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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우산 노란우산
오종락
어린 시절에 초중등학교를 시골에서 다녔다. 왕복 이십여 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다 보면 가끔 비를 만나는 경우가 있었다. 초중등학교 9년 동안을 줄곧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하교 시간에 갑자기 비가 내릴 때면 비닐우산은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그 당시는 천으로 된 우산은 아주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비닐우산은 다정한 옛 친구와 같은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특히 비가 잦은 철에는 공교롭게도 하교시간에 맞추어 비가 내렸다. 그런 날은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동네 친구들과 공동으로 비닐우산 한 개를 샀다. 동네 친구들은 팀별로 서로 다른 색깔의 비닐우산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팀이 파란색 비닐우산을 사면 다른 친구들과 여학생들은 노란색과 흰색을 샀다. 우산 하나에 동네 친구 세 사람이 같이 쓰고 하굣길에 올랐다. 세 사람은 길을 걷다가 우산 속의 위치를 좌우, 중앙으로 한 번씩 바꾸기도 했다. 책보와 옷이 비에 덜 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등에 가로로 매고 있던 책보를 비에 책이 젖지 않도록 앞 허리춤에 옮겨 질끈 둘러매고 걸었다.
어떤 날은 하굣길에 잗다란 가랑비가 술술 내렸다. 그렇게 내리는 비는 별로 개의치 않고 우산 없이 하굣길에 오를 때도 있었다. 오는 도중 빗줄기가 좀 더 굵어지거나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올 때면 친구 가운데 한 명이 소리를 쳤다. “야, 더 큰비가 올 것 같다. 우리 어서 빨리 달리자.” 하는 외침에 따라 친구들은 모두 뜀박질을 시작했다. 더 큰비가 내리기 전에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하굣길은 학교에서 좁은 골목길 사이로 십여 분 걸으면 시골 들판 사이에 난 신작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었다. 신작로 양편 논과 밭에는 농작물들이 가뭄 끝에 내린 단비를 머금고 생기를 내뿜으며 자라고 있었다.
오늘 오후도 그때처럼 비가 내린다. 봄비를 살짝 맞으니 아련한 그 시절이 언뜻 떠오른다. 그 시절 가끔 내리는 비는 우리의 친구였던 것 같다. 들판에 내리는 비는 농작물에는 단비가 되었고 학교에 다니는 우리에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그런 환경이 어린 학창 시절 우리의 체력을 단련시켜 주는 역할도 하였다.
봄비가 몇 차례 지나간 곡우 절기가 되면 들판의 푸른 보리와 밀은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춤을 추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등하굣길의 고단한 발걸음에 힘을 얻었다. 보리 수확을 마친 논에는 빗속에서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모심기가 모두 마무리되면 들판에는 푸른 벼들로 가득 채워졌다. 가을철이 되어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갈 때면 길가의 벼이삭은 우리의 간식이 되기도 했다. 친구들과 나는 벼이삭을 훑어서 참새처럼 낟알을 까먹으면서 길을 걷기도 했다.
이런 들판의 정겨운 모습 중에서도 나와 친구들이 가장 좋아했던 시기는 아마도 보리와 밀이 누렇게 익어 갈 때였다. 그 까닭은 보리와 밀에서 생기는 깜부기가 우리에게 장난기가 발동하도록 유혹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뽑아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다 보면 그 먼 십리길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집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 깜부기는 비에 젖어 검은색 반죽처럼 찐득거렸다. 개구쟁이 친구가 깜부기를 뽑기 위해 논밭에 슬며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친구들은 기겁을 하고 쏜살같이 도망을 쳤다. 친구들은 얼굴에 깜부기로 화장을 당하거나 옷이 오염될 까 봐 몹시 겁을 먹었다. 약삭빠른 친구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깜부기를 뽑아 허리 뒤편에 숨겨 와서 공격을 하기도 했다. 동작이 느린 친구의 얼굴이나 하얀 교복에다 깜부기를 살짝 문지르면 잘 지워지지도 않았고 친구는 순간 몹시 당황하며 울상을 지었다.
비 오는 날은 깜부기 장난과는 별도로 비닐우산으로 서로를 공격하기도 했다. 사이좋게 나란히 길을 걷다가도 한 친구가 우산으로 장난을 걸면 상대편도 즉시 반격을 하곤 했다. 처음 장난의 발단은 우산 기둥을 회전시켜 빗물을 상대편 친구들에게 날아가게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다 차츰 경쟁이 고조되면서 상대편의 비닐우산에다 대나무 살대로 내리쳐서 비닐에 작은 구멍을 내거나 찢어지게 하였다. 시합은 점점 더 공격적인 양상으로 변해 갔다. 상대편의 우산을 공격해 놓고 “파란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놀리면서 도망을 쳤다. 우리 편이 먼저 한번 공격을 하고 도망을 치면 상대편도 반격을 하기 위하여 계속 따라왔다. 도망칠 때면 옷이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도망치기에만 급급했다. 급하게 도망을 치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쫓고 쫓기 기를 몇 차례 하다 보면 어느 듯 아랫마을 어귀가 보였다. 신작로는 경사가 심하여 계속 도망을 치다 보면 숨이 몹시 찼다. 그럴 땐 논둑길로 도망을 가거나 보리밭에 숨기도 했다. 따라오던 친구 중의 한 명이 “비 오는 날 보리밭에는 도깨비가 나온다.”고 고함을 치며 겁을 주기도 했다. 옆에 앉아 있던 한 친구가 “동네 이제 다 왔다. 잠시 휴전하자”고 제의했다. 장난을 치다가도 다른 동네를 지날 때는 잠시 동안 휴전에 들어갔다. 들판에서 일하시는 이웃 동네 어르신들의 꾸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까지 갈려면 두 개의 다른 마을을 지나야 만 했다. 잠시 후 마을을 지나면 휴전은 자동적으로 무효가 되었다. 다시 공격 개시가 이루어져 상대편 우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우리 마을 동구 밖이 저만치 보였다. 그 지점에서는 정전협정이 이루어졌다. 복장과 우산을 단정히 정비했다. 옷은 함씬 젖어 있었고 비닐우산은 많이 일그러지고 좀 찢어진 곳도 있었다. 그 당시는 비닐우산도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을까 봐 마을 입구에 사는 친구가 우산을 맡아서 보관하기로 했다. 찢어진 우산을 든 상대편 친구가 패배를 만회하려고 벼르며 “다음에 비 오는 날 한번 보자” 하는 말을 끝으로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푸른 보리밭과 밀밭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시절의 비닐우산과 함께한 시간들을 다시 한 번 추억하고 싶다. 빗속을 함께 거닐었던 옛 친구들의 얼굴을 한번 떠올려 본다. 흙길이었던 추억의 그 신작로는 지금은 시멘트 길로 변하여 트럭과 경운기가 소음을 내며 분주히 다니고 있다. 비 오는 날 하루를 택하여 옛 친구들을 불러 모아 우산을 들고 그 길을 한번 걸어 보고 싶다. “파란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이라고 목청을 높여 불렀던 그 노래를 다시 한 번 불러보면서 말이다. (2016.4.24)
첫댓글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림처럼 그려냈습니다. 그때는 그 부족함이 모두 즐거운 놀이였었지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본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의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함도 모르고 만족하고 살았으니 그게 바로 행복이었나 봅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아침'하는 동요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 공감합니다. 이제 그 시절을 되새겨 볼 보리밭 밀밭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추억은 힘든 시절도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어린 학창시절 왕복 8Km를 거의 매일 통학 · 그 때는 싫었을 것입니다만· 평생 건강을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지는 좋은 운동였다고 생각을합니다. 파란비닐우산. 노란비닐우산이 그리워지는군요.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어려운 환경이 아름다운 추억과 기초 체력을 선물해준 것 같습니다.
우산 셋 이란 노래소리가 들려오는듯한 어린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정겨운글 감사합니다.
비닐우산은 하늘을 바라보며 비내리는 상태를 관찰할 수가 있어서 빗방울에 정감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느낌도 방수천으로 만든 우산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때가 그립네요. 비가오면 수업을 중단하고 하교를 시켰던 시절 밤새 섶다리가 무너지면 학교에 못가는 날 지금 아이들이 그걸 이해할까요? 정말 잘 사는 대한민국 생각할수록 꿈만 같네요. 못 살던 때가 왜 그립나요? 잘 읽고 갑니다.
계곡물이 범람하여 바로 다리 밑에 찰랑찰랑할 때도 있었고, 어떤 해는 통나무다리가 큰비에 떠내려 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감의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땐 비닐 우산 나오지 않은 때라 지우산이나 삿갓을 쓰고 다녔답니다 에휴--. 깜부기 장난은 기억 납니다 짓궂은 남학생들. 순진무구하던 시절의 비오는 날 등하교 하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비오는 날 모내기할 때 도롱이나 삿갓을 쓰고 하는 모습은 더러 보았습니다. 비닐우산 이전에는 환경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