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원

[박수호]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원

잉크 냄새가 밴 조간신문을 펼치는 대신 새벽에

무향의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한다

신문 지면을 인쇄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PDF 서비스를 클릭한다

코스닥 이젠 날개가 없다

단기 외채 총 500억 달러

클릭을 할 때마다 신문이 한 면씩 넘어간다

나는 세계를 연속 클릭한다

클릭 한 번에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해가 떠오른다 해에도 칩이 내장되어 있다

미세 전극이 흐르는 유리관을 팔의 신경 조직에 이식

몸에서 나오는 무선 신호를 컴퓨터가 받는다는

12면 기사를 들여다보다

인류 최초의 로봇 인간을 꿈꾼다는 캐빈 워웍의

웹 사이트를 클릭한다 나는 28412번째 방문객이다

나도 삽입하고 싶은 유전자가 있다

마우스를 둥글게 감싼 오른손의 검지로 메일을

클릭한다 지난밤에도 메일은 도착해 있다

캐나다 토론토의 k가 보낸 첨부파일을 클릭한다

붉은 장미들이 이슬을 꽃잎에 대롱대롱 매달고

흰 울타리 안에서 피어난다

k가 보낸 꽃은 시들지 않았다

곧바로 나는 인터넷 무료 전화 dialpad를 클릭한다

k의 전화번호를 클릭한다

나는 6589 마일리지 너머로 연결되고 있다

나도 누가 세팅해놓은 프로그램인지 모른다

오른손으로 미끄러운 마우스를 감싸쥐고 나는

문학을 클릭한다 잡지를 클릭한다

문학 웹진 노블 4월호를 클릭한다

사막의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표지의 어린 왕자는

자꾸자꾸 풍경을 바꾼다 창을 조금 더 열고

인너텟 서점 알라딘을 클릭한다 신간 목록을 들여다보다

가격이 20% 할인된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과 15% 할인된 가격에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주문 클릭한다

창밖 야채 트럭에서 쿵쿵거리는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착 쿵착 쿵차자 쿵차

나는 뽕짝 네 박자를 껴입고 트럭이 가는

길을 무심코 보다가 지도를 클릭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길 하나를 따라 가니 화엄사에

도착한다 대웅전에 앞에 늘어선 동백 안에서

목탁 소리가 퍼져 나온다 합장을 하며

목탁소리가 퍼져 나온다 합장을 하며

지리산 콘도의 60% 할인 쿠폰을 할인 쿠폰을 한 매 클릭한다

프린터 아래의 내 무릎 위로

쿠폰이 동백 꽃잎처럼 뚝 떨어진다 나는

동백 꽃잎을 단 나를 클릭한다

검색어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0개의 카테고리와

177개의 사이트가 나타난다

나는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시 읽기>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원

이원의 위 시가 수록된 시집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 제목이 무엇을 패러디한 것인지 금방아시겠지요. 세종대왕이 『석보상절釋譜詳節』을 보고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를 수록한 책의 이름, 곧 『월인천강지곡月印天江之曲』을 패러디 한 것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월인천강지곡’은 그 제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 제목을 풀어 보자면 ‘달이 천 개의 강에 새겨진 노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달은 법, 진리 등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리고 천 개의 강이란 차별 없는 우주삼라만상을 이야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제목은 이 진리야말로 저 먼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삼라만상 속에 구체적으로 스며 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심각하고 종교적인 제목을 이원은 재치 있게 변주시켜 디지털 시대의 인간상을 표현하고 고발하였습니다. 세계적인 포털 사이트 ‘야후Yahoo’가 우주삼라만상을 대치한 형국이 되어버림으로써 이원의의 패러디는 생기과 긴장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의 패러디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제 진리의 달은 더 이상 우주삼라만상의 갈피갈피마다에 깃들지 않고 사이버 공간 속으로 자리를 옮겨 않았다는 것입니다. ‘호모 디지털Homo Digital’이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인간들은, 그러므로 진리를 찾으러 수시로 사이버 공간을 참배해야 하고, 그곳에서 소위 ‘새로운 진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열의에 불타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모 디지털에 대한 이런 냉소적인 인식 속에서 그는 인간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파격적인 규정을 하였습니다. 위 시의 제목이자 작품 속의 구절처럼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신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어머어마한 신중심주의적 사고에서 인간이 뛰쳐나오며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고 나는 내가 가진 이성의 힘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한 데카르트의 말을 여러분과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그 유명한 말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간의 중심성과 이성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인간자존을 꿈꾸었던 이 명제는 시대의 변화와 인간관의 변화에 따라 변모되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이 말을 빌려서, 또는 패러디를 통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농담 삼아 수많은 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는 노동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소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여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등등이 다 그 실례들입니다. 여기다 우리는 이원의 위 시에 나오는 제목을 빌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최신의 명제를 하나 더 첨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서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디지털 유목의 바다를 유영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이 시대의 우리들이 자화상을 그려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들이 컴퓨터 속에 만들어 낸 사이버 세계는 어마어마합니다. 그 세계의 넓이는 무한한 듯하고, 그 세계의 흡인력은 블랙홀과 같고, 그 세계 속에선 시간과 공간이 균질화됩니다. 이런 세계로 우리는 이주해야 합니다. 자발적 이주가 아니면 강제이주을 해야 합니다. 끝까지 이주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은 소리 없이 자연도태되고 맙니다. 자연도태란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라서 산속의 절들도, 하느님이 보호하는 교회당도, 양계장 집 주인도 이 세계로 이주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침부터 저녁까지 ‘클릭’하고 ‘서핑’합니다. 노동하는 존재로 살아가느라 허리가 아프던 사람들, 생각하는 존재로 살아가느라 머리가 아프던 사람들, 쇼핑하는 존재로 살아가느라 지갑이 비었던 그들은, 이제 클릭하는 존재로 살아가느라 저녁마다 어깨가 뻐근합니다.

그래도 사이버 세계로 이주한 사람들은 ‘클릭’ 하고 ‘서핑’해야 합니다. ‘접속’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요. ‘접촉’이라는 구시대의 버전만 믿다가는 수구주의자의 비애를 맛보아야 하니까요. 우리들은 사이버 세계 안에 ‘ID’도 갖고 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아이덴티티의 약어인 ‘ID’, 정체성을 뜻하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ID’는 여럿이고 수시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열된, 다중적인, 순간의 ‘ID’에 기대어 사이버 세계의 일원으로 등록되고 활동합니다.

위 시의 화자는 나도 그런 삶을 충실히 살고 있습니다. 현실을 닮고자 하는, 어느 때는 현실보다 더 현실감이 있는 극사실의 사이버 세계에 입문하여 그는 놀라움과 두려움과 서글픔이 함께 밀려오는 마음속에서 사이버 세계를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닙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질문에 사로잡힙니다. 그 하나는 이렇게 클릭을 하며 현실 속에 앉아 있는 자신의 삶도 어쩌면 컴퓨터 속의 프로그램처럼 누군가가 이미 세팅해 놓은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의문입니다. 그 누군가를 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외계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DNA라고 부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도대체 ‘나란 누구인가’라는 의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질문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구분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주체의 문제는 따로 아주 심각한 논의를 요구합니다.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의 중심에 놓고 끝 모를 자기애에 집착하며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평생 민망할 정도로 애쓰는 것이 인간이지만, ‘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위 시에서 시인은 모르는 척, 호모 디지털들의 습성을 폭로하면서 ‘나란 누구인가’라는 이 심각한 철학적 질문을 검색창에 의지하여 살펴봅니다. 백과사전까지도 통째로 저장하고 있는 검색창, 전 세계의 모든 도서관까지도 신경망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검색창, 신도와 교도들을 수도 없이 거느리고 있는 검색창에 물어보는 것이 사이버 세계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의이자 능력이냐고 그는 은밀히 부추겨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것 같은 거색창도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데 실패합니다. 그는 계속 에러를 냅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고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이버 세계에서의 나는 ‘흘러서’ ‘미끄러져’ 다닐 뿐, 어디에도 뿌리내리는 정착적인 주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이버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유목적 삶이 보편화되고, 해체와 탈구축의 삶이 옹호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가 누구든지 간에 흐르며, 미끄러져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정으로서의 나, 파편화된 나, 유동하는 나, 불안한 나, 그런 자유로운 나가 이 시대의 주체를 말해주는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위 시에서 이원이 실감 있게 펼쳐보였듯이 우리는 사이버 세계의 시민증을 거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낯설음과 놀라움 속에서 속도감 있는 ‘클릭’과 유연한 ‘서핑’의 기술을 배웁니다.

이렇게 클릭함으로써 존재함을 입증했던 이 시대의 인간들을, 훗날 어느 인류학자가 그 특징을 연구한다면, 특별히 오른손 검지와 오늘 쪽 어깨가 비대하게 발달돼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의 개화기에 지나지 않는다니 클릭함으로써 존재한다는 이 인간 규정도 오래지 않아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른손 검지와 오른쪽 어깨가 비대해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들의 모든 삶이 컴퓨터를 컴퓨터로 의식하지 않는 세계까지 가는 것이 컴퓨터 연구의 꿈이라니 앞으로의 변화상은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이원도 위에서 시사했듯이 이제 컴퓨터는 세속의 신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물으러 석학에게 가지 않고 컴퓨터 안의 신전에 가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컴퓨터는 세속의 광장이자 시장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방으로 공원으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건을 사러 백화점으로, 난전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컴퓨터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위 시 속의 화자도 그렇게 살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경이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세상에 잘도 적응하며 밥벌이를 하고 잠을 자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사는 인간의 탁월한 적응능력입니다. 인간의 적응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종인 인간들의 문명세상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그 속에서 인간들이 어떤 모습으로 신인류의 모양을 계속하여 만들어 갈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그러나 저 같은 구식 유전자를 지닌 사람에겐 그 신세계가 궁금하기보다 두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원의 위 시는 이와 같은 심오한 내용뿐만 아니라 시의 발화과정과 전개방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므로 위 시가 상당히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데 전혀 지루한 감을 주지 않습니다. 어색하기만 했던 컴퓨터와 화해하며 조금씩 그 세계와 익수해지는 구식 세대에게도 이원이 위 시에서 보여주는 디지털 세계 속의 일상적인 모습은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젊은 신세대에게는 이런 디지털적 일상이 공감을 넘어 편안하기까지 할 것이고, 어느 때는 당연하여 진부하게까지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자아정체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제법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쉽게 사라질 수 없는 인간적 물음이니까요.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