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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미 해군은 차기 주력전투기를 팬텀으로 결정하면서 YF4H-1 2대를 구매했다. Y는 시제기(Prototype)의 약자로, 이 약자가 붙은 이름을 가진 전투기들은 실전용이 아니라 ‘대량 생산하기에 앞서 먼저 만들어서 다양한 비행시험을 해 보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보는 용도의 항공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행중인 YF4H-1. 기수 옆에 F4H-1이라고 적혀 있다. 나중에 대량생산되는 팬텀 모델들과는 기수부분의 형태가 좀 다르다. 기수 앞에 긴 뿔처럼 돋아 있는 부분은 속도를 측정하는 장비다. 본래 일반 전투기들에도 작은 뿔 형태로 달려 있지만 이런 시제항공기들은 정확한 정보를 측정하기 위해 이처럼 긴 장비를 사용한다. ]
YF4H-1은 거의 동체에 파묻혀 있는 조종석이 특징이다. 관계자들은 어차피 근거리에서 적기를 눈으로 보아가며 싸울 일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차라리 조종석을 동체와 일체형처럼 만들어서 공기저항을 줄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상에서 대기중인 YF4H-1. 팬텀 뒤쪽에 있는 전투기들은 미 공군이 사용했던 F-101 부두(Voodoo)라는 전투기로, 이것 역시 맥도널 더글라스에서 만든 전투기다. ]
레이더는 AN/APQ-50을 사용했는데, 당시의 전투기 레이더로서는 매우 먼 거리까지 탐지가 가능하지만 승무원이 조작해야 할 것도 많은 복잡한 물건이었다.
한편 기체 밑에는 NACA의 일체형 공기흡입구가 있었다. 이 작은 공기흡입구는 팬텀의 기수 부분에 있던 레이더나 각종 전자장비의 열을 식히는 냉각용 공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위의 사진은 이전 시간에도 보았던 것으로, F4H-1의 1:1 모형이다. 빨간색 원 안의 부분이 바로 전자장비를 식히기 위한 일체형 공기흡입구다. 이것은 NACA (NASA의 예전 이름)에서 개발한 일체형 공기흡입구로, 공기가 들어오는 곳이 바깥쪽으로 돌출되지 않고 공기가 항공기 표면을 따라가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설계한 것이다. 개발된 이후 항공기의 소형 공기흡입구로 종종 사용되어 왔으며 아래쪽 사진처럼 자동차 등에도 사용되곤 한다.]
팬텀의 날개를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바깥쪽 부분만 위로 12°가량 들려있다. 이 독특한 형상은 뒤에 설명할 수평꼬리날개의 형상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며 기체를 좌우로 기울이는 방향에 대한 안정성(Roll 안정성)과 관계가 있다.
이 바깥쪽 날개는 비행중이 아니라면 90°로 접을 수 있다. 육상 기지에 비해서 좁은 항공모함에서는 날개를 접어야 차지하는 공간이 줄기 때문이다. 또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비행갑판과 그 아래층의 격납고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사이즈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팬텀뿐만 아니라 다른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 전투기들도 대부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미 해군은 1961년에 45대의 새로운 팬텀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들 팬텀은 F4H-1F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여기서 뒤에 붙은 F는 당시 미 해군의 명명법에 의하면 ‘엔진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원래 F4H-1은 J79-GE-8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이 엔진의 개발이 덜 끝나는 바람에 좀 더 출력이 약한 J79-GE-2를 탑재했기 때문에 뒤에 F가 붙은 것이다. 이 F4H-1F 중 나중에 생산된 모델은 원래 달려고 했던 J79-GE-8 엔진을 달았지만 F는 빠지지 않고 여전히 F4H-1F라고 불렀다.
F4H-1F는 YF4H-1을 가지고 시험해 본 결과 발견된 문제점들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의 형상이 변화되었다.
일단 냉각공기용 흡입구가 바뀌었다. 레이더 및 전자장비들이 더 추가되면서 더 많은 냉각용 공기가 필요했는데, 종전의 일체형 흡입구로는 충분한 냉각용 공기를 공급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결국 외부로 돌출된 공기흡입구를 사용했다.
레이더는 AN/APQ-50에서 더 성능이 좋은 AN/APQ-72로 바뀌었다. 더불어 기수 밑에는 AAA-4라는 적외선 탐색 및 추적 장비가 달렸다. 이것은 공중에 있는 열을 감지, 어느 각도에 열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공중에 있는 열원은 항공기를 의미한다. 다만 어느 각도에 열원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열원의 거리나 속도, 방향 등은 알 수 없었다.
[항공모함에서 대기중인 F4H-1F (F-4A). 아직 냉각용 공기흡입구는 일체형이다. 기수 밑에 튀어 나온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AAA-4 적외선 탐색 장비다.]
[전시중인 F4H-1F (F-4A). 이 기체는 냉각용 공기흡입구가 바깥으로 돌출된 형태로 바뀐 버전이다. ]
엔진용 공기흡입구의 형상도 변했는데 흡입구의 둘레 형상도 바뀐 것은 물론, 흡입구의 안쪽의 벽면의 움직이는 각도도 바뀌었다. 또한 동체와 공기흡입구를 따로 떼어주는 분할판(Splitter Plate)도 동체로부터 더 떨어졌는데 이것은 동체 표면을 지나면서 마찰에 의해 속도가 느려진 공기가 공기흡입구로 들어가서 엔진 효율을 떨어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분할판에는 12500개에 달하는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었는데 이것 역시 속도가 느려진 공기를 이 구멍을 통해 빨아들여서 내보내고, 속도를 잃지 않은 신선한 공기만 공기흡입구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설계였다.
[팬텀의 공기흡입구를 정면에서 본 모습. 분할판쪽 벽면에 촘촘히 구멍이 뚫려 있다.
(사진은 F4H-1F가 아니라 좀 더 후기형 팬텀의 공기흡입구 사진이다)]
같은 F4H-1F 팬텀 내에서도 서로 형상이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이것을 블록이라는 단위로 구분했다. 이렇게 형상이 바뀐 것은 F4H-1F 역시 실전용 팬텀이라기보다는 문제점을 고쳐나가기 위해 미리 만들어본 실험용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처음 생산된 F4H-1F를 가지고 시험해본 결과 조종석의 시야가 너무 나빴다. 공중전을 벌일 때는 어떨지 몰라도 착륙할 때는 확실히 이 점이 문제였다. 특히 미 해군의 전투기들은 지상의 활주로보다 훨씬 짧고 좁은 항공모함 위에 정확히 내려앉아야 했기 때문에 착함시의 시야 확보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F4H-1F 중에서도 블록3부터는 공기저항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조종석을 더 높여 조종사의 시야를 확보했다. 더불어 기수부분도 더 커졌는데, 이는 더 지름이 큰 레이더 안테나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지름이 더 큰 안테나 덕에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더 늘어났다.
[비행중인 F4H-1F (F-4A)의 모습. 조종석이 약간 더 위로 튀어나왔고 레이더 부분도 약간 더 아래로 처졌다. 덕분에 조종사는 팬텀의 기수가 들린 상태에서도 아래쪽의 항공모함을 보기 더 쉬워졌다. ]
무장을 매다는 파일런은 처음에 11개를 계획했으나 동체에 1개와 날개에 4개, 이렇게 5개로 줄었다. 대신 동체에는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4발이 반쯤 파묻혀서 탑재되었다. 한편 이 AIM-7 스패로우 미사일은 날개 안쪽에 있는 파일런에도 달 수 있었다.
[팬텀의 능력 중 미 해군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AIM-7 스패로우의 운용능력이다. 사진속의 F4H-1F(F-4A)는 동체 밑에 AIM-7을 달았을 뿐만 아니라 날개 안족 파일런에도 AIM-7을 달고 있다.]
[물론 팬텀은 이처럼 지상공격을 위한 폭탄을 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 해군은 폭탄운용 능력 보다는 공대공 미사일 운용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F4H-1F 팬텀은 후에 1962년에 항공기의 명명법이 바뀌면서 F-4A 팬텀이 되었다.
처음 구매한 45대의 F4H-1F는 실험용이라는 목적이 강했던 반면, 이후 생산된 모델은 본격적으로 미 해군이 운용하기 위해 생산된 실전용 모델이었다. 이 모델들은 F가 빠지고 F4H-1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F-4B로 이름이 바뀌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미 해병대 소속 F-4B 팬텀. 그 앞쪽에 놓여 있는 미사일은 AIM-9 단거리 열추적 미사일이다. ]
F4H-1 혹은 F-4B는 J79-GE-8 엔진을 기본적으로 장착했다. 공기흡입구의 형상은 다시 변해서, 가변식 공기흡입구의 움직이는 각도나 움직이는 부분이 약간 변했다.
[F-4A는 공기흡입구 테두리 위쪽이 앞으로 나온 반면, F-4B는 테두리의 위, 아래쪽이 거의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실전용 전투기 답게 생존성을 높이기 위한 APR-30 레이더 경보기가 추가되었다. 이것은 적의 레이더 전파 신호를 역으로 추적해서 어떤 레이더인지, 방향은 어디인지, 지금 나를 추적하고 있는지의 정보 등을 알려주는 장비다.
F-4B는 동체 중앙에 1.8톤 정도의 연료가 들어가는 600갤런짜리 보조 연료탱크를 달 수 있었으며, 날개 바깥쪽 파일런에는 1.1톤 정도의 연료가 들어가는 370갤런짜리 보조 연료탱크를 달 수 있었다. 앞서의 F-4A와 마찬가지로 동체와 날개 안쪽 파일런에는 AIM-7 스패로우 미사일을 달 수 있었다. 물론 날개 쪽에는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달 수도 있었다.
또한 한 개당 약 440kg 정도 나가는 1000파운드 폭탄 8발이나 AGM-12 불펍 공대지 미사일 4발, 아니면 최대 15개의 로켓포드를 달 수 있었다. 물론 미 해군은 당시만 해도 F-4B 팬텀을 함적의 폭격기나, 전투기로부터 함대를 보호하는 함대 방공 전투기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런 지상공격 무장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편 F-4B는 장거리 비행시 조종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동하는 AN/ASA-32 자동조종 시스템을 탑재했다.
[소련의 TU-16 주변을 미 해군소속 F-4B가 비행하고 있다. 냉전시절 소련의 장거리 정찰기들은 자주 미 해군의 항공모함 근처를 지나갔고, 미 해군은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이렇게 전투기를 가까이 비행시켰다. 공해상에서는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설사 항공모함 바로 머리위로 지나가도 미 해군은 전투기로 감시하는 것 이외에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한편 TU-16은 본래 폭격기 이나 사진속의 기체는 정찰기 버전이다.]
이 외에 유사시에 핵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AJB-3 핵투하 시스템을 탑재했다. 핵폭탄은 폭발 피해범위가 워낙 넓어서 잘못하면 폭탄을 투하한 전투기까지도 거기에 휘말릴 수 있다. 그래서 전투기나 폭격기들이 핵폭탄을 투하할 때는 급상승하면서 마치 폭탄을 위로 집어 던지듯이 투하한 뒤에 바로 뒤돌아서 도망치는 방식으로 비행한다. (이것을 로프트(Loft) 혹은 토스(Toss) 폭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감만으로는 언제 폭탄을 투하해야 폭탄이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할지 알기 어려운데, AJB-3는 바로 이 타이밍을 계산해서 자동으로 폭탄을 투하하도록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1964년에 베트남전이 벌어지면서 미 해군의 주력전투기인 F-4B 역시 전투에 참가했다. F-4B가 적기를 처음으로 격추한 것은 1965년 6월의 일로, L. 페이지(L. Page)가 조종하고 J. 스미스 주니어(J. Smith Jr.)가 후방석을 맡았던 F-4B가 하이퐁 근처에 있던 북베트남군의 MIG-17 전투기를 AIM-7 중거리 유도 미사일로 떨궜다. 같은날 다른 F-4B도 2대의 MIG-17을 AIM-7으로 격추시켰다.
하지만 사실은 이보다 2개월 정도 앞선 1965년 4월 9일, F-4B를 조종하던 테런스 M. 머피(Terence M. Murphy)가 MIG-17 한 대를 격추시켰었는데 이 MIG-17은 북베트남 소속이 아니라 중국군 소속이었다. 베트남 국경 근처를 날고 있다 보니 그만 북베트남의 전투기라고 오인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미국도 서로 대규모 전쟁을 벌이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양국이 조용히 묻어두었고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터렌스 M. 머피 역시 MIG-17을 격추한 직후 추락했는데 아직도 그 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다른 MIG-17에게 격추당했다는 설도 있으며 동료기가 오인사격해서 격추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팬텀 vs MIG-17. 두 전투기가 싸우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초음속 비행도 할 수 없고 중거리 미사일이 없어서 먼거리의 적을 공격할 수도 없는 기종. 하지만 꼬리를 무는 선회전이라면 팬텀을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전 내내 팬텀을 괴롭혔다.]
미 해군이 F-4, 더 정확히는 F4H-1을 개발하고 있던 때인 1961년에 미국 국방장관인 로버트 S.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는 미 공군에게 F-4 전투기를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가급적 미 해군과 미 공군이 같은 전투기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이고 또 조종사의 훈련이나 전투기를 위한 각종 정비비용, 부품 비용을 절감하길 원했던 것이다.
미 공군은 1961년에 F4H-1의 도입을 결정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새로 이름을 지어 F-110 스펙터 (Spectre : 팬텀과 마찬가지로 유령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곧 전투기 명명법이 통합됨에 따라 이 전투기의 이름은 F-4C 팬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미 공군의 F-110A 스펙터 (Spectre). 곧 F-4C 팬텀으로 이름이 바뀐다.]
미 공군에는 처음에는 해군용 전투기를 운용환경이 다른 지상용으로 운용하는 것을 탐탁치않게 여겼으나 미 해군의 팬텀을 몇 대 빌려서 비행시험을 해본 결과 생각이 바뀌었다. 팬텀은 당시 미 공군의 어떤 주력 전투기들 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날 수 있었으며 더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 공군은 F4H-1을 그대로 쓸 생각은 없었으며 나름대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개량했다.
먼저 타이어를 육상기지용으로 적합한 타이어 공기압력이 낮은 것으로 바꿨다. 대신 타이어의 폭이 더 넓어졌는데, 이 때문에 원래의 착륙장치(랜딩기어) 수납 공간도 더 크게 만들어야 했다. 결국 타이어가 들어가는 날개 뿌리쪽의 윗부분이 불룩 더 튀어나오게 되었다.
[무장시험을 준비중인 F-4C.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을 잘 보면 살짝 위로 튀어나왔다. 타이어가 더 넓어진 탓에 착륙장치를 넣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사진에서 날개 밑에 달려 있는 폭탄은 CBU(Cluster Bomb Unit) 계열의 확산탄이다.]
또 미 공군용 F-4는 미 해군용과 달리 후방석에서도 조종이 가능했다. 더불어 계기판을 아래로 내려서 조금이나마 후방석의 시야도 더 넓게 해주었고 그 외에 각종 버튼, 스위치, 레이더 조작용 스틱의 배치도 바꿨다.
공중급유 장치도 바뀌었다. 미 해군은 호스에다 급유 받을 전투기가 급유용 봉을 꽂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미 공군은 공중급유기에서 나온 급유용 관을 전투기에다 꽂아 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래서 F-4C는 기수 부근에 급유봉이 달린 미 해군의 팬텀과 달리 조종석 바로 뒤쪽 동체 위에 급유시 관을 꼽는 급유구멍을 달았다.
[공중급유중인 미공군 소속 팬텀.
미 공군은 이처럼 급유기에 달려 있는 큰 관으로 연료를 공급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레이더는 AN/APQ-100으로 바뀌었는데, 해군용 레이더와 달리 이것은 지상 탐색도 가능했다. 이 외에도 각종 항법장비, 무장제어 장비들이 바뀌었다. 일부 기체는 SST-181X를 달았는데, 이는 지상에서 보내오는 무선신호를 통해서 폭격을 도와주는 장비였다.
AN/APQ-100이나 SST-181X를 통해 알 수 있듯, 미 공군은 미 해군과 달리 팬텀을 공중전 뿐만 아니라 지상공격 임무도 충실히 수행하는 전폭기로 운용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공대공 미사일 외에도 AGM-12 불펍, AGM-45 슈라이크, AGM-65 매버릭 등의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다.
[미 공군 소속의 F-4C들이 늘어서 있다. F-4C 팬텀은 육상기지에서만 운용하지만 날개를 위로 기능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는 본래 육상기지에 비해 좁은 항공모함에서 공간을 적게 차지하려고 만든 기능이지만 미 공군으로서는 육상기지에서만 팬텀을 쓴다고 굳이 이 기능을 제거할 필요까진 없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F-4C 팬텀. 미 공군은 베트남 기간 동안 팬텀을 이처럼 위장색으로 칠하는 경우가 많았다. 팬텀이 지상공격을 위해 낮게 나는 경우 더 위에 있는 적기는 팬텀을 바라 볼 때 지상을 배경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팬텀 앞쪽에 있는 하얀색 장비는 일종의 전파방해장치인 ECM (Electronic Counter Measure) 포드다. ]
미 공군은(미 해군도 마찬가지였지만) F-4 팬텀이라면 북베트남의 구식 전투기인 MIG-17이나 MIG-21은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1957년 당시 중국과 대만이 금문도 주변에서 무력분쟁이 일어나자, 대만의 F-86 세이버 전투기는 중국의 MIG-15와 MIG-17을 손쉽게 요리했다. 초반에는 MIG-15, MIG-17의 우수한 비행성능을 살린 중국공군의 공격에 대만 공군이 고전했지만, 곧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은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사용하며 공중전의 판도를 뒤집어버렸다. 대만 공군 측은 F-86을 단 한 대도 잃지 않고 중국 공군의 전투기 29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대만과 중국의 지도. 붉은색 원으로 표시된 곳이 금문도 (Chin-Men Tao)다. 대만령이면서도 중국본토와 바로 붙어 있어서 무력분쟁이 발생하자 중국의 공군기들이 쉽게 폭격할 수 있었고, 대만은 이들을 막기 위해 F-84, F-86 전투기 등을 출격시켰었다.]
이러한 사례 때문에 미군은 미사일로 모든 적기를 격추할 수 있다는 미사일 만능주의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미군은 당시로선 최신 기종인 팬텀에 기관포같은 구식 무기는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수 십km 밖의 적 항공기도 레이더만 있다면 탐색할 수 있었고, 일단 발견한 적기는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AIM-7 스패로우로 요격해버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 생각으로는 혹 이 미사일이 빗나가 적기가 코 앞까지 다가온다고 해도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AIM-9로 손쉽게 처리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사일을 장착하고 비행중인 팬텀. 동체아래에 붙어 있는 상대적으로 큰 미사일이 AIM-7 스패로우이고, 날개쪽에 2발씩 나란히 붙은 작은 미사일이 AIM-9 사이드와인더다. (사진속의 기종은 팬텀의 후기형인 F-4E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미 해군의 F-4B와 미 공군의 F-4C 모두 기관포 없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첫 시작은 좋았다. 이전화에서 보았듯 미 해군의 F-4B가 AIM-7으로 MIG-17을 격추했고 미 공군의 F-4C 역시 1965년 7월에 두 대의 MIG-17을 AIM-9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했다.
하지만 곧 미군은 기관포를 없앤 것이 얼마나 섣부른 판단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AIM-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반능동 레이더유도라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미사일이 명중할 때까지 계속 레이더로 적기를 비추고 있어야 한다. 즉 미사일이 명중하기 전까지는 기수를 돌릴 수 없다는 소리인데,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적기를 공격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만약 적기를 이 미사일로 격추해버린다면 상관없지만, 미사일이 빗나가버린다면 바로 적기와 근거리에서 격투전을 벌여야 했다. 수십 km 밖에서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두 전투기가 시속 800km/h 이상의 속도로 마주보며 날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결과적으로 적기와 1600km/h의 속도로 가까워진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 거리가 좁혀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베트남전 당시 사용했던 초기형 AIM-7은 명중률이 형편없었다는 점이다. 모든 조건이 잘 갖춰진 시험사격시에는 높은 명중률을 보였지만 전투중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적기의 회피기동, 조종사의 조작 실수, 미사일 자체의 고장 등 다양한 요인이 원인이 되어 명중률이 30% 미만으로 매우 저조했다.
물론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AIM-9 초기형 역시 팬텀이 최대 선회로 급기동하는 중에는 발사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AIM-7은 이 제약이 더 심했으므로 근거리 격투전에서 쓰기에는 더 부적합했다).
게다가 이 초기형 AIM-9 미사일은 적기의 뒤로 돌아가야만 쏠 수 있었다. 미사일이 적기의 엔진에서 나오는 배기열을 찾아서 쫓아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적기가 구름에 숨어버리면 배기열을 잘 찾지 못했으며 또 태양빛이나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적기의 엔진 배기열로 잘못 알고 쫓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또 적기와 거리가 수백m 이내 정도로 너무 가까워지면 미사일이 충분히 가속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회피기동을 하는 적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이 정도 거리에서라면 기관포로 적기를 공격할 수 있겠지만 기관포가 없는 F-4B, F-4C 팬텀은 적기와 다시 거리를 벌리거나 아니면 적기가 회피기동을 하지 않도록 운에 맡기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미군은 팬텀의 SUU-16/A 기관포 포드를 달기 시작했다. 이 포드에는 M-61 20mm 기관포와(흔히 발칸이라고 부른다) 탄약 1200발이 들어있었으며. 기관포를 작동시키는 모터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 R.A.T (Ram Air Turbine : 외부로 돌출되어 비행기가 전진하면서 불어오는 맞바람으로 동력을 만드는 일종의 풍력발전용 바람개비)을 사용했다.
[SUU-16/A 기관포 포드. 빨간색으로 칠해진 것이 맞바람으로 동력을 만드는 R.A.T이다. 평소에는 접혀 들어가 있다가 기관포를 발사하려고 하면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
팬텀은 이 기관포 포드를 달면서 무게가 늘고 공기저항도 커져 기동성이 약간 줄어들었다. 또 이 기관포 포드는 동력원으로 팬텀이 비행하면서 생기는 맞바람을 사용하다보니 팬텀의 비행속도가 최저 640km/h는 되어야 제대로 작동을 했다. 격렬한 근접 격투전을 벌일 때는 이보다 속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므로 이 최저속도 역시 큰 제약이었다.
물론 팬텀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이런 제약들을 감수하더라도 기관포 포드를 다는 것이 미사일만으로 적기를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SUU-16/A 기관포 포드는 동체 중앙 말고 사진처럼 날개 쪽에다 달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관포가 중앙에 있지 않고 옆에 있으면 조준이 어려워지는데다가 발사시 반동으로 기수가 돌아가 버리므로 날개에 다는 일은 흔하진 않았다. ]
미 공군은 베트남에서 F-4C를 운용해보면서 실전을 통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필요 없는지를 배웠다. 배운 것은 빠르게 실천해야 하는 법.
1966년부터 미 공군에 배치된 F-4D는 F-4C의 문제점을 고쳤으나 대부분 외부보다는 내부전자장비에 한해서 수정이 이루어졌다.
먼저 레이더를 APQ-100에서 AN/APQ-109A로 바꿨다. 이 레이더는 이전 것에 비해 더 작고 가벼운데다가 고장률도 더 적었다 (베트남의 습한 날씨 때문에 전자장비들이 생각보다 잘 고장났다).
기수 부분에 있던 AAA-4 적외선 탐색 및 추적 장치는 생각보다 별 효용성이 없다고 판단, 제거했다. 그러나 곧 기수 부분에 다시 작은 돌기물이 설치 되었는데, 이 안에는 AAA-4 대신 적 레이더 전파를 수신하는 ALR-25 혹은 ALR-26 레이더 경보 시스템의 안테나가 자리잡았다.
[에어쇼에서 시범 비행중인 F-4D. 기수 밑에 있는 돌기물에는 AAA-4 적외선 탐색장치 대신 ALR-25 혹은 ALR-26 레이더 경보 시스템의 안테나가 들어가 있다.]
[F-4D의 기수부분. 기수 밑 돌기물 주변에 다시 작은 원형돌기물이 더 늘어났는데 이 작은 원형 돌기물들 하나하나가 별도의 안테나다. 사방을 향하고 있다 보니 더 주변 여러곳에서 날아오는 적의 레이더 전파를 잘 잡아 냈다. 이런 돌기물들은 AN/ALR-69라는 더 발전된 레이더 경보 수신기를 단 F-4D에서 볼 수 있다. ]
한편 F-4C에서는 AIM-4 팰콘 공대공 미사일 사용능력을 남겨두었으나, 이 미사일이 구식이 되면서 F-4D에서는 운용을 위한 시스템을 빼버렸다.
F-4D는 지상공격을 위한 시스템도 대폭 개량되었는데, 미 공군이 F-4C를 도입할 때부터 팬텀을 공중전뿐만 아니라 지상공격용으로도 많이 활용할 생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AN/ASQ-91 무장 투하 컴퓨터는 항공기의 속도, 고도 등과 레이더로 탐지한 지상 목표물의 거리, 위치 등을 고려해 조종사에게 언제 폭탄을 투하하면 명중할지를 알려줬다. 이는 조준경을 보면서 거의 조종사의 감만으로 폭탄을 투하해야 했던 종전 방식에 비해 엄청난 발전이었다.
또 F-4D는 F-4C가 사용하던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이외에도 GBU-8 TV 유도 폭탄이나 각종 레이저 유도폭탄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이들 지상 공격용 무기들의 운용을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AN/ASQ-152 페이브 스파이크 (Pave Spike)등 다양한 레이저 목표 조준용 장비를 탑재했다.
기관포 포드는 더 개량된 SUU-23/A를 사용했다. 이 기관포 포드 안에 들어 있는 M-61 기관포는 공군의 명칭상 GAU-4/A라고 불렀는데, 다른 M-61 기관포 종류와 달리 외부에서 전원을 넣어줄 필요가 없었다. 총알이 발사되면 발생하는 가스의 힘을 이용하여 기관포를 작동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R.A.T을 쓸 필요가 없으므로 SUU-16/A에 비해 공기저항도 더 줄었으며 무엇보다도 최저속도 제한이 사라졌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팬텀의 동체 중앙에 달린 SUU-23/A 기관포 포드. 풍력발전 방식인 SUU-16/A와 달리 발사시 생기는 가스의 힘으로 스스로 작동했다.]
[SUU-23/A의 껍데기를 벗겨보면 안쪽에는 GAU-2 기관포가 나온다. SUU-23/A은 SU-16/A와 마찬가지로 약 1200발의 탄약이 들어간다.]
F-4D에는 개량된 기관포와 함께 기관포 조준용 시스템도 추가되었다. AN/ASG-22 광학 조준기는 현재 팬텀의 비행상태와 레이더로 조준된 적기의 비행정보를 가지고 계산, 어느 지점을 조준해서 예측사격을 해야 현재 조준한 적기를 맞출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기관포탄이 날아가는 시간동안 적기도 움직이므로, 적기가 움직일 방향에다 기관포를 쏴야 한다. 이를 예측사격이라 한다).
하지만 미 공군은 F-4D만으는 만족할 수 없었으며, 더 새로운 팬텀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본문에서 나온 각종 폭탄과 목표지시용 포드에 대해 설명을 좀 더 하면 다음과 같다.
베트남전 때 사용한 대표적인 레이저 유도폭탄으로는 페이브 웨이가 있다. 페이브 웨이 시리즈 중 GBU-10은 2000파운드(약 900kg)급, GBU-11은 1000파운드(450kg)급이며 GBU-12는 500파운드(약 230kg) 급이다. 이들은 각각 Mk.84(2000파운드급 일반 폭탄), Mk.83(1000파운드급 일반 폭탄) Mk.82(500파운드급 일반 폭탄)의 몸체에 유도용 장치를 덧붙이는 식으로 조립한다.
[패이브웨이 유도폭탄의 구성. 중앙의 폭약이 들어 잇는 몸체 부분은 일반적인 폭탄의 것 그대로다. 앞쪽에는 레이저 탐색기와 조종장치 및 조종용날개가 달린 부분을 추가한다. 그리고 뒤쪽에는 폭탄의 신관과 더 안정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별도의 꼬리날개를 붙이게 된다.]
이 폭탄은 레이저 유도 방식인데. 이는 목표물에 레이저를 조준하고 레이저 유도폭탄을 떨구면 페이브웨이 앞쪽에 있는 레이저 탐색기가 레이저를 비추고 있는 방향을 찾는 방식이다. 그리고 유도 조종장치가 이 정보를 가지고 앞쪽의 조종용 날개를 움직여 폭탄이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하도록 폭탄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준다(당연한 이야기지만 터무니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폭탄을 떨궈도 폭탄이 알아서 목표물을 찾아가는 수준은 아니다).
목표물에 레이저를 조준하는 것은 폭탄을 떨구는 전투기가 직접 할 수도 있지만, 동료 전투기나 기타 항공기가 대신할 수도 있다. 심지어 지상군이 레이저 조준기를 이용해 목표를 대신 조준해 줄 수도 있다.
빠르게 비행하는 전투기는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이렇게 지상군이 목표를 정확히 파악해서 조준해주거나, 느리게 비행하는 항공기가 대신 목표를 조준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다. 다만 명중하는 순간까지 누군가 레이저로 유도해주지 않으면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동하는 목표물이라고 해도 이동방향에 따라 정확히 레이저로 조준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건물뿐만 아니라 차량 같은 이동 목표용 공격에도 많이 쓰였으며 현재도 각국이 개량형인 페이브 웨이2, 페이브 웨이3 등을 운용중이다.
[페이브웨이 시리즈의 원조격인 GBU-1 레이저유도 폭탄. 이 역시 폭탄 몸체는 M117 750파운드(340kg)폭탄의 것을 사용하고 있다. M117 폭탄은 초음속 전투기가 등장하기 이전인 6.25 즈음 부터 등장한 폭탄이다 보니 위에 언급한 Mk.82,83, 84등에 비해 비교적 뚱뚱한 인상이다. ]
이 폭탄 앞에는 일종의 카메라가 달려있는데, 후방석의 승무원은 이 카메라로 목표물을 살핀다. 그러다가 목표물을 지정한 다음 투하하면 폭탄은 지정된 목표를 향해 스스로 날아간다. 물론 로켓같은 추진 장치가 없는 폭탄이므로 정확히는 떨어지면서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정도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일반적인 폭탄에 비하면 훨씬 높은 명중률을 보였다. GBU-8은 2000파운드급 폭탄인 Mk.84의 폭약이 들어 있는 몸통을 그대로 두고 여기에 유도장치를 덧붙이는 형태로 조립되며, GBU-9은 M118 폭탄(3000파운드 급, 약 1400kg)의 탄체를 이용했다. 베트남전 당시에 팬텀은 GBU-8은 실전에서 쓴 적이 없으며 GBU-9만 사용했다. 이 TV 유도 폭탄은 이후. 적외선 카메라를 탑재해 야간에도 쓸 수 있는 GBU-15가 등장하면서 퇴역했다.
[GBU-8 TV유도 폭탄. 레이저 유도폭탄과 달리 한 번 목표물을 정해주면 투하된 뒤에는 스스로 목표를 향해 날아간다. 누군가가 레이저로 끝까지 조준해 줄 필요가 없으므로 폭탄을 투하한 전투기는 곧바로 기수를 돌려 적의 방공포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이저 유도 폭탄 보다 값도 비쌌고, 또 목표물이 영상으로 보았을 때 주변과 확실히 대비되지 않으면 폭탄이 목표물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
AGM-65 매버릭은 GBU-8과 마찬가지로 유도 방식으로 카메라를 사용한다. 매버릭은 GBU-8에 비하면 파괴력은 더 적었지만 대신 로켓으로 추진되는 미사일이었으므로 이론상으로는 20km 이상 떨어진 먼 거리에서도 지상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었다. 다만 실제로는 목표물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10km 정도까지는 접근해야 했다.
특히 이 미사일은 이동하는 목표물도 정확히 쫓아가므로 전차, 장갑차 및 기타 차량 공격용으로 많이 쓰였다.
AGM-65도 버전이 매우 다양한데, 베트남전 이후에는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하는 AGM-65D, 폭약량을 늘린 AGM-65F, AGM-65G, 레이저 유도방식을 사용하는 AGM-65E 등이 개발되었다. 현재도 미군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사용중인 단거리 공대지 미사일이다.
[AGM-65 매버릭. 사진은 레이저 유도형이다. 레이저 유도형은 앞서본 패이브웨이처럼 누군가가 레이저로 목표물을 조준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상군 부대가 공군에게 지원요청을 할 때, 일일이 어느 좌표의 무엇을 공격하라고 무전으로 연락할 필요 없이 레이저로 지시해주면 미사일이 알아서 목표물을 정확히 공격하므로 오폭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항공 화력지원 요청을 자주하는 미 해병대가 가장 먼저 레이저 유도형 매버릭 개발에 앞장 섰다.]
페이브 스파이크는 레이저 조준용 장비다. 전체 시스템은 AN/ASQ-153 페이브 스파이크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AN/AVQ-23이라는 항공기 외부에 장착하는 포드와, 항공기 내부에 들어가는 몇 가지 장비로 구성된다. 외부에 장착하는 포드의 머리 부분에는 여러 각도로 돌아가는 TV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팬텀 후방석의 승무원이 조종용 스틱을 가지고 이 카메라를 움직일 수 있다. 레이저 유도 폭탄을 떨어트릴 준비가 되면 후방석 승무원은 카메라 영상을 조종석에서 보면서 목표물을 찾고, 계속 카메라가 목표물을 비춘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레이저를 켜면 레이저가 목표물을 비추게 되며, 앞서 설명한 대로 레이저 유도폭탄은 이 레이저가 만들어내는 레이저 점을 찾아간다.
한편 레이저를 이용해서 목표물까지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었는데, 이 거리 정보를 가지고 폭탄 투하 타이밍을 재는 컴퓨터에 정보를 주어서 일반 폭탄을 투하하는 자료로 쓸 수도 있었다.
다만 패이브 스파이크의 카메라 및 레이저 조준기가 장착된 머리 부분은 회전각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목표에 폭탄이 명중하기 전까지는 전투기의 자세를 크게 바꿀 수 없었다. 또 후방석 승무원이 수동으로 계속 목표물을 조준하는 방식이었으므로 급기동을 하게 되면 목표를 화면에서 놓쳐버릴 수 있었다.
팬텀은 페이브 스파이크를 동체 아래의 앞쪽에 있는 스패로우 발사대에 달 수 있다.
[AN/AVQ-23 포드. 페이브 스파이크 시스템 중 항공기 외부에 장착되는 부분이다. 앞쪽에 투명한 유리창이 있는 머리부분 안쪽에는 카메라와 레이저 조준/거리측정기가 들어 있다.]
동체 아래에 페이브 스파이크를 장착한 팬텀의 모습. 비행시에는 사진 속의 포드처럼 머리부분에 있는 유리창이 포드의 뒤쪽을 향하게 한다. 유리부분에 이물질이 묻거나 외부물질에 의해 손상될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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