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 오쇼
그대는 말한다.
“제 안에는 작고 귀여운 어린아이가 있는데, 저는 오랫동안 그 아이를 무시해 왔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개구쟁이이고, 호기심이 많고, 무아지경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의 언제나 그 아이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에 의해서 각인된 두려움이다.
늘 흐트러짐 없이, 규율을 따르고, 연장자를 존경하고, 성직자와 부모와 선생들을 따라야 한다.
그들은 그대에게 무엇이 가장 옳은 일인지 다 알고 있다.
그대의 본성은 절대로 제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
그대는 차츰 자기 내면에 죽은 아이를 품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대의 품에 있는 이 죽은 아이는 그대의 유머감각을 파괴한다. 그대는 가슴 전체로
웃을 수 없고, 흥겹게 놀 수 없고, 삶의 아주 사소한 즐거움도 향유하지 못한다.
너무나 심각한 사람이 된 나머지 그대의 삶은 팽창하기보다 수축하기 시작한다.
나는 왜 기독교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종교 세력이 되었는지 항상 궁금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십자가와 예수의 처형이 너무나 슬프고
심각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도 그대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미소를 지을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한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그 심각함, 그 슬픔으로 인해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 더 넓게 확산될 수 있었다.
나는 우리의 교회, 사원, 모스크, 예배당이 심각하지 않고, 더 흥겨워지고,
더 많은 진정한 웃음과 기쁨으로 넘쳐나기를 바란다.
그것은 인류에게 더 건강하고, 전체적이고, 통합된 정신을 안겨줄 것이다.
오쇼의 <내 어린 시절의 황금빛 추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