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번째 편지 - How many times can you say Wow?
제가 좋아하는 어느 외국 골프장의 스코어카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How many times can you say Wow?”
저는 그 문구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나는 18홀 골프 라운드를 하는 동안 과연 몇 번이나 Wow를 외쳤을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며 몇 번이나 Wow를 외쳤을까?”
저는 이 감탄사가 참 좋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누군가 “Wow”라고 말하면 저도 모르게 따라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골프장은 왜 스코어카드에 이 문구를 적어두었을까요.
그 골프장 홈페이지는 자신들의 코스를 “panoramic ocean views”, “natural beauty”, “unforgettable setting”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퍼들에게 완벽한 플레이보다 그날의 잊지 못할 순간, 날씨와 풍경, 함께 걷는 사람들과의 시간에 집중하라고 권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문장 하나가 라운드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는 것입니다. 몇 타를 쳤는지가 아니라, 라운드 중 몇 번의 Wow를 만났는가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 골프장에서 여러 차례 라운드를 하며 스코어나 실수는 조금씩 잊고 라운드 중에 만나는 Wow의 순간에 더 마음을 두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놀라운 풍경 앞에서 몇 번이고 Wow를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Wow는 한국어로 옮기자면 경탄(驚歎), 경이(驚異), 탄성(歎聲), 혹은 경외(敬畏)쯤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번역하고 나면 어딘지 특유의 맛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차라리 그냥 ‘와우’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뜻을 잘 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Wow는 무엇일까요.
사실 Wow는 단순히 샷이 잘 맞았을 때의 환호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어떤 압도적인 순간 앞에서 이성이 잠시 멈추고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 터져 나오는 원초적인 감탄사입니다. 그날의 라운드를 타수라는 세속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연이 선물한 경이로운 감동의 횟수로 평가해보라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문구는 꽤 철학적입니다. 스코어카드는 원래 숫자를 기록하는 종이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감탄의 횟수”라는 전혀 다른 기준을 끼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몇 타를 치셨습니까?” 동시에 이렇게도 묻는 셈입니다. “오늘 몇 번이나 세상이 당신을 멈춰 세웠습니까?” 스코어의 언어와 미적 경험의 언어가 스코어카드 한 장 안에 함께 놓여 있는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인간이 편안하게 느끼는 아름다움과 인간을 압도해버리는 거대한 아름다움을 구분했습니다. 태평양의 성난 파도나 끝없는 사막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 섞인 경외감을 숭고(The Sublime)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 앞에서는 “조경이 훌륭하다”, “뷰가 멋지다” 같은 수식어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풍경 앞에서는 언어 기능이 잠시 정지되고 맙니다. 그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가장 짧고 원초적인 소리. 그게 바로 Wow입니다.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치유하는 강력한 감정 가운데 하나로 경외감(Awe)을 꼽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느낄 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작아지는 이른바 ‘작은 자아’의 현상을 경험합니다.
그 순간 일상의 스트레스, 타수에 대한 집착, 개인적인 고민들은 거대한 태평양 앞의 먼지처럼 작아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심리적 해방감을 얻게 됩니다. 자신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압도적인 자연을 만나면 오히려 겨우 들릴까 말까 한 작은 목소리로 Wow를 내뱉습니다. 그 자연 앞에서는 Wow를 외칠 힘마저 무장해제되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오래 숫자로 평가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은 성적표가 나오면 전달보다 순위가 떨어진 학생에게 그 숫자만큼 벌을 주셨습니다. 1등도 다음 달에 1등을 못 하면 벌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Wow는 오직 성적표 안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아보니 Wow는 꼭 1등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때 굳어진 사고방식은 여전히 저를 스코어에 집착하게 만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의 성적, 직장의 서열, 재산의 규모, 심지어 혈압과 혈당 수치까지 세상의 많은 것들이 스코어로 제시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숫자들 속에서 자신을 평가하며 살아갑니다.
긍정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거대한 자연뿐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Wow를 느낍니다. 타인의 선의, 음악, 노을, 바람, 예기치 않은 친절 같은 순간들에서도 말입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3회 정도 이런 Wow의 순간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1년으로 환산하면 약 100회에서 150회에 이르는 숫자입니다.
저는 그 연구를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정말 우리는 그렇게 자주 Wow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한국인들은 고도성장의 시기를 지나며 숫자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감탄에는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이로움, 곧 Wow를 느끼는 빈도와 능력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60대 전후에 최고조에 이른다고 합니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경쟁과 같은 세속적 성취에서 조금씩 벗어날수록 사람은 저녁노을, 동반자의 웃음, 예술 작품처럼 일상의 작은 것들 안에서도 Wow를 발견하는 뇌의 회로가 열리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결국 삶을 스코어로만 바라볼수록 Wow는 줄어들고, 숫자 밖의 세계를 보기 시작할수록 Wow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돌아보게 됩니다. 대학교 합격이나 사법시험 합격 같은 성취의 순간에 저도 Wow를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스코어에 대한 Wow 말고, 길가의 작은 들꽃을 보고도 Wow를 외친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요.
어쩌면 인생을 멋지게 사는 길은 인생 스코어카드의 숫자에 집착하는 삶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 스코어카드 한 귀퉁이에 적힌 이 문장을 오래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How many times can you say Wow in your life?”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6.5.12 조근호 드림
첫댓글 살다 보면 평범한 일상속에서도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날때 와우! 하고 외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