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정화의 동생'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우뚝 선 엄태웅. 그런 동생이 너무도 대견한 누나, 엄정화. 이들 남매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과 끈끈한 남매애를 들어보았다.
지난 5월 9일, 엄정화·엄태웅 남매는 각각 <호로비츠를 위하여>와 <가족의 발견> 기자시사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같은 시간에 서울극장과 명동 애비뉴엘에서 각각 시사회를 진행할려다 보니 한정된 기자들이 나뉘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에 <가족의 발견> 쪽에서 시사회를 하루 늦추기로 양보했다. 갑작스런 시사회 날짜 변경에 대해 홍보실 측에서 발표한 이유는 단 하나, 엄정화와 엄태웅이 보기 드문 ‘남매애'를 발휘해 일정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남매가 다 성공할 확률 낮다"는 PD 말 뒤엎어
영화 <가족의 발견>에서 엄태웅이 맡은 역할은 능청스럽고 뻔뻔한 형철. 집도 직업도 없는 형철은 20년 연상의 애인(고두심)을 데리고 누나(문소리)의 집으로 들어온다. 감독이 엄태웅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기 때문일까, 어딘지 바보 같으면서도 능글맞은 형철의 모습은 그에게 딱 맞는 옷 같다. 그간 <쾌걸춘향>, <부활>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만 각인된 이미지를 단번에 벗어던지는 모습에서 그동안 쌓아온 연기력의 내공이 느껴진다. 영화를 찍으면서 엄태웅은 영화 속 누나와의 관계가 자신과 엄정화의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남들보다 방황기가 긴 모습이 꼭 제 이야기 같았어요. 저도 오랜 시간 배우가 아닌 연기 지망생으로 살아왔으니까요. 또 제가 영화에서처럼 누나에게 얹혀살아요. 소식도 없이 5년 만에 나타나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문소리씨의 모습도 저희 누나랑 똑같고요. 제가 지금처럼 제 일을 찾을 때까지 누나가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거든요.”
8년 가까이 무명으로 지지부진 세월을 보내며 서른을 넘긴 동생을 보면서, 엄정화는 저러다 ‘백수건달'로 남는 건 아닌지 속을 끓였다. 하지만 본인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서른이야말로 인생 시작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스스로 한번 해보라”고 격려와 채찍을 한꺼번에 주었다.
누나의 말에 힘을 얻어 연극 무대에서 기본기를 닦으며 드라마 오디션에도 계속 도전했다. 그런 와중에 잊지 못할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한 드라마 오디션에서 “얼굴이 칙칙하다”는 인신공격성 평가를 들은 데 이어 “남매가 한꺼번에 성공할 확률은 당연히 낮다”는 희망을 짓밟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날 오디션을 보고 나오며 그는 누나 엄정화가 매일 드나드는 방송국에서 자신이 발붙일 곳은 없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었다고.
하지만 그해 <제주도 푸른 밤>이라는 단편드라마로 호평을 받은 엄태웅은 이어 <쾌걸춘향>에 조연으로 캐스팅되면서 하루아침에 인생이 달라졌다. <쾌걸춘향>의 인기는 드라마 <부활>로 이어졌다. 오디션을 본 지 2년이 지난 후에는 상처를 주었던 PD가 그를 잡고 “현존하는 남자배우 중 최고”라는 찬사를 늘어놓을 정도로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부활>에서 보여준 1인 2역의 인상적인 연기로 남자배우 연기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8년 넘게 무명으로 있는 그를 끝까지 응원해준 어머니와 누나였다. 하지만 그는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부러 엄정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누나의 얘기는 그보다 더 좋은 상을 받았을 때, 누나와 동등한 위치라고 느껴지는 자리에 섰을 때, 모든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비로소 자신 있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에게 엄정화는 누나일 뿐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능 물려받은 남매
<가족의 발견>의 형철 역이 엄태웅에게 딱 맞는 옷이라면,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지수 역시 엄정화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힘든 역할이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재능에 한계를 느끼는 지수 역은 연기로든 가수로든 자신만의 입지를 굳힌 엄정화가 아니면 해내기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수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느꼈던 질투와 열패감을 떠올렸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면서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나는 왜 저렇게 잘하는 애들처럼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고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워낙 못해서 졸업 후에도 회사에 시험치고 들어갈 입장이 아니었어요. 그러다 MBC 합창단 시험을 봤는데 학력 제한 때문에 떨어졌죠.”
하지만 그녀는 결코 영화 속 지수처럼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은 공부가 아니라 노래와 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의 실력을 알아본 합창단 선배의 도움으로 재시험을 봐서 합창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력이 낮아 동기들 중 호봉은 제일 아래였지만 당시 받은 합창단 월급 80만원을 엄마에게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뿌듯했다고. 공부에서는 열패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음악적인 재능은 기존의 입사규정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번 합창단으로 무대에 서자 그녀는 온몸을 휘감고 도는 강한 느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가수는 멀리 떨어져 있고, 그 뒤에서 저를 비롯한 합창단이 후렴을 부르곤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노래가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제 노래라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무대가 신나고 즐거울 수 없었어요. 흥을 주체할 수 없던 그 모습이 눈에 띄어 솔로로 데뷔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엄정화의 부친 고 엄진옥씨는 서라벌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면서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도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중학교 음악교사를 택했기에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교사로 재직하던 중에도 무대 연출과 함께 음악과 연기를 지도했다. 아버지의 지도를 받지는 못했지만 장녀인 그녀에게 그 재능이 오롯이 옮겨진 건 아닐까.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함께한 기억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아버지가 학창시절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유망한 배우였고, 선배들이나 교수님에게 칭찬을 많이 들으셨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들으며 자랐어요. 어린 시절, 늘 어머니가 고생하시며 저희 남매를 키우는데도 옆에 없는 아버지가 더 그리웠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하던 뮤지컬, 연극,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면 늘 내 옆에서 응원하며 지켜주지 않으실까 하는 믿음이 있었어요.”
아버지를 동경하는 마음은 동생인 엄태웅이 더했다. 아버지가 트럼펫을 잘 불었다는 말을 듣자 바로 트럼펫을 배울 정도였다고. 외모도 행동도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엄태웅은 누나보다도 기억이 희미한 아버지에 대해 깊은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오랜 무명생활 끝에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데에도 아버지의 존재가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 결국 아버지가 물려준 끼와 재능이 두 남매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둘 중 누구라도 결혼해야 할 나이
며칠 전 엄정화는 차를 몰고 가다가 지나가는 버스 한 대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 버스의 옆면에 동생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가족의 발견> 포스터가 떡하니 붙어 있던 것. 동생 엄태웅이 <공공의 적>, <실미도> 등에도 출연했기 때문에 영화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포스터에 주연으로 등장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이제 그녀와 나란히 기자시사회 날짜를 잡을 정도니 누나로서 뿌듯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동생이 정말 잘되길, 나보다 훨씬 잘되길 바랐어요. 제가 추천해준 좋은 영화로 관객들과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지난 3월 중국에서 함께 화보 촬영을 할 때도 너무 좋았어요. 예전에 제가 찍는 화보에 동생을 출연시켜 굉장히 작은 역할을 주었을 때는 정말 미안했거든요.”
엄태웅이 톱스타가 된 이후에도 누나의 후원은 끊이지 않는다. 동생의 팬클럽 행사마다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가족의 발견> VIP시사회에는 어머니를 직접 모시고 왔다. 동생의 베드신을 보고 엄마가 외마디 소리를 질러서 앞에 앉은 선배 고두심씨에게 죄송하고 민망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엄정화의 표정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이날 시사회는 어린 시절 세 가족이 함께 나누었던 고생이 한꺼번에 보상받은 자리였다.
엄정화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어두운 단칸방에서 동생 혼자 우는 모습이다. 그녀가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세간이 하나씩 없어질 정도로 그들은 가난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고향인 충청도를 벗어나 서울 생활을 도모했지만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녀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신없이 오디션 자리를 찾아보았고, 엄마는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팔아가며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엄마의 포장마차를 찾았는데 때마침 단속에 걸렸던 적도 있다. 눈물을 삼키며 엄마는 앞에서 포장마차를 끌고 그녀는 뒤에서 밀던 아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아픔을 담담히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일에서 굳은 입지를 확보한 엄정화와 엄태웅. 이들 남매에게 마지막 효도의 과제는 바로 결혼이 아닐까. 엄태웅은 “누나든 나든 결혼만 하겠다면 어머니가 환영할 나이에 접어들었다”며 웃는다. 예전에는 손이 예쁜 사람이 좋다는 둥, 취향이 까다로웠지만 지금은 그저 느낌만 맞으면 된다고. 하지만 엄태웅에게는 확실한 조건이 하나가 있다. 이제까지 그를 위해 고생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 만한 ‘착한’ 여자가 바로 그것. 늘 조건을 무시할 수 있는 운명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꿈꿨던 엄정화도 이제는 진지하게 사랑을 찾아볼 예정이다. 두 남매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연기자로서 단단한 입지를 굳힌 지금이라면, 엄태웅의 말대로 누가 결혼하든 환영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