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경"
[디모데후서 3: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함이니라
♥️한국에서 최초로 순교한 선교사는 누구일까요?
바로 토마스 선교사입니다.
그가 조선과 인연을 맺은 것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건너온 천주교인들을 중국의 치푸
(선교본부가 있던 산동성의 도시)에서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그들에게 조선어를 배우면서 조선 선교를 계획하였고,
1865년 9월 그는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2개월반 동안 조선 해안가에 머물면서 가지고 간 로버트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 성경을 나누어 주고
복음을 전하며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벌였습니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관으로 탑승하게 된 그는 성경을 최대한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가 탄 배의 선원들이 조선 병사 3명을 죽게 했고, 조선인들은 배를 공격, 불에 태웠으며,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강으로 뛰어내려야 했습니다.
토마스도 성경을 가지고 물에 뛰어들어 뭍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그가 아는 조선말로 "예수, 예수"를 부르짖었습니다.
미쳐 뭍에 도달하기 전, 조선 사람에 의해 머리를 몽둥이로 맞아 쓰러졌고 칼에 의해 시신은 토막 났고
강변에서 불태워졌습니다.
그를 때린 조선인은 죽은 외국인이 무기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책 뭉치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좋은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닌가 염려했고, 또 그가 가진 책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한 권 가져갔습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의 나이는 27세였습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병사 퇴교 박춘권은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서양 사람을 죽이는 중에 한 사람을 죽인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들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나에게 받으라고 권하였다.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받아왔노라.”
당시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목격한 최치량이라는 13세 된 소년이 토마스 선교사가 흘린 성경 3권을 주워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서양인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온 것이 무서워 다시 그 책을 평양성 대동문을 지키던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주었습니다.
박영식은 이 성경을 불태우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서 뜯어 벽에 발랐습니다.
눈만 뜨면 성경이 보이자 심심풀이로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최치량은 성인이 되어 박영식의 집을 구입한 후 만경대 석호정이라는 주막을 시작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죽은 지 27년 후인 1893년 마펫 (마포 삼열) 선교사가 평양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가
최치량의 주막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벽에 발라져 있는 성경을 보고 나서 최치량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최치량은 1894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과거 박영식의 집이자 최치량의 주막이 평양 최초의 예배당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되었고, 이 예배당은
장대현 교회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마포 삼열 선교사님에 의해 길선주 목사가 복음을 듣게 되었고, 길선주 목사는 장대현교회의 장로가 되어
조선 최초의 장로교 목사 7인 중 한 명으로 바로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29세 때 예수를 믿은 다음부터 40여년 동안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는데, 380여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3천 여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8백 여명을 목사와 전도사와 장로로 세웠고,
60여 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1905년 영국 웨일즈 지방에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 지역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사람들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시작이었습니다.
1906년부터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황해도 재령에서 길선주 전도사가 부흥회를 인도했고, 회개운동과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이기풍 목사에게 영향을 주어 큰 회개를 하게 했고,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은 조만식 선생은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조국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며 한국민족의 지도자요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조만식 선생의 가르침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주기철 목사님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
[히브리서 4: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벽의 일부분에 붙여진 성경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회심하고 구원을 받았는지요?
토마스 선교사는 27세에 순교했고, 그는 자신의 수고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여행을 비극적 실수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그의 순교로 시작되었고, 그가 가져온 성경이 한국 교회를 시작시켰습니다.
성경은 이와같이 절대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과 나라를 변화하게 하고 어둠을 밝히는 빛의 말씀이고 우리의 인생 안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순교하는 각오로 성경의 귄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둔한 저희들에게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인 성경을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듯이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역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새 몸과 새 마음과 새 영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절대적 진리 없이 좋은게 좋은 무질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저희들에게 절대적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성경의 절대적 권위가 회복되게 하시고 순교적인 각오로 세속주의의 도전을 물리치고 승리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