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통팔달(四通八達)
[요약] (四: 넉 사. 通: 통할 통. 八: 여덟 팔. 達: 통달할 달)
길이 사방(四方) 팔방으로 통(通)해 있음. 길이 여러 군데로 막힘없이 통함.
[출전] 《진서(晉書)》
[내용] 이 성어는 진서(晉書)에 나온다고 하는데 정확한 원문은 알지 못하고 다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았다.
“그 길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통팔달한 곳으로 산천을 유람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其途之所出,四通而八達,遊士之所湊也。)
한편 [네이버 지식백과] 팔달산 [八達山] (두산백과)의 내용에도 나온다.
옛날에는 탑산이라고 불렸는데 이름이 바뀐 것은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인 이고(李皐)와 관련된다. 은퇴한 이고가 세상을 떠나 이 산자락에 살았는데 공양왕이 사람을 보내 근황을 묻자 "집 뒤에 있는 탑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산정에 오르면 사통팔달하여 마음과 눈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즐겁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조선 태조가 은거하던 이고에게 벼슬을 권하자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게 하였는데 태조가 그림을 보고 "과연 사통팔달한 산이다"고 한 데서 이 산이 팔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연려실기술] 제1권태조조 고사본말(太祖朝故事本末)고려에 절개를 지킨 여러 신하에 이고(李皐)를 설명하는 내용에도 사통팔달이 나온다.
이고(李皐)는 본관이 여흥(驪興)이다. 공민왕 갑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으로 고려 말엽에 물러나 수원(水原)의 광교남탑산(光敎南塔山)에서 살았다. 스스로 망천(忘川)이라 호를 지었으니, 세념(世念)을 잊는다는 뜻이었다. 공양왕이 중사(中使)를 보내어 소락(所樂)이 무엇인가 물으니 공이 자기가 사는 산천의 훌륭한 경치를 극구 칭찬하였는데, 그 말 가운데는 사통팔달(四通八達)하여 막힌 데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태조가 즉위하매 여러 번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고, 경기 안렴사(按廉使)로 제수하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태조가 화공(畫工)에게 명하여 공이 거처한 곳을 그리게 하여 이것을 보고 이름을 ‘팔달산(八達山)’이라 지었다. 세종조에 석비(石碑)를 특별히 그 마을 입구에 세워 ‘고려 효자 한림학사 이고(高麗孝子翰林學士李皐)의 비’라고 하였다. 조선에 벼슬하지 않은 여덟 사람의 학사를 세상에서 ‘팔학사(八學士)’라고 칭하는데, 공은 조견(趙狷)ㆍ이집(李集)과 함께 그 중의 삼학사(三學士)로서 서로 살던 곳이 가까워 때때로 소를 타고 왕래하였다고 한다. 조견은 청계산(淸溪山)에 숨고 이집은 둔기리(遁機里)에 숨었다.
이하 이투데이 [하루 한 생각] 四通八達 (사통팔달)의 글.
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이투데이 임철순 기자]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됐다. 사방으로 통하고 팔방으로 닿아 있다는 사통팔달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 기공이다. 사통(四通)은 동 서 남 북 네 방향으로 통한다는 말이고, 팔달(八達)은 여기에 동북 동남 서북 서남이 추가된 것이다. 동북동 동북서, 이런 식으로 방위를 더 세분하면 16가지가 될 수도 있다.
사통팔달은 사통오달(四通五達)이라고도 한다. 모든 방향으로 다 통한다는 점에서 사통팔달은 만사형통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을 줄이면 도나 사물의 이치에 정통하다는 ‘통달’이 아닌가.
여덟 방위라는 팔방과 비슷한 말로는 팔굉(八紘) 팔극(八極) 팔황(八荒) 등이 있다. 그런데 일제가 팔굉일우(八紘一宇), 온 세상이 한 집이라는 말로 천황제 파시즘을 퍼뜨리는 바람에 한국인들에게 팔굉은 거부감이 큰 단어가 됐다.
수원에는 팔달산 팔달문 팔달구가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가 산 밑에 숨어 살던 선비에게 벼슬하기를 권하자 그는 “집 뒤의 산이 사통팔달하여 사방이 내려다보인다”며 “아름다운 이곳에서 살겠다”고 사양했다 한다. 이 말을 들은 이성계가 팔달산(八達山)이라고 이름 붙였고, 나중에 팔달문 팔달구도 생기게 됐다고 한다.
정조의 수원 화성 축조에 크게 기여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쓸 때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가를 생각해본 뒤에 비로소 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
사통팔달 사통오달 이런 말 속에서도 몸가짐을 새로이 하는 군자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수원에는 그래서 수원에는 팔달산 팔달문 팔달구가 있어요.
내력을 아제서야 알았습니다.
네에. 그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넓은 길이 四通八達로 짜여 있어 후미진 산촌을 제외하고는
이(里)까지 버스나 트럭이 들랑거렸다. 감사합니다.
사람도 四通八達하면 좋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