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대축전(野大祝典)의 뒤안길에는 법정에서 실형선고된 범죄자와 고소고발에 엮인 형사피의자들의 얼굴이 수두룩하다. 보기 드문 얄궂은 풍경이다. 선거사범은 6개월 시한 처리가 관행적으로 명시돼 있다. 멀지 않아 최소한 10여지역이 보궐선거로 이어질 빌미가 넉넉해 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22대 국회가 개막하는 6월 이후의 정국 기상도를 점치는 논설들이 신문 앞머리를 어지럽게 장식한다. 집권 세력의 참패 원인을 깡그리 윤석열대통령의 몫으로 치부하는데 방점을 찍는 흐름이다. 말마디께나 한다는 낯익은 얼굴들이 방송에 출연. 윤대통령의 소통부실을 꾸짖는데 초점을 맞춘다. 언론의 ‘비겁한 속성’이 에누리없이 본태(本態)를 노출하는 대목인지도 모른다. 국힘당 한모퉁이에서도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삐딱하게 보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튕겨 나온다. 잘 나갈 때는 ‘행동하는 뚝심’이라고 윤석열행보에 박수쳤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머리를 돌리는 몸짓이다. 국어사전은 ‘뚝심’을 “굳세게 버티는 힘”으로 ‘고집’을 “자기의 의견을 굳게 지킴”이라고 적고 있다. 따지고 보면 뚝심과 고집은 엷은 종이 한 장 차이다.
9회말 2아웃 타석에 섰던 한동훈총괄선대위원장의 예리한 선구안에 갈채를 보냈던 사람들이 돌아앉았다. 패장(敗將)의 귀거래사는 “무언상책”(無言上策)이라 했던가. 그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는 의젓이 돌아올 것이다. 한위원장의 ‘100일 행보’를 겨냥 “아이돌 흉내 내면서 셀카로 대권놀이하다가 당을 말아먹었다”고 모질게 폄훼한 대구시장의 내부총질은 볼썽사나웠다. 치받는 가슴을 달랜다는 핑계로 당중진들이 삼삼오오 밤새워 통음하면서 환골탈태의 기상을 일으켜세우자고 다짐했다는 소식이다. 본디 정치판은 인정머리 메마른 맨땅 위 각자 도생의 한마당이란 잔인한 쓴소리가 있거늘. 허허실실(虛虛實實)로 받아넘길 수밖에...
한편 기고만장한 거야(巨野)쪽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민주당 이재명대표는 윤대통령과의 영수화담을 제의했다. 뒤질세라 조국혁신당 조국대표도 대통령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두 사람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선명 경쟁심리에 흠뻑 젖어 있다. 조대표는 공개적으로 “윤대통령의 잔여임기3년은 너무 길다 조기종식시켜야 한다”고 외친다. ‘끌어내야 한다’는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혁신당 당선인들을 이끌고 동작동 현충원을 참배한 조국대표는 방명록에 ‘사즉생’(死卽生)이라고 썼다. 유별난 이색적인 화두가 아닌가. 미루어 짐작컨대 입시비리사건으로 온가족이 나란히 고초를 겪고 있는 터에 사직(司直)을 향한 가슴에 품은 복수심을 상징화한 일필(一筆)이 아닌가. 말의 강도(强度)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대표도 “회초리에 말 안듣는 머슴은 해고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종식’과 ‘해고’는 같은 개념의 초록동색. ‘탄핵’의지를 진하게 함축하고 있다. 언제든지 ‘촛불’을 밝힐 준비가 돼 있다고 떠들썩거리는 좌파유튜브의 분별없는 목청 구린내가 역겹다.
4·10총선 이후 오늘의 민주당은 한치 틈새도 없는 ‘이재명당’이다. 조국혁신당도 불문가지(不問可知) ‘조국당’이다. 두 사람의 이념 성향은 거의 비슷한 궤도를 밟고 있다. ‘자유’를 기피하는 사회주의 편향의 색깔이 짙다. 두 사람의 경쟁심리는 대여투쟁의 확대 재생산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재명 강성지지자들은 사법부의 ‘민주적 통제’를 군불대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이재명 신변보호를 위한 노림수가 번쩍이는 대목이다. 의회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한 여세를 몰아 법원 길들이기를 꾀하고픈 가당찮은 모사(謀事)가 아닌가.
22대 국회의장 자리는 당연히 제일다수당의 몫이다. 국회법은 ‘의장은 당적을 포기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민주당은 당적 포기조항을 삭제할 것을 꾀하고 있다. 승자 독식의 본보기다. ‘입법 폭주’를 예고하고 있는 그들은 국회가 열리는 즉시 김건희특검 최상병특검 이태원특검 한동훈특검 등 특검 돌개바람을 일으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손발을 왕창 묶을 작정이다.
이런 가운데 총선 6일만에 나온 윤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인상적인 ‘울림’을 낳지 못했다. 13분짜리 육성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으로 생중계됐다. 공식기자회견을 통한 육성의 감흥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대통령실 참모진의 짧은 생각이 빚은 또 하나의 ‘실책’이다.
통진당 후속 세력의 국회 입성 길을 터준 이재명의 숙주(宿主) 노릇은 잠시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반윤(反尹) 세력을 하나로 뭉쳐 제2의 탄핵 정변(政變)을 도모하고픈 주사파 운동권의 향후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숱한 사법리스크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대북 불법송금 사건은 구속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 부지사에 대한 선고공판이 6월 7일로 잡혀졌다. 검찰이 징역15년을 구형한 이 사건에서 이재명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명운과도 직통하는 만큼 변고(變故)의 파장이 만만찮은게 뻔하다. 거의 심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이재명의 위증교사 의혹과 허위 사실공표혐의 재판도 6~7월 중 선고공판 기일이 정해질 전망이다.
엄청난 변곡점이 불거질 올여름은 밤잠을 설치는 나날이 될지도 모른다. 이 나라 현대사 물줄기의 향(向)을 바꿀 큼직한 ‘여울목’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95세 나이를 유세(有勢) 삼아 한두 마디 훈수를 덧붙인다. 與 = 바쁠수록 돌아가라. 野 = 서둘러 먹으면 체한다. 철들무렵부터 귀에 못이 박힌 어른들의 ‘잔소리’가 크게 되살아나는 오늘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