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 희망의 세레나데
귀에서 입까지의 거리는 겨우 네 치에 불과하다.
귀로 듣고 곧 입으로 내는 천박한 학문을
구이사촌지학(口耳四寸之學)이라 한다.
그렇게 해서는 칠 척이나 되는
몸 전체를 윤택하게 할 수가 없다.
* 순자(筍子 BC298-BC238)
중국 고대의 3대 유학자 가운데 한 사람.
[끈끈이주걱]
글: 오탁번
뒷개울 건너 공동묘지 가는 길은
작은 벌레 잡아먹는
끈끈이주걱 흰 꽃이
고수레 밥풀처럼 하얗게 피었다
낙향한 선비의 콧수염 같은
제비붓꽃이
촉루가 된 주검들의 보랏빛 사연을
하늘 멀리 띄울 때
하루살이 애벌레 잡아먹는
끈끈이주걱 홍자색 털이
내 어린 종아리에 자꾸 달라붙었다
하늘이 오리알 빛으로 물들 때면
끈끈이주걱에게 잡아먹힌
이름 모를 벌레들의 영혼이
송장메뚜기 뛰어오르는 풀섶에서
동글동글한 열매로 익어
껍질을 터뜨리고 길섶에 흩어졌다
서리병아리 울음 따라 가을이 깊고
긴 겨울 지나 봄이 돌아오면
보리누름은 아직도 먼데
쌀뒤주는
바닥이 났다
뒷개울 건너
공동묘지 가는 길은
끈끈이주걱이 어지럽게 피었다
나도 한 마리 벌레가 되어
밥주걱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살고 싶었다
흰 쌀밥
여름 내내 냠냠 먹다가
통통하게 살찐 벌레의 영혼이 되어
이승의 하늘 아래
깜장 열매로 흩어지고 싶었다.
끈끈이주걱(Sundew)
학 명 : Drosera rotundifolia
꽃 말 : 파리의 눈물, 발을 조심하세요.
원산지 : 한국
[꽃이야기]
끈끈이귀개(끈끈이주걱)과의 여러해살이풀
식충식물로 우리나라 각처 산지의 축축하고
볕이 잘 드는 습지에서 자생합니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자생하였으나 지금은
생태환경의 변화로 희귀식물로 전락하였으며,
요즘은 식물원에서 만날 수 있다.
식충식물이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부르지만
곤충을 포식하는 방법과 전략은 제각각 다릅니다.
색이나 무늬, 독특한 냄새로 유혹한 뒤 찾아온
곤충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요.
주머니나 뚜껑이 달린 함정을 파기도 하고
끈끈이로 붙잡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끈끈이주걱은 희귀성 때문에 보호대상이지만
이건 야생 자생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조직배양 기술을 통해 수많은 끈끈이주걱이
복제되어 팔리고 있습니다.
끈끈이주걱은 이름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끈끈이전법을
씁니다. 작은 주걱처럼 생긴 잎에 선모가 달려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아름답고도 무서운 기관입니다.
끝이 빨갛게 보이는 이 선모에는 보통 이슬방울 같은
것이 맺혀 있습니다. 햇볕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데다가 달콤한 냄새까지 풍기니 곤충이나 사람이나
모두 그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지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든 작은 곤충은 끈적거리는
선모에 닿으면 빠져나갈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몸부림을 칠수록 그 올가미는 점점 조여지고 선모를
움직여 곤충을 적절한 위치로 옮긴 뒤 먹어 버리지요.
한여름에 청순한 흰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의 두 얼굴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크기는 6~30cm 정도이고,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둥근 모양으로 옆으로 퍼지며, 잎자루가 길고 주걱
모양으로 엷은 홍자색을 띤 선모(腺毛)가 빽빽이
덮여있어, 끈끈한 액체를 분비하며 벌레를 잡아
소화하는데 이용합니다.
꽃은 7월에 흰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꽃줄기 끝에 10 송이 정도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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