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김봉준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서 미술동인 ‘두렁’을 이끌었던 작가 김봉준은 19년 전 원주 문막읍 취병리에 정착해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이곳 자연으로부터 재생의 힘을 얻었으며, 그의 관심사는 한국의 민중적, 민속적 가치에서 확장돼 동아시아 문화의 원형인 신화로 나아갔다. 그는 신화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성의 가치라고 강조한다. 김봉준 화백은 이곳에서 신화를 테마로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2008년 개관해 5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미술관 입구부터 내부에 이르기까지 대지신화, 단군신화, 창세신화, 지신밟기 신화 등 다양한 주제로 그가 직접 테라코타로 제작한 조형물과 그림, 신화와 관련하여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수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김봉준 화백은 원주의 지역 작가, 지역 마을 공동체와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모색하고 있다.
오랜미래신화미술관 관장 김봉준
서울 출생인데 원주에 정착한 계기는 무엇인가 1980년대에 전력을 다해 활동하다 보니 몸은 중병에 들었고, 작업은 정리가 안되어 있었다. 당시 사회운동이 강했고 두렁이 현장파이다 보니 이념적으로 센 작업을 많이 했는데 진영논리에 의해 빨간칠이 되면서 외면당했다. 거기에서 좌절하고 작업을 접어버린 작가가 많았고 나 역시 산골로 올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작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후원자가 땅을 내주어 시간을 두고 자기 성찰을 하면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민중미술운동을 할 때에도 한국의 민속 가치를 강조했는데 어떻게 신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동아시아 신화의 힘은 무엇인가?
대학시절 민속예술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던 것이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다. 2003년도에 동북아평화연대 이사로 활동하면서 시베리아, 몽골 등을 답사하면서 동아시아 원형문화 관련 자료들을 조사했고. 2007년에는 신화학자들과 함께 ‘동북아시아 신화와 상징 비교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신화 연구를 진행했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의 민속에만 집중하거나 서구 문명에 젖어 동북아의 고대문화와는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다. 서양의 그리스 로마신화가 신화의 쇠퇴기인 철기시대에 형성되면서 남근중심주의적이고 폭력적으로 변질된 것이라면 동북아시아의 신화는 선사시대의 유산으로 공동체적이고 자연친화적이다. 원형문화는 일종의 핏줄 문화로 외국 문화가 갑자기 한꺼번에 들어왔다고 해서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무의식 깊이 숨어있을 뿐이다. 조지프 캠벨은 사회적 질서가 흔들릴 때는 본성의 질서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는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뿌리이다. 이미 신화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래도 신화적 요소가 남아있는 곳이 예술이라고 한다. 원래 신화, 의례, 예술은 한 몸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의 사고는 모든 것을 파편화시켜 서로 조화를 이루기 힘들게 나아갔고 그것을 발전이라고 보았다. 이 시대에는 융합형 예술 개념이 요구된다.
이곳에서는 어떤 신화적 요소를 발견했는가. 마을문화와 신화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강원도에 있으면서 장승배기 신화, 지신밟기 신화, 당산목 신화, 서낭당 신화 등 마을 신화의 전형부터 동네 신화까지 재발견하게 되었다. 국가가 세워진 것이 역사시대라면 마을은 선사시대부터 형성된 개념이다. 마을이야말로 신화의 보고이자 문화의 거처이다. 사회적 질서가 불안한 이유도 마을문화, 뿌리문화를 소중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국가의 질서에 포섭했기 때문이다. 문화 원형의 가치, 생태나 문화의 긴밀한 관계를 증언하는 것이 내 몫인 것 같다.
한국 마을들은 관치에 익숙해져 있어 자치·자립의 마을로 만들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그동안 마을과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문화에 대한 발상 자체가 황폐한 이곳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다. 2000년, 2001년 마을 사람들과 지역 작가들과 함께 생태 공동체를 주제로 표방했던 마을 축제 〈숲과 마을 미술축전〉을 진행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지역사회에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자구책을 만들어왔다. 4년 전 강 건너 불온면에 있는 극단 ‘노뜰’과 여기 미술 공방, 신화미술관이 함께 사회적 기업 ‘신화 마을 네트워크 사업단’을 만들었다. 올해로 사회적 기업 지원이 끝나기 때문에 이후에 기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이 마을에는 신화미술관을 포함해 천연염색체험관, 옛책박물관, 자생적인 문화공간 세 곳이 있으며, 농촌체험관이 있다. 문화자원과 농적 자원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지 마을 주민과 논의하고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