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앞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날 그대로 앉아 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 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따로 붙여 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 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 문제로 이런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 낸 의자, 저기 잘 내려앉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다. 의자가 쉬고 있다.
첫댓글 의자를 동물과 비교하였다.
"의자가 앉아 있다. 쉬고 있다" 의미는?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앉게 해 주는 일을 하느라 힘들었던 의자가 앉혀야 할 사람이 없을 때는 비로소 자신도 앉아서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자의 역할:
누군가를 자신에게 앉게 해서 편안히 쉬게 해 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