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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지천 물굽이 주변
나의 유일한 경쟁자는 어제의 나다.
눈을 뜨면 어제 살았던 삶보다 더 가슴 벅차고 열정적인 하루를 살려고 노력한다.
연습실에 들어서며 어제 한 연습보다 더 강도 높은 연습을 한 번, 1분이라도 더 하기로
마음먹는다.
어제를 넘어선 오늘을 사는 것, 이것이 내 삶의 모토다.
――― 강수진(1967 ~ , 발레무용가),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에서
▶ 산행일시 : 2015년 12월 19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4명(버들, 모닥불, 은하수, 악수, 메아리, 휘휘, 신가이버, 도~자, 해피,
제임스, 칼리토, 대포, 무불, 상고대)
▶ 산행시간 : 12시간 45분
▶ 산행거리 : GPS 거리 19.6㎞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0 : 2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48 ~ 04 : 50 - 정선군 임계면 낙천리(樂川里) 미락동, 차내 계속 취침, 산행시작
05 : 55 - 827m봉
07 : 03 - △885.8m봉 내린 안부, 아침요기
07 : 32 - 853.4m봉
07 : 50 - △864.0m봉
08 : 22 - 자후산(自後山, 904m)
09 : 16 - 1,066.8m봉
09 : 46 - 1,033.9m봉
10 : 40 - 문래산(文來山, △1,082.5m)
11 : 32 - 1,093.1m봉
12 : 00 - 안부, 소래재
12 : 10 ~ 12 : 50 - 964.4m봉, 점심
13 : 08 - △1,044m봉
13 : 53 - 1,050.2m봉
15 : 06 - 각희산(角戱山, △1,085.2m)
15 : 30 - 1,059.2m봉
15 : 40 - 975.5m봉, 전망바위
16 : 05 - 887.6m봉, ┣자 갈림길, 직진은 화표주, 오른쪽은 화암동굴 가는 길
16 : 33 - 쌍봉전망대
16 : 48 - 화암동굴
17 : 03 - 정선군 화암면 화암리(畵岩里), 화암동굴 주차장, 산행종료
17 : 35 - 정선읍
22 : 22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오른쪽 멀리는 고양산
2. 가운데 뾰족한 두 개 봉우리는 취적봉
▶ 자후산(自後山, 904m)
골지천(骨只川) 건너 미락동. 새벽 04시 33분. 기상. 차문 열고 밖에 나서 한 움큼 찬 공기를
들여 마시고 사레들어 졸음 쫓는다. 누군가가 경탄하여 하늘 우러르자 별천지다. 금방이라도
우수수 쏟아질 듯 무수히 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참으로 오랜만에 별을 본다. 오늘 날
씨가 아주 좋겠다고 예감한다.
당초 오늘 산행계획은 단봉산(671.5m)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려는데 단봉산 뒤 등고선이
빽빽하게 밀집한 827m봉을 오르기가 만만하지 않게 보인다. 827m봉 동쪽 능선을 타는 편
이 낫겠다 싶어 조준선을 왼쪽으로 약간 이동한다. 헤드램프로 조명하여 깊은 개울 건너고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첫걸음이 수직사면이다. 늘어진 나뭇가지를 자일 대용하여 붙잡고 오
른다.
간벌한 잡목 숲을 숫제 더듬어 나아간다. 이번에는 내가 헤드램프 관리를 소홀히 했다. 건전
지가 다 닳아 불을 켜나 마나다. 멀리 앞서간 선두의 곁불로 가자니 엉뚱한 덤불숲에서 헤매
기 일쑤다. 능선 누벼 용케 붙잡은 희미한 소로는 숨이 찰 만하면 번번이 사면으로 돌아가 버
리고 우리는 일로직등 잡목 헤친다.
얼추 워밍업을 마쳤다. 827m봉 동쪽 능선의 가파른 오르막과 맞닥뜨린다. 암장 같은 수직사
면이다. 어둠이 큰 부조한다. 아찔할 위쪽 아래쪽이 보이지 않으니 겁 없이 막 간다. 잡목 밑
동 느긋이 그러쥐고 선답의 발자국계단을 오른다. 한발 한발 확인하여 힘준다. 오르다 숨차
면 납작 엎드린 자세 그대로 하고 (코에 흙 들어갈라) 고개만 돌려 심호흡한다.
827m봉. 덤불숲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서레야 박건석 님이 ‘낙천봉, 827m’이라는 종이 표
지를 달아놓았다. 이 산 아래가 낙천리여서 그렇게 이름 붙였나 보다. 이제 당분간 큰 오르막
이나 내리막은 없다. 북동진 외길이다. 잔 봉우리 대깍대깍 넘으며 줄달음하듯 간다. 마침내
동녘이 점점 붉어지고 주변 뭇 산들이 기지개 펴기 시작한다. 비로소 우리가 첩첩 산중에 들
어온 줄을 깨닫는다.
아직 발밑은 어둡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춥다더니 과연 그렇다. 종종걸음 한다. △885.8m봉
은 등로 따라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나지막한 봉우리 하나 더 넘고 (자후산 넘어
1,066.8m봉이 준봉으로 보이는) 안부에서 아침요기 한다. 지난달 시루봉 무박산행 때 맛보
았던 달짝지근한 수프를 이번에는 은하수 님이 준비해 왔다. 신가이버 님의 조리솜씨를 무시
하지 못할 것. 역시 맛있고 한속 달래기에 그만이다.
해는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시게 떴다. 인적은 있는 듯 없는 듯 우거진 잡목 숲을 헤친다.
갈잎 낙엽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되게 미끄럽다. 자빠지고 엎어지고 앞뒤에서 비명이 터진
다. 853.4m봉 내려 묵은 헬기장 지나고 한 차례 더 내렸다가 한 피치 바짝 오르면 △864.0m
봉(삼각점은 ‘406 재설, 77.3 건설부’)이다. 자후산 가는 길. 서진하다가 자후산에서 남진으
로 직각 꺾일 터이므로 미리 오른쪽 사면을 질러가기도 한다.
자후산 정상.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 없다. 새마포산악회에서 정상 표지판 달았다. 자후산의
이름 유래가 재미있다. 옛날 장수가 적을 공격하는데 부하들을 보고 서지 말고 계속 전진하
라 해서 부하들이 이 산을 기진맥진 올랐다하여 작구산이라 하다 지금은 자후산이라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소개다. 요령부득이다.
옛날 골지천 주변의 산들이 모두 모이기로 하여, 청옥, 중봉, 망지, 고적, 반론, 문래, 각희산
들이 참석하였는데 소문을 들은 자후산도 거기에 끼었다. 회의 중 좌중을 살펴보니
일천 미터가 안 되는 친구가 있어 ‘자네는 뒤로 물러 나 있게’ 하여 자후산 또는 자퇴산이 되
었다고 한다(한국의 산, ‘위령산’에서 인용). 차라리 이런 소개가 더 설득력이 있다.
3. 동틀 무렵,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가 우리가 가야 할 자후산 넘어 1,066.8m봉
4. 동틀 무렵, 아침 요기 중
5. 동틀 무렵, 노인봉(610.4m)으로 보인다
6. 왼쪽 멀리는 덕우산(?)
7. 대포 님, 모자챙에 달린 고드름이 사진의 포인트다. 자후산에서
8. 앞은 위령산, 멀리 가운데는 덕우산
9. 위령산
10. 왼쪽이 석이암산
▶ 문래산(文來山, △1,082.5m)
자후산을 약간 내렸다가 가파르고 길게 오른다. 표고 200m를 올라 쳐야 한다. 땀이 나는데
대기는 차디차다. 대포 님 모자챙에 열린 고드름이 쑥쑥 자란다. 숨이 가쁘면 게걸음하여 사
면 들리고 나뭇가지 들춰 북녘 첩첩산 들여다보며 삭힌다. 1,066.8m봉. 정상은 사방 나뭇가
지에 조망이 가렸다. 남남동쪽 골지천 물굽이 따라 가경이 감질나게 보인다.
어쩌면 이때가 매직아우어일지 몰라 다급하여 조망 트인 데 찾아 나선다. 낭떠러지에 바짝
다가가 나뭇가지 젖히고, 도드라진 바위에 기어올라 발돋움하여 근래 산행 중 최고의 조망을
즐긴다. 이런 조망은 장소, 계절, 날씨, 온도, 습도, 하루 중 특정한 시간 등등이 알맞아야 생
길 것이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푸른 민족’은 진정이다. 선생은 뛰어난 등산가이기도 했다.
산첩첩 물겹겹 아름답다 내 나라여
자유와 정의와 사랑위에 오래거라 내 역사여!
가슴에 손 얹고 비는 말씀 이 겨레 잘 살게 하옵소서
이 경치 이대로 놓아두고 가는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저 봉우리 오르면 또 다른 가경이 펼쳐
지지 않을까 기대하여 바위 내린다. 잠깐 나이프 릿지 오르내린다. 굴곡이 꽤 심한 1,000m대
고지가 줄줄이 이어진다. 봉우리마다 나뭇가지 젖히면 경점이다. 산 이름이 아무렇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1,036.0m봉을 뚝 떨어져 내리고 길게 올라 문래산 정상이다.
오늘로 문래산을 네 번째 오른다. 그새 주변 나무들이 부쩍 자라 조망을 가렸다.
삼각점은 ‘311 재설, 77.6 건설부’이다. 옛날 이 산봉우리에 사찰이 있어 학자들이 많이 찾았
다하여 문래산(文來山)이라 부른다(국토지리정보원). 한편, 이 산 아래 골지리(骨只里)는
한자의 뜻이 ‘뼈만 남았다’는 의미가 담겨있는데다 ‘골치 아프다’ 또는 ‘꼴찌다’라는 좋지 않
은 의미의 어감으로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훼손한다하여 2009.11.1.자로 ‘문래리(文來
里)’로 바꾸었다.
문래산은 여러 고봉들이 옹위하고 있는 형세다. 문래산 전후로 1,000m대 준봉들이 수두룩하
다. 넘어야 할 앞 준봉들의 북릉 마루금 따라 흰 눈이 남아 있어 멀리서는 마치 데크계단 또
는 성곽 등의 시설물로 보인다. 특히 흰 눈의 띠가 긴 1,093.1m봉이 상당히 된 오르막이다.
1,093.m봉은 네 갈래 능선이 분기하여 독도를 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자칫하여 서진하는 통통한 능선 따르다보면 고양산 쪽으로 가기 쉽다. 산굼부리 분화구 모양
의 함몰지대 돌아 남진하는 엷은 능선을 가야 한다. 인적이 뚜렷하지만 경험칙을 감안할 때
우리 산행에 인적은 오히려 장애가 되는 수가 많았다. 잘못 가는 것처럼 뚝뚝 떨어진다. 등로
살짝 비킨 전망바위에 들려 ‘산첩첩 물겹겹 아름답다 내 나라여’ 또 찬양한다.
11. 멀리 가운데는 덕우산
12. 골지천 주변, 1,066.8m봉 내리는 도중 남남동쪽 조망
13. 골지천 물굽이 주변
14. 골지천 물굽이 주변, 1,066.8m봉 내리는 도중 남남동쪽 조망
15. 1,066.8m봉 내리는 도중 남서서쪽 조망, 가운데가 취적봉, 그 왼쪽이 군의산(?)
16. 1,066.8m봉 내리는 도중 남서서쪽 조망
17. 골지천 물굽이 주변
18. 골지천 물굽이 주변
19. 취적봉과 군의산(?, 왼쪽)
20. 왼쪽은 고양산, 가운데는 상원산, 그 앞 오른쪽은 반론산
21. 가운데는 상원산
22. 가운데가 취적봉과 군의산(?, 왼쪽)
23. 문래산 정상에서, 왼쪽부터 메아리 대장, 상고대, 신가이버, 무불, 대포, 모닥불, 도~자,
제임스, 은하수, 버들, 칼리토, 해피, 휘휘
▶ 각희산(角戱山, △1,085.2m)
뚝 떨어져 바닥 친 안부는 소래재다. 완만하게 한 피치 오른 964.4m봉에서 점심밥 먹는다.
오늘 산상오찬도 푸짐하다. 휴식할 때마다 탁주와 마가목주 곁들인 주전부리했으면서 닭도
리탕, 사골우거지국, 어묵 끓여 (정말 이다음부터는 꼭 절식해야지 굳게 다짐하며) 식탐한
다. 그러고는 어깨 들썩여 숨 몰아쉰다.
웬일인지 겨울여자인 버들 님의 컨디션이 난조다. 점심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꾸벅꾸벅
졸더니만 여기서 탈출했으면 좋겠단다. 탈출로가 없다! 함께 탈출할 사람도 없다! 탈출을 생
각하면 산행이 더욱 힘들어지니 아예 그런 맘을 먹지 마시라. 각희산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어서 출발하시라 다그쳤다. 후미도우미 도~자 님 믿어 간다.
오늘 버들 님은 놀라운 투혼을 보여주었다. 각희산에서 상고대 님이 탈출로를 찾아 동행하려
고 했으나 마다하고 선두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화암동굴로 완주하였다. 완주 후에는 차에
드러누워 저녁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기진하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다음 산행부터
가지 않겠다고 할까봐 걱정이다.
시시포스적 산행은 계속 이어진다. △1,044.0m봉 삼각점은 ‘임계 439, 2005 재설’이다. 봉
봉마다 ‘금대지맥’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1,058.5m봉이 쉽사리 통과하기 힘든 각희산 관
문이다. 점심조차 거르고 길 저축한다며 먼저 간 칼리토 님이 안부께에 주저앉아 있다. 상고
대 님이 지친다고 미적거릴 때가 다 있다.
보폭 짧게 하여 호흡과 박자 맞춘다. 그래도 숨은 풀무질 소리로 거칠고 입가에는 버캐가 인
다. 1,058.5m봉. 고지가 저기다. 내친걸음이다. ┫자 갈림길 지나고 숨이 턱에 닿아 각희산
정상이다. 조망이 훤히 트이지만 햇빛이 너무 익어 좋은 사진을 얻기 어렵다. 몇 모금 물만
남겨두고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단체 기념사진 찍고 카메라 챙기기도 전에 선두는 내뺀다. 각희산을 완만하게 서진하여 내렸
다가 만고강산 유람하듯 산천경개 구경하며 Y자 능선 분기봉인 1,059.2m봉을 오른다. 이정
표가 안내한다. 오른쪽은 문치(문재)로 가고 왼쪽은 화표주, 화암동굴로 간다. 우리는 당연
히 왼쪽으로 간다. 뚝뚝 떨어지다가 바위 절벽 위 전망대가 나온다.
가리왕산, 고양산, 취적봉, 군의산 … 두루 둘러보고 내린다. 975.5m봉은 향목대다. 절벽 위
에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서다. 직벽에 철계단을 설치했다. 철계단 내리고도 가파른 내리막은
한참 계속된다.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길게 트래버스 하여 내린다. 멈칫한 887.6
m봉은 ┣자 갈림길이다. 직진은 원래 우리가 가려던 화표주로 인적이 흐릿하다. 오른쪽은 주
등로가 잘 난 화암동굴 가는 길이다.
메아리 대장님이 화암동굴 쪽으로 저 멀리 내리는 은하수 님을 언뜻 보았다. 빼~액 하고 외
쳐 다시 올라오게 하였다. 직진인데 왜 화암동굴 쪽으로 가느냐고 묻자, 다들 그리로 갔다고
한다. 대세에 따르자 하고 화암동굴로 내린다. 나로서는 고소원이다. 새로 산 등산화가 아직
발에 익지 않아서인지 끈을 느슨하게 풀어도 발목이 엄청 아프다.
한 달 전에 동대문시장 등산용품 판매점인 안나푸르나에서 현찰 18만원이라는 이월상품 마
인들이 나왔기에 횡재다 하고 샀던 등산화가 지난주 산행인 망대암산에서 밑창이 떨어져 너
덜거렸다. 아이젠 매어 밑창 붙들고 어렵게 산행 마쳤었다. 안나푸르나에 들려 반품하여 전
액 환불 받고 돈 더 보태 정품인 마인들(399천원이다)을 샀다. 복사뼈 바로 위 발목이 부었
다. 어기적 걷는다.
화암동굴 가는 길이 아주 고약스럽다. 급전직하 내리다가 이정표에 등로 약간 벗어난 ‘쌍봉
전망대’를 안내하기에 들렸더니 취적봉 동봉과 서봉을 가리킨다. 주등로는 능선이 가팔라 대
자 갈지자 연속해서 그리며 내리다가 골짜기 건너고 다시 산을 오른다. 지능선 3개를 횡단한
다. 오죽했으면 순하디 순한 은하수 님이 곧장 아래 생사면 치고 내리자고 할까?
화암동굴 입구. 문은 열렸으나 날이 저물어 찾는 사람이 없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내린다.
주변의 조림한 낙엽송 숲과 잣나무 숲이 볼만하다. 이윽고 주차장. 887.6m봉 ┣자 갈림길에
서 직진하여 화표주까지 완주한 사람은 신가이버 님과 해피 님 둘 뿐이다. 모처럼 해피 님 말
발이 선다. 오로지 오지산행의 자존심을 위하여 걷고 또 걸었단다. 앞으로 이 쾌사를 두고두
고 우려먹을 터. 정선읍내 음식점에서 해피 님의 자축 건배사는 그 일단이다.
24. 소래재 내리기 전 전망바위에서 조망
25. 하늘금 가운데는 두위봉, 그 앞이 각희산
26. 왼쪽 두 개 봉우리가 취적봉, 소래재 내리기 전 전망바위에서 조망
27. 고양산, 그 뒤 왼쪽은 가리왕산
28. 소래재 내리기 전 전망바위에서 조망
29. 각희산 정상에서
30. 향목대 위 전망바위에서
31. 오른쪽 멀리는 가리왕산
32. 왼쪽 두 개 봉우리가 취적봉(?)
33. 왼쪽 두 개 봉우리가 취적봉, 화암동굴 내리기 전 쌍봉전망대에서
34. 화암동굴 맞은편 낙엽송 지대
첫댓글 05년도 걸었던 그 길이군요..오랜만에 보니 좋습니다. 새해에도 무탈한 산행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새해에는 함께 산행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5년 6월 4일에 상정바위산에서 고양산, 문래산, 자후산 넘어 위령산으로 갔었습니다.
거의 15시간 걸렸더군요.
참석자는 썩어도준치 회장, 벽산, 배대인, 산진이(악수), 킬문, 대간거사, 안트공(더산), 가난한영혼, 산정무한, 산사, 영취산, 하늘재, 청산 등 13명이었습니다.
역시 산이 흐르는 그 아름다운 선을
사진에 다 담아오셨네요 !!
두고두고 간직하겠습니다.
산행기는 주위 지인들에게 퍼 날라줍니다.
다음 산행도 기다려집니다 ~
사진도,글도 일품입니다!
버들 님의 투혼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2016년이 더욱 힘찬 한해가 되길..화이팅!
악수 님도 새등산화 신으시고 고생 많이 하셨으니 ..2016년이 더욱 뜻깊은 한해가 되십시오.ㅋ
좋은산 좋은 친구들과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이라면 과음에 과식이
수고하셨습니다
눈과 입이 호사로운 산행이었죠. 그때 그느낌 그대로 사진에 담아 있네요.
골짜기마다 아련히 깔린 운무가 멋있게 다가오네요, 코스도 좋구요, 칼리토님도 보이시네....
모처럼 조망이 끝내준 하루였습니다...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넘나드느라 꽤나 힘이 들었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조망이 정말 대단하네요...몇번을 가봤어도 이런 경치는 처음 봅니다.
10년 전 자후산 내릴 때 킬문 님은 시간이 급해 이 많은 참나물을 다 놔두고 간다고 서운해 했었지요.
그 이후 곰취 뜯으러 자후산을 또 갔었는데 그 흔전하던 곰취는 사라지고 황량했습니다.
오랫만에 인사 드립니다. 선배님.
10여년전 정선 훓고 다닐때가 생각이 나서 댓글 달아요 ㅎ
뭐가 그렇게 좋은지 정신 없이 정선일대를 휘젓고 다녔으니 말이죠.
정선의 산은 언제 보아도 좋네요.
몸 건강히 오래오래 산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난 아직 이러고 있네.
바람결에 들리는 소식에 의히면 몸이 많이 불었다며.
가까운 산이라도 다니셔야지.^^
종종 들리시고, 이따금 얼굴도 보여주소.
그 시절 더덕도 곰취도 잘 모르고... 마지막 남음 깨끗한 정선 오지를 간다고 미친듯, 홀린듯, 다니던 고행의 매주 금요일 무박산행.
널려있는 곰취 더덕밭을 무시하던 그 시절이 있었지요. 하늘재님 댓글에 짠 하네요
@산정무한 내 부모님 모신 선산이나 고향을 그 시절의 정선 찾아가 듯했으면, 아마 효자 났다고 삼이웃이 떠들썩했지 않을까 생각되네.
송년회도 안 오시고. 어떻게 잘 지내시는지.
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