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한 편에서는 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양쪽 다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옛 조상들은 같은 핏 줄끼리의 결혼은 피해 왔다. 동성동본은 물론이었고, 심지어는 글자만 같아도 결혼하지 않은 성씨도 있다. 조(趙)씨가 그렇다. 조씨들은 본관이 다르더라도 옛날부터 혼인을 피해 왔다. 이는 글자가 같은 조(趙)의 성씨는 그 뿌리를 따라 올라가면 모두가 한 핏줄이라고 생각하여 동성동본은 금혼 이상으로 혼인을 피해 왔다.
조씨의 기원은 고대 중국 전설의 제왕인 전욱(顚頊)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주나라 목왕의 호종공신이었던 가차대부의 조부가 조씨의 성을 사성 받아 그 명칭을 딴 조(趙)나라의 왕이 된 것이 조씨의 등장으로 보는 데, 그가 전욱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조(趙)씨들도 이 전욱에게 기원을 두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 이 조씨 성은 문헌상으로는 210본이 전해지나 현재 드러난 본관 수는 약 15본 정도로, 그 중에서 풍양, 한양, 함안, 양주, 횡성, 옥천, 임천, 백천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글자가 다른데도 결혼하지 않는 성씨도 있다. 안동 권(權)씨와 안동 김(金)씨가 그렇다. 안동 권씨와 안동 김씨의 시조는 다르다. 안동 권씨는 고려 개국공신인 권행(權幸)이 시조이다. 권행의 원래 성씨는 김씨였는 데, 왕건으로 부터 권(權)을 성으로 사성을 받아 권씨가 되었다. 안동 김씨는 구 안동 김씨와 신 안동 김씨가 있는 데, 이 두 김씨는 시조가 달라도 상계가 같은 혈족이라 한다. 그래서 혼인하지 않는 다. 이에 권씨도 똑 같은 이유로 권행의 상계가 안동 김씨와 같다는 것이다. 또 유(柳)씨와 차(車)씨, 김해 김(金)씨와 김해 허(許)씨도 윗대가 같다하여 혼인을 금하고 있다.
*참고*
왕건과 같이 고려를 건국한 일등공신 세 분 즉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그리고 유검필의 후손(申,庾,裵,卜)들도 오랫동안 결혼을 피해 왔다. 그 이유는 궁예를 몰아내기 위하여 혁명을 할 때, 이 네 장군들이 모여 피를 한 그릇에 모아 섞어서 나누어 마시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굳은 약속을 하면서 의형제를 맺었다 하여 그 후손들은 조상들의 그 결의를 존중하여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지켜왔으나,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하여 서로 결혼을 하기도 하는 데, 지금도 이 말이 각 문중에서는 구전으로 전하여 오고 있다.
첫댓글조선조에 문화류씨 족보를 보면 柳(류)씨와 車(차)씨 결혼 사례가 있습니다. 문숙공 류사눌(예문관 대제학) 아들도 차문과 결혼 했습니다. 車씨와 柳씨는 아무 관련이 없으나 일부 僞書(위서)에 의해 해방후 결혼 안한 사례는 있으나 현재는 결혼합니다. 원문보기에서 확인하십시오. 이런 글을 보시면 적극적으로 댓글 달아 주십시오
1.수천년 역사 속에서 동성동본 혼인금지는 몇백년 안되는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 완전히 정착된 임란이후부터이고 근래에는 이 제도도 폐지되었다. 2. 신라,고려시대 왕족들을 같은 혈연 사촌,고모,조카들도 혼인을 하였다. 3. 문화류씨 가정보에도 동본은 아니지만 여러 류씨들과 혼인한 사례도 무수히 많다. 4. 흔히들 매장문화에서 역장(예를들어 부모 위에 자식 무덤이 있는 경우)도 조선중기부터나 정착된 것으로 그 전에는 역장문화도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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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공 류사눌(예문관 대제학) 아들도 차문과 결혼 했습니다.
車씨와 柳씨는 아무 관련이 없으나 일부 僞書(위서)에 의해 해방후 결혼 안한 사례는 있으나 현재는 결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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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천년 역사 속에서 동성동본 혼인금지는 몇백년 안되는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 완전히 정착된 임란이후부터이고 근래에는 이 제도도 폐지되었다. 2. 신라,고려시대 왕족들을 같은 혈연 사촌,고모,조카들도 혼인을 하였다. 3. 문화류씨 가정보에도 동본은 아니지만 여러 류씨들과 혼인한 사례도 무수히 많다. 4. 흔히들 매장문화에서 역장(예를들어 부모 위에 자식 무덤이 있는 경우)도 조선중기부터나 정착된 것으로 그 전에는 역장문화도 많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