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뉴스 지성수 목사 칼럼중 펌글]
그 후 나에게 또 다시 ‘가난’에 대하여 강한 자극성으로 다가온 사건은 20여년 전에 세상을 들썩하게 만들었던 5인조 흉악범 조직 ‘지존파’ 사건이었다. 돈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화장까지 해버리는 시설을 갖추어 놓고 범행을 저질렀던 무리들이었다. 그런데 잔혹했던 지존파 일당을 취조 했던 형사의 입에서 “불쌍한 놈들” 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필설로 표현하기조차도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들을 취조한 형사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그 해답은 취조를 받는 도중에 범인 중의 한 명이 했다는 말 가운데서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에요” 그런가 하면 형사들이 해삼덮밥을 사주자 “이런 밥은 난생 처음 먹어 본다."고 했다고 한다. 나도 한 때는 지존파 같은 사회부적응자들이 느끼는 맹목적인 사회적인 불만, 이 사회에 대한 파괴적 욕구를 전적으로 공감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나는 그들과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이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라고 했는데 그 말은 틀렸다. ”가난한 사람은 재수가 없나니……. “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예수가 그것을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실제로 세상은 ‘부자가 행복하다.’라고 해야 맞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의 뜻은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의 것이다. 꼭 그렇게 만들겠다.” 이런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용기를 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이 용기마저 잃었다면 그 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시드니에 고교 동창이 4명 사는데 네 명이 같이 만날 때면 주차장에 벤츠가 3대이고 토요다 코로라 소형차가 한 대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장의 돈은 그들 보다 적겠지만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미국 동부에 흩어져 있는 아미쉬 공동체가 있다. 전기도 차도 없이 중세 시대처럼 살고 있는 이들은 군대 문제, 교육 문제 등등으로 가끔 미국 연방 정부와 법정 투쟁을 벌인다. 한번은 아미쉬들은 복지혜택을 받지 않겠다며 투쟁했고 연방정부는 받으라고 재촉하다가 결국에 대법원까지 가버렸다. 보통은 주지 못하겠다거나 더 받아야겠다고 싸우는데, 이건 완전히 반대의 케이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미쉬의 논리는 간단했다.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 의존력이 생기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동체적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에서는 아미쉬들의 손을 들어줬고 그들은 그렇다고해서 세금을 면제받는 것도 아닌데도 마치 무슨 독립이라도 쟁취한 양 환호했다. 더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고 안정적 가난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