년들이 절제사업에 앞장서야 함—부절제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청년들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은 없다. 이 시대에 도시에 있는 우리의 청년들은, 하나의 군대로 연합하여 확고한 결의를 가지고, 각양 이기적이며 건강을 해치는 방종을 대항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선을 위한, 강력한 능력이 되겠는가! 우리의 청년들이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음악과, 다른 매력적인 것으로 꾸민 연회장과, 사교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구원할 수 있겠는가!(MTC 136.1)
음악은 잘 사용하면 축복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사탄이 영혼들을 사로잡는 가장 매력적인 도구 중 하나이다. 그것이 남용(濫用:방종으로 함부로 쓰게)되면,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을, 교만과 허영과 어리석음으로 이끈다. 헌신과 기도의 위치를 대신하도록 허용하면, 음악은 무서운 저주가 된다.(VSS 421.2)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지만, 비록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일지라도, 그들은 흔히 그들의 천박한 대화와 잘못된 음악의 선택으로, 하나님과 그들의 믿음에 욕을 돌린다.
거룩한 음악은 그들의 취미에 맞지 않는다. 나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들이 주목[집중]받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을 보게 되었다. 심판 때에 이 모든 영감의 말씀들은, 그것에 유의하지 않은 자들을 정죄[심판]할 것이다.(VSS 421.3) 경우에 맞는 찬양—신령한 예배를 위하여 음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경우에 합당한 찬미를 선택해야 한다. 장송곡과 같은 슬픈 곡조가 아니요, 엄숙하면서도 즐거운 곡을 택할 것이다. 잘 다듬은 목소리로 부드럽고, 차분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VSS 434.1)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의 말씀을, 음악으로 만들도록 지시하였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어린이는 악기를 연주하고, 좀 더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음악에 맞춰 노래하면서 행진하였다. 그리하여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들의 마음에 어린 시절에 배웠던 율법의 말씀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 (VSS 446.3)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거룩한 노래의 가사로 만들어서, 그들이 광야로 행진할 때 아이들이 구구절절이 그 율법을 노래하며, 배우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였다면,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
우리의 가정에 음악이 넘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들어오시게 하자.(VSS 447.1) 선지자 학교에서의 음악—선지자 학교의 주요 교과목은, ‘모세’에게 주셨던 교훈이 포함된 하나님의 율법, 거룩한 역사,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및 시가(時歌:시와 노래)들이었다. ∙∙∙ 이렇게 성화된 지성은, 하나님의 보물 창고로부터, 옛것과 새 것을 꺼내 왔고, 하나님의 영이 예언과 거룩한 노래 가운데 나타났다.(VSS 447.3)
안식일은 우리의 생각을 천연계로 이끌고,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와 교제하도록 한다. 새의 노래 소리와 산들거리는 나무와, 바다의 음악 소리에서 아직도 우리는 날이 서늘할 때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담소(談笑:웃으시며 말씀 나눔)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볼 때에, 위안을 받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 곧 사람에게 생명을 말씀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FLB 32.4) 찬양의 선율(旋律:멜로디)은, 하늘의 분위기이다. 하늘이 땅과 접촉할 때, 음악과 노래가 있다.(FLB 242.2)
인간의 음성이 지닌 매력(魅力:마음을 잡아끄는 힘)—감사와 기쁨에 찬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악을 노래하는 사람의 음성은, 일찍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어떤 악기의 멜로디보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Ev 506.4) 찬양대와 회중의 찬미—어떤 집회가 열릴 때에, 많은 사람들을 택하여, 음악 순서에 참여하도록 하라. 노래와 함께 잘 익혀진 악기도 사용하라. 예배 순서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할 일이 아니다. 이 분야의 순서는 주의 깊게 행해 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래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Ev 507.2)
스스로 도우려는 자들의 음악 순서를 수락함—집회가 있을 때마다 찬미를 부르는 것을, 등한히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찬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특별히 찬미 부르기를 자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수락(受諾:받아들여 허락)하라. 그러나 노래하는 사람을 고용하기 위하여, 돈을 지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때로는 회중 전체가 부르는 단순한 찬미가, 우수한 기량을 갖춘 찬양대의 노래에서 맛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기도 한다.(Ev 509.3)
노래하는 데 있어서 큰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는 더 크게 노래할수록 멋진 음악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소음은 음악이 아니다. 좋은 노래는 새의 음악과 같은 것—순하고 음조를 띤 것이다. 어떤 우리 교회 중에서 나는 주님의 전에서 드리는 예배에 거의 적합하지 않은 독창을 들어보았다. 길게 끄는 음조와, 오페라에서 흔한 특이한 소리들은, 천사들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연스런 음조로 부르는 단순한 찬양의 노래를 들으면 기뻐한다. 음악적인 어조로 모든 단어가 분명하게 말해지는 노래가, 그들이 우리와 함께 찬양하려고 동참하게 되는 노래들이다.
그들은 정신과 이해로써, 마음으로부터 노래한 구절을 취하게 된다.(2SAT 246.1) 대중적인 오락 중에 안전한 것은 별로 없다—오늘날 세상에서 인기 있는 대부분의 오락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도, 이방인들과 똑같은 목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오락들 중에 사단이 영혼들을 파멸시키는 데에, 이용하지 않는 오락은 거의 없다. 사단은 연극을 통하여 여러 세대 동안 정욕을 격발(激發:악한 감정 등을 유발)시키고, 부덕(不德:선하고 덕이 없음)을 찬양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황홀한 장식과 현혹시키는 음악을 연주하는, 오페라, 가장 무도회, 댄스, 카드놀이 테이블 등, 사단은 이런 것들을 사용하여, 원칙의 방책을 무너뜨리고, 관능적인 방종으로 향한 문호를 개방시키고자 한다. 자만심이 양성되고, 식욕을 방종 시키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영원한 관심사를 잊어버리게 하는, 쾌락의 회합[모임]마다 사단이 참석하여, 그의 사슬로 영혼을 결박(結縛:묶어서 노예화)한다.(AH 515.3) 찬양은 마음을 하늘로 더욱 가까워지게 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노래와 음악으로 경배를 받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는 같은 방법으로 예배하게 된다. 그분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신다(시50:23). 거룩한 기쁨으로 우리의 창조주 앞에 나가자. “감사함과 창화(唱和:시와 노래로 화답)하는 소리”로 그분께 경배하자(사51:3).(LHU 254.5) 모든 영향력 있는 재능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모아들이는 목적을 위하여, 거룩하게 보존 사용되어야 한다. 청년 남녀들은 흔히 행해지는 운동 경기와 야회(夜會:밤의 만찬회합), 그리고 음악 연주회가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MYP 391.1)
투덜거리는 한탄의 말로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며, 마음과 혼과 음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 범사에 밝은 면만을 바라보라. 그대의 가정에 구름이나 그림자를 몰고 오지 말라. 그대의 얼굴의 빛이 되시고, 그대의 하나님이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자. 이렇게 할 때에 모든 일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2SM 267.1) 역경과 시련이 우리를 둘러쌀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피해야 하며, 힘 있게 건져내시며 강하게 구원하시는, 주님께 확신을 가지고 도움을 기대[정성껏 기도]해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할진대, 그 축복을 간구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의 의무이며,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찬미하는 것을, 등한히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종종 모든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뜻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감사하는 정신을, 배양(培養:순종을 가르치고 길러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자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하여, 깊이 명상하고 회고해야 하며, 비록 우리가 슬픔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2SM 268.2)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을 널리 나누었다. 하나님의 영의 깊은 감동이, 거의 모든 심령에 느껴졌다. 그 집회에 참석한 자들은, 그들이 이전에 알았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하는, 그런 경험을 얻었다는 일반적인 증언을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그들의 기쁨을 증거 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졌다. 감미로운 평화가 그들의 심령에 존재하였다. 그들은 모두를 사랑하였으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쉴 수 있음을 느꼈다.(3SM 182.1)
나는 우리가 매일 상승해야 하며, 흑암의 세력 위로 솟아오르는 일을 계속해야 함을 보았다. 우리의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흔히 원수를 몰아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원수를 퇴치하고, 늘 우리에게 승리를 주는 것을 나는 보았다.(3SM 332.1) 감사와 찬양의 정신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더욱 잘 증진시켜 주는 것은 없다. 우울하고 불만스러운 사상과 감정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면, 슬퍼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탄식하고 불평하면서 걸어갈 수 있을까? (YHH 208.3)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길들여서[조심하여],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우리의 심령을 길들여서, 소망을 갖게 하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하늘 왕의 자녀들이며, 만군의 여호와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하나님께 말없이 순종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YHH 211.3) 찬양과 감사를 노래로써 표현하자. 시험을 받을 때는, 우리의 감정을 말로써 나타내는 대신에, 믿음으로 감사의 노래[찬미]를 하나님께 드리자.(YHH 212.1)
다른 사람들을 좋게 말하는 습관을 배양하라. 그대들과 교제하는 사람들의 좋은 특성들을 바라보라.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과오와 실패를 적게 보라. 어떤 사람이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하여, 불평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거든, 그 사람의 생애나 품성에서 무엇인가 칭찬해 주라. 감사의 정신을 배양하라.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라. 우리의 슬픔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보상[이익]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함으로, 찬양할 마음이 생기게 하라고 요구하신다.(YHH 3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