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체를 휘감은 악취, 그 뒤 걸려온 ‘희한한 전화’
유품 정리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머무는 현장이 있다. 지난해 8월에 방문했던 그곳, 청주의 어느 아파트였다.
처음 존재를 알게 된 건 8월 중순께 아파트 입주민의 전화를 받으면서였다. 이사한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계속 악취가 난다고 했다.
살면서 경험해보지 않은 기묘한 냄새였지만, 심하지는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살림 정리에 몰두하느라 하루이틀 잊고 있었지만 점차 심해지는 악취를 참지 못하고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화장실이나 베란다 환풍기, 하수구 배관이 집집마다 이어져 있는 아파트 특성상 이웃집 냄새가 넘어온 것일 수도 있다. 내게 전화한 입주민도 난생처음 맡아보는 악취에 설마 하는 생각으로 전화했을 뿐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답도 마땅히 없었다. 전화한 입주민이 구체적인 현장을 의뢰한 것도 아니고, 어떤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후 또 다른 입주민들이 내게 연락해 악취를 호소했다. 이번엔 6층 입주민이었다. 사흘 전 연락한 이는 8층 입주민,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이번에도 어딘가에서 악취가 나는데 도대체 무슨 냄새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집에 냄새가 밀려드는데, 우리집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고 원인도 모르겠으니 미칠 지경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답을 줄 수 없었다. ‘이웃에서 고독사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추측을 섣부르게 내뱉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약 1주일 뒤 장애인복지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일전에 고독사 예방 강연을 위해 다녀온 뒤 인연이 닿아 있는 복지센터였다. 지역에서 고독사가 발생해 악취로 인한 민원이 많은데, 관할 동사무소에서 지원 방안이나 행정 절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복지센터로 문의했고, 나에게까지 연락이 이어진 것이었다.
알고 보니 고독사 현장은 며칠 전 전화한 이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였다. 사후 3주 넘는 시간이 흘러서야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한여름의 고독사였으니 악취가 지독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구더기가 들끓고 수억 마리의 파리떼가 날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의 동의를 받는다면 급한 소독과 고인의 마지막 흔적 정리는 무료로 해줄 수 있다고 답을 주었다.
복지센터와 전화 통화를 마치자마자 이번엔 ○○아파트 관리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입주민들이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을 통해 유족에게도 연락했지만 답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유족이라는 이는 고인과는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왕래하지 않는 사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고 했다. 결국은 전화를 차단당했다며 관리소장은 하소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고인과 아무런 관계도, 인연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인이 고독사한 집은 고인이 소유한 상태였다. 상속자 또는 가족을 제외한 누구도 현장을 훼손하거나 청소할 수 없었다. 가족의 허락과 요청이 있어야만 현장 정리를 할 수 있다.
김새별 유품정리사 사진 제공
그렇게 전화를 끊고 몇 시간 뒤 또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아파트 아시죠?”
발신자는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졌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가보셨어요?”
이게 무슨 대화의 흐름인가. 당황스러웠다.
“네? 아니요. 가보지 않았는데요.”
고인의 가족이라는 직감이 왔다.
“○○아파트 내용 모르세요? 소문이 어떻게 났던가요?”
보통은 고인과의 관계를 밝히고 특수청소와 유품 정리에 대해 상담하는데, 이 통화에선 정말 희한한 질문이 이어졌다. 말문이 막혀 수 초간 답을 하지 못했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 겨우 입을 뗐다.
“며칠만 더 있으면 아파트 전체 주민과 통화할 수 있을 것 같은 현장입니다. 장애인 복지센터부터 동사무소, 관리실 소장까지 줄지어 전화를 주시는데 정작 고인의 가족은 전화를 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사고 후 한 달이 지나고 있어 지독한 악취와 벌레로 주민들이 입는 피해가 굉장히 크다고 들었습니다. 실례합니다만 고인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이복동생입니다.”
“관리실 측에서 통화했던 분은 전혀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던데요.”
“아, 다른 이복동생이겠죠? 이복동생이 여럿입니다.”
“네….”
그의 말대로라면 실질적인 상속자가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살아생전 고인의 재정 상태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용을 부담하고 나서서 현장을 정리하려는 가족이 없는 것이었다. 상속이 정리되면 현장도 정리하려고 가족 모두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복동생에게 연락을 받았으니 일단 현장을 확인해야 했다. 24평 정도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고인은 사고 후 한 달여 만에 발견됐다. 시신이 수습된 이후에도 또 한 달간 현장은 방치돼 있었다. 시취(屍臭)는 집 안 구석구석을 넘어 윗집·아랫집으로 퍼져나갔다. 아파트 한 동 전체로 퍼졌고, 이웃들은 지독한 냄새로 고통받았다. 지자체에서 아파트 전체를 소독했지만, 악취의 원인인 집이 방치된 채였으니 소용없는 일이었다. 곳곳에 시취가 배어든 집안의 살림들을 전부 철거하고 폐기해야 했다.
원룸이나 주택에서 고독사가 발생하면 같은 건물 세입자들은 건물주에게 이사 비용을 받고 전부 이사를 가버리기도 한다. 아파트의 경우 같은 피해를 보아도 보상받을 방안이 없다. 상황을 해결할 방법조차 없다.
이번 경우도 그랬다. 온 동네가 고통받고, 기관에서 발 벗고 나서고 있는데 정작 가족은 긴 시간을 손 놓고 있었다. 고인의 마지막 흔적이라도 정리하고 소독을 진행했더라면 이웃의 피해는 확연히 줄었을 텐데, 무료로 도움을 주겠다는데도 그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이복형제였다니 남과 다를 바 없었겠다고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도의적인 책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적 의리를 뜻하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지키고 행동해야 하는 윤리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 생각하는 바른길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일이었다. 늘 깨닫지만 고독사 현장은 가해자가 없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모두 피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