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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아시아의 전통과 도전
-문명전환기의 창조적 대안예술 찾기-
김봉준(화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
‘동아시아의 전통과 도전’은 나의 예술과 어울리는 주제같습니다. 나는 청년기에 조선의 민속문화를 공부했고 재창조에 골몰해 왔습니다. 전통의 예술문법을 학습하는 한편 현대사회에 쓰일 소통의 문법을 찾으려고 줄기차게 도전해 왔습니다. 나의 예술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전통예술은 아닙니다. ‘그렇다, 아니다’를 반복하며 재생의 길을 찾았습니다. 대체로 나의 예술을 연대기로 단순하게 정리하면 70년대는 조선 민속문화 학습기, 80년대는 저항적 민중문화 형성기, ‘90년대는 탈근대적 성찰과 자연에서 대안모색, 2000년대는 대안문화의 창조기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순탄한 길이 아니고 때로는 피투성이 절망의 길이었고 때로는 옹달샘처럼 맑은 희망의 길이었으니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알다시피 한반도의 근현대기 나와 같은 현실참여 예술인에게는 폭력과 환란을 피할 수가 없었고 신산고초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다행히도 사랑과 藝道가 있었으니 고단한 삶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동아시아에 격동의 시대를 헤쳐 왔던 한 예술가의 시대적 예술체험과 그 결과에 주목하며 동아시아 문화전통의 재 발견과 창조에 주목하려는 자리라면, 나와같은 예인이 어떻게 동아시아성을 나름대로 계승하고 도전하여 왔는지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에게서 동아시아 전통이란 무엇이고 전통에서 무엇을 주목하고
어떻게 학습하고 왜 창조적 재생을 하였는지, 그리하여 대안의 가치를 어떻게 지향했는지 말하면 될 것입니다.
그림 1 한국의 대지신화를 설명하는 <신화마을지도> 붓그림판화, 김봉준 2009년작
내가 생각하는 전통문화는 국가주의와 20세기 세계체제 넘어에 있는 인류문화였던 것 같습니다. 야인 같은 나의 인생이 주관심을 거기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나의 천성일지도 모릅니다. 국가체제와 주류문화가 기록한 역사와 문화보다 민속문화, 구비전승문화,. 굿과 놀이, 통과의례와 민간예술이었고, 변하지 않은 채 유물로 들어난 아주 오래된 신화시대 상징미술들이었습니다. 특히 최근 10년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건립하며 동아시아 원형문화에 주목하여왔습니다.
내가 주목한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대하여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1. 뭇생명존중의 범신성문화, 2.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자연살이의 ‘자연문명’, 3. 관계론적이고 공동체적 신명문화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하나씩 정리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뭇생명 존중의 범신성문화는 모든 생명에는 영혼이 깃들어서 신성을 지닌다는 세계관에서 비롯하는데 아주 오랜 동아시아 전통문화입니다. 2005년 연해주의 비킨강 오지에 사는 숲 속의 사냥족이었던 黑水靺鞨族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스탈린의 강제집단이주로 슬라브족들과 집단촌을 이루며 삽니다. 도착해서 환영하는 첫 술잔배에서 그들은 세 번의 고수레를 하였습니다. 뭇생명에게 먼저 예를 갖추고 음복을 한다는 것이지요. 동북방민족의 성수인 3수 개념이 고수레의례로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조선족도 그랬습니다. 뭇생명을 사람과 동식물 구분 없이 ‘니’라고 부르는 관념에서도 뭇생명에 대한 영혼평등관을 알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사는 강원도 산촌의 늙은 농부들은 한 세대 전만까지만 해도 햇곡식을 수학하면 그 자리에서 토지신에게 곧바로 예를 올렸습니다. 우리 마을 진밭골은 골골이 전설과 민담이 전해 내려옵니다. 선녀탕, 쇠경골, 흰호랑이바위, 구융박골, 잽히골, 장승백이, 당산목, 여우고개 등 수 많은 지명설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물성의 신성관입니다. “세상만물 가운데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다.” 天地萬物 莫非侍天主也. 조선 말기 동학의 2대교주 최시형의 말씀입니다.
자연의 뭇생명은 모두 신성하다는 신성문화는 신앙과 의례와 예술로 구현되어왔습니다. 조선말기까지 조선은 뭇생명의 신성을 모시는 신성문화권이었습니다. 동북아의 인류족 대부분은- 말갈족, 여진족, 조선족, 몽골족, 만주족, 에벤키족, 투바족, 코랴크족, 브리야트족... 할것 없이 모두 자연과 조상을 성스럽게 생각하고 모시는 신화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성의 차이는 있지만 자연에 대한 범신성 문화는 동아시아 인류족 원형문화의 큰 특징입니다. 브리야트 족이 슬라브족에게 한 말입니다. “너희는 이콘에게 절을 하지만 우리는 온고드에게 절한다.” 조선족도 성배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장승과 솟대와 서낭당과 부작과 신맞이물(굿그림, 굿물)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의 미적 공통점은 영성미의 充溢입니다. 동아시아 전통문화의 가치는 만물에는 저마다 신성한 힘이 깃든다고 생각하는 영성이었습니다.
2. 서구문명은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문화입니다. 이성을 강조하고 신화를 일개의 미신으로 치부하면서 과학적 이성주의를 앞세운 근대주의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적대적 대립을 전재한 인간중심주의입니다. 선민주의 인간관을 가진 배타적 선민 종교문화로 他地他者의 문화를 迷惑, 迷信이라하며 파괴하여왔습니다. 다양한 인류의 다문화종을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문명관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류문명을 도시문명 위주로 변화시키는 것이 인류 역사의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토인비의 지적처럼 “인류문명의 앞에는 숲이었고 인류문명의 뒤에는 사막이었습니다.” 토인비가 주목한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사막화의 길을 자초한 것이 맞지만 동아시아 문화나 아프리카 문화, 아메리카 인디안 문화와 동남아시아 문화까지 싸잡아서 인류문명은 대도시문명으로 가는 것이 진보한다고 보는 것은 역사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역사는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며 진화 해 왔습니다. 한나라의 왕조가 망해도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지 않았으므로 수명을 다한 고대의 왕족의 흔적은 주추돌과 매장물로 남았으니 소멸은 곧 자연으로 돌아가는 문화였습니다. 동북아의 수렵채취와 농경문화권은 대부분 그러하였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원나라와 금나라 등 선사시대 이후 역사시대 유적지만 보아도 배타적인 자연 파괴와 대도시 건립을 자랑하는 역사가 아니라 자연으로의 귀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역사였습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면면히 전해오는 耘谷 元天錫의 재야정신도 그러한 것입니다. 無常한 사회적 권력에 순종하기보다 유구한 자연의의 질서에 귀의하는 정신입니다.
철기문명의 인류사는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인류문화사와 비교할 적에 매우 짧은 역사에 지나지 않는 2000여년에 불과합니다. 인류의 원형문화도 철기문명 이전에 이미 다 형성되었습니다. 세계 인류족들의 말, 노래, 신화, 상징, 의례, 예술, 놀이 등의 원형문화는 거의 모두 철기시대 이전의 유산입니다. 지금까지도 인류족문화의 다양한 문화종을 이루게 한 것도 철기문명 이전의 문화종 다양성 덕분입니다.
고대 동북아시아의 신은 자연의 다른 이름표입니다. 자연의 은유적 상징입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은유해서 들어 낸 것’이 신화상징입니다. 만주족의 창세여신 아브카허허, 조선족의 창세신 麻姑, 고구려의 국모신 柳花, 신라의 시조모 알영, 지리산 聖母天皇 등 지역마다 다른 부족의 창조여신이 있었으니 생명의 원형질인 물과 흙과의 특별한 인연을 가진 지모신들이었습니다. 대홍수 이후 유일한 생존 인류로 남게 된 남매가 외로움을 이기고 자손번식을 위해 혼인을 하는 조선의 남매신화나, 일본 신화에서 등장하는 최초로 인간의 모습을 한 남매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신화(바닷물을 휘휘 저어 섬을 만들고 국토와 신들을 창조 했다)는 天地의 원형질과 인류의 기원을 이야기합니다. 세계의 원신화에 모두 나타나는 보편적인 신화구조이기도 하지만 나는 여기서 문화의 출발이 그 지역의 생태지리적 산물임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특히 동북아의 기후와 지형이 산이 많고 숲이 무성하고 강우량이 많아 지중해나 메소포타미아의 준사막지대 문명과 다른 생태지리적 차이가 있습니다. 인류의 원형문화와 자연의 관계는 서식생물과 대지의 관계와 같습니다. 동아시아는 생명의 종다양성이 풍부한 만큼 생명의 다종다양한 영혼문화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無處非中- 중심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만물은 신성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범신문화가 동아시아 본래의 문화적 특징입니다.
동아시아의 또 다른 자연신은 토템신화로 현대에 까지 깊이 전해 내려옵니다. 서구의 도시문명은 자연과 분립으로 동식물에서 신성을 거세하며 영혼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동아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세계인류는 동식물과의 혈연적 문화적 관계를 매우 중시하며 신화시대부터의 전통을 계승해 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2支神은 동아시아 토템신의 진화로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신성한 자연문화입니다. 여인들의 胎夢에 나오는 자연신도 좋은 예입니다. 버드나무, 박달나무, 소나무 등에 얽힌 우주목(당산목) 신화가 지역마다 있습니다. 위 <그림1>에 소개한 나의 그림만 보더라도 자연살이 마을문화에는 깃든 토템신화와 지명신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성지를 따로 성당에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지가 곧 성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동식 미사’로 지신밟이를 하며 신성의례를 하였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자연살이는 ‘以天食天- 한울이 한울을 먹는다’는 생활양식이기 때문에 밥 먹는 것이 곧 제사인 문화였습니다. 생활의 靈驗을 중시해왔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예술적 주제는 자연살이 삶에서 만나는 동식물과의 영험한 체험을 중요한 예술적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자연을 문명 밖으로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 알다시피 자연을 배척한 근대도시문명은 한계에 도달하였습니다. 화석에너지의 고갈, 쓰나미 등에 해변가 도시의 수난, 기후 온난화로 해수면 상승, 해변도시의 침수, 대도시 인구폭발, 먹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의 확대, 대도시 슬럼화, 핵원자력의 가공할 위협, 과생산 과소비으로 지구자원낭비,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이웃과 소통을 잃은 ‘무통문명’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을 배척하고 세속적 물질주의 사회, 현대도시문명이 가져온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위기의 현대문화에서 동아시아가 대안문화를 찾는다면 고대 인류문화가 이룩한 인류족의 자연살이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인류문화전통의 학습은 물론 창조적 해석과 실천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아시아의 전통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리라 봅니다. 자연문명의 전통은 가진 동아시아에서 문명전환기에 요긴한 희망의 씨앗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3. 공동체적 신명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스웨덴 인류학자 호지 헬레나는 아시아의 전통문화에서 ‘오래된 미래’를 감지하고 더불어 살아온 오랜 씨족 공동체문화를 주목한 바 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문화는 씨족 공동체의 오랜 전통입니다. 자연과 공생하는 삶의 지혜를 적층해 온 공동체문화는 인간관계의 기본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깨닫게합니다. 관계의 기본이 인간간에 우애와 협력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최근 가족인류학에서는 세계 인류족들의 가장 기본적 인간관계가 부부관계라기보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임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동아시아 가족문화는 여성의 희생성만 볼 것이 아니라 수동적 적극성을 가진 모성과 돌봄의 문화를 매우 소중하게 여겨 왔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대부분 부인이 집안의 경제권을 가지고 재산관리를 합니다.
이 모자중심의 관계성은 문화 양식으로 매우 튼튼히 짜인 직조물처럼 생활의 靈驗한 상징의 文彩를 이룹니다. 함부로 짜여지지 않은 오랜 신화적 문채가 생활문화로 結繩되어 내려옵니다. 이러한 미적 전통은 아시아형 생활종합문예를 가지고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생활종합문예라 함은 생활공예, 마당문화, 詩書畵歌舞樂, 書畵同類의 文彩, 생활치유와 수양의 風流입니다.
풍류는 동아시아 신화시대부터의 문화유산입니다. 原神話는 신화와 의례와 예술이 혼일하였습니다. 자연범신적 세계관인 샤먼, 보, 굿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신화적 텍스트만 홀로 있는 게 아니라 예술과 의례가 신화의 내용을 담는 형식이 됩니다. 신화의례를 갖춘 문화형식이 신화적 내용을 담습니다. 그래서 신화의례는 모든 예술의 어머니입니다. 동아시아의 混一한 예술원형은 詩書畵歌舞樂 의 기원을 품고 있습니다. 시서화가무악 일체의 풍류문화가 된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주장을 입증할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한반도의 지신밟이 신성의례는 신성한 대지를 숭배하고 자연을 모시는 조선 풍류문화의 원형입니다. 탈춤이나 노오(能)가 모두 마당 원형무대를 기본으로 하며 無處非中(만물이 중심을 갖지 않은 것은 없다)의 미학을 갖고 있는 것도 풍류미학의 다중심성에서 온 것 같습니다. 풍류의 미학은 다중심의 중심, 신성한 영험의 미, 공동체적 신명, 빈터의 미학을 본래의 특징으로 합니다.
춤과 노래와 의례와 연극과 놀이가 혼일한 조선의 지신밟이 풍물굿은 동아시아 예술의 원형성을 지금도 암시하여 줍니다. 거기에는 본래의 미적 가치로 신명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기쁘거나 행복감이 생길 때 ‘신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신이 내 안에서부터 난다는 뜻입니다. 동아시아의 원형문화의 미적 원리로서 신명과 샤만(굿)과 풍류는 내 안의 신과 내 밖의 신이 접신하는 경지, 즉 주객의 질적 순승입니다. 미적 스파크가 영험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것을 최고의 예술로 보았던 것입니다. 氣韻生動하는 靈驗의 交感을 강조하는 굿과 풍류가 그것입니다. 동아시아문화의 원형문화는 철기문명기의 불교나 유교나 도교에 의해 윤색되고 국가권력화한 문화가 아니라 인간과 만물의 신성한 관계를 중시하는 씨부족 공동체의 영험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말 장승백이, 따듯한 영기가 번득인다. 민속학자 송석화 사진
사실 ‘예술’이란 단어는 잘 아시다시피 일본이 서구의 ART를 번안한 개념으로 우리에겐 아직도 생소합니다. 서구의 근대적 장르예술이 동아시아의 풍류와 분명한 차이는 미적 주객관의 관계문제입니다. 동아시아의 오랜 문화는 본래의 정서형식(굿, 샤만, 풍류)을 가지며 감성과 영혼의 소통으로 주객의 소통방식의 한 부분을 담당해 왔습니다. 풍류는 동아시아 상고시대 유불선이 생기기전 ‘儒佛仙包含三敎가 있었으니 그것이 風流道’(통일신라의 최치원)라고 하였습니다. 철기문명의 권력과 동거한 유불선이 영혼문화를 독점하기 훨씬 이전부터 동아시아는 신화적 원형문화가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원형문화형식- 굿, 보, 샤만, 풍류를 학습하지 않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면 동아시아인 스스로 동아시아의 문화정체성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현대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동아시아 원형문화를 과거의 골동품으로 취급하고 박물관에 가두었고 스스로 타자화 해버렸습니다. 오리엔탈리즘, 脫亞入歐, 東道西機 등 모두 전통의 청산주의입니다. 일·한·중 모두 다 마찬가지인데, 일본은 영성의 독점화(hierarchy)로 지역민속문화를 천황숭배주의문화로 귀속시켜 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의 민속문화는 일제 식민지의 민족문화말살 정책과 군사문화와 물질만능주의와 시장주의 세계화로 계속 무너져 왔습니다. 새마을운동과 근대이념주의는 지역공동체문화와 민간민속문화를 무력화 시켰습니다. 중국은 공산주의 정권 이전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화를 黃帝律로 규격화시키더니 이후에는 중화주의를 내세운 일국체제로 다양한 민족적 정체성을 소멸시켜 왔습니다. 각기 오랜 문화원형은 사라지게 되었는고 자기 스스로 자기의 문화를 타자화, 일국주의화, 세속화 해버렸습니다.
脫亞入歐의 동아시아식 근대주의도 다 지나가고 탈근대로의 전세계사적 변화의 요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도 다문화공생의 세계질서 재편기인 지금 자기 문화정체성부터 세워야 하는 정체성 위기의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동양 3국은 국민의식만을 강조하는 낡은 근대국가주의 교육과 국가주도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문화 공존의 성숙한 시민의식의 출현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동아시아시민이 이웃처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풍류문화, 자유로운 소통의 영험을 존중하는 재신화의 사회문화입니다. 그것은 내 안의 마귀적 폭력성을 키우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가치, 공생의 질서를 유지하는 매력적인 신성의 힘을 키워서 전쟁과 폭력의 문화를 억제할 것입니다. 흐벅지고(탐스럽고 부드럽다) 푸진(푸짐하고 넉넉하다) 풍류문화의 도래를 기원합니다.
이상으로 세가지 동아시아 문화보편성 아울러 문화정체성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예술에서 ‘전통과 도전’ 통하여 동아시아의 3가지 문화가치를 어떻게 구현 하였는가? 나의 미술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30여년의 미술작품을 통해 제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살펴보고 싶습니다. 편의상 4가지로 분류하겠습니다.
1.전통문화 학습과 재해석기, 2.저항적 민중문화기 3.탈근대적 성찰과 재생기 4.대안문화 창조기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분류는 시대별로 순차적인 구별만은 아닙니다. 전통문화 학습은 지금도 진행형이고 저항적 민중미술도 아직 계속되는 것 같고, 탈근대적 모색이나 대안문화 창조라고 해서 최근 10년 동안의 과제만은 아닙니다. 서로 모순되면서 연속성을 가진 이상한 불연속성의 연속, ‘혼돈의 질서’ 찾기가 아직도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1. 민속문화학습기
그림 2 <기억의 가족> 1979년작 김봉준 목판화
그림 3 <나발을 부는 신선> 고구려벽화 학습
그림 4 <두렁> 1983년작 김봉준 목판화
그림 5 <풍류길> 1991,1998,2005,2011년 시서화붓그림 융합디자인 배너 김봉준작
2.저항적 민중문화시대
그림 7 <사면초가> 1982년작 목판화 김봉준 그림 6 <사월의 노래> 1983년작 목판화 김봉준
그림 8 <통일해원도> 1985년작 목판화 김봉준
그림 9 <총파업시대> 1990년 채색붓그림 김봉준
그림 10 <夜行> 1991년작 유화 김봉준
3.생태주의시대
그림 11 <깨끗한 농사> 1999년작 목판화
그림 12 <그리운 고장> 붓그림 1992년
그림 13 <오리들 물을 찾았다> 1998년작 목판화 김봉준
그림 14 <쟁기질> 1998년작 목판화 김봉준
그림 15 <유목민의 이주> 1995년작 붓그림실크스크린판화 김봉준
4. 재신화화 시대
그림 16 <대지의 어망과 아방> 2002년작 테라코타 김봉준작, 신화미술관 전시 중
그림 17 <비나리> 2003년 회화 김봉준
그림 18 <홍익민주주의기념탑> 2003년작 청동탑 김봉준
그림 19 <개와 염소> 테라코타 1999년~2000년작 김봉준
그림 20 <어머니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일본시민 한국평화순례도> 붓그림 2009년작 김봉준
그림 21 <두물머리 바람불다> 붓그림판화 2011년 김봉준
나의 미술30년을 소략해서 흐름을 소개 했습니다. 나의 미술양식에는 동아시아 원형미술양식에 힘 입은 바 큽니다. 훗날 실크로드여행을 하며 이집트 고대 벽화나, 페르세폴리스의 부조나, 힛타이트 토기조각, 그리고 알타이 금동공예, 몽골의 녹석 암각화, 고구려와 북위의 벽화, 퉁구스 샤먼의례에서 면면히 흐르는 영험한 신명의 미에서 배운바 많습니다. 그것은 미술대학에서 배웠던 모던이즘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단서를 제공하였습니다. 나의 붓그림은 1976년대 3년간 조선탱화를 절에 다니며 전승 받았습니다. 청년기에는 화승의 내림제자였는데 조선탱화가 아시아대륙미술의 보편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탈제작과 탈춤과 풍물(농악) 공부도 동북아의 샤만이즘과 동일한 세계관이었습니다. 특히 조선 붓그림은 생명의 영험적 교감을 인증하는 秘儀의 행위가 있습니다. 실재로 불화를 그릴적에 향을 피우고 오체투지의 자세로 주문을 하는 행위에서도 붓질이 영험한 행위임을 엿보게 합니다.
이 붓그림법을 나는 목판화의 草畵로 응용하였습니다. 1979년 첫 목판(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나의 목판화는 조선불화의 영향이 큽니다. 조선붓그림은 황모필이고 닥종이에 먹그림이 기본재료입니다. 천연색 색소로 색올림을 합니다. 그러나 전통미술은 나에게 자산이면서도 큰 짐입니다. 현대인의 정서소통을 미적 질서로 담으려면 전통의 부정이며 동시에 긍정입니다. 특히 그것이 제아무리 영험한 형식이라도 오늘의 정서적 체험을 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한편 푸지다, 구성지다, 흐벅지다. 이 미적 세계를 저는 생득적으로 좋아했습니다. 생명에너지의 활달한 充溢感, 즉 신명의 세계관이 이 형식미에도 秘儀처럼 내려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풍물, 굿, 민요 등에도 같이 나타나는 신화적 비의 세계입니다. 이 ‘영험한 신명’의 미적 행위는 장자가 말하는 ‘物 속에 들어가서 물로부터 자유로워 진다’는 것입니다. 이 신명의 미를 붓그림으로 부활시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신비주의가 아니라 물성의 영혼과 노니는 것, 풍진 속 초탈의 경지입니다.
나의 목판화도 붓그림 草畵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내 목판화는 붓그림의 붓맛, 조각도의 칼맛, 목판의 나무결맛, 판화를 찍은 한지의 맛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어울립니다. 동물성, 금속성, 목성의 문화적 조화입니다. 일본의 浮世畵와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일본 붓그림은 더 연구해 보아야 하겠지만 조선 붓그림은 내적 성찰과 모심의 정성을 실천하는 행위예술입니다. 현대에 치유의 文化藝法으로도 소중한 유산입니다.
1980년대는 나의 미술이 가난한 이웃과 시대의 아픔을 주제로 한 미술로 점점 더 변해갑니다. 청년기의 정의감이 불 붙을 때입니다. 1980년대 저항적 민중미술의 시대는 내게 소중한 경험입니다. 새로운 내용을 담는 것이 형식의 수정과 전통의 도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큰 지병이 생긴 것을 감지하고 1993년에는 시골로 낙향하여 ‘생태주의 미’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서구의 생태적 사실주의는 나의 미학이 아닙니다. 보이는 질서와 보이지 않는 세계- 환상, 꿈, 욕망, 무의식, 비전 사이의 ‘異種의 충돌’을 감수해야 했던 시대입니다. 이 때의 나의 작품을 보고 김지하시인 미술비평(<숲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 목판화수필집 서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숲과 마을을 발견하고 중병을 극복하면서 나타나는 기이한 글씨들이나 무늬들은 김봉준이 지닌 생래적 신화의 표현이라고 보고 싶다. 생태주의적인 것은 물론이지만 내 느낌에는 그 이상이다. 더 깊은 곳에 관련 돼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암기호(Kraypogramm) 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다.”
서양의 생태주의적 사실주의는 자연과 인간의 이원론적 세계관 한계 내에 있어서 자연을 아직도 물적 대상화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동아시아 생명론에서는 본성의 질서를 신성한 내발성 에너지로 보고 기운생동을 주목합니다. 이 미적 체험은 기운생동하는 주객관 사이의 특별한 교감, 미적 영험입니다. 이것은 저의 신명론, 시서화풍류론, 재신화론의 기본 관점입니다. 나의 그림에 나타나는 여백과 함축과 운치와 생명력의 한 몸으로의 조화가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鬼氣를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어냅니다.
최근 나의 관심은 생태적 교감과 자립적 삶의 가치들을 미적 가치로 구현하려고 수용자의 미학, 소통의 미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술의 정서적 소통만 아니라 시장유통의 관건인 수용자의 미적 태도를 주목합니다. 최근의 시도한 ‘님얼붓그림’ 페이스북 전시로 실천했습니다. 수용자의 미학이라 함은 미적 생산자의 일방적인 생산에서 수용자의 요구에 맞춤형으로 생산하는 것에서 더 나가 수용자가 생산에 개입하는 미적 태도입니다. 후기산업시대 서구유럽에서 나타나는 미학이지만, 조선의 탈춤에서 마당은 관중의 개입과 소통을 매우 중시하는 데, 이 열린 마당미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나의 ‘님얼붓그림’은 수요자가 시와 얼굴이 모델이 되어주고 나는 붓그림 형식을 내서 함께 만들어가는 한글 시서화입니다.
그림 22 <님얼붓그림들> 붓그림시서화 2010년작 김봉준
최근 또 하나의 영역은 시서화디자인입니다. 동아시아의 書畵同類정신을 계승한 것인데 현대사회에서 매우 요긴한 디자인이어서 쓰임새가 많습니다. 나의 생업형 기술의 하나 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도 이 분야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나는 한글의 우수한 書體美의 개척과 붓그림을 잘 살린 서화로 하나로의 어울림을 즐깁니다. 시서화 조화와 일체의 풍류정신의 실용화가 목표로입니다. 시민과 함께 공감한 詩心으로 서화양식을 고양시켜 끌어 올리면 신선한 書卷氣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예술과 신화는 인류의 최초의 상상력이며 마지막 희망의 인문예술이라고 말씀 드립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가? 문학과 예술은 영혼의 화두를 붙들고 근대 합리주의나 이성주의에 투항하지 않는 채 영험의 모험을 하는 마지막 감성적 지성인,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알 았던 동아시아의 위대한 ‘야생의 사고’는 미래에도 아름다운 영험의 성취로 재신화의 시대(미래의 영성시대)의 도래에 힘을 줄 것입니다. 현재 인류는 영혼의 희망을 갈망하며 방법은 신화적 사유와 예술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종교는 자기 도그마로 영혼의 한계를 미리 규정하지만 않는다면 신화적 인문예술과 함께 창조적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신화는 예술의 마음이며 예술은 신화의 몸 같습니다. 야생의 사고를 강조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는 문학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고 음악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나의 주장, ‘신화의 상징이 미술의 어머니’라는 것이나, ‘의례가 신화보다 앞서는 전통이다.’라고 말하는 신화학자들도 있으니 신화는 단순히 문학적 텍스트만이 아닙니다. 신화의 몸이 본래 예술이어서 예술은 내 안에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창조할 것입니다. 영험한 예술은 이미 자기 신화를 갖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근대적 과학기술의 통제, 20세기 합리적 이성주의를 마지막까지 거부했던 유일한 분야는 예술이지도 모릅니다만, 예술은 본래 유연하고 자유로운 속성 때문에 과학기술과 학문과 컴퓨팅으로 융합과 통섭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은 본래 영적 예감으로 인하여 신과학의 창조에 기여할 것입니다. 인간세계는 신화와 의례와 예술과 상징, 인문과 예술이 본래 융합으로 다시 나타나려는 본성을 가집니다. 요즘 최근 학제간 통섭, 통섭적 학문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통섭(Consilience)은 ‘서로 끌어당겨서 함께 도약’하는 것으로 원래 최근 생물학의 개념인데 예술과 타 예술, 예술과 과학, 예술과 인문학, 예술과 기술, 예술과 산업, 예술과 사회 등이 서로 끌어당기며 함께 도약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술과 학문과 지식과 사회의 전방위적 소통을 촉진하는 예술의 사회화가 통섭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학교 밖의 청년대중은 점점 정보통신의 발달로 유비쿼터스 시대로 가고 있지만 예술교육은 20세기의 국가주도 쟝르분과교육에 아직도 머물고 있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희망의 문은 찾고 싶습니다. 동아시아 근대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성찰하고 길을 찾아 나선다면 희망은 보입니다. 근대의 제국주의 침략과 생산력주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끝없는 폭력성을 성찰하고 서로 먼저 사과 반성하고 피해의식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동아시아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모두
국가주의 폭력에 희생되는 집단성 트라우마를 공유합니다. 동아시아는 이 상처투성이 근대국가주의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집단성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 동아시아는 치유의 문화를 창조하는 길을 찾을 때입니다. 韓流 日流 中流 중심의 공세적 문화산업은 어디까지나 국가주의적 문화경쟁력을 앞세워서 자국의 이익을 경쟁적으로 하는 것으로 평화공생공존의 문화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더 발리 더 높이 더 멀리 더 감동 시키는 자가 승자독식하는 국가주의 문화는 배타적 애국주의만을 강화합니다.
그래도 희망의 씨앗을 봅니다. 나는 40여년 예술적 행동에서 미적 거처를 찾았습니다. 나의 예술은 동아시아의 신성문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자부합니다. 풍류의 예도에서 함께 정체성을 공유하고 인터휴먼(Inter-human), 인터로컬(Inter-local)의 상호 호혜교류로 경제적 호혜는 물론이고 영험한 문화의 교류로 인류에게 희망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동아시아가 먼저 어리석은 인류의 폭력문명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신화의 부활처럼 신인류의 오랜 미래 평화문화가 再生하기를 희망합니다. 내가 먼저 춤을 춰서 더불어 함께 추는 춤을 만듭시다.
“나를 먼저 춤추게 하라 그러면 이웃이 함께 기뻐 춤출 것이다.”
그림 23 바이칼평화문화제 온고드, 2011년 여름 유라시아철도평화행진 문화행사에서,
김봉준 설치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