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政敎)일치 시대였던 당시, 예언자는 정신적 종교적 삶을 돌보는 임무 그 이상으로 백성의 삶의 가치와 질(質)을 결정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쳐준 사람들이었기에 백성들 안에서 그 권위와 존엄함이 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예언자에게 ‘거짓’이 붙는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백성들의 정신적 영적 상태는 물론이고 사회와 개개인의 삶 그 자체가 혼란과 무질서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짓’이 어떻게 진리와 진실만을 선포해야 할 예언자에게 붙게 되는 것일까요? 예언자에게 붙여진 권위와 존엄함에 취하게 되면 거짓과 위선을 부려서라도 그 권위와 존엄함의 부속물들을 탐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예수님은 ‘양의 옷차림을 한 게걸 든 이리들,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음(마태 7,15.17)’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언자에게 붙여진 권위와 존엄함, 그리고 그것이 부수적으로 부여하는 여러 혜택들은 사회와 백성들에게 진실함과 의로움으로 바르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때 주어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의무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것만으로는 그 권위와 존엄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행한 예언자로서 행한 직무가 바르고 긍정적인 영향력(좋은 열매)을 맺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맺은 열매를 보고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태 7,16)’
그렇다면 바르고 긍정적인 영향력(열매)을 맺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할까요? 예언자 자신이 먼저 ‘탐욕이 아니라 주님의 법에 마음을 기울이고, 헛된 것에서 눈을 돌리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자신이 가르치고 선포하는 주님의 계명과 법령을 마음을 다해 실천하는 것입니다.(시편 119,34-37)’
요즘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 윤리적 타락, 권위와 존엄함의 추락, 무질서와 혼돈을 보면서 그것을 마냥 탐욕에 빠진 정치인의 탓으로만 혹은 그릇된 물질만능과 이기주의에 물든 국민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음을 성찰하게 됩니다. 국민 전체에 참된 삶의 가치와 방향을 인간의 양심과 사상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의 종교 지도자의 보이지 않는 불성실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혹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신 권위와 존엄함의 부수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지도자들의 악영향은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정신적 영적 지도자, 어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법령과 규정(말씀)을 성실히 그리고 진실하게 묵상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공동체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 몫은 건강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있음을 상기합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마지막 길을 찾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마련하신 참된 길이 이 시대의 예언자들과 지도자들을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기를 기도하고 호소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