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아이들] ① 혼외자라서, 출생신고 어려워서...어른들 방치로 아이들은 ‘투명 인간’이 됐다
입력2023.06.23. 오후 4:27
수정2023.06.23. 오후 6:14
기사원문
이현승 외 3명
감사원이 찾아낸 출생신고 안 된 아동 2236명
의료·교육·복지 서비스 못 받고 학대 당해도 몰라
양육 원치 않아서, 출생신고 어려워서 ‘포기’
결혼한 부모도 병원에서 낳지 않으면 출생신고 복잡
미혼부, 출생신고 하려면 소송까지 해야 할 수도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더라도 입학할 수 없는 아이들. 아파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 학대를 받더라도 감시 체계에 잡히지 않아 보호받을 수조차 없는 아이들. 이들은 엄연히 세상에 존재해도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 이런 ‘투명인간 아동’이 전국에 최소 223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제도와 법률적 허점,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을 3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딱 봐도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간단한 숫자 더하기 빼기를 못 해요.”
2016년 5월 대전 동부경찰서에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신고한 사람은 대전의 한 슈퍼마켓 주인.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거스름돈 계산을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수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양이 법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99년에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A양은 무려 18년간 국가 기록에 존재하지 않은 유령 인간으로 지내야 했다. 멀쩡히 살아 있어도 서류상 존재하지 않으니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아파도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여관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A양의 친모와 동거남은 행여나 문제가 생길까 봐 A양을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의무 교육에서도 소외된 A양은 친모에게서 겨우 기본적인 읽기, 쓰기 정도만 배웠다. 그렇게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18년을 보냈다.
A양을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 건 그를 둘러싼 어른들이었다. 모친은 전 남편과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동거하는 와중에 A양을 낳았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전 남편 아이로 등록하거나 동거하던 남자가 친부임을 법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아예 신고 자체를 포기한 채 세월을 흘려 보냈다. A양은 2017년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가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하면서 18년 만에 겨우 무적자(無籍者·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정부기관 서류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서 벗어났다. 현재는 지방자체단체 도움을 받아 초·중등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A양처럼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은 전국에 2000명이 넘는다. 지난 22일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수는 전국에 2236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이전 관련 자료가 없다는 점, 병원 밖에서 출생한 경우는 아예 집계에서 빠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 수는 이 수치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이 아이들은 아동 학대 감시망에 잡히지 않아 학대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2236명은 빙산의 일각...미출생신고 아동 현황 파악 ‘전무’
2021년 2월, 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3세 여아가 심하게 부패한 상태로 발견 됐다. 부검 결과 숨진 지 6개월이나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아동과 함께 살던 20대 김 모씨는 재혼 후 이사하면서 아이만 홀로 집에 두고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경찰 수사 결과 김 씨가 아이를 낳기 위해 산부인과를 간 기록도 없었을 뿐 아니라 출생신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구미 사건 한달 전 인천 미추홀구에서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친모에게 학대 당해 숨진 8살 아이가 발견 됐다. 사망 당시 몸무게는 또래보다 10㎏ 적은 15㎏에 불과했고 최근까지 기저귀를 사용한 정황도 발견됐다. 친모는 아이가 죽은 걸 알고도 일주일간 방치하다 “딸이 죽었다”고 119에 신고했다. 친모는 사실혼 관계였던 친부가 집을 나가자 배신감에 딸을 숨지게 했다고 진술했다.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사망신고를 할 필요가 없었으나, 검찰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런 실정이지만, 정부는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이 현재 전국에 몇명이나 되는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출생신고가 안된 아동을 추적할 길이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던 감사원은 출생신고 전 신생아에게 예방접종을 위해 7자리 ‘임시신생아번호’가 부여된다는 점에 착안해 질병관리청의 예방접종통합시스템에 등록된 번호와 출생신고 여부를 대조한 끝에 무적자 아동 2000여 명을 찾아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질병청 자료를 확인할 수 없었으며, 원치 않는 임신, 미혼모 등 여러 사유로 개인이 출생신고를 안 하는 사람들까지 전수조사를 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한 여성이 상점에서 신생아 용품을 구경하는 모습. / 뉴스1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를 한다는 건 국가의 관리대상에 포함 돼 의료· 건강·복지 등 각종 행정 서비스를 제공 받게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여개 달하는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고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의료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초·중·고교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 받고 아동수당·청년수당·돌봄 서비스 등 각종 복지 제도의 수혜 자격을 얻는다. 출생신고가 된 아이들은 성장과정에 맞게 부모가 의료, 교육 등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정부가 모니터링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의무이지만 출생신고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책임지고 감시하는 주체가 없다. 출생신고 업무가 단계별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출생신고 접수는 지자체하고 하고 주민등록은 행정안전부, 아동복지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서울의 한 아동양육시설 관계자는 “출생등록을 위한 단계별로 담당기관이 제각각”인데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의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법이 정한 ‘일반가정’에게만 쉬운 출생신고...미혼부·혼외자는 첩첩산중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법)상 출생신고는 기본적으로 ‘혼인관계인 부모가 의료기관에서 아이를 낳은 경우’를 일반적인 사례로 상정해 그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밖의 경우, 예컨대 미혼부·모이거나 병원 밖에서 출산이 이뤄졌다면 출생신고 절차가 아주 복잡해진다.
그래픽=정서희
B씨는 중학생 때 사귀던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가진 아이를 집에서 출산했다. 배가 불러오고 생리가 끊기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부모님에게 혼날 것이란 두려움에 임신 사실을 숨겼다. 열 달을 버틴 끝에 부모가 집에 없을 때 아이가 나오려 하자 극심한 고통에 소리를 질렀고, 이를 들은 옆집 이웃의 도움으로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부모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고 이웃이 알려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했다.
B씨는 아이를 입양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따라 일단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포기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출생신고 사실이 남을 것을 우려해서다. 입양 과정이 끝나면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아이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지만, 이런 내용을 모르거나 언제 입양이 이뤄질 지 모르는 불안감에 베이비박스를 찾는 이들이 많다.
설사 아이를 입양보내기 위해 출생신고를 하려고 해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병원 밖에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출생신고에 필요한 기본서류인 ‘출생증명서’가 없어서다. 이 경우 가정법원에 ▲출생을 증명하는 서면을 첨부할 수 없는 사유를 소명할 수 있는 자료 ▲모친의 신상에 대한 기본증명서 ▲모친과 아동의 혈연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자료 ▲모친의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을 보내 출생확인을 받아야 한다.
미혼부의 경우 아이를 출생신고 하기 위해 소송까지 불사해야 한다. 제주도에 살던 20대 후반 C씨는 어느 날 집 앞에 ‘당신의 아기’라고 쓰인 쪽지와 함께 갓난아이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DNA 검사를 통해 자신의 아이임을 확인한 뒤 양육자가 되기로 하고 출생신고를 하려 했다. 그러나 친모가 어딨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출생신고를 하려면 가정법원에서 자신의 아이임을 확인 받아야 했다.
미혼부가 가정법원에 제출할 서류는 친모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사유를 소명할 자료,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이다. 유전자 검사에만 한달이 걸리는데 친부는 그동안 양육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만약 친모에게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다면 일단 친모에게 출생신고를 해달라고 한 뒤, 친생자관계존부 확인소송을 제기해 “현재 법적 부친으로 등록된 사람이 친부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배우자가 불륜해 낳은 아이의 출생신고 의무를 남편이 거부해 신생아의 출생신고가 반년 간 이뤄지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D씨는 이혼 소송 중이던 아내가 작년 말 불륜남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다 숨지자 “다른 남자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없다”며 출생신고를 거부했다. 아이는 충북 청주의 한 시설에서 보호받았지만 출생신고가 안 돼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 보낼 수 없었다. D씨는 3월 법원에 친생 부인의 소를 제기해 “친자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관할 지자체인 청주시가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검사나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할 수 있지만, 친모의 동의가 필요하고 출생신고서가 있어야 한다. 태어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출생지를 모르거나 태어난 병원이 폐업한 경우 친부모를 찾아 유전자검사를 통해 법원에서 출생확인을 받거나, 친생자관계 존재확인 판결을 받아야 한다. 친부모를 찾을 수 없다면 법원에 성과 본관을 만드는 ‘성·본 창설’을 신청해야 하는데, 신청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신청해도 최소 6개월이 걸린다.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함께 도입 돼야”
정부와 시민단체에선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출생 사실을 통보하게 하고, 출생신고가 안 되면 지자체가 직권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이 법이 통과되지 않는 이상 의료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아이를 사전에 파악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지나친 업무 부담과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반대하고 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 목사는 “보호출산법이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출산법은 임산부가 익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다.
이현승 기자 nalhs@chosunbiz.com이학준 기자 hakjun@chosunbiz.com최효정 기자 saudade@chosunbiz.com김민소 기자 mins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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