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Brick in the Wall〉은 핑크 플로이드의 1979년 록 오페라 음반 《The Wall》의 3부작곡이다. 경직되고 학대받는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항의 노래 "Part 2"에는 어린이 합창단이 등장한다. 프로듀서 밥 에즈린의 제안으로 핑크 플로이드는 디스코 요소를 가미했다.
"Part 2"는 싱글로 발매되었으며, 핑크 플로이드는 1968년 〈Point Me at the Sky〉 이후 영국에서 처음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영국, 미국, 서독 및 다른 많은 나라에서 그들의 유일한 1위 싱글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4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 이 곡은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고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에서 384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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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 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이며, 동시에 록 음악 역사상 3번째로 많은 음반을 판 전설적인 밴드다. 대표작은 The Dark Side of the Moon, Wish You Were Here, The Wall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첫 시작은 1965년 리전드 스트리트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스쿨 밴드를 하고 있던 시드 바렛, 로저 워터스, 릭 라이트, 닉 메이슨이 밴드의 이름을 The Pink Floyd Sound로 지으면서 시작했다. 밴드의 극초창기에는 사이키델릭 록의 색체를 강하게 띄었으며, 시드 바렛이 기타부터 보컬까지 대부분의 곡 연주와 작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시드 바렛이 약물 중독, 정신 건강 악화 등 다양한 이유로 급작스레 2집 제작 도중 밴드를 탈퇴한 이후, 시드 바렛의 대타로 공연에서 뛰었던 데이비드 길모어가 밴드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시드 바렛의 절친한 친구였던 로저 워터스가 밴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로저 워터스 체제를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는 낮아지고 프로그레시브 록의 분위기가 주를 차지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로저 워터스의 밴드 내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이로 인해 릭 라이트가 1979년 탈퇴 했고, 이후 로저 워터스는 1985년 탈퇴했다.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릭 라이트가 밴드에 복귀했고, 2장의 음반을 발표한후 1995년 해체했다. 자세한 내용은 핑크 플로이드/역사 문서 참조.
핑크 플로이드는 가사에서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매우 다양한 악기와 소리를 이용해 다소 전위적인 느낌의 곡을 다수 작곡한 경향이 있다. 핑크 플로이드가 제작한 앨범 대다수가 명반 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성은 독특하면서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들리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음악 감상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또 앨범 전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만든 밴드라는 점에서 반박할 여지가 없는 영국, 아니 세계 최고의 록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런 음악의 혁신성과 지대한 영향력 때문에, 핑크 플로이드는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 등과 더불어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대표적인 1970년대 록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비평적으로 성공한 것을 넘어서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했다. 현재까지 통산 역대 앨범 판매량 8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록밴드로만 한정할 시 비틀즈, 레드 제플린에 이은 3위이다.[13]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역대 최장기간 동안 빌보드에 등재된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수록되었을 정도고, 지금도 역대 음반 판매량 4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에도 비틀즈, 레드 제플린, 너바나, 퀸, AC/DC, 롤링 스톤즈, U2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이며, 록 씬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또한 앞에서 열거된 밴드 중에서도 활동 기간이 롤링 스톤즈와 더불어 독보적으로 길어[14] 팬들도 1940년대생부터 1980년대생, 혹은 새로 유입된 밀레니엄 세대까지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있다.
진보(좌파) 사상이 강한 밴드이지만 의외로 1980년대 한국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광고 등에 삽입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았다. 일례로 "On The Run"은 1986년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작한 간첩신고 공익광고의 배경음으로 쓰였다. 당시 광고영상 동시대에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던 레드 제플린, 퀸의 대부분의 곡들이 한국에서는 금지곡 처리됐던 것을 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