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4장 1-19절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중앙집권 체제수립
당신이 갑자기 큰 회사를 맡아서 일하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을 뽑아서 일을 맡겨야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사람들을 적제적소 자리에 앉힐 수 있을까 고민할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주변 인물들에게 정보를 구하고 이력서를 보면서 정보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십니까? 무슨 일을 하던지 오직 하나니께서 함께 하셔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로 솔로몬 왕정은 체계가 잡혀갑니다. 솔로몬은 행정부에 제사장, 서기관, 군사령관, 지방 관장 감독관, 왕궁 감독관, 부역 감독관을 배치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군사, 경제 등을 돌봤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 땅을 12개 행정구로 지배했고, 열두 지방 관장을 두었습니다. 조직 개편으로 이스라엘은 지파 중심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중심의 중앙집권정치로 탈바꿈합니다.
솔로몬의 고관들 명단(1-19)
솔로몬은 재판하는 일에 지혜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나라를 다스린 면에서도 지혜로웠습니다. 솔로몬에게 뛰어난 지혜가 있었지만, 모든 일을 혼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사역을 나누어서 각자 합당한 일들을 신하들에게 맡겼습니다.
1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2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3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4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대장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5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관리장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6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 7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 위에 열 두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식물을 예비하되 각기 일년에 한달씩 식물을 예비하였으니
8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이요 9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 10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와 헤벨 온 땅을 저가 주관하였으며 11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저는 솔로몬의 딸 다밧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12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스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13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저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촌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큰 성읍 육십을 주관하였으며 14마하나임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요 15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니 저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16아셀과 아롯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 17잇사갈에는 바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이요 18베냐민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요 19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 길르앗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니 그 땅에서는 저 한 사람만 관장이 되었더라(1-19)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3:12)로 일반 백성부터 고위 관리 그리고 왕실과 지방 전체에 이르러 다방면에서 체계를 잡아가며 왕국을 견고히 세워나갑니다. 3장에서 솔로몬이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행함으로써 사법과 사회 영역의 역량을 보여주었다면, 4장에서는 왕정 고관 임명(1-6)과 지방 행정 개편(7-19)을 통해 정치, 경제, 행정 영역의 역량을 발휘합니다.
(1) 왕실의 신하들(1-6)
저자는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밝히는데(1),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약속한 견고하고 영화로운 왕국(3:13; 삼하 7:11-13)이 성취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그간 다윗 왕조 역사에 나타난 이스라엘 내부의 ‘균열’과 솔로몬 이후 실제가 될 이스라엘의 ‘분단’을 고려할 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재위 동안에 이스라엘 주변 나라를 정복하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평화를 꾀했습니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백성에게 공의를 행한 왕으로 평가받았습니다(삼하 8:15).
그러나 밧세바와 간음 이후 압살롬의 모반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민심은 압살롬에게 향했습니다(삼하 15:13; 16:15). 반란 진압 후 다윗이 왕권에 복귀한 때에도 유다와 북쪽 지파들 사이에 야기됐던 갈등이 심화되어 왕정은 위태로웠습니다(삼하 19-20장). 설상가상으로 말년에는 아들 아도니야가 다윗 측근들과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분열과 반역과 위기 속에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약속한 견고한 나라의 기반을 이루도록 이스라엘 백성의 결속을 이끌어가셨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으로 즉위식에서 솔로몬을 기꺼이 왕으로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1:39-40). 또 통치 초기에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을 통해 다시금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세운 통치자로 인정하게 이끄셨습니다(3:28). 이후 진행될 성전 건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신앙적 소속감과 연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솔로몬은 그의 왕정을 꾸려갈 관료들을 임명합니다. 왕실 고관 목록(2-6)에는 일곱 직책인 제사장, 서기관, 사관, 군사령관, 지방 관장 책임자(두령), 궁내대신, 노동 감독관이 수록되었습니다.
이전에 다윗이 행정 조직의 기반을 다져두었기에(대상 23-27장) 솔로몬은 이를 바탕으로 조직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전쟁을 치르고 영토 확장에 힘썼던 다윗 시대에는 군사적 행정체계가 중요했지만, 솔로몬의 관료 명단은 제사장으로 시작하며, ‘제사장’ 직분이 세 번 언급되어 종교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지방 관장 책임자와 궁내 대신이 새로운 직책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신하들 중 군사령관 브나야, 노동 감독관 아도니람,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재임명했습니다. 브나야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신하였고(삼하 8:18; 20:23)
솔로몬의 즉위 전부터 왕이 된 이후 줄곧 솔로몬에게 충성했습니다(1:8, 38; 2:25, 46). 아도니람(아도람, 하도람)은 다윗 통치 후반의 명단(삼하 20:24)에만 나온 것으로 보아 성전 건축 준비를 위해 다윗이 강제 노동자를 소집했을 때(대상 22:2) 이들을 감독할 자로 발탁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제사장으로서(삼하 20:25)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의 명에 따라 예루살렘에 남아 압살롬 측을 감시하는 첩자 노릇을 톡톡히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죽은 후 아비아달은 다윗을 배반하고 아도니야를 지지했으며, 사독만 다윗과 솔로몬의 충실한 제사장으로 남았습니다.
아도니야의 모반이 실패로 끝나자 아비아달은 솔로몬으로부터 제사장 직분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2:26-27). 이들 외에 솔로몬이 새로 등용한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시사의 아들들로서 서기관 직을 맡았습니다. 여호사밧은 사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사관은 역사 기록관처럼 왕이 하는 일과 판결 등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는 일을 했습니다.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솔로몬이 새로 기획한 12행정구의 관장들(8-19)을 총괄하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일부 고관들이 혈연관계인 것으로 보아 나단은 다윗의 아들로 추정됩니다(삼하 5:14). 나단의 또 다른 아들로 소개된 사붓은 제사장이자 솔로몬 왕의 벗입니다. 왕의 “벗”은 다윗에게 있어 후새(삼하 15:37;16:16-17)와 같이 단순히 친구만 아니라 자문관의 역할을 담당한 자로 추측됩니다. 아히살은 궁내대신으로서 왕궁을 관리 감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2) 이스라엘 12행정구의 지방 관장들(7-19)
왕실의 행정 체계를 잡은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을 12개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 관장을 임명함으로써 지방 행정 체계를 수립합니다(7). 솔로몬이 등용한 지방 관장에는 사위인 벤아비나답과 아히마아스(11, 15)나 후새의 아들 바아나(16)도 포함되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의 행정 조직의 주목적이 왕실의 식량 조달로, 각 행정구가 1년에 한 달씩 돌아가면서 곡식과 가축 등을 공급하는 책임을 맡는다고 설명합니다(7). 또한 이들의 책임감 있는 양식 공급과 헌신으로 왕실에 부족함이 없었고(27-28),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치로 평안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합니다(20,25).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견고한 나라(삼하 7:12)와 솔로몬에게 약속한 부귀영화(3:13)가 실현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행정구 신설의 이면에는 나라의 경제 부담을 분산하려는 목적 또한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고, 말들을 사들이고 병거성을 축조하며, 국제 무역을 확장하는 등 여러 사업을 벌였기 때문에, 이를 충당할 막대한 경비와 인적 자원이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솔로몬이 정비한 12행정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분배 구획을 근접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산과 강과 같은 지리적 경계나 지파의 원래 경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강 지리상으로 간추리면, 8-12절은 이스라엘 중부, 13-14절은 요단 동편, 15-17절은 이스라엘 북부, 18-19절은 각각 이스라엘과 요단 동편의 남부에 해당합니다. 8-12절의 다섯 행정구는 에브라임 산지, 서쪽 욥바 항구로부터 남동 및 북동쪽의 땅, 이스르엘 골짜기를 포함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영역입니다. 13-14절의 두 행정구는 요단 동편의 북부와 중부인 길르앗 라못, 바산, 마하나임으로서 므낫세와 갓 지파의 영역입니다. 15-17절의 세 행정구는 납달리, 아셀, 잇사갈, 스불론에게 할당되었던 지역입니다,
18-19절 지역은 베냐민 지파 지역, 요단 동편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영역인 길르앗 지역으로, 갓과 르우벤 지파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7절에서 12행정구로 지목된 “온 이스라엘”의 실체는 4-19절의 지명에 비추어 볼 때, 온 지파가 아닌 북부열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을 의미합니다. 레위 지파는 할당받은 영토가 없고 성막과 제사의 책임을 맡았으므로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다 지파만 행정구에서 빠져 세금 부담에서 면제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에 70인역(LXX)에서는 19절의 “그 땅”을 일부러 ‘유다’로 바꿔놓았지만, 당시 유다의 누락은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가나안 정착 이래 이스라엘은 지파 간의 동맹과 협력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성장해왔습니다. 그러다 다윗이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겨 그곳을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삼았고, 이제 솔로몬은 예루살렘 중심의 집권 체제를 통해 이스라엘의 결속을 다지려 합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개별 행정구의 신설로 지파의 협력 체제가 약화되고, 유다가 받는 특혜로 타 지파들의 불만이 높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요와 안전을 누리는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은 이런 긴장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와 순종을 잃지 않을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해져야 하고, 하나님 백성의 신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왕국은 다윗 언약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모든 조직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지향할 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성장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른 조직은 망합니다. 솔로몬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처럼 천국의 모형인 교회도 여러 사람이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협력하여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자리를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