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부활하는 우승열패의 세계, 동맹은 없고 거래만 있다
미국 제일주의의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답을 찾아야 하는가
트럼프가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의 결과로 글로벌 팍스 아메리카는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2020년대 중반부터 그 어떤 질서도 없는, 서로 경쟁하고 경쟁하면서 거래하고, 약소국들을 맘대로 침략해도 되는 대국 몇이 주도하는 약육강식의 분절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한 ‘보호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무기 수출 등으로 생기는 이익 등을 최대화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는 ‘보호가 빠진 이윤 갈취’가 더 이상 한국의 지배층을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가 상징하는 고립주의로 회귀는, 어쩌면 상당 기간 미국 대의 정책의 기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남북한 대화를 재개하고, 중국 등 역내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미국의 후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역내 안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아마도 장기적으로 가장 좋은 대응이 아닐까요?
미국은 반공 정책으로 비교적 효율적으로 소련의 국유 경제를 고사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데 미국 쪽에서 이제 반중 차원에서 아무리 탈동조화를 거론하고 아무리 ‘최첨단 기술의 대중국 수출 통제’를 정책 기조로 삼아도, 뾰쪽한 효과를 지금까지 볼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볼 것 같지 않습니다. 중국처럼 수출 주도로 발전해 온, 미국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이미 스스로 최첨단 기술 발전이 가능한 국가 주도의 혼합 경제를, 반중 정책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2030~2040년대에는 미-중의 패권 공유랄까, 글로벌 패권의 일종의 ‘나눠 먹기’가 뚜렷해지고, 중국과의 협업과 경쟁을 겸하는 미-중 관계에서 미국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수세에 몰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 포스트 서구 세계의 도래는 ‘위기’라기보다 ‘기회’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고립주의로 희귀와 전체적인 국력의 저하가 ‘안보 공백’을 초래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어차피 궁극적으로 한국은 자주국방을 전제로 미국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는 지역적 안보 구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한국의 수출에서 구미권과 일본의 비중보다 중국과 아세안의 비중이 더 크고, 한국의 문화 상품들은 구미권 이상으로 비서구권에서 잘 팔립니다. 발전국가 모델의 경험이 있는 한국은, 필요시 포스트 서구 세계에서 더 일반화하고 있는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을 펼칠 역량과 갖추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역시 구미권 못지않게 신자유주의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펴낸곳: 한겨레엔. 2026. 2. 20 발행. 강서도서관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