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못이다.
밤 여덟 시 반!
새벽 다섯 시에 운동 오고 지금은 동양의 나폴리
통영을 다녀 온 후
숨고르기 하러 왔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재미가 꿀이다.
오랜 염원이었다.
어젠 우포늪.오늘은 통영이다
전국편지마을 회원으로 만난 사이다.
등짐이 무겁고 우울했던
35세 때 가입 했다.
편지를 쓰면서 명경지수로 바뀌었고 전국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25년!
결코 짧지않은 세월이다.
편지마을을 봇물처럼
사랑하고 마중물을 부어 온 터줏대감이다.
첫 편지를 보낸 곳은 고성 공룡마을에
사는 시인 친구.
그녀는 사람 마음을 단번에
낚아채는 매력덩어리다.
첫 편지가 인연이 되어 먼 곳에 있어도 이웃사촌인 듯 편하다.
족쇄로 동네 밖을 나가기도 힘든 시절에 그녀는
자꾸 초대장을 날렸다.
진심을 고봉으로 담은 편지에다 바닷길을 그려
보냈다.
그 바닷길도 함께 걷고 싶고 회도 실컷 먹이고 싶다고
했다.
미치도록 가고 싶었다.
하지만 화중지병이었다.
가슴바위에 새겨 두었던
버킷리스트를 25년 후에야
실천하게 되었다.
눈물나게 고마운 우정이고 친구다.
나를 만난 것이 로또 당첨만큼이나 행운으로
여긴다는 함안의 시인도
고맙고 사랑스럽다.
지난 번 고성 바다 갔을때
비싼 회도 먹여 주고 직접 만든 메리 골드.팽이 차도
보내 주었다.
무엇보다 나처럼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여 다이돌핀이 솟곧 한다.
최고의 우정과 문학과 열정과 모험심으로 똘똘
뭉쳤다.
여기까진 어젯 밤에 썼다.
지금은 날이 밝자마자
달려 온 두류산이다.
신들린 듯 에어로빅 후
힐링 동산 정자 벤취에
앉았다.
낙엽 홍수다.
내 행복한 마음 같다.
후다닥 갈무리 후 눈썹을
휘날리며 산길 뛰어 귀가하여 가방 메고
출근해야 한다.
꿈에서라도 가고 싶었던 통영!
열시에 출발하여 열두시에 도착 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 두 시간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단풍 구경도 실컷 했다.
두 시인이 만사를 제치고 화들짝 반긴다.
바다가 보고 싶어 환장하는 별난 여자를
위해 등대가 보이는 횟집으로 안내 한다.
육지에서 먹는 비주얼과는 천지 차이다.
통영 바다가 꿈틀대는 상차림에 환호성을
질렀다.
낙지.해삼이 꿈틀거리며 육지 여자 입에 착착 감긴다.
긴 대나무상이 두 차례 들어 온다.
반찬들도 생선 일색이다.
폭풍 흡입 후 친구가 짜 놓은 계획표대로
움직였다.
눈요기 욕심이 남다른 나를 위해 푸지게
보여 주려고 애를 쓴다.
남망산 공원과 유치환 문학관은 눈길만 주고
이순신 장군을 뵈러 갔다.
주부 한문교실 시간에 노익장을 과시하던
팔순의 선생님은 이순신 장군을 제일
존경한다고 하셨다.
이유는 양반이기 때문이란다.
문반.무반을 합한 것이 양반이란 것도
그 때 알았다.
문은 글.무는 무기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남겼으니 문인이요
나라를 지켰으니 훌륭한 군인이었다.
이순신 장군 앞에 서니 과연 제대로
애국을 하고 있는지 반성이 되었다.
그 때 불쑥 똑소리 나는 시인 동생이
말한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안 썼다면
과연 유명 했을까요?,,
오만방자하게도 수다상도 훗날 후손들에게 그런
가치를 발할까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나라는 기록 문화의 강대국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만해도 동양에선 최고라고 알고 있다.
징기즈칸이 유명하지만
몽고제국이 멸망한 건
기록이 없어서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수다상도 기록 문화다.
수십 년을 하루도 빼놓지않고 쓴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고 시대상을
반영한다.
자긍심이 하늘을 찌른다.
수다상은 나를 살린 깊은 계곡 산삼이다.
뭐니뭐니해도 통영하면 동피랑이다.
동피랑 입구에서 할머니 세 분을 만났다.
햇빛 바라기 하시며 뭔가를 드신다.
오지랖쟁이가 참새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 간다.
뭘 드시냐고 하니 보랏빛 고구마를 구워 드신단다.
먹어 보라며 접시를 쑥 내미신다.
회로 배가 만선이라 눈으로만 먹었다.
,,어르신들!
저는 대구에서 왔거든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억수로 고맙습니대이!
어르신들 모습이 마치
바다 같아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하면서도 덕담임을
알아 차리셨다.
언덕배기에 오르니 파란 그림이 버선발로 환영 한다.
동피랑!
감탄사를 연발하며 문학소녀들은 포즈를 취했다.
좁은 길을 따라 갔다.
사진관.글귀.까페.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지킨 동포루.
올망졸망 정겨웠다.
사춘기 소녀들 모습 같다.
친구는 미꾸라지 마냥 예쁜 곳을 찾아 다니는 나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차를 놓치면 낭패다.
갈무리는 터미널 까페에서
하기로 했다.
횟값을 제외한 모든 차 값은
내가 낼테니 주머니에 손도
넣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종일 바다 타령을 했다.
터미널 옆에 바다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뒷편에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설빙이다.
옛 팥빙수와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북적대는 대구와는 달리 횟집도 카페도 우리가 전세낸 듯 했다.
코로나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는 천혜의 고장이다.
봄볕같은 통영과 시인들과 작별 했다.
꼭 다시 오겠다고 바다와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대구행 저녁 6시 출발!
승객은 달랑 2명!
전세버스 낸 듯 아주
편하게 왔다.
두 시간이 노루꼬리다.
독자들에게 통영 사진 보내고 댓글 다니 금방
서부정류장이다.
애첩에 빠져 있다가 본첩을
만나니 눈물나게 반갑다.
익숙함은 안정감을 준다.
열심히 일하다가 오는 척
연기하면서 거실로 들어 섰다.
윤장금이 박카스를 들고
애교 많은 아내처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