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털록의 저주 ]
‘공공선택이론’의 창시자인 고든 털록(Gordon Tullock)은 승계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권위주의 정권은 그로 인한 혼란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야성 황(Yasheng Huang) 교수는 승계 갈등이 독재 체제의 본질에 내재한 저주라는 의미에서 이를 ‘털록의 저주’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털록의 저주'는 권력 투쟁과 리더십의 경화(경직성)로 인해 모든 독재정권의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이론에 기반하여 털록은 1987년에 북한과 싱가포르가 권위주의 세습의 길로 나아가리라고 예상한 바가 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7년 전이었지만 북한은 털록이 예언한 대로 김정일이 권력을 세습했습니다. 싱가포르는 고촉동을 거쳐 그의 아들인 리셴룽이 총리직을 물려받았습니다.
털록의 저주에서 벗어나 독재정권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권력을 세습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입니다. 북한은 김일성의 아들과 손자가 권력을 이어받았습니다. 과거 왕조 시대처럼 같은 핏줄만이 권력을 이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세습은 심각한 권력 투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북한과는 달리 세습에 기반하지 않은 중국 공산당의 후계 승계 방식은 수많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명된 첫 번째 인물은 류사오치(劉少奇)였습니다. 그는 마오쩌둥과 같은 후난성 출신으로 공고한 후계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1968년 모든 공식적인 지위를 박탈당한 후 가택연금 상태에서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마오쩌둥의 두 번째 후계자였던 린뱌오(林彪)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 암살 계획이 발각되면서 소련으로 망명을 시도하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덩샤오핑 역시 자신이 구축한 후계 구도에 따른 두 명의 후계자(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를 스스로 축출함으로써 털록의 저주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국이 털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은 덩샤오핑 치하에서였습니다. 그에 따라 1989년 장쩌민(江澤民), 2002년 후진타오(胡錦濤), 2012년 시진핑(習近平)까지 질서정연한 후계 승계가 이루어졌습니다.
국가 주석직을 두 번만 맡고 은퇴하도록 한 임기 제한 규정은 중국 정치를 안정시켰고 털록의 저주를 완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임기 제한이 있었던 1989~2012년에 중국 공산당은 현직 지도자의 임기가 만료되기 훨씬 전에 승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을 마무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10월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선례를 깨고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함으로써 평화롭고 주기적인 권력 교체의 전통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2027년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할 것이 확실시되는 시진핑에게 자발적인 퇴임이라는 선택지는 없어 보입니다.
여러분이 시진핑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2012년 이후 400만 명 이상이 숙청당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처형되었습니다. 이들은 권력과 특권을 박탈당하고 가혹한 심문을 받은 후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한때 군과 안보 기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보복과 응징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겠습니까?
2002년과 2012년에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는 드물게 연속적으로 평화적인 권력 이양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향후 권력 이양을 위한 로드맵도 후계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시진핑은 임기 제한을 폐지하고 권력 투쟁에 불을 붙임으로써 덩샤오핑이 램프 속에 가두어두었던 털록의 저주를 다시 풀어놓고 말았습니다.
이제 중국은 재앙과도 같았던 마오쩌둥의 종신 집권 체제로 완전히 돌아갔습니다. 마오쩌둥 시대는 독재적이었고 권력 투쟁과 후계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며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습니다. 시진핑 사후 중국이 맞이할 불길한 미래가 이와 같은 모습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