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권대근
개인적 체험과 생태적 인식
권대근/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남해인의 응모작 세 편 중 <부엉이 바위>는 체험의 진정성과 성찰의 깊이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이 수필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이 글은 개인적 체험과 생태적 인식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단순한 회상의 차원을 넘어 반성적 성찰로 나아가는 성취를 보여준다. <부엉이 바위>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서사의 중심에 두되, 그것을 현재의 시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경험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부엉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질서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특히 유년의 기억을 생태적 인식으로 확장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구현되어 있어 좋다. 작품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의미화’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글의 도입부에서 제시된 부엉이에 대한 민속적 의미는 단순한 정보 제시에 머물지 않고, 이후 서사의 해석 틀로 기능한다. 이는 사소한 사물과 풍경이 어떻게 인간의 삶 속에서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장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어린 시절 부엉이 알과 새끼를 가져오던 아재의 일화로 이어지며, 인간 중심적 행위에 대한 무의식적 폭력성을 환기한다.
서사의 전개 또한 안정적이다. 유년기의 체험, 부엉이 바위에 오르려던 시도, 그리고 실패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현재의 인식으로 이어지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미가 점층적으로 심화된다. 특히 부엉이 어미의 울음에 대한 묘사는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닌다. 이는 대상에 대한 연민이 생명에 대한 감수성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작품은 생태적 인식의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부엉이를 먹이사슬의 일부로 파악하고, 그것이 마을 생태계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작용한다는 진술은 전체 서사 속에서는 체험적 사실을 보완하는 인식의 층위로 기능한다. 즉 감각적 기억과 이성적 이해가 균형을 이루며 글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결말부의 성찰이다. 어린 시절 부엉이를 잡으려 했던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경험을 ‘다행’으로 전환하는 인식은, 뒤늦게 깨닫는 반성적 성찰의 표현이다. “비신사적인 목적의 행동은 일찍 실패하는 것이 옳다”는 문장은, 작품 전체의 맥락 속에서는 주제 의식을 명료하게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 대목은 한층 더 여백을 두어 독자의 사유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진다면 문학적 여운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문장 면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호흡을 유지하고 있어 수필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부엉이 바위
남해인
우연히 들린 식당에서 본 부엉이 시계가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부엉이가 부(富)와 행운, 지혜를 뜻하고 있어서 개업하는 곳에 부엉이 시계를 선물하거나 일반 가정에서도 부엉이를 탁자나 현관에 장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엉이는 어둠을 향해 눈을 뜨지만 먹이를 물어다 둥지에 모아두는 습성이 있다. 이것이 결국 재물과 복을 부르는 의미화가 되고, 밤에도 잘 보는 능력이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로운 판단과 명예로운 결정에 필요한 통찰력을 상징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의미화일뿐이지라도 사실 의미화가 삶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초등학교 방학 때 대부분을 시골에서 보냈다. 마을 앞산의 가장 꼭대기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 작은 동굴에는 부엉이가 살고 있었다.
낮에는 부엉이가 동굴에서 지내고 밤이 되면 할머니 집 앞 서낭당 소나무 위에서 사냥을 하기 위하여 “부엉 부엉” 하며 우는 것을 자주 들었다.
부엉이 바위는 산길 비탈이 워낙 심하고 바위가 험해서 마을 청년들도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가 본 사람이 몇 안 될 정도였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할머니 집에는 아버지의 사촌 동생이며 나에게는 5촌이었던 아재(당시 삼촌 또는 아재라 함)와 함께 살았는데, 아재는 몸이 날렵하여 이 부엉이 바위를 여러 번 갔다 왔다고 해 주었다.
아재가 부엉이 바위에서 부엉이 알을 가져오거나, 어떤 때는 부엉이 새끼도 가져와 키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부엉이 알이나 새끼를 가져온 날 밤에는 서낭당 소나무 위 부엉이 어미가 밤새 처량하게 울었다고 한다. 부엉이의 울음이 며칠 밤 계속되면, 아재는 부엉이 동굴에서 가져온 알이나 새끼를 다시 부엉이 동굴에 다시 가져다 놓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그날 밤부터 며칠간 부엉이가 집 앞 서낭당 소나무 위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험한 부엉이바위를 다녀온 아재 얘기도 흥미롭지만 새끼를 살리려는 부엉이를 생각하면 어린 마음에도 안쓰러움이 들곤 했다.
그래도 부엉이 얘기를 들으며 자란 우리 삼남매는 어느 날 그곳에 가 보리라 하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었다. 결국,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다음 날, 우리 삼남매는 부엉이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앞산 오르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산의 경사가 워낙 급하고 힘든 바위산이라 우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리와 손에 상처만 남기고 포기하였다.
부엉이는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아주 험한 지역의 암벽 굴 같은 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한 배에 2~5개의 알을 낳아 70일 정도 새끼가 성장하여 스스로 날아갈 때까지 잘 돌보면서 혹독한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에만 사냥을 하는 야행성이면서 뛰어난 청각을 갖고 있고 영역을 갖고 생활한다고 한다. 새끼와 함께 지내면서 사냥 기술을 가르치고 그 새끼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생존의 터전에 외부의 침입자를 반가운 이웃이나 관광객으로 받아들일 맹금류가 있겠는가.
우리 가족은 지금도 일 년에 서너 번, 명절과 벌초할 때 시골을 간다. 시골 마을에 삼촌이라 불리는 이장님은 요즘도 부엉이 바위에서 부엉이 소리도 나며, 밤이면 서낭당 소나무에 앉은 부엉이의 울음도 들리곤 한다고 한다.
부엉이가 아직 있다는 것은 그 마을 생태계에 아주 중요한 소식이다. 부엉이는 먹이사슬의 중간 단계이기 때문에 곤충, 설치류, 작은 조류 등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균형에 유익함을 준다. 부엉이가 농작물 피해도 적고, 병원균 매개가 되는 설치류의 번식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서 부엉이가 없어졌다면 그만큼 먹이 자원이 고갈되었고,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이 있다는 것이므로 시골에서 듣는 부엉이 소식은 여전히 그 마을이 자연생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 입구에 서면 여전히 부엉이 바위와 동굴이 보인다, 며칠 전, 삼남매가 함께 시골 마을에 갔다가 동굴 입구에서 부엉이가 내려 보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우린 부엉이 바위에 오르지 못했던 것을 추억하며 어쩌면 당시에 적당히 다쳐서 일찍 포기한 것이 다행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어렵게 부엉이 바위에 갔다면 또 가고 싶어하다가 더 위험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부엉이 소식을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신사적인 목적의 행동은 일찍 실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부엉이 바위를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다. 실패의 경험으로 지금까지 마을에서 부엉이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행운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