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300억대 5층 건물
청사 확보용으로 받은 뒤… 직원 숙소로 '예산 낭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을지병원 앞 네거리에는 붉은 타일을 붙인 5층 건물이 있다. 간판도, 현판도 없는 데다 건물 1층 유리창에는 검은 셀로판지를 붙여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건물 정면 중앙 유리문 안쪽 덧문에만 '직원 외 출입을 금함'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대형전자마트·외제차 서비스센터·은행 등이 밀집한 노른자위 땅 한복판에 있는 이 건물은 국세청 기숙사다. 남자 42명, 여자 52명 등 총 94명이 살고 있다. 원래는 여관이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신영수 의원(한나라당)이 8일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993년 12월 여관 소유주로부터 밀린 세금 대신 건물을 물납(物納)받았다.
- ▲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을지병원 네거리에 있는 국세청 기숙사인‘서울세우관’ (점선 안). 현판이나 간판이 없어 밖에서 봐서는 무슨 건물인지 알 수 없다./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서울세우관은 대지면적 1112.60㎡(336평)에 건물 연면적 3161.19㎡(956평)이다. 방(18㎡·5.5평)은 총 62개다. 방마다 에어컨·화장실·샤워시설이 있다. 혼자 쓰면 월 20만원, 2명이 쓰면 월 13만원, 3명이 쓰면 월 11만원이다. 아침·저녁으로 국과 반찬 3가지로 구성된 식사가 나온다. 1층 체력단련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 없는 방(6.6㎡·2평)은 월 40만원, 화장실 딸린 방(13.2㎡·4평)은 월 50만원 하는 인근 골목길 고시원보다 훨씬 싸다.
서울세우관은 공시지가로 따져서 땅값만 150억원(2009년 기준)이다. 시세는 300억원 안팎이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자 A씨는 "지난해 이 건물에서 200m쯤 떨어진 부지가 평당 8000만원에 팔렸다"며 "이 건물은 입지조건이 나아 평당 1억원쯤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국세청은 "처분이 안 돼 할 수 없이 기숙사로 쓰고 있다"고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강남 도심에 있어 금방 팔릴 것 같지만 '3종 일반주거지역'이라 용적률(250%)이 낮고, 층고 제한(4층 이하)이 있고, 지하철 3호선이 통과해 지하를 깊게 팔 수 없어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국세청은 "원칙대로라면 청사 확보용으로 지급받았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에 반납하고 새로 예산을 배정받는 게 맞지만 숙소 확보가 시급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3종 일반주거지역에도 소매시장과 상점이 들어갈 수 있다. 외제차 서비스센터와 대형전자마트가 입주한 바로 옆 건물도 3종 일반주거지역과 일반상업지역이 혼합돼 있다.
대형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 B씨는 "주소는 신사동이지만 사실상 압구정동에 속하는 알짜배기 땅인데 안 팔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신영수 의원은 "민간기업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