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프라노가 7월 6일 돌연 생을 마감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김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영·호남 교류 목포시립합창단 초청 김천시립합창단 제33회 정기연주회 <카르미나 부라나>
공연을 위해 대기하는 도중이었다고 한다. 사망원인은 미상. 실명이 올라온 후속 기사에 의하면 이상은 소프라노는 향년 46세로 서울대 음대 출신이라고 한다. (우리 소프님 후배인 셈이다.)
남과 동시에 마지막이 예정된 삼라만물森羅-萬物.
모두가 예정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터에 누군가의 죽음은 특별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평균적인 삶의 절반이 조금 넘는 시점에 그것도 공연 도중이라고 하니 놀라움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그녀가 올라야 했을 무대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기악 반주와 무대 장면이 딸린, 독창과 합창을 위한 세속적인 노래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오케스트라 외에 합창과 독창, 마임과 춤 등은 물론 화려한 무대장치가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작품으로 웅장한 서곡이 특히 유명하다.
https://youtu.be/GD3VsesSBsw
‘오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
오 운명의 여신. 그대는 마치 달과 같구나. 차고 기울고. 때론 가혹하게 때론 친절하게. 가련하고 고된 인생을 조롱하듯 늘 가난을 베풀다가 가끔은 얼음처럼 녹고 마는 권력도 주고.
운명은 괴물, 곧 공허해지고... 강한 자는 운명 때문에 쓰러지고 남은 자들은 나와 함께 눈물 흘린다.
딱 1시간짜리 공연인 <카르미나 부라나>에서
장대한 서곡은 20시 조금 못 되어 울려 퍼졌을 것이고,
공연이 40분경에 이르면 그녀는 첫 독창 ‘Amor volat undique’에 이어 3곡을 더 불러야 했으리라.
제15곡 Amor volat undique(사랑은 어디나 날아간다)
“욕망에 사로잡힌 큐피드는 어디든 날아다니는 법... 짝이 없는 여자는 어두운 밤을 자기 가슴 속 깊이 숨겨둔다. 이보다 쓰라린 운명 있으랴.”
제17곡 Stetit puella(빨간 띠를 두른 처녀가 서 있다)
“한 처녀가 서 있네. 작은 장미처럼 얼굴은 빛나고 입술은 꽃처럼 피었네...“
제21곡 In trutina mentis dubia(저울에 매달린 마음)
“저울에 매달린 채 이것이냐 저것이냐 흔들리는 내 마음...”
제23곡 Dulcissime(가장 그리운 님)
“아 못내 그리운 님이여, 내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리.”
일면식 없음은 물론 이름조차 몰랐던 소프라노에 대해
사망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성명 삼자를 검색해 공연 영상을 확인해보는 심리는 무얼까. 공연포스터의 선한 인상 때문일까, 안타까움을 가장한 호기심 때문일까.
https://youtu.be/ANRPLaTTuKs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새벽의 낭만에 의지해
대한민국 예술계에 흔적을 남기고 떠난 그녀에게
공연 직전 ‘내가 왜 이러지’ 마지막 가쁜 숨을 내뱉었을 그녀에게
그곳에서도 아름다운 노래로
이미 떠난 이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시라고
강한 자는 운명에 쓰러지고, 남은 자들은 눈물 흘린다
‘오 운명의 여신’에 흐르는 눈물을
그대 가시는 길에 꽃 대신 뿌려본다.
낭만배달부 ‘비와 명상’
별 거 있나
삶이란
그저 누워 과자를 먹는 것
오물오물 씹다가
넘기는 순간 잠깐 고개를 들어주는 것
목이 메거나 이물감이 느껴지면
반쯤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셔주고
잊지 못한 슬픔은
함께 씹다가 넘겨버리면 그뿐
창밖 소나기 박자에
노래 한 자락 들려오면
더 바랄 것도 없지
첫댓글 거의 5개월만에 그것도 부고와 함께 돌아와 송구합니다. 개인적으로 일이 좀 있었고, 여파로 글 쓸 엄두를 못 냈습니다. 아직은 피곤한 상황이라 예전과 같이 빈번한 낙서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힘을 내 무글방지에 매진해보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7.08 22:02
저 위치까지 가기까지 정말 치열하게 살았을텐데 안타까워요. ㅠ
그러게요.ㅜ.ㅜ
소중한 한 예술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니 기적같은 하루의 시작 화이팅하세요🙌🙌🙌
기적같진 않겠지만...화이팅해보겠습니닷~
소중삶울마감하셨다니아쉽네요 도한소중한이름소준한 한생명갔다는게아쉽네요
소중한 이름과 음성을 미리 접하지 못해 더 그렇네요
낭만님 글을 읽으며 오늘을 시작합니다. 일어나자마자 알림이 울려 글을 봤지만 애써 뒤로 미루었습니다. 아쉽지않게 지금에 행복하렵니다!! 깨달음을 주신 낭만님 감사합니다!!🙇♀️
에고, 깨달음이라뇨!
순례&여행 후기들은 계속 올려주실꺼죠?
@낭만배달부 네. 조금씩 조금씩 풀어드릴게요
오랜만에 올려주신 글 반갑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이전 글의 작성일자가 2월 8일이니 딱 5개월.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