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불교계의 동부지역의 한국불교계 대표사찰 (2)
<뉴욕 원각사 >
글 김형근
설법하는 현 주지 정우스님 (휠체어에 앉아있는 법안스님)
법안스님의 포교방법
법안스님이 원각사를 맡으면서 포교를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는데 그 첫 번째가 서예지도였다. 매주 토요일 2-3시간씩 뜻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료로 서예지도를 했다. 이때 정신과 의사인 김수곤, 임원기씨등과 미국인 짐 고든씨 등이 매우 열심이었다“고 법안스님은 당시를 회고했다. 그후 원각사가 현재의 장소로 이사오면서 시내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서예가 중단되었지만 현재의 장소에서도 뜻있는 젊은이들이 아침 일찍 찾아와 법안스님의 지도를 받았다.
불경강의는 1978년부터 4,5년 동안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있었는데 이 강의에는 불교를 이해하려는 기독교인들과 지식인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에 뉴욕지역 불교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 현재의 원각사에서도 관심있는 청년들과 부근에 사는 의사 이 범수씨등을 대상으로 불경강의를 했다.
원각사 법회는 법안스님이 주로 했지만 박성배 교수가 버클리에서 학위과정을 마치고 1977년 뉴욕주립대로 오면서 매월 1회씩 설법을 했고 그 외 현 전북대학교 강건기 교수가 뉴욕대학교 재학중 원각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 외에도 뉴욕에 거주하는 장훈신부를 비롯하여 현 감리교 신학대 학장 변선환 교수,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젊은 기독교 학자들인 서청원 목사, 이재환 목사 등 기독교인들에게도 자주 강연기회를 주었다. 또 문서포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법안스님과 신도회장 최종일 씨등이 적극 주장하여 김형근씨를 편집인으로 하여 월간 ‘원각’을 1986년 5월에 시작하여 2년 넘게 25호 까지 발행하였다. 처음에는 16쪽으로 시작하여 점차 쪽수가 늘어 20호 부터는 40쪽까지 되었다. 이 잡지는 계속할 수 있었지만 법안스님의 불의의 사고로 부득이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한인 퍼레이드 장면
법안스님은 뉴욕 원각사에 오자마자 뉴욕대학에 등록을 하여 1978년에 석사를 받았다. 그리고 박사과정으로 학업을 하면서 1981년 2월부터 뉴욕시내에 있는 New School대학교에서 1주일에 한번씩 출강하여 1986년까지 했다. 이 강의를 하면서 영어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1988년 2월 22일 뉴욕대학교에서 “원효의 화쟁사상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 법안스님으로서는 원각사 주지를 하면서 틈을 내어 열심히 노력하던 결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며칠뒤인 3월 8일에 글을 쓰다가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수술을 받고 오랜 병원생활 끝에 지금은 원각사에 머물면서 요양중이지만 아직은 왼쪽 팔과 말을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다. 도량도 넓은 곳으로 옮기고 박사학위도 받았기 때문에 법안스님이 계획하였던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막 갖춘시기에 일어난 법안스님의 발병은 법안스님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원각사 나아기 미주한국불교계의 크나큰 아픔이기도 한 순간이었다.
법안스님의 불의의 사고와 수술에 관련해서 여기에 기이한 인연이 있는 것 같아 좀더 자세히 서술하겠다. 필자는 원각사가 맨하탄 17가에 있을때 법안스님과의 인연으로 원각사에 1985년 10월부터 기거하고 있었다. 그후 원각사가 현재 장소로 이전하면서 당시 필자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원각사에 있다가 뉴욕시로 나오곤 했다. 원각사가 장소를 이전하면서 토요일에 법안스님이 불교강의를 했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하였다. 이 강좌의 사람모으는 일은 필자가 맡아하였다. 이 강좌를 시작하면서 신문 안내란에 수강생을 모집하는 불경강의 보도를 냈는데 이 기사를 읽고 원각사 부근의 뉴버그에 사는 의사인 이범수씨가 합류하였다. 법안스님 사고는 3월 8일에 발생하였는데 이 날은 월요일이어서 평상시 필자는 뉴욕시내에 있었지만 그날은 아침에 원각사에 들어와 있었다. 샌디에이고 불광사 주지를 잠시 하다가 현재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고창 선운사 출신 선진스님이 이 시기에 원각사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필자는 선진스님 방에서 스님과 함께 비데오테이프로 ‘원효대사’를 시청중이었다. 선진스님은 사시예불을 하러 법당으로 나가던 중 법안스님이 <MR. 김>을 찾으니 필자에게 스님 방에 올라가 보라고 했다. 법안스님 방에 가보니 스님은 의자에서 옆으로 쓰러진 상태에서 토하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것을 알고 기도하러 가는 선진스님을 큰 소리로 불러 법안스님을 방바닥에 반듯하게 뉘였다. 그리고 즉시 이범수 박사에게 급히 연락을 취했다. 그날 필자가 원각사를 방문하면서 이 박사 명함을 지갑에 넣고 왔는데 이것을 보고 쉽게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박사는 급히 엠블런스를 보냈고 그 지역의 여러 병원중 가장 크고 수술이 가능한 병원에 연락을 하여 모든 준비를 다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검사를 한 결과는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여부를 총무인 혜관스님, 신도회장을 지낸 의사 최종일박사 등이 협의하여 수술을 받았다.
앞으로 원각사의 게획을 법안스님을 통해서 알아보았다.
법안스님은 “가능한 모든 것을 계획을 세워 하나씩 단계적으로 해 나가고 싶습니다. 대웅전 건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해 안으로 맨하탄에 포교원을 내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제 몸을 점차 회복시키면서 신라시절 자장율사가 서라벌에 9층탑과 황룡사를 세워 삼국통일의 기틀을 닦았으며 백제 고승들이 백제탑과 미륵사를 지어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했으므로 이 고승들의 역사적 의의를 살려 9층탑과 황룡사 그리고 백제탑과 미륵사를 이곳에 복원하여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싶다”고 장기적이고 원대한 포부를 피력하였다.
법안스님이 신도들에게 보냈던 신년 연하장
복잡한 뉴욕시내를 벗어나 1시간 30분만 가면 넓은 터에 자리잡은 원각사가 많은 불교인들 그리고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터전이 되기 위하여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식 전통 대웅전이 하루 빨리 들어서야 할 것 같다. 또 원각사가 커지면 여기에 따른 재정관리와 신도관리를 위해 사무기계의 현대화와 전문인력을 고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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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845-497-3787, 2185, 2229
1990년 4/5월호 통권 4호
이 글은 16년 전에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현재의 원각사와 상황과는 다른 기사 내용이 많다. 혜관스님은 입적한지 오래되었고 신도들을 위한 차량 제공도 원각사 자체 밴으로 하고 있다. 또 현재 원각사는 서울 양재동의 구룡사 정우스님이 2004년 11월에 주지로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