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한영미
지구 반대편 바라보기 외
생각 하나를 움켜쥐자
지구 반대편이 열려요
해변엔 느긋하게 늘어선 나무들
속눈썹에 기댄 망고가 툭, 툭 떨어지고요
파라솔 아래
붉은 꽃 찍힌 당신의 길쭉한 발끝도 보이네요
잘 지내고 있나요
내가 바라보지 않는 곳에선
모래폭풍이 포연과 모래를 뒤섞으며 지나가고ㅡ
불 꺼진 집마다 그을린 담벼락만 남아 있어요
흙먼지가 된 목소리들은 어디에 가닿을까요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다
문득 고개를 돌려요
생각의 실끈을 잡아당기지 않으면
장막 뒤에 머무는 풍경들
만난 적 있지만 언제든 가려지고
이내 지워지는 사람들
그곳 무너진 담장 위엔 남십자성이 기울고
이곳 나의 지붕엔 오리온이 떠 있어요
식탁 위에는
반으로 갈라진 빵 조각
식탁 맞은편에는
반으로 나뉜 생각
눈 감으면 먼지처럼 흩어지겠지만
눈 뜨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거란 것도 알아요
이미 바라보고 있다면
생각은 더 이상 바깥에 머물지 않는다고
누군가 나를 불러냈듯이
지구 반대편이 다시 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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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깨진 조각들을 이어 만든 하나의 창이고 날지 못하는 날개를 가진 영원이어서
한때 정적을 가르던 날갯짓과 불을 지나온 몸들이 형벌인지 개화인지 모를 자세로 유리 안에 있다
벽에 박힌 수천 장의 날개는 나비를 끝내 건너지 못한 꿈들
먼 북촌의 밤, 벚꽃이 스쳐간 물살이 몸에 새겨져 있다
멀리서는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천국의 잎사귀들
다가서면 끝난 생들, 끊어진 열망의 손아귀들이 배열되었다가 뒤엉키는 강
알면서도
우리는 죄를 향해 손을 내밀고
머물게 하려다 사라지는 것들을 모으지만 완성되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서 나는 오래 바라본다
허락된 죄처럼
너는 너무 아름다워서 태어난 곳, 나는 나의 지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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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 2019년 시산맥 신인문학상, 2020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됐다. 영등포 문학상, 이민호 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시집 『슈뢰딩거의 이별』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