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을 버려야 활이 보인다
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전통 활쏘기는 『조선의 궁술』에 있고, 『조선의 궁술』에는 과녁이 없습니다. 과녁이 없다는 것은 과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활이 다다라야 할 곳이 과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의 궁술』에서 밝혔습니다. 체육에 적합한 활쏘기라고 말이죠.
우리의 활쏘기는 1894년 갑오경장 때 무과에서 제외됨으로써 무기의 기능을 다했습니다. 활에서 무기의 기능이란 맞히기를 뜻합니다. 적이 어떤 곳에 있든 자유자재로 맞힐 수 있는 능력이 활쏘기의 유일한 잣대였습니다. 1894년에 그것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나타난 우리 활의 논리가 <조선의 궁술>입니다.
이제 평가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적을 잘 맞히어서 흘륭한 것이 아니라 몸을 잘 갖추어서 쏘면 저절로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궁체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 과녁을 맞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과녁 맞는 일은, 내가 궁체를 잘 갖추어놓으면 저절로 따라붙는 결과입니다. 따라서 잘 맞히는 것과 잘 쏘는 것은 다른 것이 됩니다. 이것이 『조선의 궁술』에서 전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이 반대는 거짓입니다. 즉 과녁만 잘 맞으면 어떤 동작이든 옳다는 생각은 전통과는 상관이 없는 발상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눈으로 현실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요즘 활터에는 전통은 없고 과녁만 남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맞힐까를 고민하는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어떻게 하면 활을 잘 쏠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과녁 잘 맞힐까를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맞히기 기능만을 강조하고 연구합니다. 이렇게 과녁 맞히추기에 골몰하다 보면 결과를 측정하는 방법까지 발달합니다. 과녁에 불을 달기도 하고 마이크를 달기도 하여 어떻게 하면 결과가 착오가 나지 않을까를 연구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시설이 진화를 하고 새로운 시설들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활터의 전통과 어떤 연관을 맺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활터의 전통을 파괴하는지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근래에 나타난 몇 가지 현상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종을 쳐서 습사 시작을 알리는 일입니다. 습사 시작을 알리는 어떤 신호가 생겼다는 것은, 반대로 뒤집어보면, 그 만큼 사대의 질서가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종을 쳐서 알려야 할 만큼 어수선해져서 그냥 눈치껏 살펴서 행동하기에는 어림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대의 질서가 무너진 것은 좌우 발시교대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원래 활터에서는 우궁과 좌궁이 매 순마다 교대로 먼저 쏘았습니다. 그것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사정에 따라서 원칙을 지켜온 것이고 그것이 예절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즉 이번 순에 우궁이 먼저 쐈으면 다음 순에는 좌궁이 먼저 쏜다는 암묵이 있었던 것이고, 될수록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려고 애써온 것입니다. 신사와 구사가 서로 활을 쏘려고 모범을 보이는 경쟁심리 비슷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쟁하듯이 앞 순에 우궁이 먼저 쐈으면 이번에는 좌궁 쪽에 서는 젊은 사람들이 먼저 쏘려고 눈치를 보다가 화살을 차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 순에 먼저 쏜 우궁들은 양보하기 싫다는 듯이 뒤따라 나서며 먼저 쏘겠다고 한 번 눈치를 줘보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신사와 구사가 서로 먼저 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습사를 열심히 하려는 의도가 이런 묵계 속에는 담겨있습니다.
이런 묵계가 깨지고 나니 앞 사람이 나가 서는 데도 미적거리면서 늦게 나타나서 끼어들게 되고, 또 그게 어른이 하는 짓인 줄로 착각하거나 일부러 꿈지럭거리기까지 합니다. 이만 해도 양반입니다. 구사의 첫시가 떠났는데도 새파란 젊은 것이 뒤늦게 화살을 차고 끼어들기까지 합니다. 이것도 양반입니다. 첫 시가 나가고 2시 3시째 나가는데, 뒤는게 끼어드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러면 또 어서 한 발 더 쏘라고 기다려주기까지 합니다.
이 좌우 교대 발시는 대회의 경기 운영방식이 활터로 흘러들면서 사라졌습니다. 대회에서는 무조건 우궁 우선 발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회에 나가서 시수를 내려는 욕심 때문에 자정에서도 대회 방식으로 활을 쏘게 되고, 좌달이나 우달이 같은 예절이 귀찮아진 것입니다. 게다가 뒤에서 심판이 도사리고 앉아서 얼른 쏘라고 관중을 외쳐대죠.
이렇게 엉망이 된 사대에서 질서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외부에서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런 강요의 형식이 바로 종입니다. 땡! 하고 종을 치면 우르르 나서는 것이죠.
요 몇 년 사이에 갑자기 변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과녁에 마이크 장치를 달고 관중여부를 알리는 불이 반짝이도록 한 것입니다.
즉 화살이 과녁에 맞으면 번쩍 하는 불빛이 반짝이고 소리가 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고전이 사라지면서 관중 여부를 정확히 판정하려고 한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한 술 더 떠서 과녁의 부위별로 결과가 나오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설치하자는 제안까지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고민들의 공통점은 마음이 과녁에 가있다는 것입니다. 맞느냐 안 맞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화살이 과녁에 맞을 때마다 불이 번쩍거리고 마이크 소리가 나는 곳에서 활을 쏴보니, 정신이 사납습니다. 멀리서 화살이 튄 뒤에 잠시 후 목성이 오는 것을 즐기는 데 익숙한 저로서는 긁어부스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고전이 사라진 곳에서 불이 번쩍이며 마이크 소리가 나는 것이니, 이걸 세태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선뜻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판단을 하거나 말거나 활터는 이미 과녁을 향해서 달려가는 중입니다.
사대에서 생기는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사대에 나서서도 얼마나 나부대는지 가만히 서있지를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발을 바꿨다, 움직임은 끊임이 없습니다. 옆사람 쏘는 데 방해되는 것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대의 기준선 모양도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선을 하나만 그어놓고 그 선을 밟고 쏘았습니다. 양궁과 마찬가지죠. 과녁 솔대 선에서부터 잰 거리이니 그 거리에 몸의 중심을 두면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 선을 밟지 않고 뒤로 물러서서 쏩니다. 하도 뒤로 물러서니까 물러서지 못하도록 선을 하나 더 그어 네모 꼴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사람을 네모 안에 가둬놓은 거죠. 원칙을 잃고서 생긴 현상입니다.
고전을 없애고 과녁에 불을 다는 건 경기장에서나 있어야 할 물건들이지 활터에 둘 것들이 아닙니다. 활터까지 경기장으로 바뀌어야 할까요? 활터에는 경기에 나가고픈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 일과 거리를 두고 조용히 활만 쏘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경기가 활터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과녁 맞히는 일이만 골몰하며 경기 방식으로 활터 운영까지 바꾸려 드는 것은 그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과녁만 남은 활터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과녁만을 보는 버릇 때문에 사라진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시지를 쓰는 버릇이 사라졌습니다. 그날 활터에 올라오면 활을 얹기 전에 오자마자 시지에 이름부터 기록하는 것이 일입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나하나 하는 것은, 자신의 궁체와 실력을 객관화하는 방법입니다. 사림이 워낙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재구성하는 까닭에 활을 쏘기만 하고 기록을 안 하면 자기가 잘 맞힌 것만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억상의 허점을 보완하려고 시지를 만든 것입니다. 시지를 정직하게 기록하다보면 쟈신에게 찾아오는 시수의 변화와 주기를 알 수 있습니다. 막상 꼼꼼히 기록해보면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의 실력보다 시수가 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단체전에 나가면 붓을 들고 가서 일일이 자정 사원들의 시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정으로 돌아오면 그날 기여도가 가장 좋은 사람에게 그 획지를 주었습니다. 꼭 기록경기만이 아니라도 이런 기록 습관은 활터의 중요한 전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지가 지금도 남아서 오랜 역사를 지닌 활터에 가면 궁방 어느 구석엔가 잔뜩 쌓여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중에 문화재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필야정의 시지는 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시지는 출석부 노릇도 합니다. 그래서 시지가 수북이 쌓이면 그 정의 역사가 쌓여가는 것입니다. 후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 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런 풍속이 과녁만 바라보는 풍토에서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사원들이 하나 둘 소홀히 하는 사이에 어느덧 증발해버리고 맙니다. 지금까지 말한 이런 것들이 활터의 현실이라면 그런 활터는 과녁만 남은 곳입니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은 편할지 모르겠으나, 활터가 국적불명의 활쏘기로 변해가는 중임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과녁만 남은 활터에서는 전통을 말한다는 것이 우스운 꼴이 되고 맙니다. 거꾸로 활터에서 전통을 지키려면 과녁부터 없애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과녁이 사라진 곳에서는 전통이 오롯이 살아납니다. 그러니 전통을 위해서라면 과녁부터 없애야 할 일입니다. 과녁 맞추는 것이 우리 활의 전통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일입니다. 과녁이 사라지면 전통은 저절로 살아납니다. 옛날에 활을 배울 때 쓰는 방법 중에 벌터질이라고 있습니다. 과녁 없이 쏘는 것입니다. 화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그 자리에 과녁을 놓고 쏘는 것입니다. 과녁은 그럴 때 놓는 것이지, 처음부터 과녁 맞추기 위해 골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활을 배우려면 과녁부터 없애야 합니다. 과녁이 없는 곳에서 활을 쏘거나, 과녁을 보지 않고 쏘는 것입니다. 주살질을 시키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과녁을 보면 궁체가 사라집니다. 과녁을 보면 자신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을 보지 못하는 활은 전통이 아닙니다. 전통 활에서는 자신이 보입니다. 그래야 궁체 얘기를 할 수 있고, 궁체가 갖춰질 때 과녁을 말할 수 있습니다. 궁체는 과녁에 앞섭니다. 과녁이 궁체를 앞설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활터에서 과녁 맞히는 일 말고 궁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오늘날 활터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과녁을 치워야 활이 보입니다.
-온깍지 활 공부