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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법 논쟁의 두 축
정진명(온깍지궁사회)
1. 사법 논쟁의 처음과 끝, <조선의 궁술>
1990년대 접어들어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국궁계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진 것이다. 그 중, 사법 부분에서는 <조선의 궁술>이 뜨거운 감자이다.
<조선의 궁술>은 조선궁술연구회에서 1929년에 낸 활쏘기 책이다. 당시 조선의 활쏘기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1998년 <사이버 국궁장>(운영자 이건호)에 전문이 스캔으로 소개된 후 이제는 활량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해방 전에 발간된 그 책에 묘사된 궁체가 해방후 50년이 지난 시점에 각 활터에서 쏘는 사람들의 궁체와 많이 달랐던 것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될수록 이에 대한 논쟁은 뜨거워졌고, 아직도 분명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논쟁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촉발시킨 것은 2001년부터 시작된 온깍지궁사회의 활동이다. 전통을 찾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내건 이 단체는 전국의 구사들을 찾아다니며 대담 채록을 한 결과, 그들이 말하는 사법과 <조선의 궁슬>에 쓰인 사법은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간 채록하여 정리 종합한 사법을 <온깍지 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고 인터넷에 공개하였다. <온깍지 사법>은 <조선의 궁술>에 기록된 사법을 충실히 계승한다는 원칙하에 정리된 것이다.
이후 인터넷에서는 <조선의 궁술>을 비롯하여 <조선의 궁술> 이전에 쓰이던 사법까지 등장하여 일대 혼란스러운 양상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백가쟁명 식으로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개인마다 자기 주장을 펼치는 중이다. 문제는 <조선의 궁술>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조선의 궁술> 속에 묘사된 궁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속한 활터에서 주먹구구 식으로 배운 사법을, <조선의 궁술> 속 문구에 적용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보니 어디까지가 <조선의 궁술> 사법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창작 사법인지 구별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궁술>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그 이전의 사냥이나 전쟁 때의 사법을 자기 나름대로 상상하여 재구성하는 중이고, <조선의 궁술>을 원하는 사람들은 지금 쏘는 자신의 동작이 그 책 속의 내용과 같다고 주장하며 <조선의 궁술>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중이다.
이런 혼란이 야기된 원인은 <조선의 궁술>에 기록된 사법 부분이 너무 간략하기 때문이다. 그 서술 내용이 간략하여 그것만을 보고서 동작을 재구성하면 그 글이 묘사하는 궁체대로 동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기록 중에도 몇 군데 오류가 있어서 그 오류를 바탕으로 재구성하면 엉뚱한 궁체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조선의 궁술> 어쩌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구절들을 해석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당연히 그 책을 만든 사람들의 말씀이고 동작이다. 당사자들의 말을 듣고 동작을 보면 그들이 쓴 글의 애매모호한 부분까지 다 알 수 있다. 모든 책의 내용은 저자에게 묻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서울 황학정의 성낙인 옹이다. 성낙인은 <조선의 궁술>을 만든 조선궁술연구회 성문영 회장의 아들로, 2013년 입산하기 전까지 자신을 찾아온 온깍지궁사회 회원들에게 <조선의 궁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실제로 궁체를 지도해주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인터넷 논쟁을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온깍지궁사회 카페 자료실에 올린 <'조선의 궁술'을 공부하는 분들께 드리는 몇 가지 질문>을 <국궁논문집9>(2017)에 실었다. 이 글에는 <조선의 궁술>을 공부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과 의문점을 조목조목 따져 공부하는 사람이 답할 수 있는 질문 형태로 만들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조선의 궁술>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조선의 궁술>을 두고 수많은 말들이 오가며 비판과 반비판을 거듭하는 중이다. 그런 질문을 한 사람으로서는, 질문을 회피한 채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인터넷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난감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논쟁이 그 분야에 기여하려면 그 앞선 주장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서 제시해야 하는데, 이미 나타난 논의에 대해 함구한 채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국궁계를 위해나 자신을 위해서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는 소모전임은 분명하다.
현재 국궁계에서는 <조선의 궁술>(1929) 이후, 체계화된 사법으로 정리된 것은 <온깍지 사법>이 유일하다. 이 사법이 발표된 것은 거의 20년이 다 돼가는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데도 인터넷에서는 <조선의 궁술> 논쟁이 치열하다. 기존의 질문을 회피한 채 진행하는 인터넷 논쟁이 자기 한계를 갖게 될 것은 분명하다.
1929년에 출판된 <조선의 궁술>은 국궁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는 진앙이다. 이들 논쟁이 유의미한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논쟁 방법의 일대 혁신과 논쟁 참여자들의 성실한 태도가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온깍지와 반깍지
국궁계에는 불꽃 튀는 논쟁이 몇 가지 주제를 두고 벌어지는 중이다. 그 중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가 온깍지 논쟁이다.
이 온깍지 논쟁은 온깍지궁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온깍지궁사회는 2000년에 몇몇 뜻있는 궁사들이 모여서 전통 보존에 대한 고민을 상의하다가 이듬해인 2001년에 공개활동으로 전환하여 2007년까지 7년간 활동하고 이후 친목회인 사계로 전환한 모임이다. 온깍지궁사회의 7년 활동이 온깍지 논쟁에 불을 붙였다.
먼저 용어. <온깍지>라는 말은 해방 전의 구사들이 쓰던 용어이다. 그러다가 온깍지궁사회가 출범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어 불과 6개월만에 전국의 한량들 중에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원래 이 말은 해방 전에는 있으나마나 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깍짓손을 발시와 동시에 뻗어서 쏘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활터 한량들이 쏘는 동작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지금의 한량들은 대부분 깍짓손을 뻗지 않고 양궁처럼 그 자리에 똑 떼고 만다. 이런 것을 반깍지라고 한다.
따라서 깍짓손의 모양이 해방 전과 요즘을 비교하면 완전히 정 반대가 된 것이다. 해방 전에는 요즘처럼 쏘면 잘 못 됐다고 지적을 받았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 반대이다. 깍짓손을 크게 뻗으면 지적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전통사법인가? 당연히 깍짓손을 크게 뻗는 것이 전통에 더 가깝다. 전통사법에서 깍짓손 처리 방식은 반깍지가 오답이고 온깍지가 정답이다.
활터에 반깍지가 대세를 이룬 것은 1970년대 무렵이다. 2가지 현상이 이를 부추겼다. 하나는 개량궁의 등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양궁의 영향이다. 개량궁은 양궁 재질로 국궁 활을 만든 것이다. 이 활은 옛날에 쓰던 각궁과 비교하면, 구사들이 바가지활이라고 말하며 안 좋은 활로 인식하던 그런 모양이다. 각궁을 닮았지만, 각궁의 장점을 많이 못 갖춘 그런 활이 바가지활이다. 이런 활을 쓰다 보니 그 활에 맞는 사법이 만들어진 것이고, 여기에 양궁이 도입되면서 사법까지 양궁의 뒷손을 닮아간 것이다.(실제로 양궁협회가 분리될 때까지 대한궁도협회가 양궁을 이끌었다. 따라서 초기 양궁 사범들은 대부분 국궁인이었다.)
국궁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개량궁이 나온 이후의 일이다. 개량궁은 1970년대 중반에 나왔고, 국궁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 무렵이다. 각궁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개량궁에 길들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사법이 양궁 사법을 닮은 반깍지 사법이다. 이렇게 하여 온깍지궁사회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200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전국에 온깍지로 깍짓손을 떼는 사람은 불과 3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심각한 역전 현상 때문에 모임 이름도 온깍지라는 용어를 쓴 것이고, 모임의 목적도 활터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존한다는 원칙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행사와 사업을 꾸준히 했다.
그러자 저절로 온깍지에 대한 반감도 생겨났다. 온깍지라는 말을 온깍지궁사회가 만들어낸 신조어라는 주장부터, '너희가 온깍지면 우리는 반쪽짜리 활이란 말이냐?'하는 쌩뚱맞은 비난성 비아냥거림까지 나왔다. 이런 비난과 비판에 대해서는 때마침 활성화된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부분 정리되었다. 즉 온깍지라는 말은 신조어가 아니라 해방 전부터 쓰던 용어라는 것이 밝혀졌고, <온-반>의 문제도 활터에 있는 용어로 어느 한쪽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온이 좋고 반이 나쁜 것이라면 반바닥과 온바닥의 관계도 설명할 수 없다는것이다. 즉 활터에서는 반바닥이 올바른 용어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정리된 사법이 <온깍지 사법>이다. 온깍지 사법은 개량궁의 등장 이후 변형된 반깍지 사법과는 달리 옛부터 전해오던 전통 사법을 말하는 것으로, 전통 사법의 원형은 1929년에 발간된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을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조선의 궁술>에서는 궁체의 부위별로 설명을 한 공간지각형 이론인데, 이것을 동작을 시간차 순으로 설명한 시간지각형이 바로 온깍지 사법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하여 2000년부터 시작된 10여년 간의 논쟁을 통하여 인터넷에는 <온깍지 사법>이 등장하였고, 이것은 그 뒤로 책(활쏘기의 나침반)으로도 발간되어 사법 논쟁이 일단락 되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항하여 반깍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표면상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논쟁의 특징이기도 하다. 반깍지는 전통 사법으로부터 멀어진 1970년대 이후의 현상이기 때문에 반깍지를 주장하는 순간 자신은 전통 밖으로 밀려난다는 위기상황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궁계의 상황은 결코 논리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이런 인터넷 논쟁의 의미를 퇴색하게 한다. 즉 인터넷에서는 온깍지 사법이 대세로 정착했는데, 활터 현장에서는 오히려 반깍지 사법이 더욱 공고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요즘 활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활터에 올라가기 전에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예비정보를 갖추고 활터를 찾아간다. 인터넷에서는 당연지사로 여겨지던 온깍지 사법이 활터에서는 눈을 씻고 찾이보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결국 반깍지를 가르치는 사범으로부터 반깍지를 배우고 그들의 논리에 젖어간다. 활터는 아직도 20년 전의 반깍지 사법이다. 그래서 활을 처음 배우는 신사들이 활터에 올라가서 온깍지 사법으로 쏘려면 핍박에 가까운 핀잔과 잔소리와 맞서야 한다. 신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전통사법이 꼭 깍짓손 떼는 동작 여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온깍지 동작 속에 내포된 함의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온깍지 논쟁은 이제 겨우 첫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깍짓손을 어떻게 떼느냐 하는 것을 넘어서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통 사법의 비결을 이해하고 그것을 몸으로 체득할 때 사법의 완성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온깍지 사법의 실기를 지도해온 류근원(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청주 우암정 사범) 접장은, "깍짓손을 어떻게 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통 사법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전통 사법은 주변부로부터 끊임없이 중심으로 들어가야 완성되는 것으로, 아무리 빨라도 10년 정도는 수련해야 겨우 그 맛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스승을 제대로 만났을 때의 일이다. 스승 없이 전통사법을 터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자정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배운 활 수준에서 ,<조선의 궁술> 운운하는 사람들은, 정진명 접장의 말마따나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통 사법의 계승자인 양 떠들고 있어서 오히려 제대로 배우려는 사람들의 눈을 흐리고 앞길을 막는 것이 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논쟁이 뜨거워질수록 의미심장한 말이다.
논쟁과 현실이 다른 이중성의 간극을 국궁계는 앞으로 어떻게 메워갈지 눈여겨볼 일이다.
3.각궁과 전통 사법
『조선의 궁술』은 1929년에 나온 책이고, 그 속의 사법은 이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각궁뿐이었고, 개량궁이 나타나기 전이었다. 따라서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은 각궁을 전제로 한 사법이다.
그런데 오늘날 벌어지는 사법 논쟁의 주동자들은 대부분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고, 개량궁으로 집궁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각궁이라고는 잡아보지도 않는 애송이들이 논쟁에 참여하여 아는 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이게 논쟁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각궁과 개량궁은 겉모양도 다르지만 속에서 작용하는 힘도 다르다. 각궁은 처음부터 빡빡하여 만작할 때는 오히려 부드러워지는데, 개량궁은 처음에는 물렁하다가 만작이 될수록 점차 강해진다. 이 차이는 사법에서 하늘과 땅만큼 많은 변화를 초래한다. 발상도 다르고 몸속에서 작용하는 힘의 원리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원리로 『조선의 궁술』을 조명하면 『조선의 궁술』은 조명하고자 하는 대로 답을 내준다. 즉 읽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조선의 궁술』은 다르게 읽힌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궁술』을 전통으로 놓고 벌이는 사법이라면 각궁 사법을 아는 사람만 그 사법에 참여할 자격을 지니는 셈이다. 결국 사법 논쟁이 어떤 의미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개량궁으로 집궁하여 개량궁 사법을 터득한 사람들은 논쟁에서 빠져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논쟁의 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조건에서 그 자리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렇기 때문에 사법 논쟁에 회의가 일고, 그 결과에 대한 믿음이 엷어진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벌어지는 논쟁은 허무한 경우가 많다. 몸으로 하는 어떤 대상을 말로만 하다 보면 말이 말을 만들고 그 말들이 몸의 움직임과 동떨어져 상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궁계의 사법 논쟁이 그런 지경이다. 그러므로 애써 벌인 논쟁이 말장난이나 소모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양식과 수준이 적어도 일반인들의 상식에 맞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 상식이란 다름이 아니라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이 각궁 사법임을 알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다.
깍짓손이 시원하게 터지는 온깍지 동작
-참고자료
이중화, 조선의 궁술, 조선궁술연구회, 1929
정진명, 한국의 활쏘기, 학민사, 2013
정진명, 활쏘기의 나침반, 학민사, 2010
정진명, 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고두미, 2017
온깍지궁사회, 한국 활의 천년 꿈 온깍지궁사회, 고두미, 2016
온깍지궁사회, 국궁논문집9, 고두미,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