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략 ② N분의 1
기존 대형 설비를 2분의 1, 3분의 1로 나눠 운영하는 것이다. 가정용 에어컨의 경우 기존엔 연산 30만대 기준의 대형 프레스기를 사용했는데, 그 정도 생산량을 유지해야 이익이 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침체됐을 때나 신흥국에 새 공장을 지을 때, 이런 대규모 생산량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를 N분의 1로 줄이면서도 이익이 나는 구조, 즉 연산 30만대 프레스기를 3분의 1로 소규모화 해 연산 10만대 기준 프레스기로도 이익이 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다이킨은 현재 연산 5만대 기준 프레스기로도 수익이 나는 구조를 확립했다. 이런 개혁을 계속해 생산량이 줄어도 어떻게든 이익을 낼 수 있는 공장을 만들면, 코로나 사태와 같은 수요 급감 상황에서도 경쟁사보다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다.
♧ 전략 ③ 코스트오토메이션
코스트오토메이션이란 무조건적인 자동화를 하지 않고 모든 부분에 비용 대비 효율을 철저히 따져 자동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해서 효율적인 부분까지 굳이 자동화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로봇 등을 대량 투입해 전부 자동화해 버리면 스몰 제조에 최적화된 공장으로 진화하는 것을 오히려 저해할 수도 있다. 생산 현장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미세 조정이 잘 안 돼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태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이킨은 생산 현장의 진화 여지를 남기는 자동화를 선호한다.
“말단부터 임원까지 의견은 다 듣는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 문제 사원에서 CEO가 된 다이킨공업 일으킨 이노우에 회장
세계 1위 공조 기업 다이킨공업(이하 다이킨)을 만든 인물은 이노우에 노리유키(井上禮之·사진) 회장이다. 1994년 사장 취임 이후 2002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2014년 CEO 퇴임까지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었던 2008·2009년을 뺀 모든 기간에 연속 성장을 이끌었다.
이노우에 경영의 핵심은 중의독재(衆議獨裁)다. ‘사람은 내치지 않는다. 말단부터 임원까지 의견을 듣는다.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이해·설득시킨다. 그러나 최종 판단은 사장 독단, 책임도 스스로 진다’이다.
그는 대학 졸업 때까지 꿈이 없었다. 교토대 교수로 토론을 즐기는 인텔리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열등감이 많았다. 교토대 출신이 즐비한 수재 집안에서 교토대를 못 간 것도 작용했다. ‘어디 취직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몰랐던 오사카금속공업(현 다이킨)에 들어간 것도 아버지 연줄이었다. 들어가서도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노는 게 좋았다. 영업직을 희망했지만 총무과에 배속, 자존심도 의욕도 사라졌다. 입사 1년 후 싫증이 나 무단 결근했다. 술과 마작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돈도 갈 곳도 없어진 열흘 뒤 조용히 다시 출근했는데 동료들이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다. 그 포용력, 귀속할 장소가 있다는 안도감. 회사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사람을 좋아했던 이노우에는 그 뒤 총무·인사 업무에 혼신을 다했다. 회사 안팎 갖은 문제를 사람들과 부딪쳐 가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차츰 인정을 받게 됐다.
1994년 그는 창업자 장남인 야마다 미노루 당시 사장의 지명을 받아 차기 사장에 올랐다. 회사 주력인 공조 사업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총무·인사 전무를 사장으로 임명한 일은 사내에 큰 충격이었다. 그가 임명된 것은 회사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다. 20년간 사장으로 재임한 마지막 5년의 야마다는 측근에게 둘러싸인 벌거벗은 왕이었다. 부문장들은 파벌을 만들어 군웅할거. 이 상황을 부수고 구성원 마음을 한데 모아 회사를 살리라는 명을 받은 게 이노우에였다.
신임 사장을 기다린 것은 17년 만의 적자였다. 버블(거품) 붕괴로 39억엔 적자. 그러나 그때부터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까지 이노우에가 이끈 다이킨은 14년 연속 증익을 달성했다. 비결은 직원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 스스로 목표를 제안하고 성과를 내게 한 것이었다. 본인이 입사 초기 방황했을 때 회사가 믿어준 덕분에 실력을 발휘한 것을 직원들에게 그대로 대입한 것이었다.
이노우에는 야마다 전 사장의 명을 신속히 이행했다. 가정용 에어컨 사업을 재건했다. 이전 경영진이 공산국이라 싫어했던 중국 시장 진출도 성공시켰다. 계속 적자였던 신규 사업도 정리했다. 사업 철수로 200여 명이 남았지만 일일이 면담해 다른 일을 맡겼다. 떠난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이전 사장 시절 측근이었던 ‘군웅’들도 잘라내지 않고 전원 직급 정년까지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