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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라 오랜만에 뵙는 귀하신 분도 계시고 반갑습니다.
만덕고승 성개한적 산왕대신(萬德高勝 性皆閑寂 山王大神)
우리가 산신기도를 할 때마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직까지 더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성품들이 깨어나도록 그리고 또 점검이 되도록, 다시 신심이 더 솟아 오르도록 하기위해서 자꾸 말씀드리게 됩니다.
만덕고승은 산왕대신께 기도를 하는 우리의 성품,
기도하는 내가 산이 되고 산왕대신이 되고
또 산왕대신이 내게로 다가와서 산왕대신이 내가 됩니다.
나는 산왕대신이 되고 귀의를 하고
또 산왕대신은 나와 하나로 함께하는 것이 되죠.
그래서 나는 산왕대신과 하나입니다.
산왕대신은 나와 하나입니다.
나는 산왕대신으로 있고 산왕대신은 나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나는 없습니다.
그전에 산왕대신은 없습니다.
나는 산왕대신과 하나인 나로 있고
산왕대신은 나와 하나인 산왕대신으로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로 있습니다. 하나로.
아상인 나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동체인 나, 본래의 나, 근원인 나는 내 안에 본래부터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존재 상태에 있더라도 그 내면에는 무한한 지혜가 처음부터 가득하다.
지혜가 가득하단 말입니다. 그것도 무한하게.
한없는 지혜가 이미 내 성품 안에 내재 되어 있다.
그것을 구현하신 분이 산왕대신이고 우리도 또한 그렇단 말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발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빛을 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비가, 사랑이 가득하다. 무한으로 가득하단 말입니다.
그리고 깨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발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능력이 무한으로 잠재되어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것이 만덕고승입니다.
성개한적은 모든 성품이 다 비었다는 말이거든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모든 성품은 탐진치 삼독심을 이야기합니다.
마저 방하착 마저 방하착입니다.
더불어 있을 때 일어나는 탐진치 삼독심도 방하착,
혼자 있을 때 발견되는 탐진치 삼독심도 방하착.
탐진치 삼독심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제한적인 신념입니다.
우울한 느낌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중요한 것의 부재 부족의 느낌, 이런 것들이 탐진치 삼독심입니다.
그리고 두려움 같은 것들이죠.
이런 부정적인 정서에 해당되는 것이 100% 탐진치 삼독심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것을 놓아버리고 놓아버려서 텅 비어지게 하고 텅 비어지게 해서 없다라는 것까지도 판단까지도 방하착하는 것이 마저 방하착입니다.
3월이면 개학을 하고 또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이 됩니다.
우리 인생 농사를 이야기해도 바로 그런 철입니다.
여러분 출근하실 때 마음이 어떻습니까?
빨리 출근해서 동료들도 만나고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까? (네!!)
아 그래요?
그러면 그건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집에서 빨리 떠나고 직장으로 가버리고 싶습니다. (네!!)
기습 공격이죠. 그죠.
집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싫어서 어디론가 빨리 가고 싶습니까?
그리고 직장이 또 오늘 출근하면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고 민원도 지금 진행되는 것이 있을 것이고 해서 출근하기 싫고 도살장 끌려가는 그런 기분입니까?
이런 것들이 탐진치 삼독심에 해당된다는 겁니다.
싫어하고 지루하고 피하고 싶고 떠나고 싶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인데도 하기 싫은 그 느낌을 알아차리고 사라지도록 놓아버립니다.
이것이 방하착이잖아요.
방하착합니다.
놓아버리고 놓아버리고 놓아버리고 놓아버리고.
그래서 일을 할 때 그냥 하는 겁니다.
하기 싫은 마음, 지루한 마음도 없이 그냥 하고 또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게 되면 즐겁게 한단 말입니다. 그리고 잘~~~하고.
일과 관련된 분들에게 이로움을 주어서 복이 되도록 한다.
이것을 마저 방하착을 했을 때, 내면에 본래 구족되어 있던 무한한 지혜 자비 능력 가능성이 깨어나서 발휘가 되는데 우리가 정말 그렇게 되도록 오늘 또 발심을 더 해야 되겠죠.
마저 방하착은 완전 연소입니다. 소신공양이에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하기 싫은 마음, 지루한 마음을 다 놓아버리고 그 일과 하나가 되어 하는 것이 이것이 삼매잖아요.
대비주 할 때 그렇게 하시잖아요. 대비주 삼매입니다.
책 볼 때 또 책하고 하나가 돼요.
일할 때 하기 싫은 마음 없이 정말 일에 온 정성을 집중하는 것, 거기에는 없는 것이 있죠.
다 방하착을 해서 성개한적이 된 상태는 하기 싫은 마음이 없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도 없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하는 것도 없고 텅 비어져서 그냥 그 일에 집중해서 그냥 하는, 남들이 보면 그냥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요.
그것이 복이 되어서, 복이 됐을 때, 나에게 이로움이 되고, 남에게 이로움이 되는 복이 됐을 때부터 살살 이제 즐거워지기 시작하거든요.
즐겁게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능력이 계속해서 늘어나거든요.
실력이 늘어나거든요.
실력이 늘어나고 능력이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능력이 늘어나고 복이 늘어나는 것하고는 같이 움직이는 거잖아요.
양쪽 존, 두 수레바퀴가 같이 굴러가는 거예요.
그래서 해야만 하는 일인데도 하기 싫은 일인데도 해야만 되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가 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복이 부족하다. 복이 부족하단 말입니다.
그럴 때 알아차리고 어떻게 해야 되는가?
완전 연소를 해야 돼요.
하기 싫은 마음을 놓아버리고 해야만 하는 일을 잘~~~하게끔 정말 즐겁게 할 때, 그럴 때 복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일을 더 즐겁게 하게 되고 더 잘하게 되고 또 더 이로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성개한적이 다 됐느냐 이 말입니다.
성개한적이 다 됐습니까?
저도 다 된 줄 알았더니 아직 조금 덜 됐더라고.
그래서 또 또 하는 거예요. 또 수행하고 또 수행하고.
손톱만큼 남았습니까?
그래서 또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죽을 때까지 이 몸이 이 육신이 죽을 때까지 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그렇게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고 또 다른 말로는 수도라고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용어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다 죽어라. 그럽니다. 공부하다가.
아픈 병고라는 것이 왔을 때 내 마음이 어떤가?
아주 정확한 점검이 돼요.
병고가 오기 전에도 진찰만 해도 덜덜덜덜 떨려.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봐 그죠.
아직 멀었다. 이 말이에요. 아직 멀었어.
육신의 집착이, 육신에 대한 미련이, 이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것을 아직 통달을 하지 못했다라고 단정 짓고 그 두려움, 불안 초조, 이런 것들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사라지게 놓아버린다.
방법은 대비주를 일심으로 지성심으로 지송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럴 때 참 좋은 일입니다.
외로움이 다가왔을 때 외로움을 놓아버리고
불안이 다가왔을 때 불안을 놓아버리고
하기 싫은 마음이 다가왔을 때 하기 싫은 마음을 놓아버리게 되면요.
하나 놓아버리면요. 하나가 솟아나요.
하나를 잃어버리면 하나를 얻어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돼요
감사한 현실을 맞이하려면 불평하는 마음을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 삶이 이 모양 이 꼴인데도 그대로 그냥 감사하란 말입니까?
지금 불평스러운 현실인데도 먼저 불평하는 마음을 놓을 때 불평한 현실도 따라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없는 것은 현실에 나타나질 않아요.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죠.
그런데 우리는 자꾸 잊어버려요.
별개로 생각하고 자꾸 마음이 끌려다닙니다.
감정이 끌려다녀요.
그래서 끌려다니는 것은 힘이 약해서 그렇다.
그러니까 힘을 키워야 돼요.
힘을 키우려면 반복해서 대비주 지송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고 쉬운 일입니다.
그래서 완전 연소입니다. 완전 연소.
저도 그렇잖아요.
저도 맨날 무한한 지혜와 자비와 능력과 가능성이 내재 돼 있다.
내재 돼 있다. 그러면서 자꾸 이제는 뭐 안 할래. 뭐를 접을래.
이제 뭘 좀 덜 할래. 이제 몸을 움츠립니다.
그래서 이것이 실제하고 실상하고 현실에서 사용하는 것하고는 자꾸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자꾸 참회해야 됩니다.
그래서 몸을 잊어버리고 한계를 잊어버리고 이럴 때, 몸을 잊어버린다는 말은 완전 연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신공양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 마저 방하착을 하고 소신공양, 완전 연소할 때 확 살아나는 것이 무한한 그 수승한 만덕고승이에요. 이게.
산왕대신이 첫 대목에서 그것을 강조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차산국내 항주대성은 한마디로 지금 여기에요.
지금 여기, 지금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 지금 여기에서 삼매입니다.
삼매는 이것도 마찬가지로 완전 연소예요.
지금 내가 직장에 다니면 이 직장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직장이다.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다.
여기에서 수행도 할 수 있고 복도 지을 수 있고 여기에서 애국도 할 수 있고 인류를 위한 공헌도 여기에서 할 수 있다.
전부를 받아들여서 온 인생을 다 던지는 것이 삼매입니다.
이게 완전 연소예요.
그럴 때 일어나는 것이 아까 이야기했던 무한한 자기 성품이 확 살아나서 발휘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사람이 있으면 그 직장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조금 스트레스 받고, 남하고 비교해서 남은 100만 원 받았는데 나는 90만 원밖에 안 받으면 비교해서 불평하고 나, 나, 내가 좀 어떻게 좀 더 편했으면... 계산하기 바쁘잖아요.
정말 그 몸 담고 있는 곳, 집에서도 마찬가지고 절에서도 마찬가지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 완전 연소, 그 삼매 속에서 즐겁게 하고 잘~~하고 이롭게 하는 것으로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고 또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자기 자리에서만 할 수 있어요. 자기 자리에서.
이게 항주대성 차산국내(恒住大聖 此山局內)입니다.
항상 자기 자리예요.
그런데 우리 이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 자리에는 한 발자국만 들여다 놓고 한 발자국은 저 딴 곳에 가 있어요. 그죠.
그러니까 능력을 반도 발휘 못해요.
그리고 늘 이 직장 말고 딴 직장으로 옮겨서 잘 하려고 그러고 또 어떤 상태가 됐을 때 잘 하려고 하고 그러니까 늘 지금을 부정합니다.
지금이 부실합니다.
지금이 늘 어설퍼집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가 단칸방이더라도 지금 여기가 가장 고생하고 궂은일을 해야만 하는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살려내는 것으로 자기 인생이 한마디로 대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기를 살릴 때입니다.
그럴 때 여기서 능력을 발휘하고 100만 원 받는데 1,000만 원어치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 900만 원 손해 보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오래 안 가요.
제일 오래 가면 3년 갑니다. 3년. 3년 가요.
3년 주기로 인생이 진급을 하게 돼 있어요. 3년 주기로.
3년만 자기 소신공양 해 봐요.
그럴 때 그 회사가 이 사람 때문에 큰단 말이에요.
그런데 회사가 그대로 있다면 큰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해줄 테니까 오시오’ 하고 초빙하는 일이 벌어진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여건 어떤 상황에서 그 속에 들어가서 그 상황보다도 더 작게 마음을 써. 100만 원 받으면서 90만 원어치만 일하려고 한단 말이에요.
항상 지금 여기입니다. 항상 지금 여기.
지금 여기, 지금 여기에서 소신공양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삼매예요.
지금 하는 일에서 삼매입니다.
지금 인연이 삼매입니다. 지금 인연.
내 것, 나의 부모님, 나의 형제자매, 나의 자식, 여기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리고 시방법계 최신최령(十方法界 最神最靈)은요.
시방법계 최신최령은 산신기도를 하는 나, 대비주를 하는 그 내가 수많은 역사상의 인물 가운데 또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가장 영험한 존재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가?
내 자신이 그렇단 말입니다.
내 자신이 그렇단 말입니다.
내 삶의 역사에 대해서 항상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항상 그것을 다 무릅쓰고 받아들이고 해낸 사람은 유일하게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에요.
직접적으로 온몸에 담고 있고 이 한 마음에 다 담고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를 정말 귀하게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고 이걸 가지고 해 내야 돼.
이걸 가지고. 이 몸을 가지고.
최상의 건강을 실현해내고 이렇게 태어난 이 여건, 나의 인생에서 최상의 풍요를 일궈내고 최상의 행복을 구현해내는 그런 권능을 가진 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자신이에요.
이런 발심을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자리에도 오시는 것이고 그런데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러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안 믿어. 그죠.
자기 자신을 안 믿어.
왜냐하면 얼마 전에 실험했다가 또 멈추고 또 안 된 적이 있거든. 그런 것만 계산해서.
그럼 누구를 믿는가? 누구를 믿어요?
자기 자신은 안 믿고 관세음보살님은 믿습니다. 그죠.
자기 자신은 안 믿고 부처님은 믿고 하나님은 믿습니다. 그죠.
자기 자신은 안 믿고 믿어.
그런데 아주 잘 보면 관세음보살님도 안 믿어.
부처님도 안 믿고 하나님도 안 믿어.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몸에서 여러분이 나왔잖아요.
내가 다 창조했다고 했잖아요.
내 옆구리에서 창조했잖아요. 내 세포로.
같은 성품 같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믿어.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안 믿어.
관세음보살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천수다라니경 시작하는 대목에서.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지 독송하는 자는 무량 억겁 전부터 선근 공덕을 지은 자다.
성불할 수 있는 존재다.
그 안에 이미 뭐 무슨 장, 지혜장, 자비장, 불신장... 부처님 몸을 다 갖추고 있다라고.
이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하시는데도 경전 읽을 때는 그런가 보다 하는데 정작 ‘나 중생이야.’ ‘나는 잘 안 돼.’
그러니까 관세음보살님도 제대로 안 믿는다. 이 말입니다.
언제 관세음보살님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제대로 믿기 시작할 수 있는가 하면요.
자기 자신을 믿을 때부터입니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존재다. 하는 것을 깨달을 때 부터예요.
그럴 때 나와 마찬가지로 모든 분들도 처음부터 부처님이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귀하고 귀한 존재였다 하는 것을 동시에 아는 거예요.
이게 깨달음입니다.
산신기도를 하게 되면요, 아픈 분도 벌떡 일어나는 기도예요.
이 산신기도가 힘이 펄펄 나는 기도예요.
아주 우렁우렁한 그 산왕대신, 산왕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로 강렬한가 하면 바위틈으로 소나무가 뚫고 자라요. 그죠. 그걸 보셨죠?
생명 에너지가 그만큼 파워풀한 분이 산왕이다.
산신기도 하시는 분들은 그래서 여러분이 느껴보시면 이 힘이 펄펄 나는 그 에너지를 느낄 수도 있는데 또 둔하단 말이야. 둔해서 못 느낄 수도 있어.
그렇지만요, 그렇지만, 내 생명 에너지가 이제 탁! 스위치가 들어왔단 말이에요.
스위치가 들어와서 도화선이라는 말이 있죠.
도화선은 여기서 불이 들어오면 연결돼 있는 선으로 두두두...
이제 불이 타 들어와서 여러분 앞에 가면 이제 폭발한단 말이에요.
이 생명 에너지가 그렇게 폭발하게 돼 있어요.
오늘 산신기도 하신 여러분들은 이제 그렇게 됩니다.
이미 그러신 분들도 있고 축 쳐져 있던 분들도.
축 쳐져 있는 분들이 이렇게 누워 있다가요, 전 직접 봤어요. 이 솔루션 하면서.
이렇게 누워서 솔루션 진행하는데 바로 허리 굽히지도 않고 바로 벌떡 일어나버려요.
이렇게. 이런 사람 봤어요.
대단하잖아요.
송장이 벌떡 일어난다는 말을 옛날에 들어봤는데 실제로 이 솔루션하는데 이렇게 일어나 버리더라고.
내 마음에 힘이 들어오고 내 마음의 파워가 이게 살아나게 되면 벌떡 일어나가지고요.
하루에 두 끼도 못 먹던 집 안에서 태어나서 재벌을 일군단 말이에요. 힘이 솟아나면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는 사람이 대통령 당선된단 말이에요. 힘이 솟아나면.
그런데 이것이 이 솟아나는 힘이 어떤 것을 누군가가 갖다줘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갖춰져 있다 하는 것을 오늘 명심, 다시 한번 확인하는 오늘 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돈, 부동산, 사업 성취, 그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해결이 되고 더한 발전이 일어나는 산신기도를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