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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에 떠도는 착각과 무지 2
정진명(온깍지궁사회)
1. 옛사람들이 활을 배운 까닭
구사들에게 활 배운 동기와 사연을 들어보면 요즘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활을 배우려고 해서 배운 게 아니라, 활터에 올라가면 점잖은 어른들이 많고 또 지역 유지들이 계셔서 그 분들의 인품을 보고 그걸 닮으려고 활터에 갔지."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도 과연 이런 동기 때문에 활터에 올라오는 분이 계실까요? 답은 그렇지 않다, 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회에서 나름대로 일정한 지위에 있던 분들은 활터의 옛날 분위기를 익히 들어서 퇴임 후에 소일거리로 활터에 가 점잖은 분들과 어울릴까 하고 생각하고 올라왔다가, 초등생만도 못한 양아치 짓이나 하는 사람들의 유치한 현장을 목격하고는 넌더리가 나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사는 청주를 봐도 어렵지 않게 그런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한 분이 점잖은 말년을 보내려고 활터에 올라갔다가 이태만에 활을 접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치단체에서 직할로 운영하는 활터가 생겨서 임원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 제공되자, 새벽 시간에 나와서 같은 이유로 활을 그만둔 친구들 서넛과 함께 여유로운 활쏘기를 즐기며 사십니다.
선생님들은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온 사람입니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활터에 올라와서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는 것은 오늘날 활터가 어떤 환경에 놓였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활터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활터가 건전한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특정 활터만을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전체의 경향을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활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전국의 어딜 가도 시끌시끌합니다. 다른 스포츠 단체도 시끄럽겠지만, 활터처럼 시끄러운 곳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활터가 시끄러워서는 안 되는 것이고, 옛날엔 그렇게 시끄럽지 않았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활터에는 덕망 있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보고 배울 것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함께 어울리다 보면 활터에서 배워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저절로 체득했던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활터에 한 번 올라온 사람들은 저절로 '나도 저거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량들 중에서 어릴 적이 구경한 이런 활터 분위기 때문에 집궁한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활터는 좋은 마음으로 왔던 사람도 발길을 돌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끄떡하면 제명이요, 까딱하면 징계 어쩌구 하니, 막장드라마도 이런 곳이 없습니다. 취미로 하는 생활에 누가 징계를 감수하며 활을 배우고 싶겠습니까? 새로 배우는 것은 둘째치고 이미 점잖게 활을 쏘던 사람들도 활터를 떠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2. 활터에 남은 것은?
이렇게 점잖은 사람들이 떠난 활터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덕망과 인품이 사라진 활터에는 2가지가 남았습니다. 감투와 과녁 맞히기. 본래 덕망이니 인품이니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조용히 감동하고 본받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사라지자 눈에 보이는 것만 남았습니다. 감투와 과녁 맞히기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활터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증상들이죠. 그러자 사람들이 그 두 가지에 신경을 씁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판의 전략과 간계가 활터를 어지럽힙니다. 그 과정에서 매스컴의 내용 중 정치에서 배운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합니다. 실제로 제가 사는 곳의 한 활터에서는 사두 선거 1달 전에 대여섯 명의 신사가 들어왔다가 사두 선거가 끝난 뒤에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알고 보니 투표를 염두에 두고 사범이 머릿수 확보하려고 양아치 친구들을 데려왔던 것이었습니다. 이 감투 얘기는 너무 더러운 것이니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투 외에 인품과 덕망이 떠난 자리에 산처럼 우뚝 솟은 것이 과녁 맞히기입니다. 앞서 첫 번째 질문 어째서 활을 배우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함께 구사들과 면담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옛날 사람들은 시수가 안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장비 문제가 아닙니다. 옛 사람들은 과녁 맞히는 일보다 자신이 활터에 올라와서 각궁을 들고 활을 쏘는 그 멋 자체를 즐겼다는 것입니다. 뒤에 기생이 붙어서 획창을 하는 사연도 있습니다만, 과녁 맞히는 것을 활터에서 해야 할 최고의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활터에 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노는 게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과녁을 잘 맞히면 칭찬을 받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못한 사람과 차별을 두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해방 후에 전국의 대회를 살펴보면 100~200명 정도가 참가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수상자는 많아야 10명 남짓입니다. 지금처럼 시수로 따진다면야 나머지는 대회에 참석할 필요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대회에 가는 것은 맞히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매력과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당시 과녁 잘 맞추는 것은 가벼운 칭찬거리였지 활쏘기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표라고 보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옛사람들이 그런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과녁 맞히는 것이 활쏘기의 목적이라면 전통 활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녁 맞히기는 사격입니다. 그깟 사격술 때문에 활을 배운단 말입니까? 차라리 그럴 거면 더 정확한 총 사격을 배우면 됩니다. 뭐 하려고 그 불편한 구식 장비로 과녁을 맞힌단 말입니까? 활쏘기의 목표는 과녁 맞히기가 아니라는 것은 옛사람들은 벌써 알았던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남긴 자취를 보면 이건 정말 또렷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단급제도입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단급제도가 도입되었는데, 내내 시큰둥하다가 1980년대 들어와서야 위력을 발휘해서 이제는 몇 단이 활을 쏘는 이유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가히 '광풍' 수준입니다. 인품과 덕망이 사라진 곳에 명궁이 우뚝 나타난 것입니다.
3.명궁이 문제인 까닭은?
단급제도는 일본의 유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 궁도에서는 승단심사가 굉장히 엄격합니다. 5단 이상을 넘어가면 이론 시험이 철학 수준에 이릅니다. 그렇게 엄격하게 관리되기에 사범이 된다든가 범사, 연사가 된다든가 하는 것은 정말 큰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과녁 맞히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경력과 궁체가 승단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껍데기만 수입한 우리나라의 승단제도는 어떤가요? 과녁 맞히기 하나만 봅니다. 몇 발에 몇 발 맞히면 5단이 되고 9단이 됩니다. 초고속으로 하면 5~6년이면 9단이 될 수 있습니다. 궁체고 뭐고 없습니다. 과녁만 잘 맞히면 일본 궁도에서 평생에 이룰까 말까 한 9단을 5~6년만에 이룰 수 있습니다. 5단부터 명궁 호칭을 주니 이제는 오다가다 어깨를 부닥칠 만큼 많은 존재가 활터의 명궁입니다. 차라리 이럴 거면 골프처럼 랭킹으로 하는 게 낫습니다 대회 상금 가장 많이 따먹은 사람부터 등급을 매겨서 1년 합산하여 1등하는 사람에게 초록 재킷을 입히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의 사법과 궁체가 전혀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옛날에는 각궁을 구하기도 힘들었을뿐더러 각궁을 배우려면 10년 세월이 걸립니다. 그 사이에 선배로부터 저절로 활터 생활의 불문율이라든가 선사를 대하는 방법, 그리고 활 잘 쏘는 비법을 하나씩 전수 받습니다. 과녁을 잘 맞히어도 사법이 틀렸다고 꾸중을 듣는 시절이었습니다. 전통 사법이 과녁 잘 맞히는 방법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는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비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거지로 잘 맞히는 것과 그 비법을 배워서 잘 맞히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궁체도 다르고 힘 쓰는 방법과 근육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한 세월이 걸리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활터는 상류사회의 사교클럽 같은 곳이었습니다. 자연스레 당대의 고위층 인사들과 지역의 어른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골프의 등장과 더불어, 그런 분들이 활터를 떠나 골프장으로 가고 개량궁이 나타났습니다. 상류사회의 골프 이동이야 그렇다 쳐도 개량궁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각궁을 자기 사법과 몸에 맞게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데 한 세월이 걸리는데, 그 과정을 생략해도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또 한 가지 기준이 눈앞에 또렷이 등장합니다. 과녁 맞히는 것입니다. 잘 맞으면 궁체가 어찌 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새로 배운 사람들은 과녁으로부터 연역하여 사법을 재구성합니다. 자신의 궁체를 먼저 만들어서 과녁을 맞히는 게 아니라 과녁에 맞도록 몸을 짜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1년이면 시수가 명궁을 능가합니다.
구사들은 활을 이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줌팔은 어떻게 하여 어떤 근육을 쓰고 깍짓손을 당기는 속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뚜렷이 자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구사들과 함께 쏘면서 그들의 동작을 곁눈질하면서 배운 것이고, 간간이 속힘을 쓰는 원리에 대해서 조언을 받는 정도였습니다. 전통 사법에 대한 내부의 치밀한 논리가 없었기 때문에 개량궁으로 바뀐 개량궁체에 대해 반박할 자신의 논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사격술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개량궁 사법이 활터에 정착한 것이고, 그것을 '명궁'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신의 사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명궁들이 나서서 만들었으니 <명궁 사법>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명궁사법의 목표는 단 한 가지입니다. 과녁 잘 맞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녁에 줌을 박아놓고 시위를 잡아당기는 겁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사법 아닌가요? 그렇죠. 양궁 사법입니다. 명궁 사법과 양궁 사법은 구별되지 않습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명궁 사법은 전통 사법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오로지 과녁 맞히는 데 최적화된 사법입니다.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충실한 것이니 탓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명궁 사법을 '전통 사법'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모든 명궁들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명궁들이 욕심을 내서 그러고 다니지요.) 이거야 말로 망발이요, 옛 조상들을 엿먹이는 수작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제가 아는 전통 사법은 명궁 사법과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명궁들의 과녁 잘 맞추는 '명궁 사법'을 충분히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사법을 '전통 사법'이라고 호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멸합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저는 모든 명궁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의도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제 분수를 모르고 전통 운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문제를 분명히 짚고자 하는 것입니다.
4. 전통사법의 어려움
그러면 전통 사법은 명궁 사법과 무엇이 다를까요? 청주의 한 활터에 자칭 '대한민국 명궁'이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어느 날 <조선의 궁술>을 들고 나타나서는 류근원 명무의 궁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발 자세가 바뀌고 깍짓손을 온깍지로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무려 6~7년을 곁눈질하면서도 질문은 단 한 번을 하지 않았습니다. 집궁 시기로 치면 류 명무가 자신의 한창 후배이니, 쪽팔려서 질문을 할 수 없었겠지요. 류근원 명무에게 제가 그런 사람에겐 절대로 사법을 알려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한테 배워놓고서 제가 이루었다고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곧 전통사법이라고 말할 것이 뻔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은 『조선의 궁술』의 전도사인 양 행세하며 전국을 돌아다닙니다. 남들이 보면 5천년 전통 활쏘기의 화신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눈에는 『조선의 궁술』을 팔러다니는 약장사 정도로 보이죠. 하하하. 너무 했나? 그렇지만 그 명궁님의 사법이 제가 아는 『조선의 궁술』 속에 그려진 사법이나 성낙인 옹의 궁체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류근원 명무의 겉모습만 보고 흉내냈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속을 들여다볼 눈이 없는 사람이 겉만 흉내내니 그게 일치할 까닭이 없지요. 제가 이렇게 심한 말을 하는 데는 나름대로 다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저를 까막눈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하하하.
『조선의 궁술』을 들고 다니며 아는 체하는 사람들은 성낙인 옹의 궁체 동영상을 보여주어도 틀렸다고 할 게 분명합니다. 자기 사법이 전통이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예수가 살아온들 그의 말을 믿겠습니까? 그래서 성낙인 옹의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공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하하.
우리가 말하는 전통 사법은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을 말합니다. 이것을 곁눈질로 배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활터를 떠도는 착각과 무지입니다. 옛날에 사범 옆에서 각궁으로 10여년을 배워도 잘 안 되었던 것이 전통 사법입니다. 『조선의 궁술』에 적힌 몇 쪽 안 되는 사법의 내용을 읽어서 사법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음의 극치임을, 정작 그러고 다니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가 봅니다.
무술은 책이나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명궁'이 6~7년을 바로 옆에서 곁눈질해도 못 배우는 것이 전통 사법입니다. 코앞에서 쏘고 있어도 따라 해보면 안 되는 것이 사법이고 무술입니다. 과녁 맞히는 재주로 명궁이 된 사람이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을 배운다는 것은, 삶은 밤을 심어놓고서 싹 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온깍지활쏘기학교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또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활을 오래 쏜 사람일수록 가르치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신사들이 전통 사법을 훨씬 더 빨리 배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사는 한 5년 정도면 전통 사법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10년 활을 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명궁은 더더욱 가르칠 수 없습니다. 가르쳐봤자 따라 하지를 못합니다. 이미 잘못된 버릇이 뼛속까지 스며들어서 그것을 게워낼 수가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는 차라라 백지가 나은 것과 같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명궁들 옆에서 구사들이 입을 닫은 이유는, 전통 사법에 서린 내면의 원리를 논리화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나 몸으로는 알아서 그 체험이 워낙 특이하여 그것을 인식할 방법도 없고 인식한다고 해도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해봐. 해보면 알아!'라는 식으로 말을 얼버무리고 넘어간 것입니다. 나중에 동양의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 현상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온깍지학교 수업에서는 동양의학의 원리에 대해서도 간간이 설명합니다.
구사들이 설명을 못하는 사이 명궁들은 과녁 맞히기로 자신의 개량궁 사법을 논리화해나갔고, 여기에 양궁의 이론이 스며들면서 그 이전의 사범들을 뒷방 늙은이로 몰아붙이면서 '명궁 사법'의 완판승으로 끝납니다. 옛 사법을 말하는 사람들은 사라졌습니다. 이 '사라졌다'는 과거형 표현은 활터의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통 사법의 단절을 우리가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즉 온깍지궁사회 공개활동 7년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2001년부터 공개 활동을 한 온깍지궁사회는 전국에 구사가 있다면 안 간 곳이 없습니다. 해방 전에 집궁한 분들도 20여분 만났고, 당시 30~40년 쏜 분들은 숫자를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그 분들을 만나면서 우리의 전통 활쏘기가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을 국궁논문집에서 여러 차례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17년이 흘렀습니다. 한 세대의 절반이 흘러간 것입니다. 우리에게 옛 풍속과 사법을 말해주었던 구사들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해방 직후에 활동한 분들이 나이가 80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들은 명궁들에게 쫓기던 세대입니다.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고, 그들을 존경하는 명궁은 더더욱 없습니다. 구사들을 뒷방 늙은이로 몰아낸 자신의 말이 곧 사풍이고, 자신의 궁체가 곧 사법입니다.
온깍지궁사회의 활동이 의미있다고 하는 것은, 이 모임의 방향성 때문입니다. 답을 정해놓고 그것을 전도하려 한 것이 아니라, 구사들을 찾아다니며 무엇이 전통사법이고 전통 사풍인지 알아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구사들을 만나면 사법에 대한 기억이 한결같습니다. <조선의 궁술> 속 사법과 똑같습니다. 그들이 배울 때 선배들이 가르쳐준 주옥같은 말씀을 우리는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돌아가 습사를 했습니다. 온깍지궁사회의 활동이 빛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비공개 카페에서 이러한 체험을 끝없이 논리화한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이런 체험과 그것을 우리가 아는 어떤 체계로 설명하여 쌓인 지식을 서로 나눠가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식의 공유가 이뤄지고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전통 사법의 비의를 밝히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온깍지궁사회의 내부활동은 저절로 전통사법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 행위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모이면 사법 얘기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궁체도 각기 다릅니다. 각기 다른 궁체에서 공통으로 흐르는 그 어떤 원리를 봅니다. 그래서 서로 달라도 아뭇소리 않고 흐믓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것입니다. 속이 보이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원리가 <조선의 궁술>을 감싸고 있습니다. 코앞에서 쏘고 있어도 알아볼 수 없고 따라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에 전통 사법을 곁눈질로 배우고 책으로 배울 눈썰미라면 아마도 태극권의 최고수는 우리나라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내가권 무술이고, 우리의 전통 사법입니다. 까불면 다칩니다.
전통 사법은 단절되었다고 단언합니다. 누가 '전통 사법' 운운하면 저는 사기꾼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냥 자신의 사법이라고 설명하십시오. 그게 편합니다. 앞에 '전통'이라고 이름 붙이면 자신을 속이고 나아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저는 온깍지궁사회 사계원 외에 전통 사법으로 쏘는 사람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전통 사법이 이미 단절되었거니와, 아직 전통 사법을 아는 분이 살아계셔서 그 분에게 배웠다고 해도, 그 분 자신이 혼자서 그 사법 세계의 내면을 논리화하여 남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을 것임을 익히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쏘는 것과 그것을 정리하고 논리화하여 남에게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입니다. 설명할 수 없으면 주먹구구로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배우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10년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날 활터에서 누가 10년 스승 모시고 배운닷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함부로 나댈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청주로 찾아오십시오. 제가 한 10가지 정도만 묻겠습니다. 그에 대하 답이 척척 나오면 전통 사법 체득 인증서를 드릴 것입니다. 저의 명예를 걸고 써드리겠습니다. 네까짓게 뭔데 그런 걸 써주냐고요? 아니면 말구요. 하하하.
저는 말을 가볍게 하지만, 그 말의 내용까지 가볍진 않습니다. 혜량을!
5.상식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활터
활터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분들은 아직 양심이 살아있는 분들입니다. 그러지 않고 제 말이 속으로 떫은 분들은 지금 활터 권력의 한 끝을 잡고서 대한궁○협회의 이념을 전파하려는 사명감에 불타는 분들입니다. 활터에 통하지 않는 상식을 몇 차레 지적을 했으니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듯하니 다른 문제를 말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활터의 미래에 관한 얘기이기도 한데, 도돌이표에 갇혀 사는 신세를 면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저는 새로운 세대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현실 활터와는 다른 공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상식이 통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안 되어 그런 기대를 접었습니다. 똑같은 말과 공허한 주장이 끝없이 되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긁힌 레코드 판 위를 끝없이 겉돌면서 똑같은 소리를 토해내는 구식 전축처럼 같은 얘기를 되풀이고 또 되풀이하여, 이제는 클릭하는 일조차도 괴로운 일이 되었습니다.
사법에 국한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사법에 대해서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 사람의 오류를 극복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즉 발전을 위한 토대를 놓으려고 입을 여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앞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떤 이론을 펼쳤나 알아보는 것입니다. 알아본 뒤에 그것의 장점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단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다음 논의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다음 사람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서 활쏘기 분야 전체가 한 발씩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며 발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도 그렇고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중구난방 제가 아는 것을 떠들어 제낍니다. 근거라고는 개울 바닥처럼 빤히 보이는 제 경험이 전부입니다. 또 그걸 퍼다가 여기저기 옮깁니다. 인터넷이라는 좋은 수단을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절망스러운 것은, 점잖은 석박사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인 것은, 활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분들이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발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허접한 논문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학계 현실에서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이런 식으로는 발전이 없습니다. 어쩌면 말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발전'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의 한풀이나 현실 속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저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경우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현실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법의 경우, 제가 외람되게도 어쩌다 글을 쓰게 되어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을 재해석하여 <온깍지 사법>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 사람은 <온깍지 사법>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서 말해야 할 것입니다. 묘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이 사법에 대한 비판이나 언급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가치가 없어서 그렇다면 이해할 만합니다. 그런데 학계도 국궁계도 <조선의 궁술> 이후 새로운 사법 논의가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치가 없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가 세상 경험이 부족하고 뭘 몰라서 잘 모르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어쨌거나 사람이 한 세월을 살다가 가는데, 늘 제자리를 맴돈다면 역사는 언제나 과거만을 되감는 무성영화로 끝나기 쉽습니다. 이것이 두려운 것이 저 하나만이 아니기를 간절히 빕니다.
상식은 진리라고 할 수 없지만, 진리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그 길마저 없다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활터에 상식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첫댓글 한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읽고 싶습니다.
태권도가 국기원으로 통합되면서 태권스포츠가 된것과 같이지는 셈이겠지요.
활공부를 함에 있어 글 자체로써 의미를 이해할려고 하기 보다는 왜 그런 표현들을 쓰셨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몸으로 가슴으로 체득할려 노력하고 있읍니다. 어렵지만 재미있습니다. 늘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노력하고 애써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궁체 좋은신 분들의 동영상은 많이 공개해서 사람들이 보도록 하면 좋겠네요. 눈으로 보고 또 보면서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으면 좋은 일이죠, 뭐 그 와중에 개소리 하는 분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